"도망쳐!!! 전차다! 전차가 불을 뿜는다!!!"


포격으로 부숴진 시청에서 도망치던 나에게 들린 소리는

버드윈이 몸에 불이 붙은채로 내게 도망치며 외친 비명이었다


"버드윈! 새꺄, 정신차려!"


끅끅거리는 소리와 타들어가는 목소리

버드윈은 내게 도망치길 재촉하는 걸까 나를 밀어냈다

몸과 기도에 입은 화상으로 죽어가는 와중에 마지막 기력으로


전차는 저 멀리서 천천히 우뢰같은 엔진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기관총의 탄환 한발한발이 벽과 엄폐물을 박살내고

지옥불을 연상시키는 불기둥에 모든 것이 그을린다

내게 가능한 것은 겁에 질려서 도망치는것 뿐이었다


"화염병... 화염병이..."


화염병 2개를 넣어둔 코트는

끈적거리고 휘발유 냄새나게 변해버렸다

2개 모두 격렬히 도망치느라 깨져버린 것이었다


자그마한 불씨에도 타오르며 나를 구워버릴

기름에 망가진 셔츠를 벗어던지고 골목으로 도망쳤다

몸도 가벼워졌고, 그대로라면 분명 도망갈 수 있었다


"끼야아아악!!!!!"


불타는 건물에서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어린 여자아이의 외마디 비명이

건물의 간판은 부숴져 바닥에 떨여졌지만 글씨는 선명했다

'플라워가든 고아원'


'꼬마야, 꼬마야!!'


그저 구하고 싶었다

설령 인간의 아이라고 하더라도

고아로 태어나 한 사람에게 구원받았던 내가

그런 은혜를 갚지 못한 것은 마음에 계속 걸려온 일이었다


불판같이 뜨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타오르는 나무 장판 너머에서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계속해서 두드리는 소리, 아이는 거기에 있다


"거기서 기다리렴! 내가 간다!"


순간 불길이 치솟으며

다리에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코트를 버릴때 바지에 기름이 조금 묻은 듯 했다


비명지를 시간은 없었다

무기를 쥐고서 아이를 안을 수도 없었다

사간은 적고 내 손은 작기에


-쿵 -쿵


고장난 나무문을 온몸을 이용해서 부숴버리자

불길은 없지만 공기는 후끈한 작은 침실이 나왔다


"아가, 안겨라! 어서!"


밖으로 도망치자 마주친건

비가 쏟아져 내리는 하늘과

저 멀리서 걸어오는 제국군


"하아... 흐윽...

도망쳐, 아가. 도망쳐."


"저는... 눈 앞이 안보이는 걸요..."


다리엔 심한 화상이 생겨 도망가기도 힘들다

무기따윈 이 아이를 위해서 집어던진 터였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병원으로 가지 못한다

내가 그 도움을 줄 수도 없고


"...거기 군인들! 내가 버밀리온이다!

내가 니네가 찾는 그 반란군 대장이오!

항복! 항복할거니 이 아이좀 병원으로 데려다줍쇼!"




"아저씨 무슨 생각 해요?"


"그냥... 이 거리에서 있던 추억같은 거."


"아 맞다, 10년 전.

그런데... 반란군이었으면 누구 죽이고 그랬어요?"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드는 순수한 질문에 잠시 주춤거렸다


"아니, 나는 지휘만 했어. 나는 계속해서 무장투쟁을 반대했어.

그렇게 오래 버틸것 같지도 않았고, 동포들이 호응할거 같지도 않아서."


"그래서 살인은 무혐의고 반역죄만..?"


"...누구를 죽이기야 했겠지, 엄밀히 따지자면.

그냥 그때 사람 하나 살린거랑, 살인에 크게 관여 없는거랑,

가지고 있던 물건이 소총이 아니라 권총이여서 불법총기소지에도 안걸린거랑,

그리고 뭐 이것저것 하고 제국 내 수인들 눈치 보이는거 때문에 딱 10년만... 됐다. 내가 너에게 뭔 말을 하는거냐."


율리아는 내 옆에 달라붙더니 고개를 기대고 내게 말했다


"나 사실 고아에요. 입양된 이후로 도시에 온적이 없거든요.

그냥... 이런 매연냄새랑, 자동차 소리랑, 사람들 발소리가 그리워서요.

뭣보다 아저씨랑 같이 있는 이 순간이 즐겁고."


"시각없이 느껴지는 도시는 그냥 혐오스러운 무언가의 덩어리일줄 알았는데,

도시를 보지 않고 맡고 듣는거 만으로 좋아할 수 있다는건 몰랐네."


율리아는 얕게 웃었다

그리고 내게 부드럽게 안겨왔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동시에 연약하고 아름답게


"내가 고아라는 부분에는 놀라지 않는 거에요?"


"수인에게는 그다지.

수인 하인과 불륜했다가 아이 낳고 버려버리는 부인이 한둘이 아니었고

수인 부모에게 태어나서 돈이 없다고 버려진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잖아,

고아원에서 자라난 너도 이건 알거 같은데."


"고아원에는 수인들이 얼마나 많아요?

사실 인간과 수인을 구분하는게 이해가 안가요.

그 어떤 아이도 '나는 수인이야'라고 소개하지 않았고

가끔 '내 귀는 복실복실해' 이렇게 말하기만 했어요.


눈이 작동 안하는 나에겐 수인과 인간은 똑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고아원에 얼마나 수인이 많은지 몰라요."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인간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연구소 조수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고맙다."


"내가 고마워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제게 편하게 대해주기로 해서.

계속 존대하고 소중히 여기던게... 뭔가 그랬거든요. 아저씨에게 만큼은 편하게 대해졌으면 해서."


"율리아..."


율리아는 깜짝 놀란듯 발길을 멈추더니

갑자기 내 손을 꽉 움켜쥐고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저 해맑게 소녀처럼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름으로 불러달란 말은 없었는데...

이번건 아저씨의 진심인거죠? 버.밀.리.온?"


"아니 저... 그게..."


당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나온 한마디에 갑자기

이 분위기에서 상처주는 말을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율리아에게 말려버릴 수는 없었다


"하... 이번엔 너가 이겼다."


"언제는 욕정 안한다더니~

눈은 안보여도 사람 마음은 보이거든요~"


하늘을 보니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맛있는 간식도, 길거리의 고양이도

도시를 산책하기도 했으니 할것도 더는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크리스틴이 집사인 조지 앤더슨을 설득한 끝에 해가 지기 전엔 돌아가기로 타협하였기에

더이상 도시에 있다가는 돌아가서 크게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했다


"해도 지니까, 이제 슬슬 가자."


"석양은 어떤 모습이에요?

매번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설명해서요.

아저씨, 아니 버밀리온은 어떻게 말해줄까 궁금해서."


나는 율리아의 라본을 풀고

그 긴 머리카락을 손에 쥐어주고서 같이 움켜쥐었다


"따뜻한 빛깔의 줄들이

불타는 듯한 하늘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이야.

마치 네 시나몬색 머리카락같은 실들이 말이야."


곰곰히 생각을 하는 것일까

율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흠 흠 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어서 내게 말했다


"들었던 설명들 중에서 그나마 상상이 가는 설명이었어요."


멀리서 오는 자동차

어느덧 한달은 알고지낸 익숙한 얼굴이 유리 너머로 비춰진다

율리아를 먼저 조심스럽게 앉히고 옆에 이어서 앉는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어느덧 누군가의 체온이 옆에 느껴지는 것이 익숙해졌다.


집으로 가는 자동차에 올라타자

율리아는 내게 기대더니 소곤거렸다


"하늘이 불타더라도 버밀리온은 나랑 함께구나."


의미심장한 한마디와 함께 잠에 빠진 아가씨를

숲과 냇물을 건너고 건너며 달려가는 자동차의 뒷좌석에서

나는 그저 호기심과 아주 약간의 애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순애는 사랑입니다

아주 순수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좋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