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동생은 항상 나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초등학생 때까지.

 

중학생이 되자마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벽을 쳤다.

이를 테면….

 

“뭐야? 기분 나쁘니깐 비켜줄래?”

“말 걸지마.”

“얼굴도 평범해가지곤….”

 

동시에 문을 열고 나와서 이렇게 마주치면 여동생은 내게 이런 차가운 말들을 남기고 1층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마다 든 심정은 이랬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지?’

 

갑자기 달라진 여동생의 모습에 나는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소꿉친구에게 상담을 청했다.

처음으로 입어본 고등학교 교복이 마음에 드는지, 아니면 상담의 제물로 대신 사준 커피가 맛있었는지 강은비는 연신 내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의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카페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며 커피 한모금을 쪽 마시고 생각했다.

 

‘얼굴 조금만 꾸미고 머리 풀고 저 징그럽게 큰 뿔테안경만 빼면 진짜 이쁠 텐데…. 뭐 지금도 좋아하는 애들이 많지만.’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강은비는 내 고민에 성실하게 답했다. 과연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나 나와 비교하는 똑똑한 모범생, 엄친딸답다.

 

“사춘기잖아. 그거.”

“사춘기?”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강은비가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치켜올랐다.

 

“나도 딱 혜진이 나이 때 사춘기에 걸려서 잘 알아. 집에 오자마자 부모님 인사도 무시하고 방문 잠궜었거든.”

“너가?”

 

전혀 몰랐었다.

강은비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단정한 모범생이었으니깐.

강은비가 한숨을 푹 쉬었다.

 

“넌 몰랐겠지. 네 앞에선 나도 연기했으니깐.”

“연기? 왜?”

 

강은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커피를 원샷으로 들이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간다. 반 갈라져서 소꿉친구의 소중함을 느꼈나 했더니… 넌 여전하네.”

“야,야 어디가!”

 

걸음을 옮기던 강은비는 내 부름에 걸음을 갑자기 멈추고 날 뒤돌아봤다.

 

“성재야.”

“어?”

“이건 경험담은 아닌데… 아무튼 아닌데…. 여자는 사랑을 깨달으면 사춘기가 시작된다더라.”

 

그리고 왜인지 슬픈 듯한 미소를 지었다.

 

“어때? 로맨틱하지? 후후.”

 

 

 

 

************

 

 

 

 

카페에서 돌아온 집으로 돌아온 난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멍하니 거실 쇼파에 앉았다.

어째선지 강은비의 그 미소와 한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소꿉친구의 의중을 깨닫기엔 그녀의 속은 너무나 깊다.

다시 그녀가 앞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자는 사랑을 깨달으면 사춘기가 시작된다더라.

 

“어떤 새끼야! 씨발!”

 

갑자기 울분이 치솟아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낳고 키운 자식도 아니지만, 오빠로써 두 눈에 넣어도 전혀 아프지 않을 만큼 이쁜 여동생이다.

비록 내 얼굴이 평범하다곤 욕하지만… 지금은 기분 나쁘다고 욕하지만… 그것이 잠깐 지나가는 감기에 불과한 사춘기라면.

 

나는 오빠로써 얼마든지 여동생을 기다려줄 수 있다.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새끼는 안 된다.

내 여동생의 마음을 훔쳐간 그 새끼는… 절대로 용서가 안 된다.

 

“누구야!!!”

 

절절한 한을 품고 소리지를 때 띠딕- 현관문 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렸다.

뜨르릉.

문이 열리자 어깨까지 찰랑거리는 흑발과 뽀얀 피부, 큰 눈의 이혜진이 신발을 벗었다.

 

“다녀왔습니….”

“야! 이혜진!”

 

평소와 다르게 잔뜩 흥분해있는 오빠 떄문인지 이혜진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을 더듬었다.

 

“무, 뭐야…?”

“너 좋아하는 새끼 있지?!”

“뭐, 뭐…?”

 

안그래도 커다란 이혜진의 눈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이럴 수가.’

 

저 반응은 확실하다.

눈보다 진실을 나타내는 것은 없다고 하지 않은가?

순간 커다란 추가 마음 밑바닥까지 쿵하고 떨어졌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침착하자. 이럴 때일수록 더욱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 새끼 이름 뭐야?! 내가 죽여버릴라니깐 감히 우리 여동생을……!”

 

아차.

나는 내 추태를 거울을 보고 깨달았다.

이혜진이 어느새 착 가라앉은 눈으로 날 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운 동공에 내가 비춰졌다.

 

“…너 바보야?”

 

흥분이 가라앉자 이성이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여동생의 사춘기 때문에 냉전중이란 현실로….

나는 당황하지 않으려 했지만 말이 더듬어졌다.

 

“아,이, 그, 그게 아니라….”

 

이혜진이 신발을 마저 벗고 한발자국 내게 다가왔다.

 

“너 진짜 바보구나.”

 

‘바보가… 맞긴 하지…….’

 

제멋대로 상상하고 흥분하고 폭주했으니….

이래서야 안그래도 나를 멀리하는 여동생이 나를 더 미워할게 뻔했다.

마음이 갑자기 한없이 우울해진다….

난 왜 이렇게 바보지…? 하아….

 

이성재가 혼자 스스로 좌절하고 있을 때.

이혜진은 이성재를 무시하고 2층으로 올라가다가 멈칫 뒤돌고 자신의 오빠를 보며 우울하듯 속삭였다.

 

“멍청이… 바보…”

 

 

 

 

*************

 

 

 

마음이 심란하다.

안 그래도 사이가 안좋은데 여동생에게 미움을 더 샀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 건 여동생에게 좋아하는 새끼가 있다는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혜진의 당황한 반응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아.”

 

수업이 끝나고 우울하게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겁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두다다다. 퍽!

 

“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누가 보면 병자인 줄 알겠네.”

 

강은비는 나만 보면 힘이 팔팔한 지 내 어깨를 때리듯 두드렸다.

나는 고통을 참고 소꿉친구에게 우울한 사실을 고했다.

 

“…은비야.”

“응?”

“네 말이 맞았어.”

“뭐가?”

 

어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고했다.

그러자 강은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하는 조언이.

 

“…너도 이참에 여동생한테 정 좀 떼, 떼는 게 어때?”

 

뭐?

 

“아니!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말고! 너가 너무 여동생만 아끼니깐! 다른 여자가 너한테 관심이 있어도…… 너가 눈치를 못 챌……”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나처럼 평범하게 생긴 놈이 어디가 뭐가 좋다고, 눈이 삔 게 아니고서야.”

“…….”

 

침묵은 긍정이라 했던가?

위로받으려고 뱉은 말이었는데 소꿉친구는 참 거짓말을 못 한다.

나는 여동생에게, 그리고 소꿉친구에게도 ‘평범하게 생긴 놈‘이란 타이틀을 확정되고 말았다.

우울하다. 이러니깐 모쏠아다지. 에휴.

 

강은비는 이성재를 보며 속으로 탄식했다.

 

’바보, 멍청이.‘

 

 

 

***********

 

 

 

강은비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눕는다.

곧이어 이혜진이 들어왔는지 2층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답답하다. 우울하다. 이래선 오늘도 잠을 설칠 것 같다.

나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자기 방으로 향하던 중인 이혜진과 딱 마주쳤다.

 

“…….”

“…….”

 

눈을 맞추고 잠깐의 침묵.

이혜진이 고개를 홱 돌려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움직여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혜진이 눈을 날카롭게 떴다.

 

“뭐하는 짓이야? 비켜.”

 

평소의 나였다면 그 날카로움에 마음이 무뎌져 황급히 비켜나겠지만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네게 물어볼 게 있어.”

“물어봐도 말하지 않을 거야. 비켜.”

“그럼 듣기만 해. 왜, 중학교 올라오고부터 태도가 바뀐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있으면 말해줘. 내가 정중히 사과하고 바로 고칠게.”

“…비켜.”

 

이혜진은 답하지 않고 나를 지나쳐 방으로 신속히 들어가려 했다.

내가 그 어깨를 잡아채려하자 이혜진이 팔로 내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그러다가 얼굴이 들렸다.

그런데….

 

뚝. 뚝. 뚝.

이혜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럽게, 처절하게, 그리고 손으로 눈물을 감췄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감정과 몸이 얼어붙은 듯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혜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너가……내 오빠인게……그게 제일 잘못이야…….”

 

’그게 대체 무슨……?‘

 

이혜진은 정적만을 남기고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궜다.

 

내가 오빠인게 잘못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이나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여동생의 굳게 닫힌 방을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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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썼던 여동생물 설정 바꾸고 리메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