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는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노름과 술 뿐 아무런 돈을 벌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어릴 적부터 철이 들어야만 했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번 돈으로 식사를 하기보다 아버지를 위해 썼다. 설령 아버지는 그 돈을 노름으로 탕진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난폭하게 문이 열린다. 아버지의 빚을 받으러 찾아온 남자들이다. 이 집에 값 나가는 물건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고 그들은 나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꾀죄죄한 꼬맹이라도 살 놈은 있다. 그리고 은발에 적안이라...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겠어."


그렇게 말하며 내 팔을 잡고 강제로 끌고 가려 했다. 내가 마녀가 된 것은 그때였다. 마녀는 인간의 감정이 폭주했을 때 태어난다. 그 말은 사실이었고 나는 믿을 수 없는 힘을 얻었다. 팔을 뿌리치는 것 만으로도 남자가 벽까지 날라갔고 곧 정신을 잃었다. 그대로 아버지를 도망치게 하고 남자들을 쫓아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분명 앞으로는 잘 될 거야. 이 힘이면 더 많은 돈이 되는 일을 할 수가 있고, 아버지와 함께 더 좋은 생활을, 가족과 살아갈 수 있을거야. 그런 달콤한 상상 따위 순식간에 부숴졌다.


"아이리스, 그대는 마녀다. 존재 자체가 죄악이며 살아있어서는 안 된다. 체포하겠다. 저항 시 즉결 처분 될 것임을 알라."

"역시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어서 약속한 보수를..."


아버지가 데려온 것은 교회의 기사들이었다. 어린 나는 몰랐지만 추후에 알길 강대한 힘을 지닌 마녀는 위험하다며 일부 교회에서, 교회가 아니라더라도 민간에서 마녀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그 주변인까지 체포한 뒤 처형하고는 했다. 이를 마녀 사냥이라고 부른다. 딸을 교회에 밀고한 뒤 교회의 인장이 적힌 작은 주머니를 기쁜 듯이 웃으면서 들고 있는 아버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안에 든 것은 금화 몇 개겠지. 그래 그 금화 몇 개가 내 가치였다.


상처를 입으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저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온 몸에서 흐르는 피와 고통 며칠 간 먹지도 못 해서 나오는 배고픔, 거기에 이런 나를 비웃는 듯이 내리는 비까지 그대로 나는 모르는 길에서 쓰러졌다. 그토록 넘치던 힘은 사라졌고 몸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마침내 힘이 달해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것일까."


그대로 정신을 잃기 직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였다.


'아아... 이젠 아무래도 좋아... 내게는 가족도, 태어난 의미도 없으니깐'




눈을 떴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진흙 밭도, 차가운 감옥도 아닌 따뜻하고 푹신한 감촉과 맡아본 적 없는 향기. 그것이 평생 본 적도 없는 잘 세탁 된 시트와 푹신한 침대라는 것을 깨닫기는 오래 걸렸다. 그렇게 처음 맛본 푹신함에 몸을 맡기고 있었는데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구나. 몸은 괜찮고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니?"

"누...누구? 저를 어떻게 하려고 이런 곳에..."

"많이 놀랐나 보네. 미안해, 나는 프란 공령의 영주야. 진흙밭에 쓰러져 있길래 영주관으로 데려왔어. 네 이름은 뭐니?"

"아...아이리스...."


푹신함에 취해 눈치 채지 못 했지만 눈 앞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따뜻한 목소리로 나를 걱정했고 도와주었다. 내가 살고 있던 프란 공령의 영주인 그는 나를 구해주고 치료해주었다. 그는 내 이름을 물어봤을 뿐 마녀인 것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은 채로 내가 회복할 동안 성심성의껏 지원해주었다. 내가 마녀인 것이 들키지 않게 식사도 약도 전부 직접 챙겨주면서 말이다.


나는 그를 따르며 영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그 친절을 마냥 믿을 수 없었다. 안심시켜놓고 나중에 혼쭐을 내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가 상상도 하지 못 하는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은 아닐까? 섬기면서도 그런 식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완전히 건강을 되찾고 이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신체까지 좋아진 나를 영주님은 집무실로 부르셨다.


"아이리스.... 이제 많이 좋아진 거 같네. 다행이야. 너에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이요? 한 달 동안 보살펴주셨으니 영주님의 부탁 정도라면..."


이 순간 이 부탁을 위해서 나를 거두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 마녀의 힘으로 하려는 행동이 있는 걸까?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막고 홀로 돌봐준 것은 나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려고? 결국 영주님도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었던 걸까? 그런 비관적인 생각은 영주님의 말과 함께 사라졌다.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해줬으면 좋겠어."

"네...? 앞으로도 함께요? 그 말은 설마...."


뭐야.. 뭐야 이 말은 설마.. 설마.. 그런 거야? 나 같은 거 일을 잘 하지도 못 하고 쓸모도 없는데 소중히 대해주고 그런 눈으로...


"아이리스, 내 일을 도와주는 종자가 되어줘.... 아이리스? 왜 굳어있어?"

"아... 네? 종...종자요? 함께 해달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니라... 종자?"

"그래, 마녀라는 것이 들키면 곤란하니깐 항상 내 곁에 두려고 해. 일 자체는 어렵지 않고 그냥 나를 도와주기만 해도 되니깐, 물론 보수 또한 넉넉히 챙겨주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되니깐 받아줄래?"

"그런 것이었군요... 네! 종자가 될 게요. 종자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 나도 참 이상한 오해를 했어... 영주님은 그저 상냥한 분인데, 나를 이용하지 않을까 의심하고 어린 이 몸을 노리는 사람으로 오해를... 이런 생각을 한 것 만으로도 부끄러워. 누구한테도 말 못 해! 그런 붉어진 내 얼굴과 함께 영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영주님의 일을 돕고 때로는 엄하게 잔소리도 해가면서 수 년. 어느 날 영주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항상 고마워. 아이리스가 있어서 다행이야."


몇 번인가 들었을 말. 그런데도 나는 돌연 확신했다. 나는 이곳에 있어도 된다고,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인 이 분을 앞으로도 계속 섬겨도 된다고.


"영주님,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저는 영주님 곁에 계속 있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의미니깐.


그렇게 내가 태어난 의미를 찾고도 꽤 시간이 지난 후 세상은 저주에 휩싸였다. 10명의 클리파의 마녀가 저주를 세상에 퍼트렸고 영주님과 내가 있던 꽃의 나라, 프란 공령도 꽃의 마녀가 내린 꽃의 저주에 침식되고 있었다. 영주님은 위험하다는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계셨고 나 또한 영주님을 지키며 사람들을 구했다. 그런 나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다른 마녀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겠지만, 저와 함께 세상을 구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저 멀리 대륙 반대편에서부터 성물인 티쿤의 지팡이를 들고 계승자를 찾아왔다는 마녀 일리아. 그녀는 영주님만이 모두를 구하고 세상을 위해 사는 존재라면서 지팡이를 넘기고 세상을 구해주기를 바랬다. 당연히 사람 좋은 영주님은 그 부탁을 받아들였고 영주님이 가시는 곳은 내가 갈 곳이었기에 나도 여행에 참가했다. 이렇게 영주님과 일리아, 나는 세상을 구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꽤 즐거웠다.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녀를 계속해서 만나고 구하였다. 영주님은 일반 마녀는 물론 저주의 원흉이라 불리던 클리파의 마녀들 또한 누군가에 의해 폭주하는 피해자에 불과하다면서 전부 구하셨다. 어느새 세 명이 시작한 여행은 수 십 명이 함께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영주님을 제외하고 모두가 마녀였기에 마녀인 것을 숨기지 않아도 됐고 여러모로 해방된 나날이었다.


결국 긴 여행 끝에 10명의 클리파의 마녀를 모두 정화하고 추후에 벌어진 사건까지 일단락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영주관에 돌아왔다. 마녀 수 십 명과 함께. 요즘 고민이 있는 나는 영주관의 복도를 걷고 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나에게 누가 말을 걸어왔다."


"어... 아이리스 맞지? 다행이다 기억하고 있어... 아이리스, 선배는 어딨어?"

"카롤? 영주님은 앞마당에.... 그런데 어쩐 일로?"

"아 선배가 저번주에 마을에 같이 가자고 했거든. 7일이 지난 일이지만 여기 책에 적어놓았기에 알 수 있어. 그러면 선배랑 데이트, 다녀올게~"

"네? 영주님과 데이트? 잠시만 기다리세요! 카롤!"


카롤은 약속시간이 다 됐기에 바빠서 안 된다면서 내 말을 무시하고 가버렸다.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영주관에는 마녀가, 여자가 너무 많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마녀를 만났고 영주님은 그들을 도와주고 구해주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 마녀들이 모든 일이 끝난 지금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대부분 영주님에게 붙어 있는 것이다. 


영주님은 모두에게 상냥하다. 그리고 둔감하다. 옛날에 영주님에 말을 듣고 이성적인 이유로 나를 거둔 것으로 오해한 것 처럼 오해 받기 좋은 말도 잘 날리는 편이시고, 거기에 너무 둔감해서 다른 마녀들이 영주님을 좋아한다는 티를 팍팍내도 전혀 눈치를 못 챈다. 그런 상태로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행을 하다보니 영주님에게 반한 마녀가 수십명이나 됐고 마녀로 사느라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영주관에서 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은 사실이다. 그런데 성창교회 교황님의 수제자인 일리아나 한 나라의 여왕인 암렛 같은 사람이 돌아갈 곳이 없어서 이곳에 있을 리가 있나. 심지어 교황님마저 초토화 된 세계의 재건 계획을 논의하겠다면서 수시로 찾아온다. 서신으로 처리해도 될 일인데 바쁜 본인이 직접 찾아오고 수줍게 붉어진 얼굴을 보면 영주님을 제외한 모두가 진짜 목적을 안다. 심지어 수제자인 일리아마저도 본인 스승을 경계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프란 공령을 다스리는 영주님이라면 그에 걸맞는 반려를 맞이해야 하고 이렇게 뛰어난 여성들이 영주님 곁에 있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인데...


"또 뻔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그 얼빠진 표정을 보면 누구를 생각하는지 뻔하다니깐, '나'."

"에엣... 뭐야... '나'잖아... 무슨 일이야? 어디 문제라도 생겼어?"

"별 문제는 없고 '나'가 고민이 있는 거 같아서~ 오늘도 영주님만을 생각하고 있는 걸 보니 웃겨서 그러고 있어. 본인도 정답을 알면서 종자라는 입장에 묶여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꼴이라니... 저번에 말했던 대로 그러면 영주님은 내가 가져간다?"

"뭐...뭣! 안 돼! 절대로 안 돼! 영주님은 누가 가져갈 존재가 아니고 남들 위에 서서 모두를 이끌어 가실 분이라고!"

"내 말을 뻔히 알면서 그리 돌려 말하는 거는 참... 역시 평화로웠던 '나'는 약하구나~"



그렇게 나를 비꼬며 '나'는 멀어진다. 그래 저 마녀는 '나'다. 다른 세계에서 영주님을 만나지 못 하고 어린 마녀인 채 혼자 살아간 나, 같은 처지에 고아들을 모아 그들을 먹이기 위해 위험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고아들을 먹이며 살다가 마녀의 심장을 먹으면 마녀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헛소문을 믿은 고아들에게 배신 당해 저렇게 변했다고 한다. 그 고통스러운 삶에 대가인지 마녀의 힘은 나보다 훨씬 강하지만 외롭고 힘들었다고 한다. 우연히 세계를 잇는 통로를 발견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뛰어들어 이곳으로 왔다.


처음 만났을 때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빼았는다면서 칼을 휘두르며 영주님을 납치해 가려 했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죽을 각오로 버티다가 다른 동료들이 와서 겨우 제압하고 동료로 삼았다. 그때 '나'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는 같다고 했지? 그러면 같은 걸 좋아하게 될 텐데, 그러면 영주님은 내가 가져갈게."

"뭣...?!"


]



그날부터 '나'도 영주님에게 들러붙는 마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강하게 말한 것 치고는 먼저 영주님에게 다가가지는 않는 편이지만 상냥한 영주님은 '나'도 소중히 대해주시며 저번에 나와 같은 종자직을 제안했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불량아인 자신은 성실한 일은 못 한다면서 거절했지만 그때는 많이 놀랐다. 아직 나만 할 수 있는 종자도 누군가에게 빼앗길 거 같아서 두려웠다.


"사실은 알고 있어....내가 영주님을 좋아한다는 것을.... 몇 년 전부터 계속 좋아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하려는 것을... 하지만 내게 무엇이 있어? 지위? 교황님이나 여왕인 암렛 같이 권력을 지닌 마녀가 종자인 나보다 훨씬 높고 힘? 일리아는 혼자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고 하고 다른 클리파의 마녀들도 아주 강해.... 심지어 다른 '나'도 나보다 훨씬 강한데 외모도 같아서 이제 내게는 우위인 것이 없다고.... 나 같은 게 영주님에 반려가 될 수 있을리가 없어...."


이렇게 영주님 곁에 마녀들이 늘어나기 전에 먼저 고백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상상도 해봤지만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태어난 의미인 영주님을 위해 살아가고 따라가는 것이 우선이니깐.... 거절 당해서 종자 일도 못 하게 되면 어쩌지? 그러면 내 의미는? 영주님을 더 이상 보지 못 하면.. 나는? 그런 망설임 때문에 고백하지 못 했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종자니깐... 종자의 일을 해야하니깐...


그렇게 후회와 절망에 빠진 내게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프란 공령의 영주님 가문은 영주님 뿐이다. 원래부터 가문의 구성원이 몇 명 없었는데 저주 사태로 인해 대부분 사망하면서 영주님만이 남았다. 영주님이 일을 하실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공령은 기능을 상실해버리고 이는 최악의 사태가 될 것이다. 공령을 위해서라도 영주님의 일을 대신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 필요하다. 그래 자식이 필요하다. 


영주님은 본인이 부재하면 종자인 내가 영주 대리의 일을 해달라 부탁하셨지만 고작 종자가 영주님의 대리가 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영주님의 피를 이은 자식이 있어야 공령을 문제 없이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영주님의 자식을 얻을 수 있으면서도 고아나 마찬가지라 외척 등으로 권력이 넘어갈 일도 없고, 영주님의 종자로써 오랫 동안 일해온 내가 그 역할로 적합할 것이다. 이는 나를 위한 게 아닌 영주님과 공령을 위한 선택이다. 


비약으로 점칠 된 논리지만 질투와 절망감으로 물들여진 내게는 그 정도 논리면 합리화 하기는 충분했다. 영주관을 관리하는 나는 모든 방의 열쇠도 가지고 있고 당연히 영주님 침실의 열쇠도 가지고 있다. 영주님의 방은 누군가가 밤에 침입하는 참사를 막기 위해 여러 마녀가 힘을 합쳐서 특수한 마법이 걸려있다. 부수는 것도 엄청난 힘을 가진 일리아나 성물이 있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하고 공격 받는 순간 바로 경보가 울리는 터라 영주관의 모든 마녀들이 순식간에 모이기 때문에 침입은 불가능하고 여태 까지 침입을 시도한 마녀도 없다.


하지만 열쇠가 있는 나라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고 이러면 경보 또한 울리지 않는다. 내가 몰래 들어가는 것을 다른 애들이 알게 된다면 순식간에 제압 당하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주관을 관리하는 몸, 다른 애들이 밤에 무엇을 하는 지도 전부 알고 있다. 그렇게 누구도 모르게 한밤 중에 영주님의 침실에 들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영주님이 침대에서 주무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는데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흐르는 군침을 뒤로 하고 천천히 영주님에게 접근했다.


그대로 영주님의 입술의 나의 입술을 맞댔다. 그 누구도 맛 보지 못한 영주님의 입술은 너무 나도 달콤했다. 그대로 깨어난 영주님이 비몽사몽인 채로 말한다.


"아이리스...? 여기는 어떻게...? 꿈인가 보구나... 아이리스... 그 누구보다 신뢰하고 좋아하고 있어....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해줘."


그 말을 들은 순간 나의 실날 같았던 이성이 무너졌고 그 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악한 마녀인 나도 영주님의 몇 배 이상의 근력을 지녔고 내 행동을 영주님은 전혀 막지 못 했을 거라는 것이다. 몇 시간 후 이성을 차린 나는 옷도 거의 없는 채로 체액이 잔뜩 묻어 있었고 그 부위가 쓰라렸다. 그리고 반쯤 쓰러진 영주님을 발견하고 사죄하기 시작했다.


"영주님! 영주님 괜찮으세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제가 종자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종자 실격이에요! 어떤 처벌도 받아들일테니깐 저를 용서하지 마시고..."

"아이리스... 그래 그러면 말할 게 너는 종자에서 해고야.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 더 이상 종자가 아닌 나는 영주님과 아무 관계도 아니다. 나는 나의 욕심으로 태어난 의미를 잃었고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런 절망 속에 '더 이상 영주님의 종자도 아니니 이렇게 된 이상 영주님을 납치해서 도망쳐볼까' 라는 생각도 하였다. 며칠이면 다른 마녀들에게 잡혀서 죽겠지만 말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영주님에 곁에서 죽는 다면, 사죄하면서도 종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미쳐가던 나를 두고 영주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이제 종자는 아니고, 내 아내가 되어줄래 아이리스?"

"네....?"


옷은 전부 내 손아귀에 찢어졌는지 새 옷을 찾아 입으신 영주님은 내게 방금까지의 차가운 말투 대신 평소 같은 상냥한 말투로 말하셨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이리스 너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 동안 전부 들었어... 나를 그렇게 좋아했구나... 그리고 내가 불편해질까봐 숨겨왔고 말이야... 나도 말하지 않은 것을 하나 말해줄게. 아이리스는 내가 누구보다 신뢰하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야. 평소에는 이것까지만 말했지. 여기서 숨겨왔던 게 있어. 아이리스 너를 좋아해. 나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나서는 모습에 반했고, 그 어떤 고난과 역경에서도 나를 위해 살아왔던 것에 반했어. 너가 불편해질까 싶어서 말하지 못 했는데 그게 너를 아프게 했구나... 정말 미안해."


영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반지였다.


"아이리스, 나의 아내로써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 주겠어?"


아아... 영주님은 얼마나 상냥하신 분인가. 이런 죄를 저지르고도 나쁜 생각이나 하고 있는 어리석은 내게 여전히 상냥하시고 더 없이 행복한 선물까지 주시다니... 나는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네 영주님.... 정말 사랑해요...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해줘요."


그대로 나는 영주님께 키스했고 방금까지 하던 일을 상냥하게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나는 태어난 의미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진짜 가족도 찾았다. 그리고 1년 후 가족은 하나 더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