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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에 대한 답변을 도출 중입니다...』

   

얀붕은 마른침을 삼켰다. 

   

시스템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터무니없는 질문을 한 것이라고.

   

타락 마법소녀를 마법소녀로 만든다. 

   

악의 제국이 침략하고 인간들 중 마법소녀가 탄생하게 된 이후 처음이었다. 

   

이미 인류는 패배했지만.

   

『가능합니다.』

   

“다행이다.”

   

그 한 마디에 얀붕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자신이 개입할 수 있는 순간은 지금이 마지막일 지도 몰랐다. 

   

닉스의 힘은 잘 알고 있었다. 

   

혈통에서 피어오른 찬란한 재능.

   

얀붕과 함께 연습한 마력 제어법.

   

그리고 처음부터 닉스의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마법 사용술.

   

‘아무리 시 브리즈가 강해도 완전히 끝을 낼 수는 없어.’

   

얀붕은 시스템에게 물었다. 

   

“그녀에게 어떤 마법을 부여할 수 있어?”

   

『부여할 수 있는 마법은 단 하나 뿐입니다.』

   

『복수.』

   

흠칫.

   

얀붕이 잠시 시스템 창을 조작하려던 손을 멈췄다.

   

“저번에는 선택지가 많았잖아. 왜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거야?”

   

얀붕은 선대 복수의 마법소녀의 최후를 알고 있었다. 

   

유스티챠의 부친을 살해한 S급 마법소녀.

   

복수의 힘은 타깃을 잡고 그 타깃 한정으로 최강의 마법소녀가 되게 해 준다.

   

하필이면 선대 복수의 마법소녀가 잡은 타깃이 유스티챠의 아버지였기에 마법소녀 협회에서도 어떻게 손쓸 바가 없었다. 

   

그 힘은 마법소녀의 정신을 좀먹어 간다.

   

그리고 복수를 이루면 폭주한다.

   

폭주 후 제압된 선대 복수의 마법소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을 찬 그가 죽도록 미워졌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악감정의 증폭.

   

복수의 타깃을 정하는 방법도 마법소녀가 온전히 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법소녀 협회 상부에서는 이 일을 은폐하고 그녀에 대한 기록을 1급 기밀로 지정했다.

   

그 후로 복수의 마법소녀가 탄생한 일은 없었다. 

   

관리자가 된 후.

   

 복수의 마법소녀를 탄생시킬 권한을 가지게 된 얀붕은 그 사례를 이유로 들며 복수의 마법소녀를 탄생시키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말이 교육이지, 사실상 세뇌에 가까웠다. 

   

그래서 얀붕은 알고 있었다.

   

‘복수는 잠이나 정의보다 위험해.’

   

그는 갑자기 역류하는 고통을 참으며 물었다. 

   

“어째서? 어째서 복수뿐이야?”

   

『간단합니다. 신들이 그녀에게 원하는 힘이 복수 하나 뿐이기 때문입니다.』

   

얀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신들이 시스템 창을 통해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맞아, 그랬지.’

   

힘을 주는 것은 자신의 의지지만 줄 힘을 정하는 존재는 신들이었다.

   

“시 브리즈...”

   

얀붕은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적어도 의사는 묻고 마법소녀로 만들고 싶었는데.

   

한 달 전이었다면 타락 마법소녀 따위의 의사 따위는 상관없었을 것이었다. 

   

악의 제국을 없앨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얀붕에게 이제 그녀는 소중한 사람이다.

   

신의 저주를 받았을 지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집을 뛰쳐나갔다.

   

타락 마법소녀가, 시 브리즈가 어디 있을지는 뻔했다. 

   

악의 제국 황궁.

   

마법소녀 협회가 망한 후, 마법소녀들의 배신으로 포로로 잡히기 전까지.

   

얀붕은 협회의 재건을 위해 많은 작전을 세워 왔다. 

   

그 중 하나가 황궁으로 가는 샛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투둑, 투둑-

   

그가 달리면 달릴수록, 빗줄기가 거세지고 있었다. 

   

□□□□□

   

 “꽤... 하시네요?”

   

한 번 맞으면 잠에 빠져 버리게 되는 닉스의 마법.

   

타락 마법소녀는 허벅지를 손톱으로 긁어 마법을 피했다. 

   

허나 요행은 한 번 뿐이었다. 

   

몇 번을 잠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한 그녀.

   

타락 마법소녀는 여유로운 척 했지만, 체력 소모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 마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닉스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시계의 바늘을 돌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강제 수면과 각성을 통해 생체 시계를 강제로 망가뜨리는 마법.

   

타락 마법소녀의 하루가 몇 시간이 되었는지는 닉스만이 알고 있으리라.

   

참회.

   

반성.

   

사죄.

   

압도적인 힘이 없으면 받아낼 수 없었다. 

   

타락 마법소녀는 마법에 몇 번이고 걸릴 것을 각오하고서 닉스에게 달려들었다. 

   

콰악-

   

잠의 사역마들이 그녀를 구속했다. 

   

“제발 좀 자. 왜 힘도 없으면서 그따위로 구는 거야, 개년아!”

   

닉스도 인간이었다. 

   

평소에는 맹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거스른다면 상하관계를 확실히 만들어 주는 편이었다.

   

자꾸 달려드는 상대가 있다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야말로 그만하라고요...”

   

서로의 목적을 위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소녀들.

   

“시 브리즈!”

   

그런 마법소녀들 앞에 관리자가 나타났다. 

   

“얀붕 관리자님?”

   

“얀붕...”

   

두 소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허나 그는 말없이 시스템 창을 켰다. 

   

『마법소녀 관리 시스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관리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신들과 거래를 청한다. 내 마력을 전부 줄 테니 닉스의 마법을 빼앗아 줘.”

   

“뭐라고?”

   

닉스는 타락 마법소녀를 버리고 천천히 얀붕에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그녀는 얀붕의 멱살을 잡고 소리 질렀다. 

   

“오랜만이다, 닉스.”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후회해?”

   

얀붕은 대답 대신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 질문에 닉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얀붕은 표정에서 그녀의 감정을 읽었다. 

   

‘후회하고 있구나.

   

시 브리즈가 받는 사랑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구나.’

   

얀붕은 자신이 닉스에게 배신당한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신념을 꺾고 싶지?”

   

그녀는 대답 대신 입을 열어 마법을 영창했다. 

   

“잠의 신이시여... 제 앞에 있는 자에게...”

   

철컥-

   

그 순간, 시스템 창의 색깔이 반전되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신의 것이라 착각할 정도로 신성한 목소리.

   

세 사람은 그 목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하여도 필멸자는 필멸자...』

   

『관리자 얀붕, 그대는 정말 ‘악의 제국’에 복수하고 싶은가?』

   

“그래.”

   

『눈앞의 마법소녀를 후회하게 하고 싶은가?』

   

“그래!”

   

『관리자 얀붕의 마력을 대가로, 주여울의 능력을 거둔다.』

   

슈우욱-

   

“안 돼요! 관리자님! 얀붕 관리자님!”

   

마력을 빼앗기면 관리자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죽을 수도 있다. 

   

만난 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은 소녀, 그것도 타락 마법소녀 때문에 마력을 다 쓰겠다고? 

   

말도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미래에 악의 제국을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김과 동시에...

   

현재 악의 제국 최대의 전력을 없앨 수 있다.

   

얀붕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웃기지 마!”

   

닉스는 발악했지만, 결국 그녀도 마법소녀였다. 

   

시스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탁해. 시 브리즈.”

   

“...”

   

그의 부탁에 시 브리즈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주먹을 들어, 

   

빠악-

   

닉스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시 브리즈는 닉스의 마력을 받아들였다. 

   

“관리자님!”

   

마법소녀의 힘과 시 브리즈의 마력 흡수 및 무효화로 평범한 소녀가 된 닉스.

   

그리고 마력을 잃고 쓰러진 얀붕.

   

시 브리즈는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

   

허나 얀붕은 눈을 뜨지 않았다. 

   

“관리자님... 관리자님...”

   

그의 얼굴에 타락 마법소녀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

   

 몇 년 후.

   

황제가 죽었다. 

   

강력한 황제 후보는 마력을 잃고 사라졌다.

   

결국 황제가 뽑히긴 했지만, 두 마법소녀의 싸움으로 황궁도 망가졌고 제국의 신도 그들을 버렸다.

   

악의 제국은 몇 년 만에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땡그랑-

   

악의 제국 동화 몇 푼이 그녀 앞에 던져졌다. 

   

“널 사러 왔는데.”

   

“아하, 숙박... 이시구나. 이쪽으로 오세요.”

   

전 잠의 마법소녀 닉스는 아무것도 아닌 소녀, 아니 어른이 되었다. 

   

마법소녀와 성인 여성은 달랐다. 

   

압도적인 힘도, 젊음도 이제 자신에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동안 있었던 마력 덕분에 20대 중후반 정도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마법소녀의 힘을 빼앗겼기 때문에 언젠가는 노화가 찾아올 것이었다. 

   

‘조만간 이 일도 그만둬야 할지도...’

   

손님을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그녀는 공허했다.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동료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공허함을 채워줄 이는 더 이상 없었다.

   

합법과 불법의 사이에 놓인 평범보다 못한 삶.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을 끝낸 후 대충이나마 몸에 남겨진 더러움을 닦고 온 순간.

   

전광판 화면에 뉴스가 송출되고 있었다. 

   

『고급 마력 충전기 보관실에 2인조 테러리스트 등장』

   

『동기는 충전기 구출로 추정』

   

그리고 사람들을 안은 채 달리고 있는 두 사람.

   

여울은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얀붕 관리자님과 함께 올바른 길을 걸어갔다면 달랐을까?’

   

그녀는 곧 생각을 접었다.

   

현실에 ‘만약’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인간 주여울은 현실을 살아가야 했다.

   

그 뿐이었다. 

   

□□□□□

   

 “아휴,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너야말로, 시 브리즈.”

   

탁-

   

얀붕과 시 브리즈는 주먹을 부딪혔다. 

   

닉스가 마법소녀의 힘을 잃었듯, 얀붕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는 대신 관리자의 힘을 잃었다. 

   

두 사람은 1년 전에 결혼했다.

   

관리자 시절의 인연과 몰락 관리자와 타락 마법소녀로서의 인연이 엮인 결과.

   

둘은 영원히 함께하기로 맹세했다.

   

허나 악의 제국에 대한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곁에는 든든한 동료이자 아내인 시 브리즈가 있었고, 그가 꾸린 저항군에 마법소녀들이 합류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아니라도, 악의 제국은 언젠가 멸망한다.

   

자신들이 행동하는 한.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관리자님, 귀 좀 기울여 보시겠어요?”

   

“응.”

   

얀붕은 그 소식을 들은 순간, 그녀에게 강렬하게 입을 맞췄다.

   

   




후기


첫 집착물이자 후회물 소설 완결시켰다


뚜껑을 까보니 얀데레도 후회물도 아닌 이상한 혼종이 되었지만 일단은 완성에 이의를 두고 싶어.


열릴 결말이라 좀 찝찝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결말이라고 생각해.


풀지 못한 설정, 이야기, 과거, 그리고 후회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좀 더 길게 써보고 싶다.


다들 읽어 줘서 고맙다.


종종 놀러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