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saya


내 몸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현상을 일으키는 중이다.


......어떻게, 사람이... 특정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은 채...


─하늘을 날 수 있냔 말이다.


생각해보자.


하늘을 나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은 옛부터 얼마 전까지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던 소망이었다.


그랬기에 인류는 열기구나, 비행기 등을 만들어 하늘을 정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여 지금의 음의 질량을 내포한 반중력자가 나오게 됐고, 결국엔 이카로스의 날개나 다름없는 안티 그래비티 슈즈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헌데, 여기서...


맨 몸으로 하늘을 나는 괴물이 튀어나온다고?


"...하, 하하......"


말이 안 됐다.


"어떻게... 내가...?"


나는 지금 느낄 수 있다. 내 몸의 내부와 외부에서 순환하는 영문모를 미지의 기운을.


그저 몸을 덮기만 하는 반중력장(멤브레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그저 인체를 장(場) 안에 태우는 것으로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밀어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것은 중력이라는 물리적인 굴레로부터 나 자신의 몸을 떼어낸 거나 다름이 없었다.


마치, 영혼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자유로운 부유감이 온 몸을 감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라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의 몸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내가 줄곧 꿈꾸어 왔던 해방감이란 말이야?'


이전에는 겨우 모조 날개(그라슈) 하나 달았다고 하늘을 정복한 것 마냥 기뻐했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세를 배워야 했고, 기술을 배워야 했고, 훈련을 해야 했다.


그렇게 숙달이 되어도 마냥 무한정 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도구의 패러미터에 구속되어, 한계의 울타리 안에서 놀아야 했다.


헌데... 그 울타리 안에서 자괴감에 빠진 한 어린 양은 그만 사고를 내고 만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이 달고 있던 모조 날개를 파괴한 것이다. 그 직후, 그는 곧바로 벌을 받았다.


'...아니, 그냥 벌이 아니지. 이건, 천벌이지.'


그는 하늘의 벼락을 맞았고, 결국 그 울타리에서 추방당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손에 넣었다.


'그저 한 소년의 로망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것이 나 자신의 원동력이 되는 걸로 족했는데...'


진짜로 손아귀에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하아...


마음이 복잡하다.


그저 판타지로만 마음 속에 그리고 있었던 게, 진짜로 가능하다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 사람이 맨 몸으로 하늘을 날 수가 있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 근데, 난 되네?


이런 연병할...!!


아이고, 내 머리야... 이렇게 돼버리면, 난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 거지?


.

.

.


내 두 손에는 각각 왼발과 오른발에 신었던 컨버전 그라슈가 잡혀 있다.


난 그 상태에서 내 안의 기운을 운용하여 폭발시켜 보았다.


그렇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내 기력이 바람이 되어 내 몸을 휘감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뚱이는 정면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하늘을 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이건 하늘을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났듯이, 전류가 구리를 타고 흐르듯이, 나는 내 몸에 걸맞는 매질(媒質)을 만난 것이다.


그 대상이 가장 적절한 매질을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한한 자유.


내 비행속도는 그라슈로 낼 수 있는 속도가 절대로 아니었다.


이건 군용 전투기가 낼 수 있는 속도였다.


마하2.


초속 680m.


시속 2448m.


나는 무려, 음속의 2배라는 상식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어마어마한 출력을 뽑아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내 몸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런 미친 속도를 내면 몸에 분명히 무리가 올 것인데 참으로 이상했다.


환상적인 속도로 하늘을 유영하면서, 하늘에 곡선도 그려보고, 급상승 및 급강하도 시험해보았다.


그 결과, 매우 매끄러운 곡선이 창공에 그려졌다. 아무런 저항력 없이 방향전환이 가능했다. 에어킥 턴 같은 번거로운 수단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멤브레인으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참신함이었다.


『힘』.


어느새 내 안에 자리잡은 영문 모를 미지의 기운.


난 이것을 나 스스로 『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엇차!'


나는 정신없이 하늘을 날다 무언가 깨닫고는 도중에 비행을 멈추고 공중에 섰다.


"...여기가, 어디지?"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다.


바다밖에 없었다...


주위는 온통 물 천지였다...


나는 달콤한 자유비행에 취해 어느새 시토의 영역을 벗어나버린 것이다.


단 1곳. 시야의 왼쪽에 커다란 섬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한 가운데에 활주로가 하나 보였다.


'설마 저곳... 비행장인가?'


시토는 일본 열도에서 한참이나 남쪽으로 내려와야 도달할 수 있는 섬이다. 하지만, 저런 커다란 비행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멀리 날아왔어도 이 위치가 일본 남단의 태평양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섬은...'


이오지마(硫黄島) 인가.


섬 중심에 낡은 활주로가 존재하는 특징적인 섬. 시토에서 남동쪽으로 한참 가야 나오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섬이다. 그것도 태평양 전쟁으로 아주 유명하다.


'그럼 여기서 방위를 확인한 뒤 북서쪽으로 날아가면 시토에 도착할 수 있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컨버전 그라슈를 다시 신었다.


밤이라서 어두컴컴하기에 사람들 눈에 안 띄어 다행일 망정이지, 만약 이런 비상식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모습이 타인에게 포착되었다면 엄청난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사람은 도구 없이는 절대로 하늘을 날 수 없다.


이 명제를 깨는 이레귤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 세상에 알려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나 자신이 대국의 과학자들에게 잡혀 몸은 실험대상으로 전락하고, 뇌는 포르말린에 절여질지도...


생각만해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여기선 [위장모드]를 써볼까."


위장모드.


내가 컨버전 그라슈에 추가한 새로운 기능이다.


파워모듈을 최소한으로만 돌려 그라슈 뒷편에 빛의 날개만 형상화시킬 뿐인 단순하면서도 별 거 없는 기능이다.


반중력자 모듈은 사용하지 않기에 멤브레인은 생성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날 수 없다.


타인에게는 하등 쓸모 없는 기능이지만 난 왠지 모르게 필요했다.


방금의 『힘』을 이용한 말도 안되는 비행능력도 평소에는 숨겨야겠지만, 여차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근데, 방금도 말했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현상은 절대로 타인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위장모드를 통해 내가 그라슈를 써서 날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뭐어, 민간용 그라슈로 전투기를 방불케 하는 속도를 내는 것만으로도 크게 어그로를 끌겠지만, 그 문제는 나중에 대책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난 그라슈의 전원버튼 바로 앞에 있는 버튼을 눌러 위장모드를 가동시켰고, 그 뒤 『힘』을 몸에 휘감아 음속을 방불케하는 속도를 내 시토로 날아갔다.


.

.

.


잠시간 날자, 30분도 안 되어 시토의 바닷가가 보였다.


이오지마와 시토 간의 거리가 상당할 텐데 단 반 시간만에 도착한 걸 보면 나 자신의 『힘』을 통한 비행은 상상을 초월하는 출력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주위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바닷가의 한쪽 가장자리에 얼른 착지하여 땅을 밟았다. 만일 마하2라는, 제비의 비행속도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는 게 누군가에게 포착된다면 일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후, 아무도 못 봤겠지? 그래, 난 잠시 마실을 나가고 싶어서 집을 나섰던 것뿐이야. 그 목적지가 그저 바다 저편의 유명한 남국 섬인 이오지마였을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이면서 그저 천천히,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외출한 시각이 거의 21시였으니까, 지금은 적어도 22시 30분은 넘겼을 거다. 수중에 시계가 없어서 잘 가늠이 안 되지만 귀가가 늦어지면 부모님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이다. 창문으로 몰래 나간 거지만 이미 지금쯤이면 엄마가 내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얼른 돌아가자, 후...'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바닷가 모래사장과 인접한 주거지역에 도달했을 즈음, 누군가의 인영이 저 멀리서 보였다.


보름달이 뜬 밤하늘 아래, 키가 큰 여성이 바다를 보면서 감상에 젖어 있었다.


보라색 해골 T셔츠와 검은색 스키니 진을 입고 있는 그 여성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여성이었다.


아니, 여성...이 아니라 여걸(女傑)이라 칭해야 하나?


나에게 상승으로의 로망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어준 존재. 그걸 위해 내 두 발에 날개를 달아준 은인이자 장본인.


내 플라잉 서커스 스승님인 카가미 아오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응? 거기, 혹시 마사야냐?"


그녀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목을 옆으로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의외인 것은, 그녀는 달밤에 하늘에서 체조라도 하고 싶은 듯 두 발에 경기용 그라슈를 신고 있었다.



▷ Aoi


얼마 전부터 마사야가 약간 이상해졌다.


3주일 전까지는 세계대회 출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아니면 주위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연습할 때마다 불안정한 기색을 많이 내비쳤었다.


그리고는 그 사고가 일어났다.


그는 우연히 만난 또래아이인 토비사와의 급속성장을 보고 순간적인 열등감을 느끼고는 내가 사준 경기용 그라슈인 비연 1호를 파괴했다. 아아, 그거 참 비싼 거였는데 말이지.


뭐, 그 뒤 이런저런 일이 있고 나서 녀석은 회복했고, 2주일이라는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연습을 위해 다시 그라슈를 신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놈의 실력이 비정상적으로 향상됐다.


비행자세, 속도, 민첩성, 지구력, 순발력, 상황 판단력 모두 상향됐다. 그것도 크나큰 연습 없이.


아니, 그는 일주일간 훈련도 없이 병상에 누워있었고, 정신적인 부담 때문에 본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하는 상태였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 애가 갑자기 돌변하듯 바뀌었다고?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또 이상한 건, 그 녀석이 회복해서 퇴원하기까지의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짧았다는 것이다. 분명 의사의 진단결과로는 전치 3주라고 나왔는데, 녀석은 단 1주일만에 병상에서 일어났다.


이게 가능키나 하는 일인가?


뭔가, 뭔가가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도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말이다.


과연 이게, 긍정적인 변화일까? 아니면 부정적인 것일까?


알 수 없다.


지금은 아직 아무런 정보도 없다. 녀석도 아직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가서 캐물을 수도 없고, 초초해지는군.


─사박!


"...응?"


그런데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가 모래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 혹시 마사야냐?"


"앗, 아오 누나..."


마사야다. 이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난 근심 걱정이 많았기에 속을 좀 풀려고 바람쐬러 이 시간에 밖에 나왔을 뿐인데, 혹시 얘도?


"여기는 대체 무슨 일이야? 혹시 너도 머리 좀 식히려고 밖에 나온 건가?"


"응, 생각할 것도 있고, 잠시 좀 날아보고 싶어서 그만 밖에 나와버렸어."


응? 날았다고? 그 그라슈로?


녀석이 지금 신고 있는 그라슈, 혹시 저거 요즘 연습할 때 늘 신고 다니던 개조형 그라슈라 하지 않았나?


하야토한테서 들었는데, 마사야는 새롭게 받은 비연 2호를 버리고 기존에 신고 있던 일상용 그라슈를 경기에 맞게 개조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니, 일상용으로 경기를 치르겠다니 대체 무슨 정신머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마사야 녀석, 사고로 다치고 나서 머리가 이상해진 건가? 혹시 전류가 뇌수까지 관통해서 이상이 생긴 거 아니야?


"마사야, 그 그라슈말인데, 정말로 그걸로 세계대회에 나갈 생각인 거야?"


"아아, 응. 며칠 전에도 말했지만 이미 결정했어."


"......의문이군. 아무리 개조했다고 해도 일상용보다는 '그나마 나은 정도'일 뿐인 출력일 텐데, 경기 진행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


"...전혀 걱정없어, 아오 누나. 오히려 지금의 내가 경기용 그라슈를 사용해버리면... 상대방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그게 걱정돼서..."


상대방이 걱정돼서? 대체 무슨 말이지?


"대체 그게 무슨 말이지? 상대방이 무슨 일을 당한다니?"


"아... 그게 말이..지?"


뭔가 위화감이 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녀석이 스스로 자처해서 일부러 '성능이 낮은' 그라슈를 신고 경기에 나가겠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 비정상적으로 향상된 녀석의 FC 실력.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그의 FC에 대한 태도의 변화.


...뭔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녀석이 이런 기행을 벌일 리 있겠는가.


"마사야, 나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거, 있지 않나?"


"......"


무언(無言)이었다.


이건 분명하다. 그의 입장에서 말하기가 꺼려지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


"왜 말이 없어? 말하기 곤란한 거라도 되는 거야?"


다시 물어봤다. 하지만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니, 뭔가 말하려 하고는 있지만 왠지 뜸을 들이고 있다.


하아, 곤란하네.


고민이 있다면 들어주고 싶고, 그 중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주고 싶다.


허나, 뭐가 문제인지 알지 못하면 그것조차도 할 수 없다.


"...저기, 누나는 자기 실력이 너무 강해서 곤란한 적은 있어 봤어?"


"갑자기 무슨..."


"자신이 너무 강해서, 그래서 상대를 '너무' 손쉽게 이겨버려서, 그래서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 그 탓에 경기가 김이 빠질 정도로 재미없어져서 관객들마저도 실망시켜버리는... 그런 불상사를... 누나는 혹시 겪어본 적 있어?"


"......네가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딱 한 번은 있다."


압도적인 실력차로 인한 불상사...인가.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긴 하지만...


"과거에 내가 한창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던 시절, 대회에 나갔을 때 준결승전에서 어느 한 선수를 상대하게 되었지. 난 그때 FC에 대한 즐거움을 막 깨달은 참이라 이기든 지든 마음의 상처를 입을 걱정이 없었지."


"...나는 초보자한테 한 번 패배한 걸로 그 사단을 일으켰는데... 그 정도로 열등감을 폭발시킬 정도로 마음이 약한데... 누나는..."


"그래, 나도 한때는 너와 같은 감정을 마구 품었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FC를 계속 하다보니 깨닫게 되더라. 중요한 건 누군가를 따라잡거나 따라잡히는 게 아니라고. FC를 좋아하고, FC를 사랑하고, FC를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이 FC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그럼, 그러한 마인드를 깨달으면 실력 부족으로 인한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거네?"


"아예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거다. 만약 자기 자신의 실력이 밑바닥 그 자체라고 할지라도 나를 능가하는 상대를 원망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욱 존중하게 되고, 이에 더욱 정진하여 실력을 높이게 되는 플러스 효과를 볼 수가 있지."


"...역시 누나는 대단해. 헌데 이야기가 도중에 옆으로 샜는데... 내가 물어본 것은 누나 자신이 열등감으로 상처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상대방과 관객들을 상처입힌 적이 없냐는 거야."


"그래 그래, 알고 있다. 그 준결승전 때, 나는 방금 말한 마인드를 가진 채 내 모든 것을 불태웠지. 상대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경기에 최선을 다했고. 결국 최고의 결과로 승리를 거뒀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객들은 내 시합을 호응해주지 않았다. 모두 얼빠져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 게다가 상대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통곡을 하고 있었어.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그래, 기억나는군......울고 있었다.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흘린 눈물이 방울방울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었지."


"그건 마치..."


"네가 토비사와와 함께 있었던 3주 전의 순간에 옆에 있지 않아서, 마사야 네가 어떻게 울었는지는 난 잘 모른다만... 아마 그 선수는 마사야 네 감정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차이점은, 그래... 마사야 너는 초보자에게 한 번 졌기 때문에 기분이 한층 더 비참했다는 거?"


"아오 누나, 혹시 그때 그 선수를 상처입힌 자기 자신을 아직도 원망하고 있어?"


"...딱히 원망하고 있지는 않는다만. 그래도 씁쓸한 기억인 건 변하지 않는구나. 허나, 나 자신을 미워할 순 없었어. 왜냐면 한 번 자신을 불신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거든. 그게 나중에는 자신감과 연결되기 때문에 FC의 성적과 능률에 크게 지장을 줄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난 나 자신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야."


"누나는 역시 대단해! 그런 마음가짐, 절대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니야!"


"하핫, 칭찬이 과한걸, 마사야?"


"하지만 말이야. 누나는 원했던 거지? 그 상처입은 상대 선수의 마음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다고. 내가 상처입혀 버렸으니까, 최소한 못해도 내가 치유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고."


아아, 마사야 너란 녀석은...


"네 말이 맞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최소한 기분 정도는 달래주고는 싶었어. 하지만, 난 그 사람이 아니니까 안되더군. 한계가 있었지. 어떤 말로 위로하려 들어도 실례인 데다가 오히려 그 시도가 상대의 상처를 더욱 후벼팔 수도 있었으니까. 또한, 그런 경우는 내 인생에서 처음이며 마지막이었다. 왜냐하면 각종 대회에서 나한테 져버린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 패배감을 다른 수단으로 삭히거나 오히려 그걸 역경 삼아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곤 했었으니까."


"그랬구나. 역시 나는 상대방이 아니니까 마음을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으니 누나도 손을 못 쓴 거구나. 그리고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고 말이야."


"...그때는 매우 허탈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나 자신이, 원인제공자이면서 보상은 못 해주는 무력함이 온 몸을 엄습했지. 지금 들리는 소식으로는 그 선수는 '나 때문에' 그 날로 FC를 접고 다른 길로 빠졌다고 하더군."


"그럴 수가... 그럼 누나가 한 사람의 꿈을 박살냈다는 거...!?"


"그렇게 됐다고 볼 수 있겠군.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까지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지. 나도 내 미래가 있었으니까. 내 코가 석자라서 거기에 너무 오랫동안 한눈을 팔 틈이 없었어."


"슬프네, 아오 누나. 의도치 않게 상대의 꿈을 박살낸 것도 모자라 보상조차 못 한다니 이런 불합리...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라도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지.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비참한 패배로 인해 나가떨어지는 선수나 예비선수가 발생하고 있을 거야. 그 선수들 중 거의 대부분은 늦든 빠르든 자기 나름대로 재기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결국... 리타이어하겠지."


"......"


내 말을 끝으로 대화는 일시중단됐다.


마사야는 너무 현실적인 내 말을 듣고 크게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아아, 아직 초등학교 졸업반에 지나지 않은 아이에 불과한데 벌써 이런 어른의 씁쓸한 감정뿐만 아니라 차가운 현실마저 알게 되다니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


나도 그랬지.


FC가 막 생기기 시작한 초장기, 정해진 룰이 별로 없어 이리저리 부정행위가 난립하던 카오스한 시기에 나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플라잉 서커스의 경쟁환경을 거의 재패했다.


카니바사미(カニバサミ)나 기타 더러운 수를 써서 별로 보기 좋지 않게 승리를 따내던 악한들을 '정직하고 성실한' 플레이로 엿먹여, 앞으로는 더는 그런 더티한 플레이가 행해지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했다. 덕분에 요즘 FC 경쟁환경은 매우 클린해졌다.


뭐, 그 시절에는 하도 불한당들이 설치고 다녔기에 이에 대항하기 위해 『엔젤릭 헤일로』라는 기술까지 개발해냈지. 지금은 필요가 없기에 봉인 중이지만.


아무튼 그러한 과도기 속에서, 나는 알고 싶지도 않은 FC의 현실을 뼈져리게 직시했다. 그 당시가 내 나이 11세,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나는 정말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상대를 이겼기에, 아니, 이겼다고 생각했기에 나 자신 스스로 자긍심이 대단했다. 심지어 『FC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깨달은 뒤부터는 비록 상대가 더러운 수로 날 이겨도 전혀 상처받지 않게 됐다.


...그러나, 나 자신의 플레이로도 상대방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환경 속에서 더러운 수를 밥 먹듯이 쓰는 악성 선수들도 많은데, 만약 좌절한 그가 그런 악한들에게 걸렸다면 더욱 비참하게 리타이어했을 텐데. 그것에 비하면 나는 정당한 방식으로 이겼으니 약과였을 것인데, 왜... 왜 내가 죄인이 된 것처럼 느껴졌던 걸까?


뭐어, 보상해주곤 싶었다. 하지만, 마사야에게 말했던 것처럼 결국 아무 것도 못 해줬다.


그 뒤 나는 더더욱 노력하여 지금처럼 깨끗한 경쟁환경까지 끌어올렸다.


내가 더욱 높이 올라가서, 전국대회뿐만 아니라 세계대회까지 몇 번이나 재패해서, 유명해져서 모두의 모범이 되는 걸로 'FC는 이렇게 정당하게 해야 한다'고 전세계의 선수들에게 크게 강조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한 선수를 좌절시켜 인생을 말아먹은 죄책감 탓에, 그 속죄를 하기 위해 나는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아오 누나, 만약 '지금의' 내가 FC를 계속한다면, 그런 피해자가 속출할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지? 혹시 마사야, 네 실력이 너무 뛰어나 상대를 상처입힐까봐 걱정하는 거야? 그런 걱정이라면 할 필요없어. 왜냐면 그런 일은 드물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대부분의 선수는 스스로 그걸 딛고 앞으로 나간다고 했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건 실력차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지만 성립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말..."


"아오 누나."


"으, 응."


마사야는 작은 키로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하고 시합하자. 그러면 알 수 있을 거야."


"대체 무엇을 알 수 있다는 거지? 게다가 이렇게 늦은 밤에 FC를 하겠다고? 곧 자야할 시간인데, 네 부모님도 걱정하시는 거 아닐까?"


"나라면 상관없어. 나중에 잘 둘러대기만 하면 아마 봐줄 테니까. 그것보다 누나, 나와 시합하면 제대로 알게 될 거야."


그러면서 그는 양 발의 그라슈의 버튼을 누르면서 작은 목소리로 '전원 On'이라고 외쳤다.


"─내가 이대로 진지하게 플라잉 서커스를 계속할 경우, 난 머지않아 『플레이어 킬러(Player Killer)』라고 불릴 거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