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만원.


오늘 일당으로 받은 돈의 전부다.


온몸이 쑤시듯 아프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일당으로 받은 봉투엔 만원짜리 몇 장이 들어있었다.


봉투에서 지폐를 꺼내 하나씩 세었다.


일단 이 9만원은 입원비고····· 아, 어제 얀진이가 치킨 먹고 싶다고 했는데·····.


만원짜리 치킨이·····.


·····제기랄.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주먹을 꽉 쥐었다.


꾸깃. 손 안에서 지폐가 구겨졌다.



***



524호 병실.


이제는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얀진이는 병상에 누워있었다.


“오빠!”


책을 보던 얀진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붕붕 손을 흔들었다.


얀진이의 미소가 밝아졌다.


“자, 이거.”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응? 이게 뭐야?”


“닭강정이야. 방금 시장에서 사 왔어.”


“치킨 먹고 싶다며. 기름진 거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잖아. 그래서 닭강정으로 샀어.”


“고마워. 맛있어 보인다. 헤헤·····.


얀진이가 보던 책을 내려놓고, 젓가락으로 닭강정을 집어 한입 먹었다.


얀진이.


내게는 하나뿐인 가족이자, 소중한 여동생이다.


부모님은 없다.


아빠라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미안하다는 쪽지를 남기고 우리를 떠났다.


“밥은 잘 먹고 있지?”


“응! 간호사 언니가 편식하면 안 된다고 해서, 맛없어도 다 먹고 있어.”


“그래. 잘했어.”


쓰담쓰담. 얀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손에서 흙 냄새나·····.


“미안, 일하다 와서 그래.”


원래라면 얀진이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뇌 쪽에 종양이 있다고 한다.


얀진이가 앓고 있는 병이다.


초기에 치료해야 했지만, 시기를 놓쳐 악화하였다.


이미 뇌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고 한다.


결국 수술을 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제때 병원에서 검사받지 못한 탓이 크겠지.


지금 입원비는 간신히 낼 수 있지만, 수술비는·····


빨리 내가 어떻게 해서든·····.


“오빠. 또 심각한 표정 짓는다.”


어느새 얀진이가 내 손을 쥐었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괜찮아, 오빠. 분명 앞으로도 잘 될 거야. 이때까지 우리 둘이서도 잘 살아왔잖아!”


으쌰으쌰 소리를 내며 얀진이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좋겠다·····.


나는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의 간절한 소망은 닿지 않았다.



***


오늘도 철근을 어깨에 올리고 옮긴다.


옮기고 또 옮긴다.


아무 생각 없이 옮기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괴로운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어이, 김 씨.”


같이 일하는 아저씨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거 마시고 쉬엄쉬엄 해. 나이도 어린데 참 열심이라니까.”


아저씨가 시원한 물을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아~ 덥다. 더버.”


그렇게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자, 


“얀붕아! 김얀붕!!”


다른 관리자 아저씨가 숨을 헐떡거리며 다급하게 이리로 뛰어왔다. 


“왜 그래요.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네, 네 동생이 위급하다고――”


뭐·····?



***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이미 환자분 몸이 한계에요. 한시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


얀진이가 환자용 침대에서 눈을 떴다.


“오빠·····?”


“몸은 좀 괜찮아?”


“응····· 나 또 쓰러졌구나.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수술해야 한대.”


“그렇구나·····.


여기서는 수술을 받지 못한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어떻게든 수술만 받는다면 병을 고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5억.


수술비만 자그마치 5억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돈은 내 수중에 없다.


머리가 지끈 거린다.


가진 것도 없다.


신용도 없다.


노가다나 하는 내게 돈을 빌려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


건물 안은 생각보다 세련되어 있었다.


좀 더 무서운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평범한 사무실과 다를 게 없었다.


“손님이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덩치의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소파에 앉아 어떤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분위기로 압도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팔에 있는 커다란 부처님 문신이 눈에 띄었다.


“손님이냐고.”


“아, 네····· 돈 빌리러 왔습니다.”


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아이고, 고객님이시구나~ 일단 이쪽으로 앉으세요.”


남자가 안내한 대로 소파에 앉았다.


“일단은, 얼마정도 필요하신가?”


“그게····· 5억 정도·····.


“5억?”


휘둥그레진 남자의 눈빛이 이내 날카로워졌다.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진심으로?”


“지, 진심에요.”


내 대답을 들은 남자는 잠시 고민 하더니 이내 휴대전화를 꺼냈다.


“잠시만 기다려요.”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또각또각. 밖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더니 정장 차림의 여성이 들어왔다.


젊은 여자였다.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오셨습니까, 누님.”


남자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누님·····?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누님이라 불리는 여자가 소파에 앉고는 다리를 꼬았다.


나도 모르게 검은 스타킹을 신은 매끈한 다리에 눈이 갔다.


“그쪽이····· 고객?”


“네, 넵. 돈 빌리러 왔습니다.”


“5억이나 필요하다고, 눈빛을 보니까 도박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사정이라도 있나?”


돈이 필요한 이유.


나는 여동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흐음·····.


여자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빌려주지. 어차피 네가 갚아야 할 돈인데.”


까딱. 여자가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예, 누님.”


남자가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여자가 받은 종이를 한번 확인하고는 다시 내게 내밀었다.


“거기에 이름이랑 전화번호만 적어.”


종이엔 '계약서'라고 적혀있었다.


돈을 빌린다는 내용과 어려운 용어들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이름이랑 전화번호만 적으라고······?


혹시 잘하면 도망가 버려도――


“그런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걸.”


“네, 네?”


여자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때까지 빌려준 돈을 못 한 번도 못 받아낸 적은 없거든.”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머릿속을 읽었다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어차피, 신상정보는 거짓으로 적는 사람은 널렸고. 그런 정보 없이도 찾아내는 건 쉽거든.”


“아······ 네.”


나는 다시 계약서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 서명만 하면――


“아, 그리고. 계약서에는 없는 조건이 하나 더 있어.”


“네? 그게 무슨·····.


나는 계약서에 서명하려던 펜을 멈추었다.


“하, 설마 5억이나 되는 돈을 이름만 적고 받아갈 생각한 건 아니지?”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그 정도 액수면 빌려주는 입장에서도 위험이 커. 그러니 당연히 보험 정도는 들어놔야 하지 않겠어? 싫으면 없던 일로 하고.”


여자가 앞에 놓인 종이를 가져가려 했다.


"자, 잠깐만요·····!



***



“다행히 수술은 잘 됐고요. 한 일주일 정도 뒤에 퇴원하시면 됩니다.”


“저, 정말요······? 선생님. 이제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거죠?”


 “네. 재발률도 낮아서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담당 의사는 생긋 웃더니,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좁고 허름한 집이지만, 이곳은 내게 소중한 곳이다.


나와 여동생이 그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니까.


"오빠!"


얀진이가 따끔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으, 응?"


"시, 싱크대가 이게 뭐야?! 생화학 테러라도 당한 거야?!"


더러운 싱크대를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는 얀진이.


"아하하····· 그게, 네가 없을 땐 인스턴트 음식만 먹었으니까."


얀진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싱크대를 써본 기억이 없다.


"정말····· 오빠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그렇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


"다녀올게."


현관문을 열려고 하자, 얀진이가 뛰쳐나왔다.


"오빠! 이거!"


얀진이가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 통을 내게 건넸다.


"고마워. 그러고 보니 학교는 다음 주에 간다고 했나?"


"응. 다음 주부터 개학."


"그래. 집 잘 지키고 있어. 다녀올게."


얀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다녀와!"


손을 흔들며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는 얀진이.


평화롭다.


마침내 꿈꾸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빌린 '돈'.


3주가 지난 지금, 갚으라는 독촉은커녕 아무런 연락도 없다.


어째서일까.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닐까.


어처구니없는 상상에 웃음이 나왔다.



***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어~"


·····?


평소 같았으면 한걸음에 달려왔을 얀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자는 걸까.


――!!


현관에는 처음 보는 신발이 한 켤레 있었다.


누, 누가 들어왔나?! 도둑?!


"얀진아――!!"


급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빠?"


다행히 얀진이는 무사했다.


하지만·····.


"안녕."


초대하지 않은 여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