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oi


이전까지의 마사야와는 전혀 다르다.


이 느낌, 이 기백, 이 배짱.


과연 이전의 그는 이런 패기를 내뿜을 수나 있었을까?


그것도 세계최강의 선수를 상대로 진심을 건 플라잉 서커스 시합을 하는 데도 말이다.


"나는 준비됐어, 누나."


녀석은 내가 감상에 젖어있는 사이에 벌써 4개의 부이를 공중에 셋트했다. 각각 퍼스트, 세컨드, 서드, 포스 라인이 밤하늘 중에 환히 빛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놈은 지금 공중에 있는 퍼스트 라인에 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좋다.


놈은 지금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놨고, 이 자리에서 그 '증명'을 하려 하고 있다.


녀석은 제발 너더러 무언가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거다.


여기서 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녀석도, 나도.


스승인 내가 녀석을 알아주지 않으면, 앞으로의 녀석은 성장이 제한될 거다.


게다가 녀석의 스승인 나도 저 녀석을 발판삼아 또다른 성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근데, 여기서 소통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불화의 씨앗이 될 거다.


그 씨앗은 당장은 표가 안 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크나큰 균열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면 우리 둘 다 겉잡을 수 없는 골이 생기게 되어 영영 단절되는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건 싫다.


나는 녀석에게 FC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 저 녀석을 제자로 키운 것이다.


근데, 여기서 단절이 된다고? 그럴 수는 없다. 그건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결말이다.


...그래, 그렇기에 난 여기서 그의 결투를 받아들인다!


"오래 기다렸지? 그럼 얼른 시작하자."


난 붉은 콘트레일을 그리며 재빨리 공중으로 날아올라 퍼스트 부이에 섰다. 이미 녀석은 시작점에서 시합할 준비를 마친 상태.


곧이어...


4줄기의 콘트레일이 밤하늘을 그리며 질주를 시작했다.


▷ Masaya


처음 퍼스트 라인에서의 질주는 늘 그랬듯이 직선 질주다.


다만, 거기서 누나는 소닉 부스트를 통해서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간다. 이 기술은 예전의 나도 애용하고 있던 것으로, 기선제압으로 빠른 속도로 앞서나가 상대의 초반 기세 및 의욕을 꺾음으로서 시합에서의 우위를 가져간다.


이거야 말로 누나의 간판 주력기술. 숙련도는 아오 누나를 따라올 자가 없다.


만약 예전의 내가 이 시점에서 같은 기술로 맞붙었어도 절대로 그녀를 따라잡을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난 이런 기술은 전혀 필요치 않다.



"...! 거의 따라잡았다고?"


그렇다. 나는 통상적인 비행만으로 누나를 티끌밖에 안 되는 간격을 두고 추월하고 있는 중이다.


시합을 위해 힘을 하나도 안 준 상태에서 나늘이 온 기분으로,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 느낌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이런 결과가 나온다.


어떻게 날지 상상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세계 신기록의 질주 속도를 낼 수 있다. 심사위원 전원이 10점 만점을 줄 정도의 화려함도 내뿜을 수 있다.


하지만, 퍼스트 부이는 누나의 손에 터치가 되어 득점을 가져갔다. 난 곧이어 쇼트컷트로 세컨드 라인으로 진출했다.


딱 3점, 그 정도만 누나에게 내준다.


그녀의 체면도 배려를 해야 하고, 심지어 나 자신도 이 『힘』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시운전을 제대로 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무슨 일이 닥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래, 한 번 해보자.


▷ Aoi


벌써 서드 부이의 득점도 내가 가져가 2대 0인 상태.


이 상태에서 녀석은 계속 나를 바짝 따라오고 있다. 그 간격은 팔 하나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난 얼른 로우 요요를 통해 급강하한 뒤 오른쪽으로 소닉 부스트, 그 직후 에어킥 턴을 사용해, 그 추진력으로 포스 부이를 향해 날아갔다.


좋아, 이러면 녀석도 쉽사리 따라잡지 못하겠지.


...아니, 생각이 짧았다.


비록 내가 포스 부이의 득점을 취하긴 했지만, 마사야는 바로 내 등 뒤에 있었다. 다만, 그가 포스 부이에 도달한 경로는 그저 평범하게 레일을 따라 직선으로 주행한 것이다.


내가 각종 기술을 연동시켜 만든 곡선의 경로는 비록 주행거리는 직선보다 멀지라도, 소닉 부스트와 에어킥 턴으로 인한 추친력 속도는 직선 주행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르다. 근데, 그 속도를 그냥 따라잡았다고?


'...게다가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내 등을 노릴 수 있었을 텐데...!'


이건 마치, 내가 녀석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 같잖아. 그래, 그렇다면 또다른 시도를 해보자.


일단 하이요요로 급상승, 이에 녀석도 내 뒤를 따라 고도를 높였다. 그 뒤 마치 내가 백 텀블링을 하듯 공중에서 공중제비를 하여 녀석의 등 뒤를 점했다. 그 직후 바로 오른손바닥을 뻗어 터치하려고 했...


어, 어라? 대체 녀석이 어디 갔지?


그의 등이 있어야 할 곳에는 그저 허공만 있었다.


뭐, 여기서 만약 터치를 성공시켰어도 득점은 안 됐겠지만 터치 직후에 경직 상태가 되어 2~3초간 별다른 행동을 못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뒤를 잡히고 말았다는 부정적인 정서를 순간적으로 가진 탓에 패닉에 시달리게 된다. 뭐어, 물론 강철멘탈일 경우에는 좀 더 빨리 회복되긴 하지만 말이다.


"으헉!"


그 순간, 나는 등에 커다란 충격을 먹었고, 뒤이어 수면에 닿을락 말락하는 곳까지 낙하해버렸다.


이걸로 3대 1이 되었고, 부이 터치권은 마사야가 가지게 되었다.


"이런...!"


정신차린 직후 위를 올려다보니 아주 천천히 퍼스트 부이로 날아가는 녀석이 보였다.


근데, 저런 굼벵이 같은 속도로 FC를 한다고? 웃기지 마!


난 녀석한테 저런 태도를 가르친 적이 없다. FC를 즐기라는 소리는 했어도 그 시합 자체를 대충 임하라고는 절대로 가르치지 않았단 말이다.


아무리 상대가 한참 격하라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실력으로 임하고, 비록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를 철저히 격파했다 하더라도 정정당당한 시합을 펼쳤더라면 하등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가 자신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이 여유를 부리거나 방심한 듯한 행동을 보이면 나한테도 결코 좋지 않고 상대한테도 실례란 말이다! 그걸 잘 알면서 왜 그러는 것이냐, 이 녀석아!


나는 수면 부근에서 멤브레인을 조작하여 허공에 발판을 만든 뒤 제자리 에어킥 턴을 이용해 대각선 위를 향해 추친했다. 이후 소닉 부스트로 더욱 가속하여 녀석을 따라잡았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저 녀석은 언제든지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일명 쇼트-코브라.


코브라는 속도를 줄여 수면까지 하강했다가 급상승하여 상대를 노리는 기술이지만, 이 순간의 나는 하강하는 단계를 행할 필요가 없으니 이 기술엔 이런 명명을 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나는 이 기술로 마사야의 등을 터치하지 않으면 다음 부이를 노릴 수 없다.


그렇게 내가 그 녀석의 등을 잡으려는 순간, 그는 단번에 몸을 뒤돌려서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왼편으로 쳐냈다. 근데, 그 손날치기의 파워가 워낙 세서 멤브레인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 결과 나는 마치 토네이도처럼 반시계 방향으로 몸이 회전하면서 왼쪽으로 밀려났다.


내가 잠깐 패닉 상태가 된 사이에 퍼스트 부이에서 터치음이 들렸다. 그가 부이를 터치하여 득점한 것이다. 이걸로 3대 2.


나는 이대로는 포기할 수 없어서 곧바로 쇼트 커트하여 녀석을 따라잡으려 했다. 근데, 이젠 속도를 좀 냈는지 도무지 잡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로우 요요를 해서 급하강한 뒤, 밑에서 에어킥 턴과 동시에 소닉 부스트를 하는 것으로 급상승하여 녀석을 잡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아까와 같은 패턴이라 먹혀들지 않았다. 마사야는 이를 알고 공중으로 높이 상승했다.


나도 그의 회피를 눈치채고 곧바로 고도를 높여 그를 따라잡으려 했다.


아주 얇은 녹색의 콘트레일이 삼각형을 그렸다. 나는 이에 다른 궤도로 그를 잡으려고 역삼각형을 그렸다.


이후 그는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며 내 접촉을 회피하려 했다. 이에 나도 바짝 붙어 같은 모양의 콘트레일을 그렸다.


그런가. 카운터 공격인가.


내가 터치를 하려 하면 그걸 되받아쳐서 나를 혼란시킨 뒤 그 틈을 타 득점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손대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런 전법을 취하는 상대는 얼마든지 경험이 있으니 대처법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대처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오히려 내가 상대를 도발하여 실책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틈을 만들지 않으면 난 부이 터치권을 되찾아올 수 없는 것이다.


마사야 녀석. 실력이 이렇게나 좋아지다니.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속도에 대한 성장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고, 심지어 도그 파이트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가 순간 무지막지한 속력으로 급강하하여 세컨드 부이를 터치하려 했다. 나는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부이 터치를 막기 위해 뒤쫓았다.


하지만,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녀석은 부이를 건드린 후 서드 부이로 질주했다. 난 이를 계속 추격했다.


참고로 점수는 3대 3.


너무 빨랐다.


어떻게 이런 스피드가 놈에게서 나올 수 있지?


대체 저게 시속 몇 킬로지? 그리고 이를 초속으로 환산하면?


...순간, 속력이 몇 십 배로 증가한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는 녀석은 이런 속도로 플레이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진심으로 변한 건가? 그럼 이 말도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출력과 피지컬이 진짜 그의 실력이라는 건가?


이런 건, 감히 대적할 수 없다.


이건...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섰다.


.....


...


.


이후에는 일방적인 플레이였다.


나는 단 한번도 놈의 등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는 압도적인 스피드로 부이를 연속 터치하여 득점을 올렸으며, 내가 다양한 방법으로 도발하여도 절대로 도그 파이트를 걸어오지 않았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내가 공격을 걸어 부이 터치권을 탈환해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냥 공격하면 또다시 카운터를 쎄하게 맞을 게 분명하니까, 부이 터치를 억지로라도 못 하도록 보다 먼저 부이로 달려가 거기서 그를 요격하는 방향으로 전법을 바꿨다.


에어킥 턴, 소닉 부스트, 로우/하이 요요, 코브라 등 순간적인 속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온갖 기술들을 조합/변형하여 조금이라도 먼저 녀석보다 부이에 다다를 수 있도록 노력했다. 허나,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그가 너무나도 빨라서 거의 나보다 먼저 부이에 다다라 터치하고 다음 부이로 내빼버렸다.


먼저 따라잡는 데 실패했다, 터치해서 득점을 뺏겨버렸다.


또 못 따라잡았다. 1점 실점을 해버렸다.


또 반복됐다...


또...


또 한 번...


이제 이런 패턴, 무지 괴롭군. 이거 과연 극복하는 게 가능할까?


.

.

.


점수는 27대 3.


25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마사야의 멤브레인에 닿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회심의 기술인 엔젤릭 헤일로를 사용하여 녀석의 비행경로를 도중에 차단하는 것으로 겨우겨우 녀석의 반중력장에 손가락이 닿아 미약한 멤브레인 충돌 현상을 일으켰다.


엔젤릭 헤일로.


상대를 중심으로 한 채 에어킥 턴을 수평으로 연속적으로 시전하여 시계방향이든 반 시계방향이든 원하는 방향으로 회전하는 기술이다. 이로써 상대를 공중의 한 지점으로 고립시켜 가둘 수 있다.


만약 상대가 이 회전의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수직으로 상승하거나 하강하면 그에 맞춰 포위망을 올리거나 내리면 된다.


게다가 만약 머리를 굴려 빠져나가려 하면, 그 빈틈을 노려 찔러들어가 터치를 해주면 오케이다.


하지만 단점이 있는데, 이 감옥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에어킥 턴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건 기껏해야 2분 남짓이다. 그 이상은 체력적으로 무리다.


아마 이것도 상당히 뼈를 깎는 단련으로 이룩한 것인데, 이 이상은 아무리 단련해도 지속시간을 늘릴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인간의 한계를 느꼈다고나 할까?


뭐, 무리를 하면 2분 30초까지는 가능은 하겠는데, 만약 진짜로 그랬다간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암튼 녀석은 헤일로의 감옥에 갇힌 채로 가만히 있다가, 이윽고 행동을 옮겼다.


그는 수직상승 및 하강으로 탈출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머리를 좀 써서, 마치 줄넘기의 줄을 넘어가듯 비행경로에 포물선을 그려 빠져나가려 했다.


그 탈출속도는 정말 대단했지만, 나도 인간의 한계를 이를 악물고 견디면서 에어킥 턴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 원심력을 이용하여 가장자리에 도달한 놈을 살짝 건드리는 게 가능했다.


"헉... 헉... 허억..."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성과를 해낸 나는, 공중에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 1분 동안 엔젤릭 헤일로를 유지한 것도 모자라 그 기술의 회전력까지 몸에 수용해버렸으니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기술만 썼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이 원심력으로 인한 몸의 부담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심지어 나는 마사야를 추월하는 데 체력을 거의 다 소진한 상태였으니 이렇게 뻗어버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결국 나는 공중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자세를 잡아 반중력장의 중심을 유지해야 공중에서 호버링이 가능한데, 나는 탈진으로 인해 몸의 중심축이 무너졌으니 멤브레인 채로 비행경로가 아래로 솟구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뭐, 헬기나 드론 같은 원리다.


나는 추락하면서, 의식을 점점 잃어갔다.


체력이 극도로 소진되면서 정신을 유지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녀석이 내 몸을 받아냈다.


...정말, 그 작은 몸으로 큰 여고생의 몸을 받아주다니... 정말 어떻게 되먹은 건지...


왜 이렇게 이 녀석은 듬직해졌을까. 완력은 또 어떻게 이렇게 세진 걸까.


마사야, 네가 내 유일한... 자랑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