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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그녀가 능력을 빼앗긴다면.’

   

얀붕은 마법소녀 관리자 시스템을 보며 떠올렸다. 

   

『현재 관리하고 계시는 마법소녀 목록입니다.

   

1. 잠의 마법소녀 닉스(주여울)

   

어떤 마법소녀를 관리하시겠습니까?』

   

그에게 남은 마법소녀는 단 한 명.

   

잠의 마법소녀 닉스뿐이었다. 

   

‘내가 과연 그녀를 꺾을 수 있을까?’

   

그는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바깥은 어두웠다. 

   

“비도 오네...”

   

투둑, 툭.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먹구름 아래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악의 제국 황제의 장례식 때문에 일부러 기상 조정 마법을 썼으리라.

   

“자기들만 슬프고 우울하면 됐지, 뭐 하러 우리까지 그 감정에 빠뜨리는 걸까요?”

   

얀붕을 껴안으며 속삭이는 타락 마법소녀, 시 브리즈.

   

닉스에게 복수해도 악의 제국에 대한 복수가 끝나지 않을 것을 안다. 

   

얀붕이 세 마법소녀에게 원했던 것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

   

허나 김다현도 유스티챠도 그런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바람의 마법소녀 김다현은 자기 보신을 위한 후회와 사과를 남긴 채 죽어 버렸고,

   

절망을 느끼긴 해 주었지만 그녀가 반성하고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악의 제국의 침략자들이 자신이 고통 받은 것의 100배는 고통 받길 바랐다. 

   

당연히 마법소녀 협회와 인류를 배신한 마법소녀들도 그만큼 고통 받아야 했다. 

   

왼손으로 턱을 괴며 창밖을 바라보는 얀붕.

   

“...”

   

타락 마법소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얀붕을 바라보았다. 

   

‘관리자님은 행복하시지 않아요.’

   

그의 답답함은 닉스가 최대한 고통 받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풀릴 터였다. 

   

얀붕은 죽기 직전까지 참회하게 할 방법을 여러 가지 알고 있을 터였다.

   

감옥에서 나와 힘이 덜 회복되었을 뿐이고,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을 뿐이었다. 

   

소외받았던 세 마법소녀를 품은 그 자애로움.

   

그 마음을 온전히 타락 마법소녀 자신에게 돌린다면 닉스 앞에서 차가워질 수 있을 터.

   

타락 마법소녀는 활짝 웃으며 얀붕에게 말했다. 

   

“일단 좀 쉬시겠어요?”

   

그녀는 따뜻한 우유를 건넸다. 

   

얀붕은 말없이 그것을 마셨다. 

   

□□□□□

   

 악의 제국의 황제 선거는 은밀하게 진행된다.

   

선황의 장례가 끝나기 전,

   

황족들과 선거권을 가진 귀족들이 황궁 지하에 들어가 투표를 시작한다.

   

황제 후보들도 선거권을 가졌다면 출입할 수 있다.

   

또각, 또각.

   

닉스는 지하로 걸어가며 오른손을 들었다. 

   

“잠의 신이시여... 기나긴 밤 동안... 믿지 않는 자에게 죽음을... 믿는 자에게는 삶을...”

   

그녀는 변신 주문을 영창하며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악의 제국 황족의 정복 드레스가 그녀의 마법소녀 코스튬으로 변해갔다. 

   

왜 굳이 마법소녀 모습으로 들어가냐면...

   

얀붕을 배신하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고,

   

그가 찾아오기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얀붕을 차갑게 배신한 주제에 왜 그를 그리워하는지.

   

허나 찾아온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타락 마법소녀...?”

   

“맞아요.”

   

계단 위에서 닉스를 내려다보는 타락 마법소녀.

   

비를 맞고 왔는지 온 몸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그녀는 상큼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왔느냐... 보다는 왜 왔느냐... 라는 질문이 맞겠지?

   

양산형 마법소녀 중 최강이자, 타락 마법소녀 중 최강인 시 브리즈.

   

어떻게 악의 제국 황궁까지 들어왔냐 물을 필요가 없었다.

   

마법을 무효화 하고 압도적인 무력으로 부숴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관리자님이 오기 전에 후회를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요.”

   

타락 마법소녀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말은 그렇게 하시겠죠.”

   

그녀는 닉스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며 양 갈래로 묶은 회색 머리카락을 쭉 짰다.

   

물이 지하실 계단에 뚝뚝 떨어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

   

타락 마법소녀는 숨겨둔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후회한다.

   

반성한다.

   

미안하다.

   

이 세 마디를 녹음하고자 가져온 녹음기였다. 

   

이왕이면 그 모습을 얀붕이 봐 주길 바랐지만, 다른 마법소녀를, 한때는 그가 돌봐 주었던 마법소녀를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모습은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얀붕 관리자님 앞에서는 추해지고 싶지 않아. 그리고 관리자님 마저 죽는다면...’

   

타락 마법소녀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 

   

변신도 풀지 못하고, 마력을 얻기 위해 마인들의 시체를 섭취해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 신의 저주를 받은 존재.

   

그런 존재가 누군가의 사랑을 온전히 받으려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했다. 

   

특히 복수를 다짐하고도 올곧은 얀붕이 그 상대라면 더욱.

   

다른 소중한 이들은 악의 제국 때문에 죽어 버렸다.

   

더는 소중한 사람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타락 마법소녀는 닉스를 찾아왔다. 

   

어쩌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

   

물리계와 정신계.

   

둘은 능력부터 상극이었다. 

   

유스티챠의 궁극기는 반쯤 정신계였지만, 자신의 마법으로 무효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닉스는 어떨까. 

   

그녀의 눈앞에 있는 마법소녀는 괴물이다.

   

마법소녀와 마인의 피가 섞인, 태생부터 이길 수 없는 상위 생명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얀붕이 혐오했던 타락 마법소녀가 되었기 때문에 태생에서 딸려오는 격차를 메꿀 수 있었다.

   

“후후후...”

   

닉스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얀붕을 사랑하게 된 타락 마법소녀.

   

그녀의 앞에 있는 자신.

   

닉스는 오랜만에 공허한 마음에 뭔가가 꽉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회? 반성? 사죄?

   

모든 것이 힘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그 진리를 역행하는 얀붕과 타락 마법소녀, 그 둘은 아둔했다.

   

악의 제국이 지구를 지배하는 세계에서 나름 살아남을 힘이 있으니, 살아남는 데만 집중하면 될 것을.

   

왜 자신에게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가치를 들이밀며 사과하라 요구하는 걸까.

   

멍청한 인간들이다.

   

무지의 대가는 죽음이다.

   

타락 마법소녀를 최대한 끔찍하게 죽이고, 

   

그 시체를 얀붕에게 가져다주자.

   

이름까지 붙여 나름 소중히 다룬 것 같았으니 분명 절망하겠지. 

   

닉스는 그렇게 다짐했다.

   

황제 선거?

   

어차피 자신이 불참하면 미뤄질 것이었다. 

   

얀붕과 황제 자리.

   

둘 다 가지면 그만이었다.

   

강한 그녀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쉬익-

   

닉스가 타락 마법소녀를 노려보는 사이, 그녀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방심하셨네요?”

   

허나 닉스는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마법을 쓰면 그 정도는 보이니까.

   

“채워지고 있어... 채워지고 있다고... 잠의 신이시여!”

   

드디어 닉스가 영창을 시작했다.

   

□□□□□

   

 감금 31차.

   

얀붕은 눈을 떴다. 

   

타락 마법소녀, 시 브리즈가 준 우유를 먹고 잠에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집 안에 없었다.

   

“시 브리즈!”

   

얀붕이 그녀를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얀붕은 탁자에 놓인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잠의 마법소녀를 죽이고 돌아올게요.」

   

“안 돼.”

   

잠의 마법소녀를 죽이고 돌아온다는 것.

   

그것은 시 브리즈가 얀붕의 복수를 대행한다는 의미였다. 

   

얀붕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녀가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마력을 정돈하고 시스템을 불렀다.

   

“시스템!”

   

『마법소녀 관리 시스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관리자님.』

   

시스템 창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타락 마법소녀에게도 힘을 줄 수 있어?”





어째 얀데레물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지만 슬슬 끝이 보이니 열심히 쓸게

얀붕이들아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