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인간이 희귀종인 세상에서

둘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내놓은 요리는 맛있었다.


서로 합의를 맞추고 내놓은 건지 부족한 부분들은 서로의 요리가 보충하고 있었기에 먹으면서도 질리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질린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는 것도 있었지만.


후식으로 금향이 내온 커피를 마시며, 옆에 앉은 청하가 꼬리로 팔을 휘감으려는 것을 제지하며 설거지를 하고 있는 금향의 뒷모습을 훑어본다.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꼬리가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부분에서는 금향이랑 청하가 친구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성격이 다른 둘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나 궁금했다.


그렇다고 물어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후릅 하고 뜨거운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오늘은 단 맛보다는 씁쓸한 맛이 괜찮을 것 같아서 시켜본 아메리카노의 맛은 처음에 느껴진 쓴 맛을 감추듯이, 신 맛이 살짝 몰려왔다.


적당히 신 맛이 느껴지는 게 입 안을 오히려 깔끔하게 만들면서, 한 모금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여기에 와서 마시는 커피의 맛은 매번 마시면서 느끼지만, 맛은 정말로 좋았다.


…성격만 약간 괜찮아지면 정말로 좋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금향도 그렇고 청하도 그렇고, 용이나 드래곤의 성격은 원래 그런 건가 싶었지만, 내가 아는 용과 드래곤은 그 둘 밖에 없었으니 전체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좁은 식견이었다.


그 둘에 대한 의견만으로 용과 드래곤이라는 종족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었다.


표본이 너무 적은 것 치고는 성격이라던가 행동이… 뒷담도 아니고 속마음으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그만 두자.


생각을 지우기 위해 커피를 다시 한 모금 입 안에 머금고, 잠시 우물거리며 맛을 음미하다가 목으로 넘겼다.


옆에서 내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던 청하는 으 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커피를 노려봤지만.


"도대체 그 쓴 걸 어떻게 그렇게 잘 마시는 건지 모르겠구나."


"단순히 쓴 맛만 있는 게 아니라 신 맛도 있습니다."


"그거나 저거나, 내게 있어서는 마음에 안 드는 맛이느니라."


"너 먹으라고 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불만이야!"


카운터 뒤쪽에서 금향이 청하에게 따지는 목소리가 카페에 울려퍼졌다.


문제가 있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청하와는 다르게 내 귀는 드래곤의 목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기에는 너무 연약했다.


귀를 찌르듯이 들려오는 소리에 잠깐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익숙한 일이니 그러려니 하며 찌푸린 얼굴을 폈다.


그럼에도 내 표정이 약간 안 좋게 보이기는 했는 지, 청하가 내게서 시선을 떼고는 금향에게 고개를 돌렸다.


"거, 적당히 목소리를 낮추면 안 되겠느냐?"


"앗. 미안해요, 주빈."


"괜찮습니다. 목소리가 그렇게 쉽게 조절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원하는 대로 조절이 되었다면 전화를 끄고 오는 일은 없었겠지.


금향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잠깐 돌아보고는, 다시 설거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해결하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물어봤지만, 가끔은 직접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며 웃음을 보였다.


거리가 조금 될 텐데도 여기까지 들려오는 뭔지 모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금향의 뒷모습을 보다가, 옆 자리에 앉은 청하에게 고개를 돌리니 내 손을 잡고는 자기 뺨에 비비고 있었다.


어쩐지 불편하다 싶었다.


멋대로 손을 잡아채간 청하의 뺨에서 손을 떼어내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잡은 손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 건지 떨어지지가 않는다.


나름대로 힘조절을 하고있는 건지 아프다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지만, 남이 내 손을 잡고서는 저런 행동을 한다는게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대상이 청하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다면 기분이 나빴겠지만, 청하라는 점에서 참으로 미묘한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렇게 있겠느니라."


"…손에 쥐만 안 오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뭣! 내가 그런 실수를 할 것 같느냐!?"


뺨에서 손을 떼어내고는 내게 소리를 지르는 청하가 손을 놓아버리는 것을 보고는 지금이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잽싸게 청하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니 앗 하고 허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이, 이리 주거라!"


"싫습니다."


단호하게 내 의견을 전달하니, 시무룩한 반응을 보여주는 청하의 모습이 보였지만 저 모습도 어느정도 익숙해졌기에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 상태를 냅두면 자기 멋대로 귀찮은 일을 벌이고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휘말리기에 한숨을 내쉬며,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잠깐만입니다."


"고맙구나!"


에헤헤 웃으며 뺨에 내 손을 갖다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몇 번이나 들었던 의문인, 청하에게 있어서 사람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하의 손에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커피를 마시며, 언제쯤이면 손을 놓아줄지 시간을 세보았다.


잠깐이라고 말은 했지만, 잠깐이라는 말을 청하가 지킬 생각은 있는 건지.


금향이 설거지를 끝날 때가 되어서야 붙잡혔던 손이 자유를 되찾았다.


손에서 냄새를 맡아보면 청하의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뺨에서 계속 손을 비볐던 탓에 내 손이 아닌 것 같았다.


"오늘은 따로 할 일이라도 있나요, 주빈?"


"딱히… 아, 하나는 있습니다."


"뭔가요?"


"아미야에게서 마법을 배우러 갈 예정입니다."


"…마녀말고 내게서 주술을 배워볼 생각은 없느냐?"


"없습니다."


"에잉."


혀를 끌끌 차며 금향이 내온 커피를 마시던 청하는, 뭔가를 잘 못 먹은 것처럼 얼굴을 찡그려지더니 금향을 째려봤다.


"내가 마시는 게 아니잖나!"


"멋대로 주빈의 커피를 마신 게 잘 못 아닐까?"


"…제 커피입니까?"


""아.""


둘의 목소리가 일치하고, 얼떨결에 간접 키스를 하게 된 청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남자였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같은 성별… 용과 드래곤에게 성별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같은 성별인데 그런 게 의미가 있기는 한 건가.


마셨다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병이 옮겨지거나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면야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청하와, 그 모습을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금향이 아니었다면.


"왜 그렇게 보십니까?"


"별, 별 일 아니에요!"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면서 입만 뻥긋거리는 청하를 쳐다보던 금향은, 청하의 뒷목을 잡아채고는 카운터 뒤쪽으로 데려갔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하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들어도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서 데려갔겠지.


청하가 입을 댄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내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쑥덕쑥덕 떠드는 둘의 뒷모습을 살펴본다.


뭔가 심각한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얼굴을 붉힌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번에도 저런 적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 며칠간 있었던 일들이 일들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지만.


둘이 떠드는 동안 머리를 굴려보며 그때가 언제였는 지 떠올려보려고 노력은 해보았지만, 그렇게 큰 소득은 없었다.


언제나의 일상이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런 게 일상이 되기를 바랬던 적은 없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거의 다 마셔버린 커피의 남은 것들을 목에 때려붓고,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커피잔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내 손에 닿아도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고급품으로 보였다.


만졌을 때의 촉감도 그렇고, 장식이라던가 하는 부분들도 그렇고.


겉부분에 새겨진 무늬처럼 자잘한 부분들도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게 느껴진다.


카페 내부에 있는 물건들 중에서 고급품이 아닌 게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금향에게 있어서 이런 물건들이 얼마나 있는 건지 궁금하다.


물어보면 답이야 해주겠지만,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동떨어진 답을 해주지 않을까.


쑥덕거리며 나누던 이야기가 마무리가 되었는 지, 둘이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마시던 잔에 입을 갖다댄 게 뭐가 문제라고 저렇게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


고작해야, 같은 성별의 사람, 아니. 생각보다 더 복잡한 문제인…가?


한달이라는 시간을 여기서 지내봤지만, 아직까지도 뭐가 상식이고 뭐가 상식이 아닌 건지 구분이 어렵다.


여기서는 상식인 것들이 저기서는 상식이 아니었고, 저기서는 상식이었던 것들이 여기서는 상식이 아니었다.


그런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서 인터넷을 뒤적거리면서 확인하는 일도 빈번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으니 괜찮겠거니 하고 그만둔 게 잘못이었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가서 상식에 대해 다시 찾아보는 수 밖에.


"에흠, 어흠. 뭣도 모르고 마시던 커피에 이, 입을 갖다대서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같은 성별인데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로 괜찮나요?"


"정말로 괜찮습니다."


재차 물어오는 금향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니, 새빨개진 얼굴이 이제는 폭발하기 전의 폭탄처럼 달아오르는 게 눈에 띄었다.


마찬가지로 옆의 청하도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둘은 황급히 아까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로 돌아가서 또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아미야의 공방에 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기는 했지만, 저렇게 떠느는 걸 보고 있자니 또 귀찮은 일에 엮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미야에게 문자로 조금 있다가 찾아가도 괜찮냐고 보냈다.


흔쾌히 와도 괜찮다고 하는 아미야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문자를 보낸 뒤, 여전히 달아오른 얼굴을 식힐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다가오는 둘의 모습이 보였다.


"그…."


무슨 말을 하려기에 우물쭈물거리며 말하기를 주저하는 청하를 보고 있자니 답답함이 올라온다.


평소에는 그냥 속시원하게 말하면서 가끔가다가 왜 이러는 건지.


"…용과 같은 것을 마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아니다. 모른다면 차라리 괜찮느니라."


내 말에 청하와 금향의 달아오른 얼굴이 얼음이라도 갖다댄 것처럼 순식간에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오는 게 보인다.


그럼 그렇지 하고 금향이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뭐가 그렇다는 걸까.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건 물어봤다가는 귀찮아질 예감이 확실하게 들었다.


조용히 내 옆에 앉은 청하는 꼬리로 내 허리를 한 바퀴 감싸고는 내게 기대었다.


"착각한 내 잘못이지."


금향에게 고개를 돌려보니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청하를 보는 모습이 보였다.


단순히 안쓰럽다는 것 말고도, 뭔지 모를 감정이 하나 더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커피 더 드릴까요, 주빈?"


"괜찮습니다."


"알았어요. 더 마시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언제든지… 인가.


내게 뭘 느꼈길래, 어떤 감정을 가졌길래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까.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청하가 내게 무슨 감정을 가진 건지, 어떤 생각을 하고 나를 보고 있는 건지도.


단순히 생각하면, 내가 이곳의 상식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 걸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주빈, 전에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요."


"예."


"이번에는 어떤 옷을 입으실래요?"


"…예?"


금향이 황금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쳐다본다.


멀리서였다면 못 느꼈겠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다보니 명확하게 느낄 정도로, 기대감이 실려있는 시선이었다.


금향의 물음에 침묵하던 청하도 고개를 올려서는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를 올려보는 청하의 시선에도 기대감이 실려있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저번에는 금향 녀석의 의복을 입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가져오는 의복을 입는 게 어떤가!"


"하? 너가 입는 옷이라고는 같은 것밖에 없잖아!"


"그런 느낌이 좋지 않느냐!"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뭣! 지금 시비를 거는 게냐!"


"매번 볼 때마다 같은 옷을 입고오는 데, 어떤 옷을 입힐 지 안 봐도 뻔하잖아!"


내가 옷을 입는다고 확언을 한 것도 아닐텐데, 벌써 싸우기 시작한 둘의 모습을 그러려니 하며 넘겨버렸다.


이런 것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고 싶을 정도로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둘의 싸움을 보며 아미야의 공방에 가서 마법을 배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