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https://arca.live/b/yandere/96778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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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가 영화관에서 다시 마주친 얀진이.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좋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사실 내가 약속을 일방적으로 까먹은 입장이니 그럴만도 했다.

그렇게 나는 얀진이에게 사과를 건넸다.


"그...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었나봐."


"됐어, 칠칠맞기는... 어서 들어갈 준비나 하자.

달려서 그런가? 춥네."


"아, 응."


다행히도 착한 얀진이는 그렇게 문제를 넘기고는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꽤나 크고 화려한 모습의 영화관.

아예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만큼 그럴만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가자마자 한눈에 보이는 얀진이.

키오스크로 여러 먹거리를 구매하는 그녀를 잠시 보다,

나는 얀진이가 어느새 내 핸드폰으로 전송한 티켓을 훑어보았다.

영화의 이름은 '서울의 겨울' 여러모로 소문난 영화였다.

그렇게 화면을 보는데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의 겨울'


'$(!$(!@!%!@*#@!?!'


"...?!"


아주 잠깐이지만 순간 지직대며 알 수 없는 문자로 바뀐 화면의 글자들.

그러나 다시 눈을 감았다 뜨자 멀쩡한 화면.

아무리 눈을 비볐다 다시 떠보아도 화면은 멀쩡하기만 했다.

...내가 헛것을 본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


"으앗...!"


"얀붕아! 너 또 뭐해?"


"아, 너구나. 아냐, 그냥 티켓이나 좀 보고 있었어."


"차라리 포스터를 보지 그러셔요... 에휴.

일단 주문했으니까 좀 기다리자."


그러고는 얀진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먼저 홀의 의자로 움직였다.

놀란 가슴을 좀 쓸어내고는 나는 얀진이의 옆에 앉았다.

어째 오늘따라 이상한 일이 자꾸 일어나는 것 같단 말이지.

피곤해서 그런걸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얀진이가 말을 걸어왔다.


"너 오늘 어디 아픈 거 아냐?

학교에서부터 얼굴이 좀 빨갛지를 않나...

약속도 까먹고, 힘들면 지금이라도 집에 가도 괜찮아."


"아냐, 여기까지 왔는데 뭐.

조금 피곤해서 그런거니까 걱정 마."


"으음...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응."


"뭐, 그렇다면야 더 뭐라 할 말은 없지."


그러고는 얀진이는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더 할 말은 찾기 힘든 듯한 모습.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었기에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째서 몸이 이렇게 피곤한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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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들어오기까지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벨이 울려 팝콘과 콜라를 가져오고,

그걸 조금 나눠먹다가 영화관에 들어온 건 8시 반 정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음... 그나저나 어디 좌석이 예매인지 알고 있어?"


"아, 잠깐만... J4, J5야.

왼쪽은 비었는데 오른쪽에 사람이 하나 있네."


그렇게 핸드폰을 보면서 내가 말하자,

얀진이는 둘 다 비어있었음 좋았을텐데 라고 투덜거리며 좌석으로 향했다.

그렇게 조금 뻘쭘한 표정으로 따라 자리에 앉자,

얀진이는 콜라를 마시면서 물었다.


"그러고보니 티켓에서는 뭘 보고 있던 거야?

좌석 위치라기에는 너무 집중하던데."


"그냥 잠시 헛것을 봐서.

화면 글자가 좀 이상하게 나오더라."


"흠... 기기 고장 아니야?

나중에 한번 AS나 받으러 가봐."


"그럴 돈이 있으면 좋긴 하겠네."


그러고는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어릴적에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

그 뒤의 나는 그야말로 거지가 따로 없었다.

그나마 얀진이의 도움이 있었기에 원래 살던 집에서 버틸 수 있었지.

지금에야 알바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지만,

예전에는 정말 얀진이네가 내 삶에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는 했다.


아무튼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며 얀진이를 슬쩍 보자,

역시나 그녀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핸드폰이나 하고 있었다.

과연 나는 죽기 전에 얀진이에게 진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니겠지.

그렇게 씁쓸한 미소를 짓는데 누군가 나의 옆에 앉았다.


"...응? 얀붕아! 여긴 무슨 일이야?"


"얀...순아?"


얀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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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아! 너도 여기 와 있던 거야?"


"야...얀순아, 너가 여긴 무슨 일로..."


"나야 영화보러 왔지.

가능하면 너랑 같이 보려 했는데... 우연이네."


갑자기 나타난 얀순이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얀순이와의 약속을 파토낸 상황.

그런데 지금 그녀가 내 눈 앞에 있었다.

그것도 화는 커녕 반갑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

그렇게 그녀는 자연스레 나의 옆에 앉았다.

아니, 앉으려고 했다.


"잠깐, 거기 너 전학생 맞지?"


그렇게 말하며 얀진이가 제지하기 전까지는.


"아, 응. 그런데 왜?"


"아니 그냥 학교에서 본거같다 싶어서~.

여기서 보다니 신기하네.

좌석도 설마 여기인거야?"


"응, J6. 우연히도 여기 좌석이지 뭐야?"


"와~ 그럼 내가 너 옆에 앉아도 될까나?"


"....응?"


그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진 둘의 대화.

나는 연이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얀진이는 인싸에 가깝기는 해도 저렇게 남에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 모습은 얀순이를 경계하는것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얼떨결에 얀진이에게 밀려나서 옆으로 앉은 나.

그러나 나는 의아함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얀순이와 얀진이 사이의 경계심 어린 눈빛.

설마 나 때문인 걸까?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는데 둘의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얀붕이랑은 전부터 알던 사이야?

전학온지 하루만에 그렇게 가까워졌을 줄은 나도 몰랐는데."


"으응, 그냥 우연히 만나서 그런 거야.

그러는 너는 얀붕이랑 무슨 사이길래 영화관까지 온거야?"


"나야 물론 얀붕이 친구지~.

아무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그러면서 먼저 손을 내미는 얀진이.

얀순이도 그 손을 잡고는 웃어보였다.

그러나 둘의 표정은 분명 좋지 않았다.

웃고있지만 기쁜게 아닌 표정.

차가운 사회를 일찍 접한 나에게는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런 불편함속에서 나는 애써 웃으려하며 팝콘을 조금 집어먹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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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분노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일순간에 가볍게 지워버릴 수 있는 저런 미물에게 또 얀붕이를 빼앗겼다.

한번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공원에서의 일도 눈감아주려했다.

그만큼 저 미물은 얀붕이에게 소중했으니까.


나 답지 않은 수고까지 억지로 들였다.

영화관이라는 좁디좁은 공간의 단 한자리.

미물 하나가 겨우 앉는 그 자리를 얀붕이의 옆이라는 이유 하나로 차지했다.

인과를 조작하는 수고까지 들였다.


그러나 그 자리를 저 계집 미물은 당당하게 앗아갔다.

그것도 어떤 힘이나 어떤 권능도 없이,

그저 말 한마디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째서냐. 어째서더냐.

왜 나를 두고 그 미물을 선택한 것이냐, 나의 얀붕아.

그정도로 너에게 저 미물은 소중한 것이더냐?

내가 어디까지 인내해야 하느냐.

너의 마음은 그리도 귀한 것이더냐?


나의 사랑을 언제야 알아챌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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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이 중간에 하나 있어서 늦었음

앞으로는 자주자주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