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에 술을 퍼마셨는지 지금 나는 저녁 때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시선을 시계로 향해보니 시침이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2시에 오후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외출을 위해 옷장 문을 열었고, 나는 그것들을 목도했다.


옷장 문 안 쪽에는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휘갈겨 쓴 글씨체를 보니 내가 쓴 포스트잇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내게 옷장 문 안쪽에 포스트잇을 붙여두는 취미는 없을 텐데.


나는 의문을 가지며 그들 중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얀순이 만나지 말 것. 얀순이 만날 때마다 기억 일부 사라짐. 아마 한두 번은 아닌듯'


'자취방에 절대 얀순이 들이지 말 것. 들여보내도 옷장은 못 열게 할 것'


'들켰을 때 대비해서 한 번에 포스트잇 2개씩 쓰고 하나는 옷장 안쪽, 하나는 눈속임용 책상 위 노트 사이에 끄트머리 살짝 보이도록 붙여둘 것' 


'전날 기억 안 날 경우 티 내지 말고 움직일 것. 얀순에게 전날에 대해 물어보지 말것'


'영양제라고 추천하는 알약 받아먹지 말 것 

추가) 눈치 챈 듯. 영양제 포함 얀순이가 준 음식은 포장 되어있는 것 아니면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웬만해선 먹지 말 것'


'포스트잇 읽고 충격 받아도 얀순 만날 때 이상행동 보이지 말 것. 의심함'


급하게 썼는지 유난히 글자가 뭉개지고 띄어쓰기조차 되지 않은 포스트잇 하나가 눈에 띄였다.


'집에 있을 땐 자유롭게 행동해도 될 듯. 


창문걸쇠걸어방금창문으로눈마주침얀순이인ㄷ현관문열려고함'


포스트잇에게서 잠시 시선을 뗀 나는 자연스레 창문으로 시선을 향했고 걸쇠가 걸려있는 창문을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내친김에 책상 앞으로 가 노트를 뒤적여봤지만 포스트잇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정신병이거나 그녀가 가져갔거나겠지.


나는 다시 한 번 옷장 앞에 서 차분히 다른 포스트잇을 읽었다.


'얀순이 카톡엔 늦어도 30분 안에 답장할 것. 아마 내 폰 들고 직접 대화 내용 지우는듯'


'평소엔 상관 없지만 전날 점심부터 기억 안 나는 날은 수업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올 것'


'집 비밀번호 너무 자주 바꿔 눈치 채게 하지 말 것. 한 달에 한 번씩이 적당할듯

비밀번호 바꾼 날짜: 

23년 8월 17일 기존->007429


23년 9월 22일 990611


생년월일 포함 유추되기 쉬운 숫자 절대 쓰지 말 것. 되도록 아무런 숫자 5~7글자

23년 9월 29일 3619385'


'경찰 신고 절대 하지 말 것. 도움 안 됨'


'커뮤니티에 글, 댓글 함부러 쓰지 말 것. ip나 아이디 알고 있음.'


오금이 저렸다.


이번이 몇 번째지..?


나는 떨리는 팔을 붙잡으며 코트를 걸치고 자취방을 나섰다.


때마침 내 휴대폰에는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