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악의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마법소녀 협회는 해체되었고, 그동안 지구를 지켜왔던 마법소녀들은 열세에 몰리자마자 악의 제국에 투항해 버렸다. 


마법소녀 협회의 관리자들 중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최후의 관리자 얀붕의 처형 전날.


그날 마법소녀 한 명이 지하감옥에 침입했다. 


간수들의 피로 얼굴을 물들인 마법소녀.


그녀는 얼굴에 피가 묻은 것도 잊고 상큼하게 웃으며 철창을 향해 손을 집어넣었다.


"얀붕 관리자님, 보고 싶었어요!"


밝게 인사하며 얀붕의 뺨을 쓰다듬는 타락 마법소녀의 손.


타락 마법소녀의 상징인 검은 드레스와 붉은 눈.


그녀의 잿빛 머리카락은 도르르 말린 채 양갈래로 묶여 마법소녀가 뛸 때마다 같이 움직였다. 


"관리자님을 만나서 너무 기뻐요. 저와 같이 이 음침한 곳에서 나가요. 저는 얀붕 관리자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퉷-


타락 마법소녀의 제안에, 얀붕은 핏물 섞인 침을 뱉었다.


"과, 관리자님?"


"죽어도 너 같은 악질과는 도망치지 않아."


마법소녀들의 배신으로 악의 제국의 포로가 된 후, 매일 고문당하면서도 뜻을 꺾지 않았던 얀붕.


타락 마법소녀는 자신의 동료 마법소녀를 한 명 이상 죽인 악당들이다.


마법소녀들이 악의 제국의 개가 되기 전에도 타락 마법소녀는 마법소녀 협회의 토벌 대상.


더 큰 악에도 굴복하지 않던 얀붕이었다.


그런 그가 한낱 살인자와 손을 잡을 리 없었다. 


'동료를 죽인 마법소녀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다.'


얀붕은 그리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타락 마법소녀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역시 얀붕 관리자님이에요! 그 대쪽같은 절개, 너무 멋져요, 하아..."


"그럼 꺼져."


타락 마법소녀는 미소를 거두어들이고 얀붕과 눈을 마주쳤다. 


광기 어린 핏빛 눈동자에 그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얀붕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관리자님. 저 아니면 내일 죽잖아요."


"마법소녀 협회는 박살났고, 살아남은 마법소녀들은 악의 제국 밑으로 들어갔어. 어차피 망한 세상, 너도 악행이나 저지르며 살아가."


타락 마법소녀가 뿜는 살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몰차게 그녀를 내쫓았다. 


"싫은데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죽게 둘 마법소녀로 보이시나요? 싫으시면 그냥 납치 감금 해버리죠 뭐!"


그렇게 얀붕은 타락 마법소녀에게 납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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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 1일차.


얀붕은 오랜만에 따뜻한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겨우겨우 잠이 들었지만, 악몽이 그를 괴롭혔다.


「날 마법소녀로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이제 당신은 필요없어.」


「헤헤... 관리자님을 넘기면 귀족으로 만들어 준 대서요...」


「우리 말고 마법소녀가 더 생겨서는 안 돼. 제발 죽어 주세요.」


"흐아아악!"


관리자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오랜만에 꾸는 악몽이었다. 


잠의 마법소녀가 건 각성 마법 덕분에 잠을 잔 것도, 꿈을 꾼 것도 오랜만이었다. 


바람의 마법소녀, 잠의 마법소녀, 정의의 마법소녀.


처음 관리자가 되었을 때부터 애정과 쏟았던 마법소녀들이었다. 


처음 마법소녀가 되었을 때는 마물 하나 물리치지 못하는 약한 마법소녀에 불과했지만, 얀붕 자신의 마력과 노력으로 S급까지 키워낸 소녀들이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법소녀를 만들고 제어할 수 있는 '관리자'.


마법소녀 협회 멸망 전부터 고위 마법소녀들은 자신에게 마법을 부여한 관리자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마법소녀가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관리자들을 제거하고 싶어 했다. 


악의 제국 수뇌부는 그런 마법소녀들을 유혹했다. 


악의 제국의 지구 점령에 협조하면 관리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는 제안.


그 후 동료 관리자들은 악의 제국에 붙은 마법소녀들에 의해 한 명 한 명 죽어갔다. 


'그 아이들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키우던 마법소녀들을 조심해. 특히 '잠'을.」


초보 관리자였던 얀붕을 가르쳐 주었던 선배 관리자가 말했을 때 믿지 않았다. 


얀붕은 그녀들을 믿었다. 


그리고 관리자를 해치면 마력의 절반을 잃는 패널티를 주는, 마법소녀 관리자의 시스템을 믿었다.


허나 악의 마력을 받은 소녀들은 패널티를 무시하고 기어이 관리자들을 배반했다. 


"으흥흥~ 앗, 관리자님. 일어나셨나요?"


타락 마법소녀는 그가 잠에서 깬 것을 눈치채고 잠시 손을 멈췄다. 


정성껏 끓인 죽을 얀붕에게 대령하는 타락 마법소녀. 


허나 얀붕은 그 죽을 한 술도 뜨지 않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아이들이 내 눈 앞에 있는 타락 마법소녀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는 자신이 이룬 모든 것들을 잃었다. 


관리자로서 이룬 명예.


마법소녀들과 쌓아왔던 신뢰.


강철 같았던 정신.


그리고 배신자 마법소녀들과 악의 제국 고문관에게 잃은 오른쪽 팔.


저 타락 마법소녀는 어째서 모든 것을 잃은 자신을 살렸단 말인가?


얀붕은 수저를 내려놓고 물었다. 


"너, 정체가 뭐냐?"


"관리자님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타락 마법소녀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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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써놓고 보니 후회물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