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지방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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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갈 데 없는 피난민들 데려다 둔전 일구게 해서 인력으로 활용하고, 그렇게 해서 밭일을 하지 않게 된 군인들에게 더 많은 훈련을 시킴. 게다가 군영 내에서, 지방 관아에서 보는 취재처럼 예비 시험을 치게 해서 합격한 공노비들을 대상으로 일부 면천시켜 줌. 그렇게 군영 내 사기를 돋움. 또 조정에서의 지원이 끊기니, 수영 내에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해다가 전라도 장시에 내다팔았는데 군량미를 그렇게 확보함. 이순신도 미쳤음. 행정력이 후덜덜하다. 그런데 그런 이순신을 귀양보내서 고문한 게 당시 서인들이었지. 함부로 둔전 일궈서 세금 걷고, 멋대로 면천시켜서 반상의 법도를 어겼다는 이유에서. 이 새끼들이 거기다가 원균을 이순신을 대신해서 내보냈는데, 칠천량에서 우리 수군을 거의 궤멸시키고, 원균 본인도 전사했다. 그래서 고문으로 절뚝거리는 이순신을 급히 불러다가 꼴랑 전선 12척만 쥐어주면서 일본군 본대를 막아내라고 내몰았지. 근데 그걸 또 싸워서 이김. 그게 명량대첩이다. 서인들이 이순신을 견제했던 건, 이순신을 천거하고 후원한 류성룡이 다름 아닌 남인이라서 그런 거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임. 거기다 일부 북인들도 찬동했고. 광해군이 집권했을 때 북인들은 류성룡, 정탁 등의 남인들을 몰아내고 집권하는 데 성공하지만, 서인들한테서 인조반정으로 통수 존나 쎄게 얻어맞고 대표적으로 이이첨이 능지처참 당했지ㅋㅋㅋ
오 너말대로, "구심점이 사라지자 그 잔력들은 표류하다가 사라지거나, 오히려 일본에 흡수되거나, 북방으로 도망쳐 독립군이 되었다. 라고봄." 맞다맞다. 그래서 일제강제병합 후, 우당 이회영, 보재 이상설 등의 애국지사들이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기지를 세운 거지. 이 배경은 너가 말한 것에서 비롯됐다. 한흥동이나 신흥무관학교 등등 이어서 일본에 흡수됐다는 건, 당시 조선에서 대토지를 가진 자들이나, 경성 시내에서 일본놈들과 전당포 차렸던 등의 사람들이 돈 좀 벌어보겠다고 재팬 드림을 꿈꾸며 일본에 건너간 자들일 테고, 또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일본놈들에게 붙은 민족반역자들일 테지. 조선이 일본에 먹혀가는 과정들을 보면 진짜 정교한 테크닉을 동원했다는 걸 알 수 있음. 굉장히 치밀하며, 장기적이고, 전략적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으며, 무슨 일 하나 터질 때마다 제대로 이익을 얻어낸다.(텐진 조약, 제물포 조약, 한성 조약, 정미7조 등) 이어서 세련된 외교력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국력, 또 그걸 떠받치는 나가사키와 하코다테의 중소기업들. 우리가 일본놈들처럼 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가 내 주된 관심임. 대체 우리는 무엇이 문제여서 저런 치밀하고 정교하고 세련되고 용의주도한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