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놀아나다니 바보 같은걸.

 

얀붕이는 손톱이 파고들어갈 만큼, 주먹을 꽉 쥐고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잔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얀붕이의 강한 염원과 소망으로 인해

기적적으로 헌터의 능력이 발현되었다

 

그 덕분에 품 안의 소녀를 구할 수 있었다

 

- - - - - - - - - -

 

어느 날, 세상은 

갑자기 전조증상도 없이 나타난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 때문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 중 일부는 능력이 개화되어,

몬스터들에 대적할 수 있었으니 세상은 그들은 헌터로 불렸다

 

하지만 현실의 삶에 쫓기는 내겐 먼 이야기에 불과했다

어릴 적 붕괴사고로 인해, 

부모님을 잃은 난 고아가 되었다

 

하지만 나라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셨던 소방관들의 모습을 보고

소방관이 되기를 희망했다

 

희망을 가졌기에 가혹한 생활을 치열하게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소방관 입사시험 당일 날

 

게이트 사건이 발생했고, 

소방관 수가 급격하게 부족해지자 

곧바로 현장으로 투입되었다

 

그 현장에서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의 살려달라는 소망

하지만 자신은 그 모두를 구할 수 없었다

 

그 절망감과 좌절감이 무섭도록 

자신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

결코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되었다

 

선배 소방관은 그런 나를 보고 다독이며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

받아들여만 해’

 

현실에 순응하고 살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슴 한 켠에 묻은 채,

오늘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출동했다

 

신고받은 장소는

무너지는 아파트 붕괴현장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대피하였으나,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여아가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건물 전체가 극심하게 무너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선배 소방관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들어가면 개죽음을 당할 것이라며 포기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겐 그런 이야기 따위 중요치 않았다

 

자신에게 과거와 똑같은 붕괴사고 일을 당했을 때,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주었던 소방관의 모습이 떠올랐기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잔인하게도 현실에 무릎 꿇으라며 

무섭도록 다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놀아나다니 바보 같은걸.

 

얀붕이는 손톱이 파고들어갈 만큼, 주먹을 꽉 쥐고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잔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아가 있다고 신고받은 문을

도끼로 내리쳐 강제로 열었다

 

그 앞에는 손톱이 모두 빠진 채,

삶을 포기한 여아가 있었다

 

아마 건물의 붕괴로 인해

도어락이 고장 났으리라

 

뭐라고 위로의 말이라도 전해주고 싶었지만

시급한 상황이기에 여아를 들쳐업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방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자신의 걸음으로는 

시간 내에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쏟아지는 잔해 사이로

여아를 품 안에 안은 채, 무사하길 기도할 수밖에

 

-아저씨...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저씨까지 죽게 해서...

 

품 안의 여아는 울먹거리며 

내게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오히려 활짝 웃으며 여아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넌 무사할 거란다

이 아저씨가 목숨을 걸고 약속하마

 

직후에 건물의 잔해들이 

내 위로 무섭도록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만약 존재한다면

당신에게 이렇게 빌겠습니다

 

제발 이 아이만은 살려주세요..’

 

- - - - - - -

 

동료 소방관들은 결국

얀붕이 소방관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 보고

안타까움에 탄식했다

 

평소에 정의감이 투철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는데,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시신이라도 수습해주고자,

건물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허억, 이게 무슨 일이야?!

 

그들은 곧이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아를 품 안에 꼭 안은 얀붕이 소방관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 - - - - - - - - - 

 

나는 품 안의 소녀만을 무사하길 바라며,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하고 있었던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고,

곧이어 동료 소방관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건가..?’

 

-이봐, 얀붕아! 정신차리게!

 

동료 소방관이 내 어깨를 잡고 흔들고서야,

그제야 현실임을 깨닫고 품 안의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상처 하나 없는 안전한 모습이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 - - - - -

 

다시 눈을 뜨자 주위는 어둑한 밤이었다

 

‘여긴.. 어디지?’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찰나,

자신의 배 쪽에 작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잠든 저 모습은

자신이 오늘 구해주었던 여아였다

 

여아가 잠에서 깨지 않게 

다시 몸을 뉘이려고 할 때였다

 

-아저씨..? 아저씨..!!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여아는 결국 잠에서 깨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눈물 흘렸다

 

처음 받아보는 걱정과 기쁨에 

난 가슴이 울렁거리는 걸 느끼며 말했다

 

-아저씨가 약속했잖아

그리고 밤늦게까지 간병해줘서 고마워

 

부모님도 걱정하실 텐데,

너도 어서 돌아가서 안정을 취해

 

그 말에 웃고 있던 여아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저씨.. 

저 사실 부모님이 없어요..

 

게이트 사건 때 

저를 지키기 위해 부모님이 희생하셨거든요..

 

그 말에 난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빨리 죽기만을 바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없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건 정말 지독하게 아팠거든요

 

그러다가 건물이 붕괴된다는 방송을 들었었고

처음에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야 나도 죽을 수 있다고

 

하지만... 갑자기 너무 두려워졌어요

 

사실은 죽기 싫다고

살고 싶다고 

 

그래요, 전 사실 추하지만 살아남고 싶었던 거에요

 

그래서 뒤늦게 문을 열려고 했지만,

붕괴 때문에 도어락이 고장이 나서 열리지 않았어요

 

문을 마구 할퀴고 손잡이를 흔들고 발악했지만

결국 열리지 않아서 전 그제서야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여아는 눈물을 흘리며 내 품에 안겼다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셨을 때,

희망을 가질 수 있었어요

 

살 수 있다고, 이런 나라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곧이어 절망했어요

 

빠져나가기엔 너무 늦어서,

나 때문에 아저씨도 죽는 거라고..

 

하지만 아저씨는 끝까지 내게 희망을 주셨어요

 

그리고 전 그 희망을 믿었고, 

아저씨가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도했어요

 

결국 우린 서로가 살아남기를 바랬고,

이렇게 살아있어요

 

잠시 망설이던 여아는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아저씨.

 

몰래 엿들어서 죄송하지만, 

아저씨 동료 소방관들이 아저씨도 가족이 없다는 걸 들었어요

 

아저씨만 괜찮다면

제가 아저씨의 가족이 되어도 괜찮을까요?

 

서로의 존재의의이자, 목적이 되었으면 해요

 

그 말과 함께 여아는 

거절은 듣기 싫다는 듯이 더욱더 강하게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난 그 강렬하고도 투박한 마음에,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거절한다면 

자신과 달리 목적이 없는 여아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흔들리는 촛불과 같았다 

 

 결국-

 

-가족이라고 한다면 이름을 알아야 하지 않겠니?

내 이름은 얀붕이란다

 

난 풀썩 웃으며 여아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여아는 그 말에 잠시 움찔하더니

곧이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전 얀순이라고 해요!

앞으로 가족으로서 잘 부탁해요! 얀붕이 오빠!!

 

- - - - - - - - -

 

난 퇴원 후 곧바로 헌터 관리소로 이동했다

 

붕괴현장 때 자신이 멀쩡했던 것을 보고,

동료 소방관들이 헌터 사무소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안경을 끼고 사무적인 얼굴은 한 남성이

데스크 책상에 앉아 있었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난 그 차가움에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아, 전 얀붕이 소방관이라고 합니다

퇴원 후에 이곳으로 가라고 해서요

 

잠시 서류를 뒤적이던 남직원은

탁한 색깔의 구슬을 내밀며 말했다

 

-이 구슬에 손을 올리십시오

 

‘이게 헌터의 자질을 측정할 수 있다는 그 도구인가 보구나..’

 

난 약간 신기해하며 구슬에 손을 올렸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남직원은 잠깐 미간을 꿈틀거리더니

 

-능력 검증을 하기 위해 

훈련소로 잠시 이동하겠습니다

 

난 직원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아 긴장했다

 

‘결과가 안 좋게 나왔나봐

하지만 괜찮아, 결과가 안 좋더라도

난 지금처럼 소방관으로서 사람들을 구하면 되니까’

 

그렇게 결의를 다지며

앞서나가는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

 

훈련소에 도착한 직원은 내게 질문했다

 

-혹시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능력...?’

 

직원은 곧이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힘이 강해졌다든지, 불꽃을 피울 수 있다던지,

평소와 다른 힘이 느껴지냐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기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원은 손에 들린 서류를 잠시 보더니

 

-붕괴현장 때 당신이 무사했던 걸로 보아,

아마도 방어 계열의 능력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난 그 말에 기쁨을 느꼈다

 

‘방어 계열이라니..!!

앞으로 사람들을 더 구할 수 있겠어..!!’

 

-그럼 방어 능력 테스트를 위해 

복장 환복 후 이 곳으로 다시 와주십시오

 

 

환복 후 다시 훈련소에 도착했을 때,

직원은 사무적인 말투로 다시 말했다

 

-당신에게 던져지는 돌덩이들을,

자신의 능력의 심상을 떠올리며 막아보십시오

 

준비가 됐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각오를 다지며,

직원에게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 무엇이 오더라도 막아 보이겠어!’

 

하지만 그 각오가 무색하게도

난 온 몸통에 돌덩이들이 직격당했다

 

직원은 내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슥슥 적더니

 

-아쉽게도 당신의 자질과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방어 능력이 존재한다는 증언이 존재하니,

일단은 F급 헌터로 직책을 드리겠습니다

 

헌터로 임명되는 순간,

지금 하고 계시는 소방관은 그만두셔야 합니다

 

이는 경찰, 소방관 직무에 있으신 분들과

헌터분들이 갈등을 겪고 있기에 내려진 행정명령입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과 함께 직원은 자리를 떠났다

 

난 직원의 말을 듣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의 목표를 삼았었던, 소방관을 그만둬야 한다니

심지어 자신에겐 헌터의 능력도 없다


평생을 소방관을 하기 위해 달려왔고

이제야 겨우 다다랐건만,

앞으로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난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아픈 몸을 부여잡고 집으로 향했다

 

상처투성이의 내 몸을 보고 얀순이는 크게 놀랐다

 

-왜 이렇게 많이 다치신 거에요?!

 

얀순이를 걱정시키기 싫어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했다

 

하지만 울먹거리며 진실을 요구하는 모습에,

결국 난 모든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겐 헌터의 능력이 없고,

더 이상 소방관을 할 수 없다

 

능력도 없는 자신은 이젠, 

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

 

실의에 빠진 채,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너도 이런 내게 실망했겠지..’

 

그러나 오히려 얀순이는 다정하게 말했다

 

-오빠, 오빠가 헌터의 능력이 없을 때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내셨잖아요

 

저도 오빠에게 구원받았는걸요

 

그리고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그러니 우리 함께 같이 방법을 찾아봐요!

 

그 말에 흐리멍텅해진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었다

난 그동안 수많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었다

그때마다 주저앉은 채, 포기했던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시련도

그저 하나의 돌부리에 불과하다

 

가족이란 건, 

이런 나라도 믿고 응원해주는구나

 

울컥함을 느끼고

얀순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 - - - - - -

 

그러나 얀붕이는 봤을까

끌어안긴 얀순이가 설핏 웃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