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웅장한 흰색 건물 위로 형형색색의 색깔들이 하늘을 아름답게 빛내고 사라진다.

그것이 무수히 반복된다. 수도 내에 있는 사람들의 열띤 함성이 우리 남매가 있는 외곽에까지 들렸다.

 

“오빠.”

“응?”

 

푸른색 머리가 잘 어울리는 7살 꼬맹이 소나를 내려봤다.

 

“저런 불꽃놀이는 어떻게 만든 거야?”

“…….”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나 포함 모든 오빠들에게 어떠한 자존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잘 몰라도 여동생인 소나의 눈에는 3살 오빠인 나는 궁금한 걸 물어도 척척 대답이 나오는 오빠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건 말이지…. 마,마법사가 만든 거야.”

“정말?”

“응응. 왕궁엔 마법사들이 많잖아? 그들이 마나라는 걸 써서 저런 아름다운 불꽃을 만드는 거지.”

“와!”

 

우리 남매는 그렇게 3시간 동안 쏟아지는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봤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 빛은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특히 나의 마음은 뜨겁게 젖었다.

 

‘한 번만 더 봤으면!’

“아쉽네. 이게 10년에 한 번 있는 행사라니.”

“진짜로 아쉽다. 하아….”

“……?”

 

아쉬움에 실의에 빠진 나를 소나가 올려봤다.

 

“오빠는 저런 불꽃놀이를 매일 보고 싶어?”

 

나는 별 생각없이 대답했다.

 

“뭐 그렇지. 저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누구나 그렇지 않겠어?”

“……그렇구나.”

“?”

 

뭔가 고개를 끄덕이는 소나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는 사이 숲속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우리 남매는 거의 도착했다.

그러자 미리 마중나와 있었던 머리색만 다른 쌍둥이인 붉은 머리의 엘리아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소리 질렀다.

 

“늦어! 라폰 오빠! 소나!”

“흥.”

 

소나는 엘리아가 싫은 듯 휑하니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아가 내게 다가왔다.

 

“오빠! 저런 응석 들어주지 말라고 했잖아! 잠잘 시간이잖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가자고 졸라대는데 어떻게 해? 그보다 엘리아 너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럴 시간이 어딨어!”

 

엘리아는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지 몸을 홱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옆에 있는 마당에 목검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걸 보아하니 지금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검술 연습을 한 모양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토하고 집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

 

 

 

 

이주 전 일이었다.

수도 콜로세움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

장내 아나운서가 안으로 걸어가며 증폭 마법이 걸린 마이크에 대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콜로세움 최강의 사내라 불렸던 늑대눈깔 콘만이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그를 쓰러뜨린 건!”

 

귀가 삐죽 솟아오르고 희고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녀린 절세의 미녀엘프. 

 

“…키리나!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가 이렇게 무시무시한 힘을 갖고 있다니! 정말로! 정말로 대단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은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에 목놓아 소리 질렀다.

한 달치 장을 보러 도시의 시장에 들러갔다 매표소 직원이 경기를 보려고 자리를 비운 틈에 콜로세움으로 몰래 들어간 우리 남매는 생전 처음 보는 전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나의 마음은 뜨겁게 젖었다.

 

‘대단하다! 저 미녀엘프는!’

 

그러는 사이 아나운서 남자가 마이크를 키리나에게 내민다.

 

“경기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백염의 키리나씨!”

“흥. 시시했다. 그것뿐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키리나의 시니컬하고 절륜한 카리스마에 관객들이 함성으로 대답했다.

 

“늑대눈깔 콘만을 쓰러뜨리고 어마어마한 상금을 획득하셨는데 혹시 상금은 어딜 쓰실 생각인……엇”

 

키리나는 질문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마이크를 빼앗고 말했다.

 

“시시하다. 겨우 이런 남자가 이 메소 왕국의 투기장 최강이라 부르짖다니.”

 

키리나는 저 너머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거대한 체구의 남자를 가리켰다.

 

“뭐 사실 기대도 안했다. 진정한 강자는 이런 곳에 나타나지 않는 법이니깐. 그것보다 내가 이곳에 온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진정한 이유?

관객들이 그것이 무엇일까 수군거렸다.

키리나는 한쪽으로 입을 비죽였다.

 

“그건 내 배필을 찾기 위해서다. 정확히 말하면 내 입맛을 만족시키는 살림하는 남자를 찾기 위해서랄까? 뭐 돈과 강함은 내가 당연히 책임질테니 어디 요리 잘하는……”

“오빠… 오빠….”

 

정신없이 키리나의 연설을 듣고 있던 나를 엘리아가 팔을 잡고 흔들었다.

 

“빨리 가자. 응? 빨리 집에 가자.”

“응? 갑자기 왜……”

“얼른! 소나가 집에서 배고파 죽겠어! 빨리 가야지!”

“아. 그렇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우리 남매는 나갈 땐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도시를 빠져나가고 외곽 저 멀리 있는 오두막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시끌벅적 떠들었다.

 

“엘리아 신기하지 않았어? 분명 검의 움직임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 뒤에 흰색 빛 잔상만은 뚜렷하게 보이더라. 그래서 백염의 키리나라고 불리……응? 엘리아?”

 

엘리아는 걷다말고 그대로 멈춰 어딘가 우울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응…. 분명 멋있었지….”

“그, 그래. 너, 너도 아까 흥분하며 봐,봤잖아….”

 

근데 왜 갑자기 기분이 다운된 거야?

무섭게….

 

“응…. 그랬지…. 그랬었는데… 이곳에 머물면서 배필을……”

 

엘리아가 고개를 숙인채 속삭여 그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오빠.”

“응?”

“나 키리나보다 더 강한 검사가 되고 싶어.”

 

엥? 갑자기?

하기야 뭐 꿈이 큰 거는 좋은 거니깐!

 

“그, 그래. 엘리아라면 분명 대단한 검사가 될 거야!”

 

그야 운동능력과 반사신경은 우리 남매중에서 제일 타고났다는 걸 알고 있으니깐.

소나는 제일 꼴지고.

엘리아는 말이 끝나지 않은 듯 이었다.

 

“나, 오빠 말대로 분명 대단한 검사가 될 거야. 반드시 약속 지킬 테니깐 하나만 나한테 약속해줄 수 있어?”

 

엘리아가 저벅저벅 다가와 몸을 내게 기댔다.

그 간절한 목소리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뭐, 뭔데?”

“당분간 도시에 가지 마.”

“엥? 그, 그게 약속이야? 하지만 생필품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움직이기 싫어하는 소나를 대신해 우리는 한 달에 한 두번 도시에 들어가 양손에 채워질 정도로 장을 봐왔다.

소나는 죽어도 안간다며 소리칠테고… 아니 그것보다 그 비장한 각오에 겨우 이게 약속이라니… 좀 이상하잖아?

엘리아는 내 의문을 읽은 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 소나도 내 말을 들으면 잠자코 나랑 장을 봐올 거니깐. 오빠는 당분간 절대로 도시에 들어가지 마! 알았지? 절대로 도시로 들어가면 안 돼! 내가 괜찮다고 할 떄까지는! 절대!”

“아, 알았으니깐 조,좀 뒤로 가.”

“…….”

 

눈과 눈이 닿을 거리까지 얼굴을 가까이한 엘리아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우리 남매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엘리아가 무엇이 그리 분한지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소나가 벌떡 일어나.

 

“늦어!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고!”

 

나는 어색하게 미소짓고 얼른 앞치마를 둘렀다.

 

“미, 미안해. 얼른 요리해줄게.”

“얼른! 얼른!”

“알았어. 기다리고 있어 소나.”

 

그때.

 

“소나…….”

 

어둡게 깔린 낮은 중저음.

나와 소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목소리의 출처인 엘리아를 바라봤다.

그렇게 사이가 안좋고 말괄량이인 소나도 낌새를 눈치챘는지 말을 더듬었다.

 

“어? 에,엘리아… 왜,왜?”

“…잠깐 이리와. 중대한 일이 생겼어.”

“아,알았어.”

 

소나와 엘리아는 그렇게 집을 나갔다.

나도 몰래 따라나가 엿듣고 싶었지만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았다.

그렇게 만든 향긋한 내음의 크림수프와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연어 요리가 부엌상에 각자의 그릇에 담겨질 때쯤.

엘리아와 소나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각자 배석된 의자에 차분히 앉았지만 아무도 포크와 수저를 들지 않았다.

 

“…….”

“…….”

“……?”

 

쥐도 부리나케 도망갈 것 같은 무거운 정적 속에서 나는 겨우 목소리를 내어,

 

“어, 얼른 먹어. 그,그래 소나야 배고팠다며? 얼른 먹어. 다 식겠다….”

“……응.”

 

평소의 그 텐션은 어디갔는지 도대체 엘리아에게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그 분위기 그대로 전염돼 소나가 나지막하게 대답하고 수저를 들어 수프를 먹었다.

 

“…와……맛있네….”

 

내가 여태 들었던 감탄사 중에 가장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말이었다.

엘리아가 소나를 쳐다봤다.

 

“…이건 100%지?”

“…응. 무조건. 우리만 알아야 돼. 우리만.”

‘대체 무슨 소리일까?’

 

같은 남매지만 이럴 땐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쌍둥이가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어떤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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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나는 그거에서 따온거고.. 메소도 거기에서 따온거고..

저번에 썼던 성녀물은 너무 복잡하게 써서 이번엔 좀 단순하게 써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