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고 봄과 여름 사이 습한 장마철이 되면 얀순이는 처마 밑에 주저앉아 담배불을 붙이곤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장대비의 소리를 좋아하던 얀순이는 항상 혼자였지만, 뺨을 식히는 시원한 공기는 얀순이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원래 얀순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오히려 담배를 혐오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자신이 흠모하는 남자인 얀붕이를 만나고 난 이후로부터, 얀붕이가 가지고 다니는 담배를 피우면 얀붕이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너무나 미칠 것 같았다.


"쓰으으읍, 후우우우우-"


얀순이의 입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회색빛 연기들은 뭉게뭉게 하늘로 향해 올라갔다. 얀순이는 그 연기들을 보면서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얀붕이와 키스를 하는 상상을 하며 즐기는 담배는 더더욱이나 얀순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얀붕이의 냄새가 얀순이의 입을 맴돌았다. 얀순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쏴아아아아-"


장대비가 내렸다. 얀순이는 눈을 질끈 감고 얀붕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눈을 뜨면 자신만의 왕자님이 얀순이를 위해 달려와 줄 것만 같았다. 얀순이가 입에 담배를 물었다. 역시나 얀붕이의 냄새가 났다.


"쓰으읍, 후우우우우-"


얀붕이의 냄새가 몇 초간 입안을 맴돌다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담배 연기를 내뱉을때면, 얀붕이의 공기가 떠나가는 것 같아 얀순이는 너무나 속상했다. 그럼에도 얀순이는 다시금 얀붕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개의치않고 담배를 연달아서 빨곤 했다. 따라서 그녀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미 입에 담배를 달고 살았다. 말하자면, 하루에 한 갑을 족히 태우는 사람이었다.


"치이이익.."


담배불을 끄는 시간은 언제나 얀순이에게 아쉬움만 남기도록 만들었다. 잠깐의 쾌락이 지나고 나면 얀순이의 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나도 비정했다. 얀붕이는 얀순이의 곁에 없었다. 얀순이와 얀붕이는 아직 친구 사이였다. 마음 속에선 이미 수백 수천번을 고백을 한 상태였다. 그러나 얀순이는 얀붕이의 앞에 서면 생기는 크나큰 부끄러움 때문에 고백은 커녕 친한 친구 사이도 되지 못했다.


얀순이는 자취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빗소리가 좋았다. 곧 다가올 무더운 계절마저도 잊게 만들, 시원하고 맑은 빗소리였다. 얀순이는 내일을 기대하며 잠에 들었다. 얀붕이와의 좋은 내일을 기약하며, 마치 언젠가 다가올 얀붕이와의 연애와 결혼을 위하여.


그 사이에 낀 걸레년들은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