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법에 대해서는 아미야가 잘 알려준 덕에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실제로 사용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아미야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간단한 마법이라고 해도 마력에 대한 적성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니까."


"그, 렇습니까."


비늘을 쥔 손에 핏줄이 설 정도로 꽉 쥐고, 다른 손을 천장을 향해 쫙 펼치고 그 위로 불꽃이 나타나는 모습을 떠올린다.


차가운 느낌이 내 손을 벗어나서 손바닥 위로 향하는 게 느껴졌지만, 불꽃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빠진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마력을 움직이려고 하면 될 것도 안 돼. 좀 더 천천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움직여."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부터 시작해야 됐나…. 그래도, 청하 녀석의 마력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부탁하듯이 움직여보는 건 어때?"


"부탁하듯이, 말입니까?"


"나는 모르겠는데 다른 마녀들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게 꽤 괜찮은 방식이라고 하더라고."


부탁하듯이, 부탁하듯이 움직이는 느낌이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하에게, 그것도 비늘에게 부탁하듯이 움직여달라는 말이 참으로 불편했지만, 그래도 시도해보는 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는 법이니까.


…정말로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청하의 비늘에 담긴 마력에 부탁을 해본다.


내 손바닥위로 불꽃을 만들어내고 싶으니 움직여달라고.


생각을 읽는 것도 아닐 텐데,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딱딱하게 움직이던 마력이 물이 흐르듯이 손바닥 위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방금까지는 하수구가 막혀서 제대로 흘러가지 못하던 물이었다면, 지금은 시원하게 뚫린 것처럼 움직였다.


정말로 부탁하듯이 말하는 게 효과가 있었다는 점에서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쉽게 움직였다면, 그렇게 손에 힘을 꽉 쥐고 움직여보려고 끙끙 거리지 않았을 텐데.


손바닥 위로 모이기 시작한 마력은 파란빛의 불꽃의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네."


"…저는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나라도 그럴 걸. 다른 녀석도 아니고 청하 녀석에게 부탁한다니, 으. 생각도 하기 싫어."


생각하는 것도 싫다는 듯이 진저리치는 아미야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되도록이면 청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뒤에 어떤 부탁을 해 올지 전혀, 감이 안 잡혔기에.


아무튼, 생각했던 대로 손바닥 위로 나타난 파란색의 불꽃을 살펴본다.


거기서 느껴지는 청하의 기운은 따뜻하다는 느낌보다는 차가운, 시원한 느낌이었다.


손을 갖다대 볼까 싶었지만, 그래도 불꽃이니까 닿으면 아프지 않을까. 실험 정신이 돋아났지만, 그만두었다.


"그걸 만져도 딱히 화상을 입거나 하지는 않을거야. 남의 마력을 빌려서 마법을 사용했어도,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 없어."


"그렇습니까?"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게 마법이니까, 당연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아."


아미야의 말에 손바닥 위에 나타난 불꽃으로 손을 갖다대본다.


손이 불꽃을 관통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시원하게 만들고 있었다.


"거기서 끄고 싶다면 꺼지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아니면 방금처럼 부탁하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이제 충분히 보았으니 불꽃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청하의 마력에게 부탁하듯이 생각을 전하니 불꽃을 유지하던 파란색 기운이 비늘로 되돌아가는 게 보였다.


빠르게 움직이던 아까와는 다르게 천천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느릿하게 되돌아가는 기운은 비늘을 쥔 손 주위를 시원하게 만들었다.


나 처럼 파란색 기운을 살펴보던 아미야는, 비늘로 전부 되돌아갈 때까지 그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흠. 생각보다 꽤 마력이 많이 담겨있네."


"그렇…군요."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닙니다. 금향도 그렇고, 청하도 제가 조금 더 편하게 말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고, 아미야도 그렇게 말했으니 제가 노력해보겠습니다."


이 말투를 바꾸고 싶은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바꿀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데다가 내 말투를 불편해하는 금향과 청하, 그리고 눈 앞의 아미야도 있었다.


아미야는 그런 내 말에 머쓱하다는 듯이 모자를 쓴 채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괜히 말했나, 미안해지네."


"아닙니다."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아미야에게 그렇게 말하며, 비늘을 한번 쳐다보다가 도로 복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마법에 대해 재능이 없었다. 어떻게 움직이는 지에 대해서는 느낌이 오기는 했지만, 그걸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어떤 식으로 마법을 써야하는 건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배울 생각은 없니?"


"없습니다. 방금 걸로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아미야에게서 마법을 배워 필리아, 그러니까. 흡혈귀씨에게 알려준다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기분이 조금, 이상해지네."


"아미야. 저는 마법에 대한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니야. 딱 잘라서 말해줄게. 네게는 재능이 있어. 다만, 어떻게 써야하는 건지를 모르는거야."


재능이 없다 말하는 내 손을 잡으며, 아미야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이, 내게 전해오는 목소리에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아미야의 기분이 느껴졌다.


"마법이란 게 그런 거란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해. 내겐 재능이 없구나. 나도 그랬는 걸."


"…그렇습니까? 하지만, 쓰시는 것을 보면…."


"누구든간에 처음은 어려운 법이야. 나도 처음에는 안 맞는 속성의 마법을 배우느라 힘들었는데."


아미야가 힘들었다고 말하는 시점에서, 내게 재능이 있는 건가 정말로 의심이 된다.


…단순히 내가 사람이라서 정확하게 재능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파악하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재능이 없는 건 아닌 듯 싶었다.


"마력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는 것도 그렇고, 아예 백지나 다름없는 마법 적성도 그렇고, 참 신기하단 말이야."


"여기서는 드뭅니까?"


"드물다 못해, 너처럼 마력이 아예 없는 것도 드물고, 적성이 이렇게나 명확하지 않은 것도 드물지."


"그렇…군요."


어쨌든, 아미야가 그렇게 말하니 내게 재능이 있기는 하구나,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훨씬 낫다.


"아무튼, 조금 더 배워볼 생각은 없니? 가르친다는 게 귀찮을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재밌네."


"…조금만 더, 배워보겠습니다."


"그럼, 지식이 아무 것도 없는 걸 감안해서 약간의 기초만 더 알려줄게."


…아미야의 마법 수업, 아니. 1대1 강의가 생각보다 더 길어졌고, 아미야는 생각보다 내게 기대가 크다는 것도 알았다.


그녀에게서 기초적인 마법을 듣기도 하고, 비늘에 담긴 마력을 사용하여 실제로 써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았다.


내게 부족한 건 상상이라고, 금향의 마법이나 자신의 마법을 보고 대충 이렇게 하면 된다고 설명을 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마법이라는 건 사람인 내 입장에서는 아주 추상적인, 무언가에 가까워서 그렇게 말해도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


그래도, 아미야는 방음 마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보통 벽에 새기는 마법진의 경우에는 그 특징이 명확하게 보인다는 것까지 내게 알려줬다.


그렇게, 아미야의 집… 이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 말하기를 공방이라고 표현한 곳에서 나오니 해는 저물고, 달이 땅을 비추고 있는 저녁에 가까운 무렵이었다.


지금부터 집에 간다면 필리아도 깨어나지 않을까 싶은 시간이기도 하고,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이 되었다.


저녁하니 흡혈귀는 어떤 음식을 먹는 건지 궁금해졌다.


사람처럼 평범한 음식을 먹는 걸까, 아니면 따로 먹는 음식이 있는 걸까.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품고, 집으로 향하니 아파트 밖에서 짧은 반바지에 분홍색 후드티를 뒤집어 쓴, 분홍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필리아가 보였다.


운동이라도 하려는 건지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필리아는 춥지도 않은 건지, 아니. 실제로 그렇게 춥게 느끼는 편은 아닌 것 같았으니 저런 옷을 입고다녀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인 나는 이 날씨에 저렇게 입고 다니면 감기에 걸릴 것이 확실했다.


걷는 것도 멈추고, 필리아를 쳐다보니 시선을 느낀 듯, 주변을 둘러보는 필리아는 나를 보자 팔을 흔들었다.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렇게 좋아하면서 반겨주는 건지.


모습이 마치 강아지같다고 느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여기서 말해도 들리지 않겠지만 기본적인 예의니까. 사람을, 다른 종족을 동물로 비유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말은 아니었다.


내게 열심히 팔을 흔드는 필리아에게 다가가니, 내 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헤실헤실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방음 마법은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는 것을 보면 딱히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미야에게 방음 마법에 대해 대충 설명을 듣기는 들었지만,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든다.


정말로,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이걸 필리아에게 전해준다고 하더라도, 고쳐지는 게 맞는 건가.


그런 의심들이 눈 앞의 필리아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들었지만, 일단 해보고 나서 안 된다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도 되는 일이었다.


"방음 마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게… 약간은, 고쳤어요."


"약간, 입니까?"


"네. 그,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요!"


"…알겠습니다. 일단, 운동을 나오신 것 같으니 운동부터 하고 오시죠. 저도 저녁을 먹을 예정입니다."


"앗, 네! 조금 있다가 다시 봐요!"


그렇게 말하며, 어딘가로 일정한 속도로 달려가는 필리아를 보다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는 필리아가 1층에 내려오면서 위로 이동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기에 버튼을 누르고 탑승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어두컴컴한 집이 보였다.


현관에 들어서니 현관 전등이 나를 인지하고 켜졌고, 그제서야 조금 밝아진 내부가 보였다.


아침에 나갔을 때의 모습 그대로인,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문을 닫고, 신발을 벗은 뒤에 방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오늘 따라 그렇게 힘든 일도 없었는 데 왜 이렇게 지치는 건지 모르겠다.


지식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 배운다는 게 생각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며, 침대에 누워서 잠이라도 잘 까 싶었지만, 필리아와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기에 눕지는 않고, 책상의 의자를 빼어 거기에 앉았다.


조금 뻣뻣한 느낌이 드는 의자에 앉으니, 밥이고 뭐고 이대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자기에는 살짝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필리아의 방음 마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밤을 새야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냉장고에 커피가 남아있었는 지 떠올려보지만, 며칠간 냉장고를 열어본 기억이 없었다.


밥을 금향의 카페에 가서 먹었던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여니 사놨던 커피도 두 캔만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잠에서 깨기 위해 남은 두 캔을 따서 그대로 위장에 털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