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의 죽림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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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망했다. 아니, 어쩌면 전부 망하진 않고 반쯤 망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삶이 망해버렸단 것만은 확실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좀비 아포칼립스' 로 쫄딱 망해버린 세계에서 일반인이 정상적인 삶을 구가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


하긴, 어디 지옥에서나 들려올법한 소음 -성대를 불에 지진 것 같은 망자들의 괴성-이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울려퍼지고 살이 썩는 악취가 풍기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의 정신이 멀쩡하길 기대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이중창을 닫고, 청테이프로 창문 틈새까지 덕지덕지 막아도 그때뿐. 이 사태가 있기 얼마 전 문구점에서 구매했던 3M 사의 일회용 귀마개조차 없었더라면 지금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테이프를 두르는 미친 짓을 해야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지.


[ 필터 교체가 필요합니다. ]


벌써 사흘 동안이나 저 악취들로부터 이쪽의 후각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탓일까. 3LDK 를 넉넉히 케어할 수 있을만큼의 성능을 자랑한다고 영업사원이 떠들었던 공기 청정기는 오늘 새벽부터 계속해서 필터 교체를 요구해오고 있었다.


...뭐,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필터를 교체해줄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쿠X 기사가 찾아와주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냥 '나도 힘들어. 그러니까 너도 참고 견뎌봐.'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지만 말이다.


[ 필터 교체가 필요합니다. ]


물론 AI 따위는 달려있지 않은 구형 모델이라선지 이쪽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연신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집요하게 필터 교체를 요구해올 뿐이지만 말이다. 사실 전력 공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니 이게 그리운 날이 올지도 모르지.


[ 4259526 ]


이변을 깨달은 순간부터 켜둔, 해외에 서버가 소재하고 있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몇 번이고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봐도 늘어나는 게시글의 숫자는 없다. 동시 접속자의 숫자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증가' 의 형태가 아닌 '감소' 일변도뿐.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것도 없이 목적을 잃은 망자들이 돌아다니던 중에 인터넷 선이 끊겼다거나 하는 일인 것이겠지.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이런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를 대비해서 위성 인터넷이라도 미리 설치를 해뒀으면 좋았을텐데.


...뭐,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결국 현실도피에 불과하다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이쪽이 뭔 헛소리를 해도 손가락질을 해줄만한 이들은 이 세계에 아무도 남지 않은 상황이니까.


!@#$!#@$!!!!!


현관문을 열자마자 복도 전체를 울리게 하는 괴성. 어젯밤 내내 건물 내를 돌아다니며 외부에서 침입을 해올 수 있을만한 구석 전부를 확인하고, 내부에서 숨어 지내는 노숙자 등도 없는건 확인했지만...뭐랄까.


맹수들이 자신을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시피 한 사파리 버스 안에서도 괜히 섬짓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데 수 천, 어쩌면 수 만마리에 다다를지도 모르는 좀비들 사이에 고립된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언제까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아닌만큼 천천히 말라 죽어가거나. 불안과 위험성을 이겨내고 나가서 생존을 위한 물자를 획득하거나 중의 하나를 선택하길 강요받고 있는 입장에선 머잖아 이 감정도 사치가 되는 순간이 올테지만 말이다.


그나마 아포칼립스의 단골 소재인 생존자 간 물자다툼 같은 것이 없는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정말로 나 혼자만이 살아남은 걸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괴로워해야 할지 모를 노릇이니까 일단 뭐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보류하도록 하자.


적어도 혼자만의 자문자답을 쉴 새 없이 이어가는 동안에는 이 세계가 완전히 망해버렸고, 내 목숨줄도 머잖아 끊어지고서 저것들의 똥으로 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니까.


아아, 정말 억까가 심하지 않은가. 하다못해 '나는 전설이다.' 의 주인공마저도 개를 자신의 의지할 대상으로 삼곤 했는데 이쪽이 의지할 수 있는 생물체라곤 작은 선인장 화분 하나뿐이라니.


좀비를 썰어댈 강력한 동료를 바라는 것도,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가진 이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쪽이 혼자만 살아남은게 아니란 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그런 상대면 충분할텐데.


...하긴, 신적인 존재가 있다 하더라도 하루 아침에 주변의 모든 것들을 좀비로 바꿔버린 행동을 보건데 제대로 되먹지 못한 인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어렵잖게 추론할 수 있지만 말이다.


신을 원망할 시간이 있다면 본래 계획대로 여름의 장마가 찾아들기 전. 근처의 창고형 대형 마트를 찾아가 필요한 물자들을 한번에 대량으로 이송할 루트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맞겠지.


아직 표본이 이틀밖에 모이지 않은 탓에 안전성을 담보하기는 어렵지만, 어차피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이니만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확인을 하고 곧바로 출발을 해야만-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옥상에 올라 좀비들의 배회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의 일이었다. 공포에 질린 여성의 비명 소리가 머리 '위' 에서부터 이쪽과 좀비 양쪽 모두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할 정도의 데시벨로 울려퍼진 것은 말이다.


"ㅌ, 테위. 장난이 너무 심ㅎ-ㅅ. 스승님이 알면 테위라고 해도 그리 쉽게 넘어가진...히익, 살려주세요...!"


고개를 들어올려 바라본 곳에 있는 것은 '하늘' 에서부터 떨어져내리고 있는 한 소녀의 실루엣.


상세한 이목구비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는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그 높이는 그녀가 '건물' 에서 몸을 던졌다거나의 자살을 택한게 아닌. 어떤 이유에서인가 맨몸으로 추락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떨어지는 속도와 균형을 잃고 허우적대기 바쁜 몸의 방향으로 보건데 잘못하면 좀비들 한 가운데에 으깨진 함바그를 서빙하는 꼴이 될 것도 같지만...어떻게던 구해내봐야겠지. 어쩌면 저 상대는 나를 제외한 유일한 생존자일지도 모르니까.


"...?!"


혹시나 좀비가 건물 안에 침입할 경우를 대비해 옥상에 준비해둔 탈출 키트들. -침대 매트릭스와 겨울철의 두터운 옷들을 잔뜩 뭉개둔 에어 쿠션에 불과하지만- 위에 올라서 붉은 옷을 펄럭이던 것을 본 것일까.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옥상을 향해 날아오는 이에게 목청이 터져라 기도를 한 보람이 있었던 것인지, 매트릭스의 장절한 희생을 대가로 '토끼 머리띠' 를 하고 있는 블레이저 교복 차림의 소녀는 옥상 위에 안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차에 깔려 죽은 개구리마냥 발라당 배를 까고 뒤집어누운 자세를 보건데 살아있긴 한 것인지가 조금 의심스럽지만 숨은 쉬고 있는 것 같고,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는 지식 따위도 없으니 깨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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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하. 후. 하..."


옥상에서 울린 굉음 때문인지 계속해서 이쪽을 향해 몰려오는 좀비 떼들. 사흘 동안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숫자의 웨이브에 혹시나 샷시가 버텨주지 못할까 싶은 불안감에 확인을 하고 돌아왔을 때, 소녀는 주저앉은 채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국어책 읽기 수준으로 또박또박한 발음이지만, 중간중간 잇새로 거친 숨소리가 쏟아지는걸 볼 때 저게 효과가 있긴 할련지. 아니, 뭐.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시간이 꽤 있었을텐데 저렇게 덜덜 떨면서만 보내는건 낭비에 가까우니까 말이다.


"...그, 구해줘서 고마워. 분명 테위가 죽림에 파둔 함정에 빠졌을 뿐인데 왜 갑자기 '바깥' 세계로 나오게 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저 괴물들은...? 아니, 그보다 여긴 환상향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이야?"


일단은 옥상에서 시간을 낭비하며 체력을 소진하는 대신, 비교적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를 권유하고자 다가간 순간이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할 언어 -아마 일본어일 것 같긴 하지만 확실하진 않은- 로 소녀가 이쪽에게 뭔가를 물어온 것은 말이다.


"...어, 저기. 혹시 말을 하지 못해? 아니, 언어를 몰라?"


유감스럽게도 일본어는 하지 못해. 미리 다운로드 받아둔 데이터 전자사전이 있다면 대강의 뜻은 이해할 수도 있을테지만 언제 전기가 끊길지 모르니까 말이야. 배터리를 소모하는건 최대한 피해두고 싶다는게 본심이고.


"...그, 그럼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에 대해서 아는 부분이라던지는-"


그러니까 일본어로 말해도 모른다고. 아이 캔트 스피크 재패니즈. 언더스탠?


"..."


대화가 통하지 않는단 것에 낙담한 탓일까. 저 드높은 상공에서부터 프리 다이빙을 해버린 후유증이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찾아든 것인지 바닥에 다시 한번 고꾸라져서 기절해버린 토끼귀 소녀를 바라보던 당시의 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겐소쿄' 란 것이 학창 시절 줄기차게 읽어댔던 동방 프로젝트 소설의 배경 '환상향' 을 일본어로 읽은 것임을. 그리고 '레이센 우동게 이나바' 란 소녀와 쫄딱 망해버린 지금 이 세상을 꽤 오랜 시간 살아가게 될 것이란 미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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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레이센 물을 대상으로 '리빙 데드가 부르는 소리' 를 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