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우노는 부드러운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빛이 그의 방을 따뜻하게 비추었다. 잠시 동안 그는 이 평화로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거의 대부분의 이사 작업은 대단장궁의 직원이 대신하긴 했지만 평소 워낙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탓일까, 허리가 뻣뻣하고 사지에 통증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누워있을 수 만은 없었다. 우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제기랄…”


 운동부족을 통감하며 이 이상 바빠지기 전에 반드시 운동을 해두어야 겠다, 하고 우노는 결심했다.
 
 잠시 후, 우노는 일어나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제 밤에는 지쳐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그의 방엔 그의 전문적인 연구장비들이 바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걸 다 어떻게..."


 우노는 중얼거렸다. 분명 이곳에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거나 또는 그런 사람의 자문을 구했을 것이다.
 
"대단장궁의 사람들, 정말 대단하군."


 우노는 감탄했다.
 
 기분이 상쾌해진 우노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 너머 번영하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의 전경이 펼쳐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번영하는 항구도시의 아름다움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오..."
 
 그는 숨을 죽이며 감탄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멀리 펼쳐진 푸른 바다까지, 모든 것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똑똑’ 

 

우노가 풍경에 넋을 잃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우노가 대답하자, 문이 조용히 열리고 대단장궁의 제복을 입은 직원이 만면에 미소를 짓고 식사와 커피를 들고 서있었다. 어제 이사를 도와주던 그 직원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레이븐릿지’ 박사님. 아침을 준비해 왔습니다."
 
 직원이 친절하게 말하며 식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우노는 그렇게 대답하고 잠시 후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성보단 그냥 이름쪽을 사용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 말에 순간 당혹한 기색이 직원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다시 능숙하게 미소를 되찾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우노’ 박사님”
 
 뭔가 찜찜한 기색이 있었지만 우노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생각보다 이곳은 소문이 빨리 퍼지나보다 하고 여길 뿐이었다. 다만 한가지 더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제가 일어난 것을 어떻게 알았죠?" 우노가 물었다.
 
"대단장궁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노’ 박사님."


 직원이 미소를 유지하며 답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이 돌아와 식기를 회수했다.


 식기가 정리되고 직원은 우노에게 검은색 카드를 건넸다.
 
"이건 대단장 각하로부터의 선물입니다. 이것을 지니고 계신다면 자료실의 모든 비밀 자료에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우노는 카드를 받아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인가요?"
 
 그가 물었다.
 
“예, 대단장 각하의 특별 허가가 있었습니다.”
 
 우노는 카드를 손에 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온지 불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정도의 배려라니. 너무 빠르긴 했지만 우노는 그냥 고맙게 여기기로만 했다.
 
"레일라… 아니, 대단장 각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세요."
 
 우노가 말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떠났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담배를 피는 등 빈둥거리던 우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색 카드가 눈에 띄자 직원이 말했던 자료실을 떠올렸다. 

 

우노는 그 곳에 가기로 결심하고 바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빈둥거리기만 하기에는 그는 너무 부지런했다.
 
 우노는 한참을 해매야 했다. 

 

밖에서 보기엔 한 나라의 중심부치고는 단촐해 보였던 대단장궁의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했다. 이윽고 그는 네 갈래 복도에 도달했다.
 
 우선 돌아갈까…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갈까? 모르겠다. 왼쪽? 역시 모르겠다. 오른쪽? 이곳도 역시 알 수 없다.
 
“제기랄 무슨 표지판이라도 만들어 둬야 할 거 아니야.”
 
 머리를 긁으며 투덜거리던 우노는 무의식 적으로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한 개피를 꺼내어 입에 물려는 찰나.
 
“박사님, 대단히 죄송하지만 복도에선 금연입니다.”
 
 뒤에서 지적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직원이 서 있었다. 늘 볼 때처럼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이 양반은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순간 의아해졌지만 듣고 나니 이내 실수를 저지른 것에 겸연책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죄송합니다.”
 
 우노는 서둘러 담배를 다시 성냥갑으로 돌려 보냈다.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곳엔 무슨 일이신가요?”
 
“아, 길을 좀 잃고 말아서요… 자료실을 찾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노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복잡한 복도를 지나 자료실로 향했다. 

 

그의 뒤를 따르면서 우노는 그 직원의 이름을 아직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혹시 이름이 뭐죠? 제가 아직 여쭤보지 못했네요."
 
 직원은 잠시 멈추어 서서 우노를 돌아보며 답했다.
 
"제 이름은 ‘존 도’입니다. 하지만 존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박사님."
 
"존, 그렇군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이곳은 복잡하더군요."
 
 우노는 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존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박사님. 대단장궁은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는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직원들은 언제든지 도움을 드리기 위해 여기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게다가 자료실까지의 길은 저도 자주 이용하니, 이제는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죠. 박사님도 곧 익숙해 지실 겁니다."
 
 대화를 나누며 걷던 두 사람은 곧 자료실에 도착했다. 존은 우노에게 자료실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자료실입니다. 박사님이 찾으시는 자료가 모두 여기에 있길 바랍니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주십쇼."
 
 우노는 자료실로 들어섰다. 우노가 존에게 다시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자, 그는 마치 유령처럼 사라져 있었다.
 
 우노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카드를 꺼냈다. 

 

검은색 반질반질한 재질에 금색으로 아메리고의 국장과 그 밑엔 그의 새로운 이름 ‘우노 레이븐릿지’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뒤에 마찬가지로 금색으로 적힌 문구
 
‘우리는 신을 믿는다.’
 
 딱 봐도 예사로운 물건은 아닌 듯 보였다. 

 

잠시 문 앞에서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은 우노에게 다가와 카드를 확인한 뒤, 깊은 존경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븐릿지’ 박사님,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하지만 ‘레이븐릿지’가 아니라 ‘우노’로 충분합니다.”
 
 아침의 존처럼 잠시 당혹한 기색을 보인 그는 다시 그 기색을 지우고.
 
“알겠습니다. ‘우노’ 박사님”
 
 하고 대답했다.
 
 이 곳은 참 소문이 빨리 퍼지는 것 같다고, 우노는 생각했다.
 
 비밀 자료실은 자료실의 조금 안쪽에 있었다. 그들은 얼핏 보면 그냥 비품실처럼 보이는 평범한 문 앞에 섰다. 길을 안내하는 직원은 열쇠 꾸러미를 뒤적거리며 말을 건넸다.
 
"구대륙에서 대피해 온 많은 이들이 소중한 자료를 함께 가져왔습니다. 전란으로부터 구출된 이 자료들은 우리 아메리고의 보물이죠. “
 
 그리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비밀 자료실에 들어서자, 우노는 숨을 멈출 정도로 놀랐다. 방대한 양의 책과 문서, 각종 유물과 마법에 관련된 자료들이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선반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각기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온 자료들이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었다.
 
 우노는 자료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소문은 듣긴 했지만 상상 이상이군요..."
 
"이 방대한 분량 때문에 실제로 이 자료들 중 많은 부분이 아직 보안 등급 분류를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이곳에 있는 자료의 존재 자체가 비밀에 부쳐져 있죠. 대단장 각하의 특별한 호의로, 우노 박사님만이 이곳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받으셨습니다."
 
 직원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별도로 필요하신 자료가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쇼. 저는 아까전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직원은 이어 짤막하게 목례를 하고 그곳을 떠났다. 문이 닫히고 고요가 내려앉았다.
 
 방대한 자료의 산맥에 압도된 우노는 잠시동안 자료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은 '그 계획'을 위한 사전준비를 하기 위해서이다.
 
 우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곳은 구대륙의 학자들 사이에서 이어져 온 지식의 망과 그들의 논문 인용, 비공식적인 서신의 교류가 얽혀 있는 역사의 증거였다.
 
 그는 선반으로 걸음을 옮겼다. 

 

각 국가가 전쟁으로 인해 자국의 방위에 쓰일 수 있는 연구를 감추기 시작한 구대륙의 상황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논문들은 아직 많았지만, 그것들 사이에 숨겨진 비공식적인 연결을 찾아내는 것이 우노의 오늘 할 일이었다.
 
 그는 자료실의 한 켠에서 발견한 오래된 책들과 문서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구대륙의 여러 학자들이 서로 교환한 비공식적인 서신들도 있었다. 

 

우노는 이 서신들 사이에서 공표된 논문들과는 다른, 숨겨진 틈을 찾아내기 위해 집중했다.
 
 우노는 문서와 서신을 꼼꼼히 검토했다. 

 

그는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학자들의 연구와 그들 사이의 비공식적인 교류를 파해치며 지식의 조각들을 하나씩 연결해 나갔다.
 
 우노는 테이블 위에 넓게 자료들을 펼쳐 놓고, 분야별로 중요한 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연구 분야,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발견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마법 에너지의 조작, 금속학, 고대 구대륙의 마법 기술, 에너지 변환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하나씩 연결해 나갔다.
 
 그는 노트에 각 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연구 분야, 그리고 그들이 개발한 기술이나 이론이 계획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상세히 기록했다. 

 

우노는 이 목록을 통해 계획을 구성 할 때 필요한 핵심 인력과 분야를 파악하고자 했다.
 
 자료에 몰두하던 우노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현실로 돌아왔다.
 
"상당히 바쁜 모양이네.”
 
 우노가 뒤를 돌아보자, 휠체어에 앉아 있는 레일라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온하게 보였고, 붉은 눈은 여전히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의 옆에 비서인 키르디아가 자료실의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키르디아의 모습이 문틈 사이로 사라지자, 자료실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무슨 일이야?”
 
“히힛.”
 하고 특유의 웃음을 터트리고
 
“아메리고의 국빈께서 뭘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왔어.”
 
 레일라는 휠체어에서 몸을 약간 기울여 우노가 작업하고 있던 자료들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잘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네."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었어." 우노는 대답했다.
 
 레일라는 우노의 대답에 만족한 듯 보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무언가를 살피는 듯 했다.
 
“하지만 조금 유감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어.”
 
“무슨 말이야?”
 
 우노는 의아해 했다.
 
“우노, 네가 새로운 이름에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녀의 붉은 눈이 우노의 얼굴을 직시했다. 우노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오해야. 그냥 익숙하지 않아서였어.”
 
 우노는 변명하고 말았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아침부터 느끼던 기묘한 위화감. 어째서 직원들은 그에 대해 그토록 잘 알고 있었는지.
 
 그녀는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너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야. 네가 여기서 더 편안하게 지내길 바래서일 뿐이지. 그걸 위해선 – ”
 
 그녀가 손을 건내 얇고 긴 작은 상자를 건냈다.
 
“선물이야.”
 
“이건 뭐야?”
 
“열어봐.”
 
 그 말에 우노는 신중하게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었다.
 
“이건…”
 
 고급스러운 검정색 펜, 하지만 중요한 것은 펜에 금색으로 새겨진 하나의 이름이였다.
 
‘우노 레이븐릿지’
 
 레일라는 우노의 손을 감싸며,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노, 나는 네가 여기서 불편함 없이 지내기를 원해.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줄거야. 이것도 그 중 하나야. 물론 너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
 
 그녀는 휠체어를 천천히 돌렸다. 그녀는 자료실의 입구로 나아갔다.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너를 지켜보고. 너를 보호할거야. 그걸 위해서 - ”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을거야.”
 
 그녀는 말을 이었다.
 
 레일라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우노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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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업로드 예정을 변경합니다.

금, 토, 일 연재를 기본으로 여건이 허락할 시 추가적으로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노벨피아에서도 연재중이니

노벨피아 주소

한번 들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작품 소개도 조금 수정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소설을 연재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

특히 줄 나누기, 문단 나누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조언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