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일어나세요."



"..."



"아가씨, 일어나셔야 해요."



"...으음..."



아가씨를 깨우는 건 내가 계속 해오던 일이다. 어렸을 때야 별생각이 없었는데.


요새는 이렇게 무방비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내가 봐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타의 다리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돌리고 깨우는 데 집중했다.



"리타, 일어나."



"으..."



"백작님이 기다리실지도 몰라."



"알았어.."



리타는 호신술을 배운다. 다른 귀족 자제들도 아마 배우겠지만.


가끔 백작님이랑 대련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오늘이다.


당연히 늘 백작님이 가지고 노는 양상이지만.


멍 때리면서 보고 있었는데, 리타가 나한테 다가왔다.



"머리 풀렸어. 다시 묶어줘."



"아, 네."



운동으로 후끈해진 몸, 머리를 묶으면서 드러나는 귀와 목덜미.


머리를 묶다보니 보이는 쇄골과 가슴...아, 아침에 봤던 광경까지 생각나버렸다.


솔직히, 예쁘다고 생각해버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여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몸이고 얼굴이고 너무 예쁘게 커버렸고, 나는 그걸 너무 가까이, 오랫동안 봐왔다.


이제는 더 이상 리타를 귀여운 동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그 생각 때문에 결국 잠을 설쳤다.




*




'와...개쩐다.'



가슴이 웅장해질 정도로 왕도의 건축물은 크고 아름다웠다. 피로를 잊을 만큼. 


번화가라고 듣긴 했는데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많네.



"뭘 멍하니 서있어? 빨리 들어와!"



점집에 들어가니 누가 봐도 괴짜처럼 생긴 아저씨가 반겨주었다.



"오홋, 선남선녀시구먼! 궁합 보러 왔지요?"



"아니, 주종 관계인데요."



"..."



어디서 큰일 날 소리를...



"아이고, 미안합니다. 뭘 봐 드릴까요? 궁합 외에도 잘나가는 건 뭐 건강이나 연애운 같은 게 있습니다."



"너부터 할래?"



"음.."



아가씨를 절대로 여자로 보지 말 것. 옛날 메이드장 아줌마가 계속 강조했던 내용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알았다고만 답했었는데, 대가리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리타는 나랑 어릴 때부터 지내서 거리감이 없는 것 같지만, 리타의 몸은 여자 손도 못 잡아본 내게 너무 큰 자극이다.


만약 이게 들키면 쫓겨날 거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리타의 몸에 손을 댄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딱히 점을 믿는 건 아니지만, 고민 상담이라 생각하고 한번 쳐보자.



"혹시 미래도 볼 수 있나요?"



"못 보면 점쟁이 하고 있겠수? 전부 다는 아니긴 하지만."



남자는 괴상한 주문을 중얼거리더니 제 앞에 놓인 구슬을 노려보았다.



"으음. 좋지는 않아. 조만간 다칠 조짐이 보여."



"다친다고요?"



설마 들켜서 처맞는 건가?



"아주 힘센 놈이 당신을 쫓아오고 있구먼."



...누가 쫓아올 정도로 큰 죄를 짓는다고?



"그럼 어떻게 하죠? 도망칠 곳도 없는데."



"가만히 있어요. 조만간 당신을 도울 사람이 나타날 테니."



뭔가 찝찝하네...



"걱정 마쇼. 본인 하기에 따라 빗겨나갈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말한 대로 하면 별일 없을 거요."



"아, 네..."



"그래, 또 궁금한 건 없고?"



"딱히 없는...아. 저희 아가씨의 건강은 어떨지 좀 봐주세요."



"응? 그걸 네가 왜 물어봐?"



"아니 뭐 모시는 분이니까..."



지금이야 장사라지만 어릴 때는 이러지 않았으니. 뭐 병 같은 게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었다.



"어? 뭐야 이거."



남자는 나와 아가씨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어흠. 아주 강한, 영물이 보이는구먼. 어렸을 땐 이것에 눌려서 좀 앓았을 건데, 이젠 걱정할 일 없을 거요."



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아플 일 없다는 거겠지? 어릴 적엔 골골대던 것도 맞추다니 괜히 유명한 게 아닌가보다.


그럼 난 진짜로 다치는 건가?...



"청년은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어 보이고, 아름다우신 영애님은?"



"아, 저는 연애운으로."



연애운을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 리타는 얌전히만 있으면 상대가 고자나 남색가가 아닌 이상 전부 꼬실 수 있을 텐데.



"역시..."



"아주 좋군요. 상대의 벽을 허물 매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요. 지나칠 정도로."



당연한 일이다. 매번 봐서 익숙해진 나도 예쁘다고 느끼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넋을 잃을지도.



"충고 하나 드리자면...마음을 좀 더 독하게 먹되, 상대를 난폭하게 다루지는 마십시오. 그리하시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난폭하다고? 사랑에 빠진 여자는 무섭다더니...


오랫동안 리타를 가까이서 봐왔지만, 리타가 누군가한테 난폭하게 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상상이 안 간다. 진짜 무섭겠는데.




점집을 나온 우리는 왕도의 다른 곳을 구경했다. 마술 공연도 보고 밥도 먹고 옷도 보고...금액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지만 리타가 그냥 다 냈다.


새삼스럽게 신분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