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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대학교 신입생이 된 얀붕이한테는 고민이 하나 있었어.

바로 그의 여자친구, 얀순이 때문이야.

  

얀순이한테 부족한 점이 있었냐고? 아니.

얀순이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부족할 게 없는 상위 0.1%의 알파피메일이었어.

몸매도, 외모도, 성적도, 인품도, 너무  비인간적으로 뛰어났지.


얀붕이는 그런 얀순이를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어.

처음에는 얀순이는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얀붕이를 혐오했지만, 계속 끈덕지게 달라붙은 이후로 얀붕이에게 집착하다 못해 한 몸처럼 붙어있게 됐지. 


심지어는 아직 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혼인신고서를 작성해 법률혼 관계까지 가지려고 했었어.

물론 얀붕이와 왠지 모르게 극성으로 반응하는 얀순이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됐긴 했지만서도.


그런데 왜 고민이 있냐고?

그건 바로 얀붕이 자신에게 있었어.

자신따위가 얀순이와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오히려 자신이 있으면 얀순이가 불행해진다는 생각때문에 그런 거였어.


물론 얀순이의 의사따윈 묻지 않은 기열찐빠스런... 아, 아니 무책임한 마음인 걸 알면서도, 서서히 얀붕이는 자기비판의 늪에 빠져갔어.


그러던 어느 날, 얀붕이한테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계속 집착을 해서 얀순이가 날 사랑했으니, 내가 막 대하면 얀순이도 날 싫어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연인에게 상처를 주긴 싫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불행에 빠트리는 건 더 싫었어.


죄책감에 남몰래 우는 것이 끝난 후, 결심을 한 얀붕이는, 바로 실전에 돌입했어.


'띵동~'


'삑-삑-삑-삑-'


밸을 누른지 1초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급박한 소리.

수업이 끝나고 얀순이가 돌아왔어.


"얀붕아~! 보고싶었어!!! 여기 너를 위한 선물이..."


얀순이의 해맑은 웃음을 본 얀붕이는 순간 당황했지만,

마음을 먹고 말을 했어.


"그...얀순아..."


"응? 왜 얀붕아?"


"...이제 그만 만나자."


"...뭐? 얀붕아?"


"...그만 만나자고."


그 순간 얀순이의 눈시울이 붉어졌어.

마치 조금이라도 더 건드리면 울어버릴 정도였지.

그러나 얀붕이는 그치지 않았어.


"솔...솔직히 너하고 사귀기엔 내가 너무 아까운 것 같아.

 사...사랑하는 관계라기보단 니 몸만 보고 만난 사인데 너가 귀찮게 반응해서 지금까지 어울려준거야!"


사실이 아니었어. 모두 자신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 뿐이었지.


얀순이의 눈시울이 더 붉어졌어.


"그리고 혐오스럽게 볼 때는 언제고 조금 친절히 대해줬다고 거기에 바로 넘어가? 너 진짜 바보구나?"


이번엔 얀붕이의 눈시울도 붉어졌어.


"애초에 서큐버스같이 그 정도로 쉽게 사랑에 빠질 거면 내가 아니라 다른 남자라도..."


그 순간, 갑작스런 충격에 의해 얀붕이는 말을 마치지 못했어.


"커...커헉..."


커다란 짐승의 팔이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걸 본 얀붕이는, 아래를 살피자 놀랄 수밖에 없었어.




거기에는, 붉은 눈을 한, 마치 악마와도 같은 모습을 한 얀순이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만, 거기까지."


얀순이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정도의 소리 울림이었지.


"거기서 단 한마디라도 더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인간."


팔에 목이 잡혀 말하기도 어려웠지만, 얀붕이는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어.


동의의 사인을 받은 얀순이는, 얀붕이의 목을 놓아주며 말했어.


"어떻게 안거야?"


"무...뭘?"


"내가 악마라는 거. 서큐버스는 아니지만. 그리고, 내가 널 오늘 마계로 끌고 갈 거 였다는 거."


얀붕이는 너무 빠른 상황전개에 인지부조화가 왔지만, 이내 빠르게 답했어.


"그...그게 뭔소리야? 악마는 또 뭐고 마계는 또..."


"모르쇠 하지 마. 대체 언제부터? 내가 비정상적으로 평범한 인간들보다 뛰어나서? 아니면 설마... 혼인계약서 때부터?"


"...혼인계약서? 혼인신고서 말하는거야?"


"자꾸 몰랐던 척 하지 마. 어떻게 안거지? 아버지가 혼인 신고서로 혼인계약서를 바꿨다는 건... 알려주지 못했을텐데..."


얀붕이는 순간 혼인신고서에 있던 내용이 떠올랐어.

매우 작은 글씨로 써 져 있었지만, 인쇄상의 오류라고 생각해 신경쓰지 않았지.


'갑(김얀순)과 을(김얀붕)은 이 계약서에 사인한 후, 운명공동체가 돼 평생을 마계에서 보낼 것을 맹세합니다.'


당시엔 얀순이가 낙서로 써 놓은 내용인줄로만 알았으나, 지금보니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어.


사태파악을 모두 한 얀붕이는 공포심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어.


"가...가까이 오지 마...세요."


얀순이는 그런 그에게 웃으며 답했어.


"얀붕아, 내가 너한테 왜 반했을까? 얼굴때문에? 아니. 능력때문에? 아니."


얀순이는 얀붕이의 멱살을 쥐고, 코 앞에서 말을 이어나갔어.


"바로 네 성격때문이야. 누구든지 상관없이, 심지어 그게 특별하다는 이유로 반에서 은따를 당하는 학생일지라도, 다가와주는. 그 아름다운 성격."


그 다음 얀순이는 자신의 팔을 짐승처럼 변형한 후, 그 발톱을 얀붕이의 목에 갖다댔어.


"그러니. 네가 그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날 떼어내려 해도, 난 널 결코 포기하지 않아.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너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의 창고에 가지런히 놓여있으니.


하지만, 나도 상처라는 걸 받거든? 그러니 선택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나와 살며 그 목으로 내게 사랑을 줄지, 아니면 그 목이 찢어질지."


날카로운 발톱을 보며 침샘을 삼킨 얀붕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걸 선택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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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여? 엄마?"


"그래서...마음씨 착한 인간 얀붕이는 결국 얀순이의 청혼을 받아 둘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우와! 어? 근데 이야기에서 나오는 얀순이랑 얀붕이가 엄마랑 압빠랑 이름이 같네요?"


얀순이는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 있겠니? 그쵸 여보?"


"..."


"엄마! 압빠는 아파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요!"


"아하하, 참. 내가 정신이 없었네. 미안해, 여보?"


얀붕이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자신은 장인어른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피해자는 자신만으로 족하다고.


물론 그 다짐이 지켜질 지는 아직 미지수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