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가씨?"



"?"



좆 될 뻔했다.


우리 둘만 있어서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봤다면...


근데 아가씨 표정은 태평하다. 뭐 문제 있냐는 것처럼.


아...혹시?


생각해 보니까 어린애들은 원래 친한 사람한테는 뽀뽀하고 다닌다.


음, 내가 순수함을 잃은 거구나.



"아가씨, 이런 행동은 저한테 하시면 안 돼요."



"왜요?"



내가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이런 건 정말로 가까운 사람한테 하는 겁니다."



"가깝지 않나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참 귀엽다.



"그 정도가 아니라, 결혼이나 약혼을 한 사람한테 해야 됩니다."



"그럼 결혼하면 되죠!"



아...이건 정말 순수하게 하는 말이 맞다.


릴리도 나중에 커서 자기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그랬었지.


결혼이건 사랑이건 아무것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아가씨, 결혼은 아무리 빨라도 15세는 되어야 합니다."



"그럼..7년이나 기다려야 되는 거에요?"



"그렇죠."



"칼도 5년이나 있어야 하는데...너무 긴데...으으..."



"음, 나이가 차도 어차피 저희는 결혼이 불가능합니다."



"네? 왜죠?"



눈이 동그래지는 아가씨.


커서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알면 이불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신분 차이가 있어서요."



"으..."



"속상해하지 마세요 아가씨. 나중에 아가씨가 결혼할 나이가 되면 저보다 훨씬 멋진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필요 없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나도 이 나이엔 떼를 쓰고 있었겠지?


2살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칼...심심해요. 배고파요."



"음..."



청소 중인데...끝날 때까지 잠깐만 시간을 끌만한 게 없을까.



"꽃점이라도 쳐보실래요?"



"꽃점이요?"



"이렇게, 꽃잎 한 장을 뽑으면서 점을 치는 겁니다.


오늘 저녁은 맛있다...맛없다...맛있다..."



...



"...맛있다."



"에...이게 뭐예요. 이런 걸로 알 수가 있는 거예요?"



"아까 브룩스 아저씨가 고기를 손질하시던데..."



"진짜예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꽃점을 쳐보기 시작하는 아가씨.



"칼은 나를..."



"..안 좋아한다."



"칼은 나랑..."



"..결혼하지 않는다."



집중해서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있다.


이제 맘 놓고 청소해도 되겠지...




***




꽃점이라니, 그렇게 귀여울 때가 있었지...아 여전히 귀엽긴 하다.


아가씨가 말썽을 피우면 나는 수습하고.


손을 다치면 내가 약 바르고 붕대 감고, 물건 망가지면 내가 책임지고.


이런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가씨는 훌쩍 커버렸다.


나도 훌쩍 컸는데, 나보다 더.


이젠 둘만 있으면 서로 반말을 한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아가씨..아니 리타의 강요에 의한 것이다.



"칼, 나 어떡해? 거울 보는 게 무서워..."



"왜?"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착하고 몸도 좋잖아. 이 정도로 완벽하면 반칙 아니야? 하..."



"응. 내가 보기에도 완벽해."



"거기선 반박을 해야지..."



자기가 말해놓고 부끄러워하는 게 귀엽다.



"착한 거 빼고."



"뭐? 죽을래?"



원래도 귀엽고 예쁜 소녀였던 리타는, 이제 남자 여럿 울릴만한 늘씬한 미녀가 되었다.


그리고 키가 정말 많이 커졌다. 나보다 더. 하긴 장신이 집안 내력이니.


나보다 어리고, 여자였는데도 눈높이 차이가 얼마 안 났던 데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또...



"칼, 팔씨름할래?"



"제가 어떻게 아가씨를 이기겠습니까."



"에이~ 쫄았어? 진심으로 해도 내가 이길 것 같은데."



"은화 한 닢 건다."



휙!



졌다. 깔끔하게.



"봐주는 거야? 아니면 어디 아픈 건가~?"



"놀리지 마라..."



"남자가 이렇게 약해서 어디다 써먹는담~ 키도 나보다 작아가지고."



"네가 이상할 정도로 큰 거지 나도 작은 건 아니다..."



일 년 전부턴 이미 내 키를 넘었고, 힘도 넘었다.


백작님의 핏줄이라 그런지 리타는 여자인데도 힘이 장사였는데, 늑대 사건 이후로는 호신 겸 무술까지 배웠다.


이제는 옛날의 병약한 모습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내가 진심으로 싸워도 10초 안에 질 것이다.



"나 다리 아파. 옮겨줘."



"조금만 있다 와주면 안되겠니? 점심까지 다 못 옮기면 나 혼난다."



"내 핑계 대면 되잖아?"



'그것도 한두 번이지...'



심심하다고 내 일 방해하는 건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네 주인이 심심하다는데, 빨리 재밌게 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럼 어렸을 때 하던 꽃점이라도 잠깐..."



"맞을래?"



너무 건성으로 대답했나.



"음...진짜 점이나 치러 가볼까?"



"진짜 점?"



"응. 왕도에 진짜 잘 맞추는 사람이 있다던데. 연인들이 궁합 물어보러 자주 간다고 하더라고. 데이트 필수 코스라는데?"



"재밌겠네."



"그럼 가는 거다?"



난 간다고 안 했는데.


왕도는 물건값도 엄청 비싸다고 들었는데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