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러스트컷(Wrist Cut)

그 아이는 언제나 인형을 품에 안고 있었다. 
유치원 한 모퉁이에 혼자 앉아 인형한테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조그만 여자아이는 외톨이였지만 쓸쓸해 보이진 않았다.

어느 날 소녀와 인형과의 작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짓궂은 남자애가 그 아이가 선잠이 든 틈을 타 기어코 가위로 봉제 인형을 망가뜨렸던 것이다.
천이 찢어지고 솜이 터져 나왔다.

“이녕이 주거써. 사라나! 사라나죠요!”

그 아이는 망가진 양 인형을 보자마자 서럽게 울었다.
친구가 하나도 없던 그 아이를 위로해주는 원아는 없었다.
흘러넘치는 눈물로 손등을 적신 여자아이의 눈은 너무 비벼댄 탓인지 빨갛게 부어있었다.

나는 어쩐지 그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어졌다.
슬쩍 다가가 여자아이의 옆에 앉아 깊게 생각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그 아이는 한순간 움찔했지만 내 손을 잡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몇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사라났다, 에헤헤.”

눈물은 어느샌가 뚝 그쳤다.
자세히 보니 귀여운 얼굴이었다.
손을 꼭 잡은 여자아이의 모습에 부끄러워진 나는 그 감정을 숨기려는 듯 웃었다.
그 아이도 따라 활짝 웃었다. 

그날로 나는 그 아이와 단짝친구가 되었다.
상당히 희미해지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를 이야기했다.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면 여자아이는 항상 내 손을 잡고 다니려 했단 거다.

“손 노치마.”
“노치마?”
“응. 형우 손이 조아. 계속 잡꼬 시퍼.”

유치원 선생님들은 활동적으로 변한 그 아이를 긍정적으로 봐 우리를 응원했다.
어딜 다니든 말리지 않았다.
뭐, 공구와 비품을 보관해놓는 유치원 지하실까진 아니었겠지만.
호기심에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들어갔던 그날 그 아이는 찬장에 손전등을 비추며 말했다.

“저게 머야?”

나는 그 말을 따라 빛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퍼억! 그 순간, 옆에서 가해진 충격이 정수리를 강타했다.
머릿속까지 아픔이 울렸다.
왜? 어째서?
나는 종잇장처럼 흐느적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서걱. 서걱. 서걱.

내가 눈을 떴을 때 그 아이는 실톱을 켜고 있었다.
살갗이 찢어지고 선혈이 터져 나왔다.
오른팔을 타고 흐른 피가 옷소매를 붉게 물들였다.
그 아이가 무얼 자르고 있는지는 절규를 토하는 맥동으로 알 수 있었다.

“우아. 엄청 이뻐. 이러케 이쁜데…그치만 잘 안 짤린다아….”

내 손목이었다.
푸르딩딩한 동맥과 엉켜있는 힘줄, 그리고 하얀 완골이 보인다.
자그마한 손으로 톱을 쥐고 한참 켰던 듯하나 어린 계집애의 힘으론 뼈째로 자르는 건 무리였나 보다.

“아, 아우, 아아아아!”

나에겐 입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들었는지 계단 아래로 어른들이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형우아. 손은 담에 받아 가께!”

그 아이는 쥐고 있던 실톱의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새빨갛게 물든 자신의 두손을 내려다보더니.
그 아이는 어느 때보다 밝게, 찬란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난 즉시 구급차에 실려 갔고 출혈성 쇼크가 심해 사경을 헤맸다고 한다. 
사건의 전말은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
겅찰관이 건네준 딸기 맛 사탕을 우물거리면서 그 아이는 진술했단다.

형우의 손을 온종일 잡고 싶었다고.
그래서 집에 가져가려고 했다고.
그러려면 자르는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어린애가 떠올릴법한 삼단논법이었다.

촉법 소년이니 법적 처벌을 받진 않았다고 한다.
당연하다시피 그 아이는 유치원에서 퇴원 당하고 먼 곳으로 이사 갔다.
그 무렵 나 역시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버지를 따라 안천시로 떠나게 되었다.

십 년 하고 이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내 손목엔 꿰맨 상흔이 남아있다.
봉제 인형의 바느질 자국처럼.
누가 보면 자해 흔적인 줄 알고 눈을 흘길 테니 장갑으로 가리고 다닌다.

그 아이의 이름과 얼굴, 무얼 이야기했는지는 지금 와선 희미하다.
방어 기제인지 자세한 부분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껴 있어서 나중에 적당히 보완한 기억이리라.
어디까지가 꿈인지, 어디까지나 꿈인지.

하지만 그 아이가 남긴 마지막 미소는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처럼 웃음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 아이의 미소를 떠올릴 때마다 몸이 오싹오싹한다.

천진난만한 악.
인형과 따뜻한 손길을 너무 좋아하는 애정 결핍자.
손목 수집가.

이사 간 곳에서도 비슷한 참극을 되풀이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갱생해서 어린 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는 가면을 쓸 줄 아는 범죄자가 되어버렸을 지도.

어떤 사람이 됐든 좋다.
그 아이와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아니. 
실은 그 아이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선뜩한 미소를, 쿵쿵거리는 심장 고동을, 스며드는 유열을 난 잊지 못했다.
고동이 몸에 스며드는 감각을 느끼게 해줄 사람이라면 족했다.
그날 일어난 사건의 잔향은 나를 글러 먹게 만들었다.

나, 인형우는 극도로 위험한 여자한테만 끌리게 되었다.
손으로 툭 건드리면 터져버리는, 엮이면 후회하게 되어버리는 지뢰녀들에게 말이다.

그런 지뢰녀들을 만나고 싶다.
위험한 여자들로 살 떨리고 아슬아슬한 상황을 조성하고 싶다.

종국에 파멸하여 인/형/우가 되더라도.

그래서 지뢰계 여자들을 내 어장 안에 수집해 보았다. 


***

#01_기르다 (1)

꿈을 꾸었다.
하잘것없는 개꿈이었다.

그 아이가 헤어진 지 열두 해가 지난 오늘 날 찾아왔다.
얼굴은 물음표로 되어 있었다.
그 아이가 돌려받을 게 있다는 말에 난 기꺼이 전기톱으로 손목을 썰어 주었다.
그러나 손목이 아니란 게 아니겠는가?

헉, 그럴 수가!
나는 서둘러 발목을 돌려 뽑고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번에도 그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아이가 자기 심장을 돌려받으러 왔단 말을 하며 내 가슴 속으로 손을 쑤신 순간.

나는 기세 좋게 눈을 떴다.
방과 후에 학기 초 상담을 받으러 간 여사친을 빈 교실에서 기다리다 깜빡 수마에 빠졌나 보다.
오랜만에 느끼는 격렬한 심장 고동에 얼떨떨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시선이 닿은 곳엔 반듯한 얼굴이 있었다.

“아─!! 깼다.”

소녀는 유연한 웃음을 지으면서 하이톤의 목소리로 반갑게 말했다.
내가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내가 방금까지 끙끙거리며 자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쓴웃음 없이는 상대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회장이었던가? 어제 뽑힌.”

건강하고 청량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소녀였다.
2학년 신학기가 되자마자 반장이 된 걸 보면 아마 교우 관계와 성적도 좋을 거다.
공부도 운동도 평균 이상이 아닌 나를 굳이 남아 기다려준 이유는 뭘까.

“단별이야. 한단별. 너랑 잠깐 얘기를 하고 싶었어.”
“인형우다, 무슨 얘기를?”
“자, 핸드폰 번호 좀 주세요♡”

불쑥 스마트폰을 내밀더니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조금 경계한 채로 되물었다.

“어. 왜?”
“학교 행사나 과제를 전달하려는데 네 전화번호가 반 연락망에 없었거든. 어째설까 싶었다고나 할까?”

단별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21세기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폰이 없다니.
살짝 원시인 취급 당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타고난 듯한 밝을 성격으로 봐서 그럴 의도가 아닐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사정이 있어서 핸드폰을 안 갖고 다녀. 귀찮겠지만 메일로 전달 부탁해도 돼?”
“메일로? 흐음. 괜찮아. 그럼 알겠어.”

회장은 구글 가계정 메일을 불러준 대로 받아적곤 잠시 머뭇거린다.
거기서 일말의 망설임을 알아차리고 난 말해보란 듯 고개를 들었다.

“계속 궁금했는데 예리 남친 맞지? 작년에 같은 반이었어.”

“에헤헤.”라 웃으며 털어놔서 시원하단 얼굴이 된 단별이 머리를 긁적인다.
확실히 내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맞지만.

주예리, 안천고등학교 2학년 2반. 
올해도 반이 갈렸다.
중학생 때까진 절묘하게 같은 반만 걸렸는데 말이다.
인연에는 총량이란 게 있는 걸까.

“진짜 그렇게 생각해?”

말이 되냔 어조로 대답하면서도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응! 왜, 걔는 성질머리가 있잖아? 넌 항상 심한 말을 듣고도 붙어 다니길래 대단하다 싶었다고.”

무슨 인식이 그렇게.
내가 마치 매저키스트 같네.
오해는 바로잡아야 겠지.
난 회장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냥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야. 내일 보자. 요새 동네에 흉흉한 일이 많으니 조심해서 들어가.”
“엇, 아! 네…네…네엡!”

아직 납득하진 못한 것 같았지만, 버그가 걸린 것처럼 목소릴 떠는 회장을 두고 교실에서 나왔다.
미닫이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왜 내가 널 위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이래서야 주객전도인데? 나 참, 말도 안 돼.”

허리까지 기른 매끈하고 긴 흑발과 왜소하면서도 꽤나 볼륨은 있는 여고생이 벽에 등을 기대고 있다.
치밀어오른 불쾌함을 송곳처럼 올라간 눈초리로 감추지 않는다.

변덕스러움. 까칠함. 경계심.
굉장한 미인이지만 고양이의 나쁜 점을 농축시킨 듯한 성격 탓에 친구가 적다.

토라진 표정으로 팔짱을 낀 반소꿉친구, 주예리였다.
소꿉친구는 소꿉친구지 왜 반(半) 소꿉친구인가 하니 초등학교 6학년이란 상당히 애매한 시기에 만났기 때문이다.

“깜짝이야. 주예리. 상담 진작 끝났으면 왜 안 들어온 거야?”
“나, 난 저 여자가 거북하다고!”
“설마, 좋은 애 같던데.”
“뭐어─?! 속을 줄 알았어, 진짜. 남자들은 다들 저런 타입을 좋아하는데 잘 알아야 해. 분명 뒤론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트위터 우울계를 하거나 커뮤니티 분탕질로 풀겠지!”

예리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확신해서 분명 본인의 경험이 반영된 것 같다.

“아니라니깐. 그리고 네 얘기를 하면 안 되지.”

내가 팩트를 말하자 옆구리에 주먹이 날아온다.
전혀 아프진 않지만, 폭력 츤데레는 히전죽 소리를 들으니 그만뒀으면 해.

“시끄러워. 죽어. 찔러버린다?”

주예리는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
“어? 아니, 심한 말 해서 미안해. 기, 기분 나빴지. 이런 무시 싫어….”

내가 침묵을 지키자 제풀에 시무룩해져서 안절부절못한다.
다루기 쉽구나, 주예리.

확실히 주예리는 섬세하고 불안정한 소녀다.
까칠한 성격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색이다.
평소에 말보다 먼저 나가는 행동은 경솔하고 머리가 살짝 나빠 예쁜 얼굴값을 못한다.

흔히 신조어로 말하는 지뢰계.
멘헤라다.
지뢰계 히로인의 표준인 주제에  #후회 태그 소설을 읽으면서 ‘나, 여자애는 이렇게 남자한테 절절매선 안 된다고 생각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내 입장에선 할 말이 없다.

예리는 내가 발견한 광공녀 원석 1호다(0호는 언제나 그 아이다).
물론 ‘시시한’ 여자인 회장보단 낫겠지만 위의 사항만으론 귀찮은 여자지 위험한 여자가 아니다.
이 녀석이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다.

“얼레? 안 화났어. 가자. 오늘은 애완동물을 보러 가기로 했잖아.”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울먹이는 예리를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저번 주부턴 난 집에 펫을 키우고 있다.
예리가 하도 보여달라 졸라대는 데다가 더는 숨길 수가 없어서 오늘 개봉박두하기로 했다.

“뭐─?! 속을 줄 알았어, 진짜. 남자들은 다들 저런 타입을 좋아하는데 잘 알아야 해. 분명 뒤론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트위터 우울계를 하거나 커뮤니티 분탕질로 풀겠지!”


예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확신해서 분명 본인의 경험이 반영된 것 같다.


“아니라니깐. 그리고 네 얘기를 하면 안 되지.”


내가 팩트를 말하자 옆구리에 주먹이 퍽퍽 날아온다.

전혀 아프진 않지만 폭력 츤데레는 히전죽 소리를 들으니 그만뒀으면 해.


“시끄러워. 죽어. 찔러버린다?”


주예리는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

“어? 아니, 심한 말 해서 미안해. 기, 기분 나빴어? 이런 느낌 싫어….”


내가 침묵을 지키자 제풀에 시무룩해져서 안절부절못한다.

진짜 다루기 쉽구나. 주예리.


확실히 주예리는 섬세하고 불안정한 소녀다.

까칠한 성격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색이다.

평소에 말보다 먼저 나가는 행동은 경솔하고 머리가 살짝 나빠 예쁜 얼굴값을 못 한다.


흔히 신조어로 말하는 멘헤라다.

지뢰계 히로인의 표준인 주제에 #후회 태그 소설을 읽으면서 ‘나, 여자애는 이렇게 남자한테 절절매선 안 된다고 생각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내 입장에선 할 말이 없다.

예리는 내가 발견한 지뢰녀 원석 1호다(0호는 언제나 그 아이다).

물론 ‘시시한’ 여자인 회장보단 낫겠지만 위의 사항만으론 귀찮은 여자지 위험한 여자가 아니다.

이 녀석이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다.


“화 안 났어. 그건 그렇고 오늘은 애완동물을 보러 가기로 했잖아. 가자.”


장갑을 낀 쪽 손으로 울먹이는 예리를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저번 주부턴 난 집에 펫을 키우고 있다.

예리가 하도 보여달라 졸라대는 데다가 더는 숨길 수가 없어서 오늘 공개하기로 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집의 반대로 못 키우는 반꿉친구님께선 꽤나 기분이 진정된 것 같다.

잠시 후 기운을 차리고 “바보야!! 네 주제 심술부리지 말라고!”라고 쏘아붙이곤 앞장선다.


“설마 네가 동물을 키울 줄이야. 종류가 뭔데?”

“서프라이즈. 방에 가보면 안다고.”

“하, 벌레나 파충류면 베어버릴 테니까 각오해. 너도 포함.”

“무섭네~”


그래. 

무척 마음에 들 거야.


아주 영리하고, 아주 귀여우니까.


***


“요즘 세상 참 살벌해졌지.”


우리 집 욕실에서 씻고 나오자, 주예리는 소파 위에 오도카니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었다.

지역 방송국에서 저녁 와이드 쇼를 내보내고 있다.

예리가 내가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진짜 사회를 걱정해서 보는 건 아니리라.

주예리란 소녀는 시사 방송보단 애니메이션을 더 좋아한다.

귀멸의 칼날이나 바람의 검심 같은. 

이건 자기가 조금이나마 유식하다 어필하기 위한 눈물겨운 시위이다.


‘그게 더 단순한 바보 같은데.’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인구 55만의 안천시는 치안이 안 좋은 편이다.

수도권 베드타운 주제에 전국에서 제일간다.

마계안천, 산 안(安)드레아스, 안저미 등의 수치스러운 별명으로 불린다.


차량 강도 사건.

칼부림 후 도주 사건.

연쇄 토막살인.

재건된 사이비 종교 교구 취재. 

연쇄 방화.

의미불명의 낙서 테러. 


그리고 요새 가장 뜨거운 토픽은 부녀자 살인 및 초등학생 유괴 사건이다.


어머니와 이모가 살해당하고 딸은 실종되었다.

얼핏 비극적으로 보이는 사건이었다.


아마 딸은 범인이 납치해 갔을 거라고 추정된다, TV 화면 속 범죄전문가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골든 타임 사십팔 시간이 지났지만, 아버님은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한물간 MC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흰색 머리카락과 순진무구한 파란 눈동자.

러시아 인형처럼 예쁘고 무표정하며 조막만 한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교수의 딸이랬나. 무척 똑똑해 보인다.


천서월(11) 양을 목격하신 분이 계신다면 꼭 112에 신고해주세요.

상투적인 멘트가 끝맺히기 직전에 난 TV를 껐다.


“왜 끄는데.”


그러자 예리가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TV 볼 시간에 애완동물이랑 놀아 달라고.”

“키우는 거 맞아? 하. 뭔가 흔적이 전혀 없는데? 너라면 우리 집에 고양이 보러 갈래? 으흐흐. 고양인 나야. 뭐 그런 음흉한 생각이나 했겠지? 난 이미 알고 있었다니까.”


확실히 몇 번 그렇게 골탕 먹인 적은 있었지만 말이지.

안다면서도 따라온 게 이 녀석이 바보인 이유다.


“이번엔 아냐. 작은방에 있어.”


펫이 작은방에 있단 말에 문을 연 예리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마주쳤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 우에에에~?”


여자애였다.

아니, 여자애란 호칭은 조금 불명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꼬마애다.


싱싱하고 농쭉한 리얼 초등학생이다. 

배꼽이 드러난 네글리제를 입고 팔엔 수갑을 찼다.

아침에 사료 그릇에 담아두었던 과자를 먹던 중이었던 것 같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시장하시진 않으세요?”

“괜찮아. 잘 있었어?”

“덕분에요. 그쪽은 안주인 님이신지요?”

“아, 안주인?”


여자애는 이쪽을 감정하는 것처럼 나른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표정에 아무런 변화 없이 물 흐르는 듯한 어조로 예의 바르게 말했다.


내가 새로 찾은 원석.


보자마자 그 아이를 뛰어넘을 인재라고 판단했다.


─부녀자 살해 현장에서 실종된 초등학생은 내 집에 갇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