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 신정(新正).


비록 모두에게는 기념할 첫 날이겠지만, 나한텐 아니였다. 이 날, 나는 나의 여자친구에게 작별을 고하고 오던 길이였으니까.


내 여자친구 얀순이. 중학교 때부터 만나 고등학교에서 사귀었고, 대학교 때 헤어질 내 연인. 


그녀의 옆에 있었으면, 그녀의 등에 기댔으면, 아름다울 생각이 샘솟듯 피어나왔고, 그녀의 웃음을 보면 나도 따라 웃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와 3년간의 생활 동안, 웃음짓지 않았던 때는 단연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와 헤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일에 다재다능으로 뛰어나고, 연예인 뺨칠 듯이 예쁜 얀순이, 그에 비해 뭐든지 잘 하지 못하고, 외모조차 추레한 나. 데이트 중에 그녀의 옆에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리는 것 같고, 데이트를 마치고 잠을 자면 이런 얀순이를 어떤 남자가 데려간다는 꿈을 자주 꿔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그 뒤로도 여럿 나는 절망했다. 얀순이와 함께 품었던 아름다운 생각은 악몽으로 전락할 뿐이였다. 끔찍한 생각은 나를 옥죄어 갔다.


처음에는 이 생각을 무시했던 나도, 어느 때부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여자가 왜 나를 연인으로 선택했을까. 


이런, 이런 한심하기 그지없는 남자를, 왜 남자친구로 선택했느냐 몇 번 얀순이에게 물어보았지만 "너의 그 마음씨, 행동이 예뻐서?"라는 말로 얼버부릴 뿐이였다. 


얀순이의 이런 말에, 계속 두려움에 떨던 나는 생각했다. 아. 이런 주제 넘치는 여자를 감히 품으려 든 내 잘못이 아닐까라고. 이런 생각을 하니 전에는 좀처럼 드리워지지 않던 생각들이 나의 몸을 덮쳤다. 원래의 나였다면 반항했을 테지만, 이제는 반항할 힘도 없었다. 합리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었으니까.


이제 놔 주자. 나같이 추레한 남자 대신, 더 예쁘고, 더 잘해줄 수 있는 남자랑 붙어지게 하자. 이런 여자랑 3년동안 만났던 그 순간부터 나는 운을 다한 것이다. 이런 남자를 만난 얀순이는 얼마나 나한테 실망했을까. 더 실망하기 전에 놔 주자. 더 싫어하기 전에....


나는 결국 휴대폰을 들고 얀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 얀붕아. 무슨 일이야?"


그녀의 꾀꼬리같이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에게 안부를 전했다. 그런 말을 나는-


"헤어지자."


라는 최악의 말로 되갚았다.


"뭐?"


"장난이지? 오늘 만우절이 아닌데 얀붕이는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장난이라고 말해줄래? 얀붕-"


말이 나오지 않았다. 헤어지자는 네 글자의 말을 말하는 순간 나는 차에 치인 것만 같았다. 얀순이와의 갑작스럽던 만남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지만,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여러 생각을 하며 나는 결국 전화를 끊었다. 얀순이는 분명 몇 마디를 더 한 것 같지만, 들리지 않았다. 사실 그것보다.


얀순이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얀순이가 나에게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가 두려웠다. 이런 추레한 남자의 작별 선언을, 얀순이는 분명 속이 넓은 사람이니 이해해 줄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끄며 침대에 누웠다. 눈물이 자꾸 흘렀다. 곧 있으면 잊혀지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래도 눈물은 끝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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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건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어."


이별 통보를 받은 얀순이의 몸은 마치 갈대처럼 떨렸다.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이건 현실이 아니야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던 얀순의 눈동자에 빛이 사라졌다.


다시 얀붕이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들려오는 건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다음에 다시 걸어달라'는 무미건조한 음성일 뿐.


그것을 본 얀순은 마치 나락에 굴러 떨어진 것만 같았다. 평생을 사랑하던 대상, 얀붕. 그가 자신을 찬 것도 모자라 전화마저 차단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일 뿐이였다. 


이런 불합리한 일에 계속 그의 이름을 되내이고, 울던 그녀는 어느 순간, 새로운 감정에 휩싸였다.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 좋은 감정이지 않을까. 그녀는 감정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그가 잘못한 거니까 말이다.


얀순이는 호신용 곤봉과 전기 충격기를 들고 집 문을 나섰다. 그의 집은 여기서 가깝다. 어서 가서 그에게 사정을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 만약 스퀸십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둥의 별 거 없는 이유라면 다시 사귈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 정도로 끝날 것이다.


허나 만약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이유라는 거라면-


'생각을 다시 고쳐 주어야겠지. 아마도.'


얀순이는 몸을 고쳐 잡았다. 어차피 그와 다시 사귈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단 생각은 그를 만난 후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라면서 집 쳐들어가고 얀붕이 구속하고 이런 생각 안 하는 남편으로 만들어 주는(성고문하는) 얀순이를 쓰고 싶었는데 더는 안 되더라. 이 정도로 쓰고 끝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