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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언니가 죽었다. 사인은 교통사고.

   

멍하니 향 연기 너머로 웃고 있는 언니의 사진을 보다가 진하는 찾아온 조문객에게 고개를 숙였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하게도 목이 메거나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직 현실감각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은하야 안 돼… 내가 미안해 은하야…….”

   

어떤 조문객보다도 먼저 이곳에 찾아와 저녁이 된 지금까지도 식장 한편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언니의 남자친구 때문일까. 

   

“은하야 미안해… 내가, 내가 다 미안해…….”

   

다 쉬어버린 목소리. 퉁퉁 부은 눈. 붉게 충혈된 눈동자.

   

평소 자신감 넘치고 씩씩했던 진하가 알던 소꿉친구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죽었다면 그는 날 위해 저렇게 슬피 울어줬을까.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진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

   

잠깐의 고민도 없이 스스로 내린 결론. 그제야 처음으로 진하는 조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이후. 그가 있는 곳을 보면 어째선지 가슴이 욱신거렸기에, 진하는 그가 돌아갈 때 까지 더 이상 그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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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아주머니 저 왔어요.”

   

철컥.

   

그의 집 현관문이 열리고 전에 봤을 때 보다 수척해진 아주머니가 진하를 반겨주었다.

   

“진하야 어서 오렴. 그리고 고마워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아니에요. 찬화는 여전히 말씀해주신 대로인가요?”

   

진하는 고개를 돌려 그의 방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자신이 찾아왔는데 여전히 굳게 닫힌 그의 방문. 평소 다정했던 그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 그때부터 벌써 2주나 지났는데 아직도 누구도 만나려고 하지를 않아. 음식도 제대로 먹지도 않고… 그래서 이런 부탁을 했단다. 혹시 너라면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미안해 지금 누구보다 힘든 건 너일 텐데.”

   

“아니에요. 찬화도 은하랑 어렸을 때부터 정말 친했으니까요. 충격이 몹시 컸을거에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혹시 내가 있으면 방해가 될지 모르니 아줌마는 안쪽에 들어가 있을게. 우리 찬화 좀 부탁할게 진하야.”

   

꼬옥.

   

진하의 두 손을 움켜쥐고 간곡히 부탁한 아주머니는 이내 안방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그의 방문 앞에 선채 진하는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미안해 은하야…….’

   

진하가 알고 지내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슬피 울던 그의 모습. 그 모습을 생각해내자 가슴이 무언가 걸린 듯 답답해졌다.

   

똑. 똑. 똑.

   

진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방문을 천천히 두드렸다.

   

‘만약 문이 열리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언니가 아닌 내가. 그의 세상을 채울 수 있을까.

   

“찬화야 나 왔어. 좀 나와 봐. 아주머니가 걱정하셔.”

   

째깍. 째깍.

   

일초, 일초.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감을 알려주는 시계소리만이 조용한 거실의 정적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초침이 서른 번쯤 움직였을 때.

   

끼이익.

   

걱정이 무색하게도 굳게 닫혀있던 방문은 너무나도 손쉽게 열렸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그의 상태는 처참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했다.

   

“…하야.”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할 만큼 잔뜩 잠긴 목소리.

전보다 더욱 초췌해진 얼굴. 거친 피부. 사방으로 뻗친 머리. 얼굴 곳곳에 눌어붙은 눈물자국.

그리고 그렇게 울고도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았는지 여전히 촉촉한 두 눈.

   

언제나 밝게 웃던 얼굴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 모습.

하지만 그 순간 진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걱정이 아닌 다른 생각이었다.

   

‘치사해.’

   

언니는, 은하는 죽어서까지 아직도 그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구나.

과연 내가 그 빈자리를 온전히 메울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나를 받아들여 줄까.

   

‘아니.’

   

또 다시. 결론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내려졌다.

저 모습을 보면 바보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지금도 그의 마음에 자신이 들어갈 공간 따위는 조금도 없다는 걸.

   

그사이 비틀비틀 진하를 향해 다가온 그는 진하가 반응할 새도 없이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은하야.”

   

이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진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 정말 무서운 꿈을 꿨어. 네가 날 밀어내고 대신 차에 치여서 죽는 이상한 꿈. 그럴 리 없잖아. 지금도 너는 이렇게 내 눈앞에 서있는 걸?”

   

동시에 어둡고 끈적한 희열이 조금씩 진하의 가슴속을 채워나갔다.

이전까지 품고 있던 모든 고민을 한순간에 해결해 버릴 해결책이 지금 이 순간 생겼으니까.

   

진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바보야. 내가 널 두고 어디 갈 리가 없잖아.”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면 처음부터 빈자리가 없었던 걸로 해버리자.

   

“그렇지?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나 정말 무서웠는데…….”

“미안해.”

   

내가 그의 우주가. 은하가 되어버리자. 

   

진하는 다시 눈물을 흘리는 그가 지쳐 잠들 때까지 상냥하게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



언니가 대신 차에 치어 죽어서 정신이 망가져서 쌍둥이 동생을 언니라 생각하는 남주인공.

그리고 원래 남주인공을 좋아했기에 그걸 정정하지 않고 언니인 척 그와 사귀는 여주인공.

처음에는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억지로 쌓아올린 관계가 길게 유지될 리 없음.

완벽하게 언니 행세를 하기 위해 최대한 언니의 연기를 하다가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여주인공과.

나중에 정신이 회복되고 그 사실을 깨달은 남주인공이 친하게 지내던 소꿉친구 자매 둘을 모두 망가트렸단 생각에 노력하는 피폐,치유물.


장챈에 올렸던 건데 다시 읽어보니 얀챈에 올려도 될 거 같아서 여기에도 올림


저어는 이 소재를 더 이어나갈 능력이 없으니 누가 주워가서 써도 아무말도 안할게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