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saya


어느 순간, 내 발치에 날개가 달렸다.


그 덕분에 나는 하늘을 누빌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그 때 얻은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였다.


이 날개만 있으면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늘 저편에 닿아 승천해버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아니었어.


그러나, 그 날개를 얻은 대가는 혹독했다.


─무거웠어.


날개를 통해 이룬 실적은 점점 나를 옥죄어 왔다.


─이걸 떼 버리고 얼른 가벼워지고 싶었어. 비록 다시는 날지 못한다고 해도.


패배에 대한 두려움, 주변에 대한 기대.


...그리고, 이런 것들에 연연하는 나 자신이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래서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다.


그래, 난... 날개를 달고 미친듯이 날아다녔던 히나타 마사야는 그 날 죽었다.


이제 다시는 기존처럼 날지 못해. 아니, 창공을 누비는 꿈조차 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나에게 기대를 걸어왔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아래(지상)에서 살아가겠다.


.

.

.


-두근!


순간, 무언가 큰 자극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몸을 두들기는 강렬한 자극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내 신체를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다.


-쾅! 우지끈!


아니다. 이건, 내 몸 자체가 나를 때리는 것이다.


내 피부와 모세혈관이, 각종 장기가 자기 스스로 나에게 통각을 주고 있는 거다.


왜? 왜 내 몸이 울리는 거지? 마치 종(鐘)이 된 것 마냥.


아니야. 종은 외부의 타격이 가해져야지만이 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난 외부의 타격을 받은 적이...


─아니, 타격을 받았잖아. 전기적(電氣的)으로.


그라슈 내부에 탑재된 반중력자 발생 모듈에 에너지를 자가 발전하여 공급하는 파워모듈이 합선을 일으켜, 나는 감전사고를 당했다.


일명 단락전류로 인해 난 죽을 뻔했다는 거다. 나는 치사량 이상의 전류를 정통으로 맞고 웰던으로 구워졌다.


그 영향일까. 온 몸이 마치 주위 사람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것처럼 매우 아프다.


윽..! 이 고통은!!


으윽! 끄아아아아악!! 차라리 날 죽여!!!


-콱!


윽, 그만!


-퍽! 퍼벅!


정말 정도껏!


"...끄으윽!"


주위에서 삐삐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나는, 그런 잡음을 들으면서 눈을 떴다.


그런가. 나는 그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드디어 의식을 되찾은 것인가.


그런데 입원실이 아니라 수술실이라니. 주위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고통에 몸부리치며 발악하는 나를 편하게 해주려고 온갖 발악을 하고 있다.


솔직히 존나 아파서 죽을 것만 같다. 뭔가 약이라도 내 몸에 꽂은 것인지 고통이 다소 수그러들긴 했지만, 아직 남은 고통도 내 뇌를 펑크내기에 충분하다.


"아아아악!!"


더 이상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나는, 내 몸 자체가 두들기는 아픔에 견딜 수 없었고, 결국 시야는 다시 암흑으로 물들었다.


.

.

.


"으음..."


"...신이 들..."


뭐야? 난, 죽은 건가?


몸이 굉장히 나른한데, 설마 이미 죽어서 천국에라도 온 거야?


시야에 보이는 건, 비록 조금 짧긴 해도 검은 머리에다 예쁜 원피스를 입은... 천사?


"...정신이 들어? 날 알아보겠어?"


"나 죽었나? 웬 귀여운 천사 씨가 나를 반겨주네?"


"헤에~ 이 미사키쨩이 천사라니 내 일생동안 받은 칭찬 중에서 가장 최고다냐~♪"


잠깐, 이 목소리는!?


"너, 너는 분명 날 한 번 이긴!"


"그래그래, 운 좋게 1점을 얻은 뒤 가까스로 히나타 군을 따돌리는 얍삽이짓을 해서 1승을 얻은 미사키쨩이에요~♬"


"으으, 너 말 잘한다. 그나저나 너..."


누운 채로 녀석을 제대로 보았다. 옅은 짧은 흑발에 초롱초롱한 홍안을 하고 있으며, 청록색 프릴 원피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귀엽게 내비치는 '그 녀석'이 내가 누운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더군다나 뭔가 내가 반가운 건지 아주 쾌활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어? 너... 남자... 아니었나?"


"아니거든! 애초부터 여자였거든!"


"아니, 처음 만났을 때와는 분위기가 영 딴판인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히히, 놀라는 것도 이해해. 평소에는 이렇게 잘 안 입으니깐 다들 오해하더라고. 그래서 미사키쨩, 가끔씩 기분이 이상한 거 있지? 그러는 히나타 군도 머리카락이 그렇게 길다니 뭐야? 여자애라고 오해받고 싶은 거다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 있잖아. 하늘을 날 때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살갗을 스치는 게 기분 좋아서 일부러 기르는 거야."


"정말? 나도 한 번 길러봐야겠다. 기분이 어떤지 알고 싶어."


"여자애니깐 세월이 지나면 머리칼 길어지지 않아? 암튼 직접 겪어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야. 그나저나..."


약간의 잡담이 오간 뒤, 나는 드디어 본심을 입에 담았다.


"......계속, 옆에 있어 준 거야, 너?"


"그래, 히나타 군이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는 게 나였으면 했거든. 그리고, 할 말도 있고 해서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거야."


"그런가. 딱히 이렇게 붙어있을 필요없는데 말야. 전할 말이 있다면 하야토 형아나 아오 누나를 통해서 전하면 될 거고, 피해보상 문제가 처리되는 즉시 집으로 돌아가도 상관없었을 텐데."


"그럼 안돼! 내가 얼마나 너한테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


"그건 딱히 네 잘못이 아니었잖아? 내 그라슈를 내가 스스로 부셔먹어서 생긴 우발적인 사고였을 뿐이야. 내가... 내가 멋대로 열등감에 젖어서... 지랄발광해서 벌인 자폭쇼에 지나지 않아. 미래에 나 자신의 흑역사로 영영 기억에 남아 잊혀지지 않을지도. 그 촌극을 나와 너, 둘이서 공유하게 되겠지."


"이봐 히나타 군, 계속 '너'라고 하는 거 너무하지 않아!? 난 제대로 토비사와 미사키라는 이름이 있다냐-!"


아아, 그러고 보니 제대로 자기소개하지 않았네. 그나저나 이 녀석은 벌써 내 이름을 알고 있구나. 십중팔구 아오 누나나 하야토 형아한테서 들은 거겠지.


하지만, 그걸로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어떠한 관계든 말이다.


그러니까─


"그래 알았어 알았어, 내 이름은 히나타 마사야. 이전부터 플라잉 서커스에 관심을 두고 아오 누나 밑에서 계속 수행하고 있었어. 뭐, 이제는 별거 없는 그저 FC 선수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야."


이전의 나였다면 뭔가 멋─있는 멘트로 녀석에게 소개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이전의 나는 멋 모르는 멧돼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전의 불안을 겪고 제대로 된 상해까지 입어서 닳을 데로 닳은 나는 이제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몸이다. 그러니 이렇게 무난하게 자기소개할 수밖에.


"이미 이전에 이름을 전해들었지만, 아... 히나타 마사야 군인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널 마사야~라고 불러도 돼? 아, 내 이름은 아까도 말했지만 토비사와 미사키, 귀엽게 미사키 쨩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걸랑?"


엄청 하이텐션이다, 이 녀석.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 않겠어. 그것보다 초반부터 이름으로 부르기냐?


"싫거든, 그냥 서로 안 지 얼마 안 됐으니 일단 토비사와라고 부를 거야."


"에...? 그러면 너무 서럽잖아? 그 역경을 같이 헤쳐나온 동지 사이인데 이러기야? 그냥 서로 이름으로 부르자~"


"떼 써도 소용없어! 난 지금 당장은 이렇게 부를 거야, 알았어?"


"치... 알겠다 뭐..."


참 고집하고는... 나는 이런 애를 상대로 그렇게 부끄럽게 쳐 울었단 말이야? 으으, 이제부터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면 되는 거지?


그나저나, 잠깐!


뭐, 나 뭐 잊은 거 없나? 지금 몇월 며칠이지!?


"저기 토비사와. 혹시 지금 날짜... 알고 있어?"


"정확히 마사야가 찌릿찌릿 당해서 병원으로 실려온 지 2주일 째야. 즉, 오늘 날짜는 3월 14일이네. 참고로 마사야가 전기구이가 된 날은 2월 29일."


2월 29일은 내 생일이다. 그 촌극을 저질러 자폭한 게 왜 하필 그 날짜인 것일까?


젠장, 내 흑역사 페이지가 점점 갱신되어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만약 이 녀석이 내 생일을 알게 된다면 아마 약점을 잡겠지. 이 하이텐션 왈가닥을 보면 뻔히 답이 나온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럼 나 2주일이나 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는 얘기야? 으악 망했어! 대회가 코앞인데!"


세계대회에 대한 불안감으로 몸을 떨었던 적은 있었지만, 나가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나를 단련시켜 준 아오 누나와, 내 그라슈를 늘 메인터넌스 해준 하야토 형아를 보아서라도 어떻게든 대회만큼은 나가 남들 부끄럽지 않은 실적을 내지 않으면!


"...저기 마사야, 몸은 좀 어때? 대회도 중요하지만 우선 컨디션이 괜찮아야 되지 않아?"


경악하는 내 모습을 보고 토비사와가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 다쳤었지! 이거 이런 상태로 대회에 나갈 수 있을까? 다른 것도 아닌 감전사고라고? 화상으로 몸에 걸레가 된 거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대회에 나갈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팔과 다리를 움직이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이상하네? 몸이......"


─움직인다. 멀쩡하게.


눈 뜨기 직전까지는 분명히 고통이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뭔가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뭐지 이거?


나 언제 이렇게나 나았지? 감전으로 인한 상처라는 거, 이렇게나 쉽게 낫는 거였나?


내 몸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이번에는 병원 침대에서 벗어나 보았다. 어디 보자, 근처에 있는 슬리퍼를... 찾았다.


그렇게 슬리퍼를 신고 일어나 보았다.


"에? 나았어!? 움직일 수 있는 거야?"


"...그런가 봐. 실은 나도 정말 영문을 모르겠어..."


"그, 그럼 팔 한번 걷어봐봐. 그리고 배도 한 번 걷어보고. 그럼 흉터가...!"


"어... 그럼 어디 한 번..."


아무래도 녀석은 감전으로 인한 화상자국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여자애 앞이라서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저 녀석은 별로 그런 기분이 들지 않기에 별로 개의치 않고 보여줄 수......어라? 이거 좀 위험하지 않아?


......뭐, 별 수 없나? 그럼 나도 확인하고 싶으니 어디 한 번...


"흉터가, 없어?"


"...나, 안 다친 거 아냐?"


감전으로 인해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런데, 지금 내 피부는 매우 깨끗했다. 마치 이전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게 말이 되나?


"그럴 리가 없는데? 나 며칠 전에도 확인했었단 말이야. 팔 다리와 배 주변도 온통 살갗이 벗겨져 물집 투성이였는걸."


"......정말?"


내 물음에 녀석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아무래도 진짜인가본데? 그럼 이 깨끗한 몸은 뭐지?


.

.

.


내 몸을 본 의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말했다. 분명 어젯밤까지도 흉터 투성이에 딱지가 덕지덕지 생긴 상태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상처도 거의 아문 상태이고 딱지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이 상태라면 곧바로 퇴원해도 문제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내 지인들에게 알려져 퇴원 준비단계에 들어갔다. 내가 다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그 녀석'도 내 완쾌를 기뻐했다. 대회까지 1주일밖에 안 남을 줄 알고 걱정했는데 이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나도 기쁘다.


기쁘긴 하지만, 뭔가, 위화감이 있다.


어떻게 내 몸은 하룻밤 사이에 나아버릴 수 있었던 거지?


이거 마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한 것처럼. 내가 마치 무언가가 돼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이 색다른 위화감, 이 느낌을 가지고 과연 나는 플라잉 서커스에 집중할 수 있을까?


나는 현재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난 내면에 무척이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그렇다. 승천에 대한 갈망과 로망을 상실해버렸다.


옛날엔 날개를 가짐으로써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고 굳게 맹신했다.


그게 원동력이 되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성장의 속도는 마치 폭주기관차가 된 것 같았다. 기분 최고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마음의 원동력이 없다. 그 일을 겪고서 아예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니, 그 일이 있기 전부터 서서히 닳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게 2주일 전의 자폭.


지금은 그저 의무감 하나만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힘들지도 모른다.


머리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낼 거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변한 게 있다.


"에헤헤, 마사야~"


"또 너냐, 토비사와..."


이 녀석이 옆에 붙어오게 되었다.


연습 때마다 찰썩같이 붙어서 방해를 해오지 않나. 솔직히 정신 사납다. 제발 나 혼자 연습할 수 있게 내버려됐으면 좋겠어.


하지만, 녀석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무조건 같이 하겠다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녀석을 가르치면서 훈련을 하게 되었다.


'......사실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어.'


왜냐면 나를 본보기로 저 녀석이 성장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FC에 조금만 재능이 있어도 이런 건 얼마든지 일어난다. 게다가 녀석은 현재 내가 잃어버린 꿈과 로망을 안고 있다. 성장하지 않을 수 없지.


그러나, 토비사와를 조금 단련시켜보니 견적이 나왔다.


녀석은 나보다 재능이 철저히 떨어진다.


그걸 본 아오 누나는 1~2년에 한 두번 나올 정도의 흔하디 흔한 재능이라고 평했다. 즉, 하는 만큼 늘긴 하지만 대성하긴 힘들다고.


'게다가 마사야, 토비사와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일단 움직이고 보는 스타일이라 세컨드가 고생할 수밖에 없는 타입이야. 그러니 FC에 대한 걸 철저히 머리에 때려박아야 할 거다.'


저 녀석은 즉, 저돌맹진으로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파이터형이다. 그러니 그에 맞는 맞춤형 훈련 시스템이 필요할 테지.


그나저나 나는 예전에 부숴먹은 그라슈인 비연 1호와 작별하고, 현재 하야토 형아가 준 최신 시리즈, 비연 2호에 몸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뭔가가... 익숙지 않은 느낌이다.


아니, 나는 평소에 어떤 그라슈를 신어도 금방 적응했다. 심지어 아직 내 발에 맞지도 않은 아오 누나의 경기용 그라슈를 신고서도 몇 분만에 적응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아예 그 상태에서 스피더 노릇을 하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라슈가... 낯설다.


안티 그래비티 슈즈가 내뿜는 멤브레인이, 날 거부하는 것 같다.


마치 멤브레인이 무언가에 부딛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


대체... 이 위화감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