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회귀한 킬러




1.

 

난 얼굴 없는 죽음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난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가슴이 총에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물, 물이 어디 있어. 탁자 위를 더듬어도 물은 없었다.

 

“씨발, 어제 술도 안 마셨는데.”

 

방금 그건 뭐였지?

 

고약한 꿈을 꿨다는 건 기억난다.

 

문제는, 꿈의 내용이 떠오르질 않았다.

 

끔찍하고 처참했다. 그것만은 기억났다.

 

“좆같이 좋은 아침일세, 염병.”


아직도 누가 머리에 대고 북을 치는 것 같다.

 

반나절 정도 거꾸로 매달렸을 때랑 느낌이 비슷했다.

 

아, 좋았던 시절이여.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아침일 테지만,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여기 지하에선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빈민가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창문 밖을 보면, 온 동네가 밤처럼 깜깜했다.

 

이어서 시취에 쓰레기 냄새, 온갖 거지같은 악취가 기어들어왔다.

 

뭐, 이것도 적응하면 나름 정겹다.

 

거리엔 거적을 입고 다니는 노숙자들이 돌아다녔고, 드문드문 횃불이 벽에 걸려있었다.

 

시궁창이다. 그보다 더 정확한 비유는 없겠지.

 

“……출근이나 해야지.”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몸 상태를 확인했다.

 

가슴 통증은 여전했지만, 출근을 안 할 수는 없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명언이다.

 

아무튼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오빠, 출근해?”


“리제?”


뒤를 돌아보니, 리제가 등 뒤에 서 있었다.

 

리제. 내 여동생.

 

왠지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그게 아니라……뭔가 이상해서.”


“뭐가?”


“널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허.”


내 대답에 리제가 웃었다.

 

“뭐야, 그게. 맨날 보는데 어떻게 그래?”


“그러게, 신기하네.”


나는 리제를 쭉 훑어보았다.

 

이 동네에선 보기 드물게 머리카락이 분홍색이었다.

 

정확히는 백발에 가깝지만, 빛을 받으면 특유의 색이 드러난다. 

 

조금 경박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이 녀석은  겉보기와 달리 똥강아지 같은 녀석이다.

 

그러니까, 좀 멍청하다는 뜻이다.

 

“또 속으로 내 흉보고 있었지?”


“이야, 어떻게 알았냐?”


“하여간― 얼른 일이나 해! 돈 벌어와, 노예야!”

 

오빠보고 노예가 뭐야, 이 씨부랄년을 콱 그냥.

 

아니, 참자. 오늘은 화낼 기운도 없다.

 

“갔다 올 테니까, 청소나 제대로 해.”


“네에―”


평소와 똑같은 대화였건만.

 

어째서인지, 이 모든 게 너무나도 그리웠다.

 

 

 

 

 

2.

 

“리스, 이 씨발놈아. 제때 출근 안 해?”


“죄송합니다, 형님.”


오자마자 욕부터 먹다니, 완벽한 시작이다.

 

술집 겸 본거지, 아를르캥의 칼.

 

여기도 왠지 오랜만에 온 기분이 들었다.

 

“너 요즘 짬 찼다고 태도가 불량해, 알아?”


“아닙니다.”


“누가 형님한테 말대꾸라 하라 그랬어? 어?”

 

호드릭이 내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술 냄새에 입 냄새가 섞여서 향수나 따로 없는 냄새가 났다.

 

수염 난 돼지 새끼. 이 새끼한테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나저나 이 새끼는 씨발 이빨도 안 닦고 사나?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잘하자, 엉? 거둬주고 먹여준 보답은 해야지.”


누가 들으면 네가 키워준 줄 알겠다, 등신 새끼야.

 

염병, 하는 일도 없는 주제에 짬질은 오지게 하네.

 

“그리고 말이야, 리제 말이야.”


리제? 왜 여기서 리제가 나오지?

 

“네.”


“이제 슬슬, 일 시켜도 될 나이 아니야?”


아, 니미. 또 그 소리야?

 

호드릭 이 새끼는 이전부터 호시탐탐 리제를 노렸다.

 

나잇값을 해야지, 발정 난 돼지 새끼야.

 

하긴 네가 그럴 수 있으면 이러고 안 살았지.

 

“너만 괜찮으면 내가 ‘교육’을 좀 시켜줄 수 있는데.”

 

“다른 애들처럼 말이죠?”


“헤, 다들 처음엔 싫다고 하더라.”


그리고 지금도 싫어하거든, 병신아.

 

이런 새끼가 선배라니, 진짜 개좆같다.

 

“그보다 슬슬 시간이 없는데, 가도 되겠습니까?”

 

“가봐, 그리고 곧 큰형님 돌아오시니까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나는 곧장 홍등가로 향했다.

 

이게 내 일이다, 홍등가의 집 지키는 개. 바운서.

 

빈민가인만큼, 이 동네엔 버러지 같은 것들이 많다.

 

주정뱅이면 양반이고, 가끔 미친놈들이 날뛰거나 불을 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만큼, 항상 나처럼 경계를 서는 놈이 필요했다.

 

“어머, 리스. 오늘따라 표정이 더 험악하네?”

 

홍등가에 오니, 마담 제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여기서 나이가 가장 많은 창녀였다.

 

내가 코찔찔이였던 시절에도 창녀였으니, 글쎄. 

 

아마 마흔은 족히 됐을 것이다.

 

그래도 뭐, 아직 봐줄만 한 편이지만.


“아직 한가할 때 한 발, 어때?”


“거 누구 성병 걸려 뒈지라고 고사 지내쇼?”


“너무해, 정말. 그러면 여자한테 인기 없는데.”

 

“아이고, 그러시겠죠.”


나는 구석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이 동네에선 여자는 창녀, 남자는 조직원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직업 따윈 없다, 여길 나가봤자 결국  돌아오거나 객사하기 십상이었다.

 

빈민가의 인간은, 여길 벗어나서 살 수 없다.

 

“아무 일 없었지?”

 

“없었어. 그러는 넌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그렇게 티가 나나?

 

“그냥 잠을 좀 설쳤어.”


“어머, 별 일이네.”


“무슨 좆같은 꿈을 꿨― 아, 지랄하지 마 진짜.”

 

홍등가 입구,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보자마자 촉이 왔다. 저건 사고 치러 온 놈이다.

 

“마담, 깃발 올려.”


“아침부터 별 일이네― 알겠어, 다치진 마.”


마담이 건물로 들어가 깃발을 올렸다.

 

동시에 바깥에 있던 창녀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거기 형씨, 잠깐 정지.”


“…….”

 

덩치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다.

 

눈깔은, 그래. 맛이 갔다. 방금 한 번 빨고 왔나.

 

놈은 고기 자를 때 쓰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꺼져.”


“용건부터 말하시지?”


“레아라 만나러 왔어. 얘기 좀 하려고.”


무슨 정다운 이야기를 하려고 칼까지 들고 오셨나?

 

젠장, 무기 두고 왔는데. 

 

그런데도 왜……긴장감이 안 생기는 거지?

 

“미안하지만 레아라는 오늘 결근이야.”


“지랄하지 말고 비켜, 좆밥 새끼야.”


놈이 내 옆을 지나치려했다.

 

“좋을 말로 할 때 꺼져. 남의 업장에 분탕치지 말고.”

 

“레아라가 속였어. 그 개년이 먼저 속였다고.”

 

이젠 내 말은 듣지도 않네, 거참.

 

“귓구멍에 좆 박았냐? 꺼지라니―”

 

갑자기 죽일 듯 날린 칼날에 몸을 비틀었다.

 

순간이었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흩뿌려졌다.

 

씨발, 오늘 일진 진짜 사납네.

 

“비키라고 했잖아아아아아―!!”

 

놈이 마구잡이로 식칼을 휘둘렀다.

 

“니미 씨발 진짜!”


뒤로 물러서면서, 머리를 숙였다.

 

“죽어, 죽어, 죽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느리다.

 

아니, 놈의 속도가 느린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칼이 날아오는 궤적이 보인다.

 

더해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노리는 것은 목.

 

식칼이 아래로 향했을 때,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컥!?”

 

손날로 목젖을 치자, 놈이 뒤로 넘어갔다.

 

“켁, 헤엑― 수, 숨을― 꺼어억―”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방금 그 기술은 뭐야? 

 

정신을 차리니, 놈이 납작 엎드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리스!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리스가 한 방에 쓰러트렸어!”


“나이스 샷!”


창문에서 구경하던 창녀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내가 했다. 근데, 어떻게 했는지를 모르겠다.

 

이런 기술을 배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새벽에 꿨던 꿈.

 

왠지 모르게, 거기 단서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3.

 

퇴근하자마자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날아드는 식칼을 피했고, 일격에 놈을 제압했다.

 

싸움엔 자신 있지만― 이 정돈 아니었다.

 

고작해야 또래보다 조금 더 잘 싸우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까 그건, 범상치 않았다.

 

평범한 기술은 아니었다. 절대로.

 

“오빠! 오늘 한 건 해냈다면서?!”


그때, 리제가 문을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어, 뭐. 그렇게 됐어.”


“어떻게 한 거야? 응? 가르쳐주라!”

 

“나도 몰라. 모르는데 어떻게 가르쳐줘?”


“치사해! 나도 아뵤! 빠샤! 하고 싶단 말이야!”


알면 가르쳐주겠는데, 나도 진짜 모른다.

 

오히려 어떻게 했는지 내가 더 알고 싶다.

 

“아참, 저녁 만들었는데! 얼른 가져다줄게!”


“어엉.”


리제가 도로 나갔고, 나는 천장을 보았다.

 

나도 모르는 기술을 썼다. 어떻게?

 

그게 문제였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런 기술을 쓰려면 꽤 오래 연습해야한다.

 

기술을 배워도 실전에서 써먹는 건 별개의 일이다.

 

그 정도의 숙련도라면, 어쩌면…….

 

나는 침대 밑에서 상자를 꺼냈다.

 

단검, 몽둥이, 곡도, 온갖 무기가 들어있었다.

 

전부 진상들한테서 뺏은 무기다.

 

나중에 한꺼번에 팔 생각으로 모은 것이다. 

 

“어디, 시험해볼까?”


제일 다루기 어려운 것부터, 일단 채찍이었다.

 

채찍은 보기보다 제대로 쓰는 게 어려운 무기였다.

 

생각 없이 휘두르면 사용자가 도로 얻어맞기 십상일 정도다.

 

만약, 이걸 다룰 수 있다면…….

 

찬장에 있던 병을 노려, 채찍을 휘두른다.

 

채찍이 휘릭― 날아가, 정확히 병을 감쌌다.

 

손목을 감자, 이번엔 병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물론 이런 기술은 배워본 적도 없다.

 

하지만 해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른 것도 쓸 수 있을까?


상자를 뒤져, 온갖 무기를 시험해봤다.

 

단검 투척, 한 번에 다섯 개도 던졌다.

 

연검, 손가락 하나 안 베이고 휘둘렀다.

 

그 외에도 숱하게 많은 무기를 시험해봤고.

 

결과는, 나도 믿을 수 없었다.

 

“전부 쓸 수 있잖아…….”

 

쓰는 법조차 몰랐던 무기까지, 전부 쓸 수 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내 뺨을 쳐봤다.

 

“아야.”


좋아, 꿈은 아니네.

 

이유는 모른다. 쓸 수 있다는 것만 안다.

 

나는 침대에 도로 앉았다.

 

“좋아, 숨기자.”


당장은 감추는 편이 낫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괜히 의심받았다간……순간 소름이 돋았다.

 

조직한테 찍힌 놈들은 하나 같이 비참하게 죽었다.

 

목표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 제거한다.

 

그것도 가장 참혹하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몇 번인가 ‘보복’에 끼어 들어본 적 있는 사람으로서, 확언할 수 있었다.

 

조직한테 개기는 놈은 반드시 죽는다고.

 

“오빠― 엥? 이게 다 뭐야?”


“아.”

 

방 치우는 걸 깜빡했다.

 

“미안, 잠깐 생각 좀 했어.”
 
“무슨 생각을 하면 방이 이 모양이 되는 거야?”


“넌 몰라도 돼.”


방을 치운 뒤, 우리는 밥상에 함께 앉았다.

 

저녁 메뉴는 생선 찌꺼기로 끓인 스튜.

 

비리고 쓰지만, 이마저도 이 동네에선 귀하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아.

 

맨날 먹는 건데도, 왜 이렇게 그리운 맛이 날까.

 

맛은 없었다. 하지만 술술 넘어갔다.

 

“오빠, 오늘 어딘가 이상하네.”


“사춘기가 늦게 온 모양이지.”


“18살에 사춘기가 오는 사람도 있어?”


“몰라, 묻지 마.”


이런 대화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왜일까, 자꾸만 눈가가 시큰거린다.

 

“아참, 오빠! 나 말이야, 꿈이 생겼어!”


리제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뭔 꿈? 개꿈?”


“아니! 장래희망 말이야!”

 

“이 동네에서 여자가 할 일은 창녀뿐인데?”


“여길 떠나면 되잖아!”

 

쯧,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다 한다.

 

짜증나지만― 이 녀석도 언젠간 일해야 한다.

 

선택권 따윈 없다. 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뿐.

 

“내 꿈, 뭔지 듣고 싶지 않아?”


동시에, 말했다.

 

“아카데미에 가서 마법사가 되는 거야!”

 

“아카데미에 가서 마법사가 되는 거…….”


“엥? 어떻게 알았어!?”


그러게, 내가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왜 리제의 꿈을, 내가 알고 있는 거냐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무언가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웁……!”


“으악!? 여, 여기서 토하지 마! 밥 먹잖아!”


깨진 유리 파편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비명, 피, 시체.

 

웃음, 조롱―

 

아.

 

“리제, 오늘이 며칠이었지?”


“15일인데, 왜?”


15일, 15일이라고.

 

그렇다면.

 

안 돼.

 

“씨발.”


“왜 갑자기 욕해?”


“니미럴, 썅!”


만약 그 꿈이, 만약 일어날 일이라면.

 

이 모든 게 정말 일어났던 일이라면.

 

“왜, 하필이면……하필이면……!”


리제는.

 

내일, 죽는다.

 

그리고 나는 그걸 막을 수 없었다.

 

 

 

 -------




4.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좆됐다.

 

그냥 좆도 아니고, 진짜 개좆됐다.

 

리제는 내일, 아니 오늘 죽는다.

 

그 고약한 꿈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비참한 꿈이었다. 처절하고 무참했다.

 

싸움, 그리고 패배. 죽음.

 

그건 평범한 꿈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꿈이 아니다.

 

그건 분명히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떠오르질 않아…….’

 

기억의 파편만이 잡힐 듯 말 듯 떠올랐다.

 

대체 나는 왜 싸웠고, 왜 죽어야만 했던 걸까?

 

그리고 그게 리제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리제를 살릴 방법을 찾아야한다.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는 것이다.

 

리제를 데리고 달아날까?

 

어디로? 돈 한 푼 없이 제국 한복판에서 무슨 수로 살아남는단 말인가.

 

게다가 난 이미 조직에 속해있다.

 

말없이 달아나는 것도 배신이다, 나흘 안에 잡혀 죽을 게 뻔하다.

 

그럼 조직을 상대로 한 판 벌여?


더 현실성 없는 대책이다. 

 

기적이 일어나서 여기 지부를 갈아엎었다 치자.

 

그 다음엔? 조직에서 파견한 킬러가 우리 둘의 모가지를 예쁘게 따줄 것이다.

 

조직의 킬러를 따돌릴 순 없다.

 

그들은 반드시, 목표가 죽는 순간까지 쫓아온다.

 

아예 외국으로 튀어도 시간을 버는 게 한계다.

 

언젠간 잡힌다. 반드시.

 

“그럼 씨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오빠?”

 

침대에서 일어나, 마른세수를 했다.

 

내가 좆 되도 세상은 잘도 돌아간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항상 그렇듯이.

 

“아냐, 인생이 좀 개 같아서 그래.”


“난 또, 얼굴이 못생겨서 그거 한탄하는 줄 알았네.”

 

이런 머저리라도 일단은 내 동생이다.

 

구할 방법을 찾아야한다.

 

‘일단 침착하자.’

 

아직 리제는 살아있다.

 

그게 요점이다.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거.

 

먼저, 왜 리제가 죽었는지 알아야한다.

 

죽는다는 건 안다, 근데 왜 죽는지는 모르겠다.

 

살해당하나? 아니면 병 때문에? 자살하는 걸까?

 

그냥 길 가다 넘어져서 죽는 걸지도 모른다.

 

가장 가능성이 큰 이유는…….

 

‘살해당하는 거겠지.’

 

이 동네에선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나간다.

 

병으로 죽고, 굶어죽고, 맞아죽고, 아무튼 죽는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공평하게 죽어나가는 동네다.

 

누군가가 리제를 죽인다.

 

이유는 모른다, 누가 죽이는지도 알 수 없다.

 

“리제.”


“왜?”


“너 오늘 뭐 할 일 있냐?”


“아니, 없는데.”

 

어떻게 죽는지를 모르니, 대응법도 모르겠다.

 

씨발, 난 탐정이 아니란 말이다.

 

“오늘 집에 있어. 그리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마.”


“아, 왜애?”


“내 말 들어. 약속해, 절대 안 나가겠다고.”


리제가 나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근데 이유는 말해주면 안 돼?”


“나중에. 나 돌아올 때까지 아무한테도 문 열어주지 마.”

 

“알겠어. 음, 너무 걱정하진 마. 알겠지?”


네가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하지만 이 사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

 

괜히 걱정시키고 싶진 않다.

 

“아침은 됐어, 갔다 올 테니까 얌전히 있고.”

 

술집으로 데려가는 게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안전한 집에 숨어있게 하자.


“응!”


나는 집에서 나와, 술집으로 향했다.

 

계속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건 그 꿈의 정체였다.

 

‘대체 뭐냐고? 그 꿈은…….’

 

꿈속에서, 어떤 여자와 싸웠다.

 

그냥 치고 박고 싸운 수준이 아니라, 목숨을 건 혈투를 벌였다.

 

싸움 끝에, 나는 그 여자와 함께 죽었다.

 

내가 본 꿈은 미래인가? 아니면 설마…….

 

‘만약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면.’

 

그럼 나는 한 번 죽고 되살아난 건가?

 

아니, 그게 아니다.

 

이 경우엔, 과거로 회귀한 것이다.

 

그러면 이 기묘한 기술도 이해됐다.

 

과거의 내가 쓰던 기술이니까, 나도 쓸 수 있는 거다.

 

대체 누가,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는데.

 

그리고 왜 하필 나였던 거지?

 

씨발.

 

‘생각해봤자 답 없는 문제는, 생각하지 말 것.’

 

그게 낫다. 이럴 땐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리자.

 

곧, 나는 술집에 도착했다.

 

괜히 눈에 띄지 말자, 그래서 좋을 게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리스! 이 새끼 이거, 어제 한 건 했다면서?!”


“야 어디서 그런 걸 배워왔어? 나도 가르쳐줘!”
 
지랄 맞네, 어떻게 내 뜻대로 풀리는 게 하나 없냐?

 

술집에 오자마자 조직원들이 나를 에워싸고 말을 걸었다.

 

그래, 어제 한 건 하긴 했지.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큰형님! 어제 얘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얘기?”


아, 썅.

 

설마 돌아오는 날이 오늘이었나?

 

술집 구석에 앉아 있던 큰형님이 일어섰다.

 

나이는 30대 후반쯤, 까만 피부에 근육질 몸.

 

턱이 도드라진 인상에 항상 표정이 굳어있다.

 

이 남자가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조직의 간부.

 

―철완의 아토믹이다.

 

“리스, 너 어제 뭐했냐?”


“음……별 거 없습니다.”

 

“얘기해봐, 한 번.”


이 인간 눈에 띄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리스가 말이죠, 어제 날뛰는 진상 새끼를 한 방에 눕혔습니다!”

 

“오호, 그래?”


그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나를 훑어보았다.

 

“재미있네. 어떻게 했어?”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하! 그렇겠지. 초보자의 운이라고 하던가?”

 

아토믹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고―

 

“윽―”


“왜? 살짝 잡았는데.”


이게 무슨 살짝이야, 이 미친 새끼가.

 

썅, 어깨가 뜯어지는 줄 알았다.

 

과연 철완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악력이다.

 

“아, 그래. 마침 잘됐다.”


“네?”


“오랜만에 스파링을 좀 하고 싶었거든.”


그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한 판 붙자. 야! 테이블 치워.”


“알겠습니다!”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다른 조직원들이 서둘러 술집을 정리했다.

 

“무기는 뭐 쓰냐? 아무거나 골라봐.”

 

“형님은요?”


“나야 맨손이면 충분하지.”


허세가 아니다.

 

조직의 간부는 아무나 될 수 없으니까…….

 

그만한 실력과 실적이 있어야만 올라갈 수 있는 자리다.

 

몇 년이나 이 남자 밑에서 일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


나는 쭉 나열된 무기를 훑어보았다.

 

검, 도끼, 망치, 단검, 활―

 

온갖 무기들 중에서, 나는 그걸 잡았다.

 

“봉?”


“새끼, 큰형님을 무시해? 봉으로 뭘 어쩌려고?”

 

나도 왜 봉을 잡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이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좋은 판단이다, 짱구 좀 쓰네.”

 

나는 왼다리를 뒤로 뻗으며, 봉을 길게 잡았다.

 

왜 이런 자세를 취했는지는 나 역시 모른다.

 

“살살할 테니까 너도 살살해라?”


“알겠습니다.”


댁 같은 괴물 상대로 살살이라.

 

내 뼈와 살이 살살 분리될 거란 소리인가?


“내가 갈까, 네가 올래?”

 

“선공은 양보해드리겠습니다.”


“배짱 좋네. 마음에 들어.”


훙―

 

바람이 터지는 듯한 소리였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주먹이 벽에 박혀있었다.

 

“이런, 오랜만이라 힘 조절이 안 되네. 미안.”

 

“허…….”


전혀 안 보였다.

 

빠르다 느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맨주먹으로 벽을 꿰뚫다니.

 

살살 한다고? 씨발, 지랄하고 앉았네.

 

이게 살살 하는 거라고? 이게?

 

퍼뜩, 정신을 차리고 옆으로 물러섰다.

 

“너, 오러 쓸 줄 알았나?”


“못씁니다.”


“스킬도 없고?”


“없습니다.”


“하! 근데 한 방에 사람을 기절시켰다고?”


네, 저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요.

 

상대는 오러 숙련자에, 스킬도 가지고 있다.

 

스킬― 강철팔.

 

효과는 양팔의 강도가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것.

 

단순한 스킬이지만, 쓰는 사람이 아토믹이면 얘기가 다르다.

 

“좀 천천히 할게. 자, 간다!”

 

아토믹이 몸을 수그렸다.

 

동시에 펑― 폭발하듯 돌진했다.

 

막을 수 없다. 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체를 노려봤자 막힌다.

 

“흠!”


봉을 크게 휘둘러, 다리를 후려쳤다.

 

“오?”


쿠당탕! 아토믹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큰형님!”


“새끼야, 큰형님한테 무슨 짓이야!?”
 
“시끄러워! 병신들아!!”


아토믹이 소리치자, 조직원들이 조용해졌다.

 

그의 약점은 다리다.

 

정확히는 ‘그나마’ 약점이라는 뜻이다.

 

전력을 다해 때렸는데, 아무리 봐도 멀쩡해보인다.

 

“하하하! 설마 거기서 반격하다니!”

 

“별거 아닙니다.”


“그 별거를 못해서 뒈진 놈이 몇 놈인 줄 알아?”

 

아토믹이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이번엔 어떻게 하려나!?”

 

또 온다, 이번엔 피한다.

 

퍼엉― 육중한 몸뚱이가 날아온다.

 

몸을 옆으로 날려 피하려던 순간.

 

“판단이 늦어, 애송아.”

 

멈췄다, 충돌 직전이었다.

 

퉁! 가볍게 등으로 나를 쳐냈고―

 

“크헉!?”

 

쨍그랑!

 

창문을 뚫고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숨을 쉴 수가, 미친. 가볍게 친 것뿐인데.

 

뼈가 부러진 것만 같다. 아파 죽겠다, 씹.

 

“됐다, 스파링 끝.”

 

아토믹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걸로, 끝난, 겁니까?”

 

내 목소리가 뚝뚝 끊어져서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낙법을 해서 이 정도로 끝났다.

 

어떻게 했는지는 이번에도 모르겠지만…….


“기량을 보려고 한 거니까, 이 정도면 충분해.”


기량을 보려고 했다고? 왜?


“리스, 너 나이가 몇이더라?”


“18살입니다.”


“흠, 딱 좋네. 한창 성장할 시기야.”


아토믹이 씩 웃었다.

 

“너, 간부 한 번 해볼래?”


“가, 간부 말입니까?”

 

“큰형님! 저 짬찌 새끼가 무슨 간부―”
 
“내 결정에 토다는 거냐?”


또, 조직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정확히는 간부 후보지만 말이야, 어때?”


“……생각해보겠습니다.”


“생각은 무슨! 위에는 내가 보고할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둬라.”

 

아토믹이 상의를 챙기고, 술집을 나갔다.

 

내가 간부 후보라고?


조직의 간부가 되는 법은 둘뿐이다.

 

첫째, 대간부가 직접 임명하는 경우.

 

둘째, 간부에게 인정받아 간부 후보가 되는 것.

 

간부 후보로서 실력과 실적을 쌓으면, 대간부의 판단에 따라 간부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조직의 간부가 되면 인생이 달라진다.

 

돈, 여자, 사치품……뭐든지 가질 수 있는 인생.

 

조직에 속해있는 이들 모두가 원하는 자리.

 

예전 같으면 기뻐했을 테지만…….

 

‘지금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고.’

 

당장 내게 중요한 건 리제의 목숨뿐이다.

 

조직 간부?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리제는 오늘 죽는다.

 

그리고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5.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침의 그 일을 제외하면 평범한 하루였다.

 

달리 이상한 것도 없었고, 조용했다.

 

‘혹시 내가 틀린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건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그냥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다다랐다.

 

그리고 보았다.

 

문이, 열려있었다.

 

리제가 열어줬나? 

 

아니, 그럴 리 없다.

 

자세히 보니, 문의 잠금 장치가 뜯겨나갔다.

 

……누군가가 침입한 것이다.

 

“씨발, 가만히 있어!”


“싫어! 만지지 마!”


안에서 리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박한 상황이건만, 어째서인지 나는 침착했다.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차피 할 거잖아! 좀 먼저 하는 것뿐이라고!”
 
“누가 너 같은 돼지랑 하고 싶다고 그랬어!? 놔!”


문틈으로 안을 훔쳐보았다.

 

호드릭.

 

이 미친 발정 난 돼지 새끼가……!

 

그래, 이래서였구나. 이래서 리제가 죽는 거였어.

 

호드릭이 씹새끼인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집에 쳐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호드릭은 조직 소속이다.

 

만약 내가 놈한테 거스르면? 하극상이다.

 

하극상을 저지르는 놈도, 반드시 죽는다.

 

“아파! 놓으라고! 오빠! 오빠아아아―!!”


“썅, 물었어!? 개년이, 씨발! 가만히 있으라고!”


짜악, 짝! 호드릭이 리제의 뺨을 때렸다.

 

나는 저 새끼를 막을 수 없다.

 

리제를 구했다간, 나도 함께 죽는다.

 

“젠장.”


어떻게 하지?


리제를 구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아! 아파, 그만, 이제, 그만!”


리제가 죽는다.

 

내 동생이 죽는다.

 

나는.

 

나는―

 

그 순간.

 

나는 과거가 된 미래의 꿈을 꿨다.

 

 

 

 

-----





6.

 

“……목숨 바쳐 제국의 영광을 위해 싸우리.”

 

어느 이름 모를 신전.

 

그곳에 한 여자와, 수십의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난 천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여자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폭탄을 떨어트렸다.

 

동그란 구체. 그들은 그게 뭔지 모른다.

 

“뭐지?”


그 순간, 푸식―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콜록, 끄억……!”


“전원, 숨을 참아라! 독이다!”

 

너무 늦었다.

 

순식간에 신전 안에 퍼진 독가스에 기사들이 쓰러졌다.

 

“커헉……훅, 끄으윽……!”


검성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다른 이들은 벌써 죽었다, 남은 건 그녀뿐.

 

다시 한 번.

 

그녀의 발치에, 또 다른 구체가 떨어졌다.

 

“!”


신전의 벽이 폭음과 함께 무너졌다.

 

그녀는, 검성은 바깥의 정원까지 날아갔다.

 

“대체, 어디서……!?”

 

제법이다. 그 찰나에 오러로 방어했나?

 

하지만 기습은 성공했다. 이쪽이 유리하다.

 

“모습을 드러내라, 암살자!”


대답 대신 손도끼를 던졌다.

 

검성이 롱소드를 휘둘러 튕겨냈으나―

 

검이 닿는 동시에, 도끼가 쾅 폭발했다.

 

“큭!”

 

폭연이 검성을 감쌌다.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뛰어들었다.

 

“위인가!”


캉! 칼날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너는!”

 

“…….”

 

뒤로 물러났다. 설마 그걸 막을 줄이야.

 

“페이스리스…….”


날 알고 있나?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이 여자는 여기서 죽는다.

 

“날 암살하러, 쿨럭, 왔군.”


“…….”


지금은 내가 유리하다.

 

억누르곤 있지만, 이미 몸에 독이 퍼졌을 터.

 

눈앞이 흐리고 다리엔 힘이 빠지겠지.

 

정면승부에선 내가 불리하다.

 

그러니, 최대한 깎아내고 시작한다.

 

“쉽지는, 않을 거다.”

 

주먹을 날린다, 손목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노리는 건 목. 이걸 피할 수 있을까?

 

검성이 검을 튼다, 칼날의 궤도가 틀어졌다.

 

이어서 엎어치기.

 

세상이 뒤집힌다, 하지만.

 

“!”


먼저 다리를 내려, 착지했다.

 

몸을 틀어 빠져나오고, 손을 펼쳤다.

 

이 거리에선 못 피한다.

 

콰앙―! 손목 밑에 있는 산탄총이 불꽃을 뿜었다.

 

“큭!?”


산탄을 맞은 검성이 휘청거렸다.

 

관통되는 건 막았나, 허나 충격은 크겠지.

 

만전의 상태였다면 오히려 내 팔이 잘렸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섬광탄을 던진다, 찌잉― 섬광이 폭발했다.

 

눈을 빼앗고, 빈틈을 노려―

 

그 순간 검성이 돌진했다.

 

무슨, 눈이 멀었다. 그런데도 오는 건가?

 

소리보다 검이 먼저 날아왔다.

 

유리가 깨지듯, 손목의 칼날이 부러졌다.

 

“하아압!!”


이어지는 연격―

 

빠르다, 막는 것조차 힘들다.

 

하지만 다음 수는 이미 준비해뒀다.

 

“가변 무기.”


나의 등에서, 사슬이 솟아났다.

 

“천로역정.”


키잉― 수 개의 쇠사슬이 일격을 막았다.

 

이어서 사슬이 검성의 팔을 감았다.

 

“!?”

 

검성이 기둥에 처박히며, 파편이 튀었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 테냐?

 

돌연, 사슬이 풀렸다.

 

사슬을 베었다. 그 찰나에, 대응했다.

 

검성이 기둥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

 

한 번에 쓸 수 있는 사슬은 10개.

 

그걸 전부 막을 수는 없을 터.

 

촤르륵―! 사슬이 온 사방에 퍼졌다.

 

수 개의 사슬이 검성을 덮친다―

 

카앙! 유연하게, 회전하듯 움직이며 사슬을 벤다.

 

조준이 어렵다. 닿을 때마다 사슬이 깨졌다.

 

저 회전. 공격과 회피를 동시에 하고 있다.

 

저토록 불안정한 자세인데, 전부 쳐내고 있다.

 

게다가 몸에 독이 퍼진 상태일 터인데.

 

처음 보는 무기에, 이렇게 빨리 적응하다니.

 

캉! 카앙― 연달아 천로역정이 끊어졌다.

 

고작 검으로 끊을 수 있는 사슬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슬이 무슨 머리카락처럼 잘려나갔다.

 

남은 사슬은 4개.

 

단번에 사지를 노린다.

 

촤르르륵―! 사슬이 네 방향에서 날아갔다.

 

“하압!”

 

동시에 사슬이 모조리 끊어졌다.

 

베는 걸 보지 못했다, 찰나.

 

천로역정이 뚫렸다. 일단 뒤로 빠져야―

 

팟!


이번에도 보지 못했다.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피가 튀었다.

 

상처는 얕다, 조금만 늦었어도 몸이 갈라졌다.

 

과연, 검성이란 이름값은 하는 건가?

 

클라우디아 발키리에 브리간티스.

 

무패의 기사, 제국 최강의 검사, 검성.

 

다룰 줄 아는 것은 롱소드 하나뿐.

 

허나 그것만을 극한까지 단련하여, 최강이 됐다.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승률은 낮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하다.

 

―천재가 평생을 노력하면 무엇이 되는가?

 

그 대답이 바로 저 여자, 검성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죽일 방법은, 반드시 있다.

 

이어서 철컥, 하고 막대기가 양쪽으로 늘어났다.

 

가변 무기, 천뢰.

 

기회는 한 번, 사냥당하는 순간이다.

 

“장난감이 많군.”

 

봉이 허공을 스쳤다―

 

현란한 발놀림. 춤을 추는 것 같다.

 

“액셀.”


몸의 속도를 두 배로 가속하는 스킬.

 

독도 더 빠르게 퍼질 터, 승부를 낼 생각인가?

 

이기려면 지금뿐.

 

아무래도 생각이 일치한 모양이다.

 

“―!!”


검성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반격했다.

 

위, 아니 오른쪽.

 

이번에도 따라갈 수 없다.

 

팔을 들어 막는다, 갑주가 깨졌다.

 

통증보다 충격이 먼저 느껴졌다.

 

물러설까? 아니, 따라잡힌다. 대응은?

 

눈으로 따라가지 마라.

 

―느껴라.

 

“하아아아압―!!”


“……!!”


보이는 것은 검이 지나간 뒤의 궤적뿐.

 

봉을 휘둘러 막는다, 조금씩 물러선다.

 

시간은 내 편이다.

 

최대한 소모시킨다, 조금이라도 더.

 

질풍 같다. 소리조차 검보다 느리다.

 

아직.

 

조금만 더. 때를 기다려라.

 

칼날이 스칠 때마다, 갑주가 찢겨나간다.

 

봉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튄다.

 

들리는 것은 오직, 무구의 비명뿐―

 

“우오오오오―!!”


“――――!!”

 

콰각, 콰드득―!

 

봉이 검성의 옆구리를 강타한다.

 

“흐읍!”


파각! 검성이 봉을 한 손으로 부러트렸다.

 

무시무시한 악력이다.

 

하지만.


롱소드가 가면을 가르는 순간―

 

“가변 무기, 천뢰.”


봉의 끝부분에 있던 외피가 벗겨졌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오직 정신이 공격에만 집중할 때를.

 

봉의 끝에 달려있는 것은 폭탄.

 

―너를 죽일 비수다.

 

“이건!?”


콰앙―!! 검성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성공이다, 갑주는 파괴됐다.

 

그렇지만 이쪽의 소모도 만만치 않다.

 

이제 내게 남은 수는 하나뿐.

 

체력도 한계다. 올라오는 열에 정신이 멍해진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몸이 무거워진다.

 

이렇게까지 몰린 건 오랜만이다.

 

그때, 검성이 벽을 지지대 삼아 일어섰다.

 

치명상이다. 그런데도 움직일 수 있다니?

 

“크윽, 후우.”

 

난생 처음으로, 적에게 경외심을 느꼈다.

 

인정한다.

 

너는, 너야말로 내 적수다.

 

이전에도, 이후로도.

 

이 여자보다 넘기 힘든 벽은 없으리라.

 

“헉, 허억―”


“…….”

 

남은 수는 이제 하나뿐.

 

더해, 방금 전 공방에서 체력을 너무 많이 썼다.

 

이걸로 끝을 보는 수밖에.

 

“신살 무기…….”


허리춤에 걸려있던 단검을 뽑았다.

 

검붉은 칼날, 불길한 기운.

 

내가 널 위해 준비한 피날레.

 

“종언.”


과거, 외신을 죽인 무기 중 하나.

 

내가 가진 무구 중 이보다 더 치명적인 건 없다.

 

기회는 한 번. 실패하면 죽는다.

 

“후우…….”


깊이 숨을 내뱉었다.

 

검성은 진작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검은 부러지지 않았고.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코오오오……!!”

 

검성이 크게 호흡했다.

 

액셀, 거기에 더해 오버드라이브.

 

남은 체력과 오러를 단숨에 짜낸다.

 

일시적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얻는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기회는 한 번뿐.

 

여기가 사선(死線)이다.

 

영원에 가까운 침묵이 끝나며―

 

폭발하듯, 잔상이 사라졌다.

 

“흐아아아아압―!!”


“!”

 

스걱― 롱소드가 왼팔을 날려버렸다.

 

보지 못했다. 느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종언은 오른손에 있다.

 

체중을 실어 찌른다― 

 

롱소드와 종언의 궤적이 겹친다.

 

그러나 종언이 닿는 순간― 

 

파캉―! 롱소드가 산산조각 났다.

 

“!”


종언의 효과는.

 

닿은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파괴.

 

물체든, 생물이든, 동등하게 부순다.

 

하지만.

 

검이 부러졌지만, 검성은 멈추지 않았다.

 

남은 칼날을 휘둘러― 

 

나의 목을 베었다.

 

“으라아아아―!!”

 

동시에 종언을, 가슴에 쑤셔 박았다.

 

“컥―”

 

“…….”


검성이 비틀거렸다.

 

이윽고, 무너지듯 쓰러졌다.

 

“커윽, 꾸르륵…….”


피거품이 부글부글 흘러내렸다.

 

검성이 하늘을, 어쩌면 허공을 보았다.

 

평생 쌓아올린 강함도, 죽음 앞에선 무의미하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야말로 검성이라고.

 

그 이름에 누구보다 걸맞은, 진정한 전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경외하는, 내 유일무이한 적수여.

 

서로 시선이 교차한 뒤―

 

검성이, 멈춰버렸다.

 

“……나도, 끝인가.”

 

벽에 몸을 기댔다.

 

상처가 크다. 이건 지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죽음뿐.

 

평생 명령을 따랐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고, 의무대로 충성했다.

 

죽이라면 죽였고, 버리라면 버렸다.

 

얼굴도 이름도 없는 암살자가 되어.

 

일생을 그렇게 살았다.

 

“…….”


추위가 밀려오고, 다음으로 고독함이 느껴졌다.

 

이어서 어둠이 나를 반겼다.

 

후회는, 없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마지막 후회가 떠올랐다.

 

지켜줄 수 없었던 핏줄이.

 

이뤄줄 수 없었던 꿈을.

 

돌아갈 순 없다, 그런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소원을 빌었다.

 

만약 다시 한 번 널 만날 수 있다면…….

 

너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고.

 

그리고 널 꽉 끌어안겠노라고.

 

“―이뤄줄게, 그 꿈을.”

 

나지막하게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

 

이윽고―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

 

 

 

 

 ----





7.

 

그랬던 건가.

 

이제야 나는 이해했다.

 

파편이 모이자, 그것이 내게 진실을 보여줬다.

 

나는 한 번, 거기서 죽었다.

 

검성과 싸웠고, 거기서 목숨을 다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누가 나를 이 순간으로 보냈는지도 알 수 없다.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내가 돌아온 이유는.

 

그 이유만은, 알 수 있었다.

 

“어?”


방에 들어가자마자, 호드릭의 머리를 잡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그래도.

 

상관, 없어.

 

“잠깐, 뭐하는―”

 

콰득!

 

인형의 관절이 돌아가듯, 목이 꺾였다.

 

쿵, 호드릭의 몸뚱이가 힘없이 늘어졌다.

 

“오, 오빠?”


사람을 죽였다.

 

처음은 아니다.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후우…….”


죄책감이나 공포보다 먼저, 쾌감이 밀려왔다.

 

시원하다. 더운 여름에 마신 차가운 맥주만큼이나.

 

나는 어쩌면 어딘가 망가진 걸지도 모른다.

 

이제 와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주, 죽은……거야?”


“죽었어, 확실하게.”


목이 부러지고도 살아있으면 인간이 아니다.

 

나는 호드륵의 시체를 발로 툭툭 쳤다.

 

씨발, 오줌 지렸네. 헛구역질 나오는 냄새다.

 

“어, 어, 어, 어쩌지? 호드릭은, 이 사람은!”


“조직원이지. 나도 알아.”

 

이제 뭘 어찌해도 돌이킬 수 없다.

 

시체를 숨겨도, 결국 언젠간 꼬리가 잡힐 터.

 

고작 그 정도론 조직을 속일 수 없다.

 

“그리고 속일 필요도 없어.”


“뭐?”


“리제, 짐 챙겨.”


리제가 벌떡 일어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기특한 녀석. 강하게 키운 보람이 있다.

 

“다 챙겼어. 그 다음엔?”


“넌 여길 떠나.”


리제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은 것처럼.

 

“……오빠는 어쩌고?”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설마 자수할 셈이야!?”


“아니.”


자수한다고 살 수 있으면 진작 그랬겠지.

 

좆같은 새끼, 죽어서도 똥을 뿌리는구나.

 

실제로 호드릭의 시체가 똥을 지리고 있었다.

 

“리제, 네 꿈이 뭐였더라?”


“이 상황에,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마법사. 그래, 마법사가 되고 싶다 그랬지.”


리제의 어깨에 양손을 얹었다.

 

“될 수 있어, 분명.”


“무슨 소리야…….”


“그래 씨발,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없긴 하네.”


오빠랍시고 밥이나 제대로 먹여준 적 있던가?

 

반평생을 둘이서 아등바등 살아남기 바빴다.

 

입고 싶은 옷 한 벌 해주고 못했고.

 

하고 싶다고 하는 일 한 번을 못 시켜줬다.

 

“이제부턴 네 마음대로 살아.”


“오빠는……?”


나는.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이유도 모르고, 방법도 모른다.

 

그리고 그딴 건 중요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언제나, 너뿐이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아무 상관없고.”


“대답해! 뭘 하려는 거야!?”


“널 살려야지.”

 

나는 침대 밑에 있던 상자를 꺼냈다.

 

“시간을 얼마나 벌 수 있을지는 나도 몰라.”


“설마…….”
 
“쉬지 말고 달려. 조금이라도 멀리 가.”

 

넌 항상 운이 좋았다.

 

특히 악운 하나만은 끝내주게 좋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운이 좋기를 바랄 뿐이다.

 

“조직이랑……싸울 셈이야……?”

 

“그래.”


“가능성은 있어?”


그런 게 있을 리가.

 

다른 놈들은 몰라도, 아토믹은 이길 수 없다.

 

고작해야 발목이나 잡고 늘어지는 게 한계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널 구하기로 했으니까.

 

“안 갈 거야. 오빠 두고 어딜 간다고!?”


“씨발, 등신아! 오빠 말 좀 들어!”

 

참다 참다, 소리쳤다.

 

“네가 여기 남는다고 뭐가 달라질 거 같아? 어? 같이 개죽음이나 당하겠지! 

니미럴, 살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왜 내가 살 사람인데!? 오빠가 살면 되잖아!”


“나는!”


마지막에, 너한테 이러고 싶진 않았다.

 

진짜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

 

“……나는 네 오빠가 아니야. 알잖아?”


우린, 핏줄로 따지면 남남이었다.

 

널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었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족은 아니다.

 

“나 같은 놈 때문에 죽지 마. 그럴 가치 없으니까.”


“아니야!!”


“리제.”


나는 리제의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내 인생에서 좋았던 건 너뿐이었어.”


“…….”


“이 지옥에서 너만이, 너만이…….”


네가 없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네 덕분이었다.

 

“싫어…….”


“싫어, 이런 건 싫어, 응? 같이 가자. 제발…….”


“어리광 부리지 마. 내가 뭐라고 그랬지?”


리제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항상, 냉정하게…….”


“그래, 냉정하게. 무슨 뜻인지 알잖아.”


여기선 냉정하지 못한 놈부터 죽었다.

 

그러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는 동네였다.

 

“울지 마, 멍청아. 못생겨 보이잖아.”


“이럴 때, 그런 말, 하지, 말란 말이야……!”


리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작은 울보가, 이렇게 컸다.

 

이 정도면 나름 자랑스러워해도 되려나.

 

“잘 살아라.”


나는 상자를 들고,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잘 살아라? 작별 인사치곤 좀 그랬나.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해뒀으니까.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돌아온 거니까.

 

…….

 

이제, 갈 시간이다.

 

 

 

 

 

8.

 

술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름 가게가 있었다.

 

주로 파는 것은 랜턴용 등유나 촛불 따위였다.

 

하지만 오늘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꼴꼴꼴……휘발유를 술집 벽에 뿌렸다.

 

늦은 새벽이면 술집도 문을 닫고, 조직원들은 술집 지하의 숙소에서 잔다.

 

술집의 출입구는 두 개, 뒷문은 벌써 막아뒀다.

 

“자, 여긴 열어두고…….”

 

정문엔 못 넘어올 정도로만 장애물을 쌓았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단순한 동물이다.

 

일단 불이 나면, 인간은 통로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부러 정문을 약간 열어두었다.

 

뒷문은 막혔고, 창문은 몇 개 없는데다 작아서 사람이 빠져나오기는 힘들다.

 

빠져나가려고 정문에 몰리면, 그 때 해치운다.

 

아토믹도 안에 있으면 좋겠지만…….

 

“너무 욕심 부리지 말자고.”


치익, 성냥에 불을 붙였다.

 

나름 오래 지낸 곳이고, 좆같긴 해도 식구라고 부를 수 있는 놈들이었다.

 

그래도 리제를 위해서라면.

 

몇 놈이든 죽여주마.

 

화르륵―!!

 

순식간에 술집이 화염에 휩싸였다.

 

이어서, 술집 안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악!?”


“뭐야 이게! 누구 짓이야!?”


“그게 중요하냐?! 씨발, 나가! 전부 나가!”

 

나는 정문 앞에 앉아 기다렸다.

 

아직 다 안 모였다.

 

“이거 뭐야? 빨리 치워!”


“콜록, 콜록!”

 

나는 나무통을 힘껏 들어올렸다.

 

“뭐야 저거?”


“저거 리스잖―”

 

이 안에 뭐가 들어있냐고?

 

정답은, 흑색 화약이다.

 

불에 닿으면 폭발하는 그거 맞다.

 

“어, 어어!?”

 

폭약을 힘껏 던지고― 뒤로 몸을 날렸다.

 

“잘 죽어라, 씹새끼들아.”

 

콰아아아앙―!!


내 예상을 한참 웃돈 폭발력에, 나도 휘말렸다.

 

“썅!”


쿠당탕― 한참을 굴러간 끝에야 멈췄다.

 

술집은 폭발에 휘말려,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설마 이 정도로 폭발력이 강할 줄은 몰랐는데.

 

그때, 술집 주위에서 그림자가 나타났다.

 

“씨바아아알―!”


“뜨거, 뜨거워!”

 

먼저 빠져나온 놈들인가?

 

수는 많지 않다, 거기다 부상을 입었다.

 

할 만하다.

 

나는 단검을 손가락 사이에 쥐었다.

 

“아, 아, 뜨거……뭐야, 리스?”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이 새끼―”

 

푹!

 

단검이 말을 끊었다, 놈이 고꾸라졌다.

 

“썅!”


“뭐, 뭐하는 거야!? 미쳤어!?”


“아니, 제정신이시다.”

 

남은 건 넷.

 

나는 양손에 손도끼를 쥐었다.

 

“한꺼번에 덤벼!!”


“이 미친 새끼가!”


“크아아아아아―!!”

 

미친개처럼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다.

 

도끼 따윈 써본 적도 없지만, 알 수 있었다.

 

이거면 충분하다.

 

첫 번째 놈이 칼을 뽑기도 전에, 도끼를 던져 머리를 박살냈다.

 

“우어어어!!”


달려가면서 도끼를 뽑고, 둘째를 덮쳤다.

 

“히익!?”


콱, 콰득! 도끼질 두 방에 곤죽이 됐다.

 

“이 정신 나간 새끼가!”


“죽여!”


다음 두 놈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카각! 도끼로 칼을 막았다.

 

씨발, 이건 좀 비겁하잖아.

 

뒤로 물러서면서 휙, 도끼를 던졌다.

 

“썅!”


튕겨냈다, 그래도 놈이 휘청거렸다.

 

나는 살짝 힘을 빼서 칼을 틀었다.

 

“어?!”

 

놈의 칼이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퍽! 도끼 자루로 배를 때렸다.

 

“컥!?”


“이 개새끼야!!”

 

도끼를 튕겨낸 놈이 달려들었다.


훙― 몸을 살짝 틀어 칼을 피했다.

 

한 번에 둘이라니, 역시 좀 빡세다.

 

오러만 쓸 줄 알아도 이 고생 안 하는데.

 

씨발, 열심히 좀 살 걸.

 

콱, 콰악! 도끼로 뒤통수를 찍었다.

 

마지막 한 놈.

 

“이 빌어먹을―”

 

마지막 놈의 배에 퍼억, 도끼를 쑤셔 박았다.

 

도끼를 뽑자 창자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끄으으, 으으.”


마지막 둘까지, 전부 쓰러트렸다.

 

안에 몇 놈이나 있었을까. 스물? 서른?


아토믹은? 모르겠다. 같이 죽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내 기대는 2초도 가지 못했다.

 

“하! 화려하게 저질렀네, 애송아.”


“씨발 좆됐네…….”


아토믹이 저 멀리서 걸어왔다.

 

“갑자기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가 술병을 휙 집어던졌다.

 

“흠, 젊은 날의 객기라는 건가?”


“……말해봤자 이해 못해, 당신은.”

 

“그런가? 하, 그래도 제법 괜찮은데.”


뭐가 괜찮다는 거지?


니미럴, 이 양반은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불을 지른 다음, 폭약을 터트렸군. 맞지?”


“맞아.”


“하하하! 그래, 솔직하니 좋네. 역시 마음에 들어.”

 

아토믹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다.

 

상대는 오러를 쓴다, 나는 아니고.

 

도망쳐봤자 30초 안에 잡혀 죽는다.

 

“너, 역시 간부해라.”


“뭐?”


“그 정도 배짱과 짱구면 간부 자격이 충분해.”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제정신인가? 자기 부하들이 몰살당했는데?

 

“아, 그것들 신경은 쓰지 마. 쓰레기들이니까.”


“쓰레기…….”


“약해빠진 놈들은 쓸모없다.”

 

아토믹이 타죽은 시체를 짓밟으며 말했다.

 

“노력도 안 하고, 재능도 없어. 심지어 멍청하지.”


“…….”

 

“이런 놈들 서른보다, 너 하나가 훨씬 낫지.”

 

그가 날 가리키며 웃었다.

 

“조직엔 너처럼 배짱 있는 젊은이가 필요해.”


“그래서, 용서해주시겠다?”


“그럼! 이건 뭐, 사고라고 해둘까? 쩝.”


부하가 서른이 넘게 죽었는데, 그냥 넘어가겠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하긴, 간부 중에 제정신인 놈이 있을까?

 

“널 죽이고 싶지 않다, 리스.”


그건 진심이었다.

 

이 남자는 흉포할지언정, 거짓말쟁이는 아니었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제대로 키워주마.”

 

이게 유일한 길이다.

 

내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리제는 알아서 살 테고, 난 아토믹 밑으로 들어간다.

 

이걸로 내 죄는 덮인다, 살아남을 수 있다.

 

“근데 말이지.”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말했다.

 

“이젠 너한테 명령받기 싫거든.”

 

“호오.”


“난 앞으로, 누구한테도 머리 숙이지 않겠어.”


설령 그러다가 죽더라도.

 

이제부턴, 내 뜻대로 살 거다.

 

이게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도.

 

여기서 내가 죽더라도.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겠어.

 

이게 나의……본심이다.

 

“그러니까, 제안은 거절한다.”


“그렇군. 하아, 아까워…….”


아토믹이 상의를 벗어던졌다.

 

“전도유망한 젊은이를 죽이는 건, 취향이 아닌데.”

 

“나도 늙은이 죽이는 취향은 없거든.”


“하! 피차일반이다, 이거군?”

 

리제,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나 같은 건 잊어버리고.

 

네 멋대로, 좆대로 살아.

 

나는 그거면 충분해.

 

“선공은 양보해주마, 애송아.”


철완의 아토믹. 

 

내가 넘지 못할 벽이 말했다.

 

 

 

 

 ------

 

 




9.

 

쿠웅― 저 멀리서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뭐야, 이 소리는?”


“습격인가? 시끌시끌하구먼.”


나는 그 소리로부터 달아났다.

 

“오빠…….”

 

나 때문에, 오빠가 죽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돌아갈 순 없어.

 

돌아가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매번 그렇듯 나는 무능하니까.

 

“들었어? 어떤 미친놈이 조직을 건드렸다는데!”


“진짜냐? 와, 별 또라이 자식이 다 있네.”

 

“아토믹이 지려나?”


“병신아, 그럴 리가 없잖아. 간부인데.”


철완의 아토믹, 나도 그 사람은 알고 있다.

 

맨손으로 곰을 때려죽였다는 소문이나, 단신으로

마흔 명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빠도 나름 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괴물을 이기진 못해.

 

“이거면, 되는 거야?”


그때, 발걸음이 멈췄다.

 

이대로 도망치면 되는 걸까?


도망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돼?


가족도 없이, 혼자서?

 

“…….”


다시 폭음이 울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지만.

 

나는―

 

 

 

 

 

10.

 

“자, 마음대로 해봐. 뭐부터 해볼 테냐?”

 

아토믹이 양팔을 펼치며 말했다.

 

씨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스킬은 그렇다쳐도, 기량 차이가 너무 난다.

 

오러만 쓸 수 있었어도. 열심히 좀 살 걸.

 

후회해봤자 너무 늦었지만.

 

‘저 녀석, 역시 날 얕보고 있어.’

 

방심은 곧 기회. 

 

그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한다.

 

“오?”


쿠당탕!

 

나는 상자를 걷어차, 무기를 바닥에 흩뿌렸다.

 

그리고 방패를 들었다.

 

“방패라, 그게 최선이냐?”


“그래.”

 

“쯧, 그런 걸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아토믹이 몸을 웅크렸다.

 

“날 너무 얕보지 말라고, 애송아!”


쿵― 놈이 날 향해 돌진했다.

 

“얕본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방패는 페이크다.

 

놈이 달려든 순간― 방패를 내던졌다.

 

“하! 자포자기냐?!”


퉁, 그가 가볍게 방패를 튕겨냈다.

 

그 순간 얼굴 쪽이 비었다.

 

“어?”

 

몸에 힘을 빼, 바닥에 밀착한다.

 

이어서 힘껏 발차기를 날려― 안면에 꽂아 넣었다.

 

“큭?!”

 

쿠당탕! 놈이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비껴갔다.

 

내 힘만으론 상처를 입히기 어렵다.

 

그렇다면, 놈의 힘을 이용한다.

 

“크하하하……두 번이나 당하다니! 두 번이나!”

 

아토믹이 웃으며 벌떡 일어섰다.

 

제대로 들어갔는데, 상처 하나 없다니.

 

“아, 역시 아까워.”


“뭐가?”


“넌 나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다.”

 

그가 터벅터벅, 내게 다가왔다.

 

“아깝지 않냐? 목숨이, 너의 그 재능이!”

 

“안 아까워.”


리제를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주마.

 

내 목숨도, 남의 목숨도.

 

얼마든지 바칠 수 있다.

 

“나불거리지 말고 덤벼, 틀딱 새끼야.”


“흥, 아직 마흔이란 말이다. 나는!”


또 온다, 방금 전 그거다.

 

같은 수가 두 번이나 통할 거란 생각은 버려라.

 

나는 메이스를 집어 올렸다.

 

“으라아아!”

 

픽― 파바밧!

 

메이스가 허공을 갈랐다.

 

뭐, 뭐야? 돌진하면서 옆으로 움직이다니!?

 

“내가 돌진밖에 못하는 바보라고 생각했냐?”

 

어느새 뒤로―

 

“세상은 넓다, 애송이!!”


콰득― 콰드드드득―!!

 

옆구리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이어서, 나는 저 멀리 날아가 굴렀다.

 

“카하악!?”

 

내장이 터졌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씨발, 씨발. 이건 진짜 너무 아픈데.

 

다리에 힘을 빼서 충격을 흘려보냈는데도.

 

너무 아파서, 숨쉬기가 힘들다.

 

이 미친 불곰 새끼, 무슨 힘이 이렇게 좋은―

 

“헉!”


놈이 날아든다― 쿵! 옆으로 굴러 피했다.

 

“좋은 센스다. 내장을 터뜨릴 기세로 쳤는데.”


“허억, 커윽―”

 

“하지만 그 정도론 부족하단 말이다.”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기로 쓸 만한 건? 딱히 없다.

 

도망칠 곳? 있긴 하지만, 붙잡힐 거다.

 

진짜 지랄 맞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방법이 안 떠올라!

 

“기개만으론 이길 수 없다.”


아토믹이 손을 풀며 말했다.

 

“적에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 뭔지 아나?”


“알 게 뭐야.”


“정답은, 적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 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 예상을 뛰어넘어라. 그럼 이길 수 있다.”


“허, 적한테 조언이라니.”


“어르신의 말씀이다. 새겨듣도록.”


그거 참 고맙수다, 니미 씨발놈아.

 

“그럼, 간다!”


쿵! 또 다시, 놈이 달려들었다.

 

“젠장!”


파밧, 손에 쥔 모래를 뿌렸다. 놈이 손을 들어 막았다. 

 

적의 예상을 뛰어넘으라고?

 

오냐, 그렇게 해주마. 

 

옆으로 구른 다음, 일어나 달려갔다.

 

“도망치는 거냐?!”


“전략적 후퇴라고 불러!”


지금 정면에서 덤벼봤자 답이 없다.

 

다리다. 아토믹의 약점을 노려야한다.

 

“으라아아아!”


그때, 내 위로 그림자가 떠올랐다.

 

이 미친 새끼가! 건물 파편을 던졌어?!

 

“우아아악!?”

 

콰앙! 파편이 부서지며 튀어 올랐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나는 그 틈을 타 도망쳤다.

 

“어디 가는 거냐? 리스!”


무기가 떨어진 곳. 나는 무기를 마구 주웠다.

 

“으라아!”

 

팟, 파앗! 있는 힘껏, 무기들을 던졌다.

 

“쯧, 시시하군!”


아토믹의 팔을 뚫을 순 없어.

 

노리는 게 얼굴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라.

 

“제대로 하란 말이다, 애송이!”


다시 온다. 놈이 돌진한다.

 

아직, 조금만 더. 기회는 한 번이다.

 

“지금!”

 

“엇!?”


바닥에 있던 창의 끝을 밟자, 창이 튀어 올랐다.


푹! 창이 놈의 오른다리에 박혔다.

 

“큭!”


됐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 제법이지만, 얕다!!”


“뭣!?”


거기서 몸을 날리다니―

 

콰아앙―!! 나는 벽을 뚫고 날아갔다.

 

미친 새끼, 터프한 것도 정도가 있지!

 

“으, 으그으으으―”


왼팔이 부러졌다, 이번엔 확실했다.

 

가슴이나 배였으면 방금 그걸로 죽었다.

 

“후우, 살아있냐? 리스.”


“이, 씨발― 개새끼야……!”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아드레날린 덕분에 고통은 덜하지만, 그렇다고 충격까진 어떻게 할 수 없다.

 

“오호, 살아있군! 짜식, 전력으로 쳤는데!”


그나저나 아까부터 이상하다.

 

이 자식, 왜 마무리를 안 내는 거지?


설마…….

 

“일부러, 봐주고, 앉았어…….”


“들켰나? 이거 참, 나름 숨긴 건데.”

 

아토믹, 이 빌어먹을 새끼.

 

애초부터 진지하게 안 싸웠다, 이거잖아.

 

“누굴, 끅, 병신 취급하는 거야…….”


“널 인정하니까 봐주는 거다. 애송아.”


팔은 부러졌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린다.

 

너무 유리해서 비명이 나올 지경이다. 참나.

 

“이제 힘의 차이는 충분히 느꼈겠지?”


“…….”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난 아토믹을 이길 수 없다.

 

“마지막 제안이다. 항복하고 날 따라와라.”


“아이고, 관대하셔라.”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넌 역시 아까워.”

 

놈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러도 못 쓰는 주제에, 날 상대하는 그 기개.”


“더해, 전투에 적응하는 그 천부적인 재능.”


“스킬은 없다지만……그 정돈 흠결도 아니다.”

 

꼭 무슨 물건 평가하듯 말하네, 거참.

 

“나는, 비매품이거든.”

 

“이번에 거절하면, 진짜 죽일 거다.”


순간,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심이다. 이번에도 거짓말은 아니다.

 

“자, 대답은?”


“……알겠어, 알겠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항복할게, 내 패배다.”


“하! 그렇게 나오셔야지.”

 

아토믹이 내게 손을 뻗었고―

 

동시에, 박차고 일어나 단검을 뽑았다.

 

“뒈져!!”


“!”


항복은 페이크다.

 

단검으로, 목을 단번에 꿰뚫는다―

 

카앙!

 

“어?”

 

“그츰, 므지막끄지 븡신을 므타게군.”

 

이빨로 막았다.

 

이빨로, 단검을 물어서 막았다.

 

씨발.

 

이 새끼, 진짜 인간 맞아?

 

“퉤, 좋아. 네가 선택한 일이다.”


“그러니까, 악으로 깡으로 버텨봐.”


덥석, 아토믹이 내 멱살을 잡았고.

 

이어서 있는 힘껏 내던졌다.

 

“컥!?”

 

쿵, 쿠당탕!

 

바닥을 구르다가, 마침내 멈췄다.

 

“하, 진짜 불합리해…….”

 

하긴 언제는 합리적이었나?

 

세상은 늘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

 

그런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새삼 이제 와서, 한탄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고…….”

 

“그게 유언이냐?”


그가 저 멀리서 걸어와, 내 앞에 섰다.

 

남은 수는, 없다.

 

“아까워, 내가 아니라 다른 놈이었으면 성공했을 텐데.”


“그러게, 썅.”


“뭐, 나쁘진 않았다, 고. 기억해두마.”


놈이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제발 한 방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


이 목소리는, 설마.

 

“리제!?”


“엉?”


푹! 리제가 식칼로 그를 찔렀다.

 

하지만 얕다. 옆구리가 조금 베인 수준이었다.

 

“아, 안 들어가?!”


“이 꼬맹이는? 아, 네 동생이었던가?”


“리제, 이 병신년아!! 뭐 하러 돌아온 거야!?”

 

너 하나 살리자고 이 지랄을 했는데!


머저리 같은 년, 이런 빡대가리 같으니!

 

“헤헤, 미안.”


“쯧! 방해하지, 마라!”


아토믹이 리제를 들어, 바닥에 처박았다.

 

그리고 연달아 머리를 발로 짓밟았다.

 

“사나이끼리의 승부에!!”


“그, 그만.”


“나서지 말란 말이다!!”

 

“그만해.”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리제.

 

리제가 죽는다.

 

안 돼.

 

“이 빌어먹을 년―”

 

“그만.”


가슴이 얼어붙었다.

 

한 순간에 모든 감정이 가라앉았다.

 

“내 동생한테, 손대지 마.”


“이게 무슨―”


뿌득! 아토믹의 손목 관절이 빠졌다.

 

“뭐, 뭐야? 어떻게 한 거냐―”


선명해진다.

 

그 시절의 내가.

 

페이스리스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 애송이가!”

 

놈이 주먹을 휘둘렀다.

 

검성의 공격은, 이보다 훨씬 빠르고 매서웠다.

 

손바닥으로 주먹을 흘려보냈다―

 

“이건?!”

 

이어지는 연타도, 전부 흘려보냈다.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무슨 짓을 한 거냐.”


“…….”


“무슨 짓을 했냐고 물었다!”

 

이번에도, 모든 공격을 흘려보냈다.

 

한 번도 쓴 적 없는 기술이다.

 

그런데도, 모든 게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흡!”


놈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가볍게 맞은 것뿐인데, 놈이 뒤로 밀려났다.

 

“커어억……!”

 

그 틈에, 나는 리제를 저 멀리 던졌다.

 

“너, 정체가, 뭐냐?”


“……한 번도.”


“뭐?”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망령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다.

 

그렇기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이, 페이스리스다.

 

나는 리제가 가지고 왔던 식칼을 들었다.

 

“덤벼.”


“하!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이걸로 끝낼 테니까 말이다.

 

아토믹의 상체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으라아아아아아―!!”


보이는 것은 잔상뿐.

 

순간, 거대한 주먹이 내 앞에 나타났다.

 

스걱―

 

찰나를 베었다.

 

아토믹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허어.”


“이거 참, 정말 아까워.”

 

파악! 그의 목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조금은 진심으로 할 걸 그랬어.”
 
“…….”


“조직은, 너희 둘을 포기하지 않을 거다.”


“그렇겠지.”

 

죽는 순간까지 쫓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전부 죽여주마.”


“모조리 죽여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주마.”

 

내 대답에, 아토믹이 웃었다.

 

“하! 이거 완전 미친놈이 따로 없군.”

 

“그래도 뭐…….”


“……건투를 기원하마.”


쿵.

 

아토믹이 쓰러졌고, 나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끝났다.

 

“끄으윽…….”


긴장이 풀리자마자 고통이 밀려왔다.

 

씨발, 더럽게 아프네. 나 죽는다.

 

“방금 그건, 대체 뭐야?”


페이스리스. 나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죽은 순간을 제외하면 그때의 기억은 없었다.

 

그 잠깐 사이에, 그때의 인격이 깃든 건가?

 

강했다. 순간이지만 아토믹을 압도했다.

 

대체 미래의, 아니, 과거의 나는 얼마나 강했던 거지?

 

하, 그래. 

 

회귀한 보람은 있구나.

 

나는 리제의 뺨을 톡톡 쳤다.

 

“일어나, 리제.”


“오, 빠아……이거 너무 아파…….”


피로 떡이 됐지만, 리제는 살아있었다.

 

“얼굴 말고 볼 것도 없는데, 젠장.”


“동생이 다쳤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멍청한 년 같으니.

 

나는 리제를 끌어안았다.

 

“왜 돌아온 거야, 죽고 싶어서 안달 났어?”


“가족이니까……나 없으면, 안 되니까, 오빠는.”
 
“아니거든.”


“맞거든.”

 

그래, 이번엔 네가 이겼어.

 

나는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겼다.

 

“이제, 어쩔까.”


“……그러게. 답이 없네.”


나는 불타오르는 술집을 보았다.

 

아토믹이 옳았다, 그들은 언제까지고 우릴 쫓을 것이다.

 

간부까지 죽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있지, 리제.”


“응?”


“네 꿈, 어쩌면 이룰 수 있을지도 몰라.”


그때,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법사,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어, 이번엔.”

 

그런 인생이었다.

 

너를 잃은 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명령에 따라 살인을 반복하는 킬러가 됐고.


―오직 나를 위해 살았다. 

 

“이번엔, 너를 위해 죽일게.”

 

“널 위해서, 모조리 죽여줄게.”


“너는― 내 동생이니까.”


나는 너에게 맹세했고.

 

우리는, 그대로 조금 더 껴안고 있었다.

 

 

 

 

 


 

 

 

 

 

장르는 아카데미/회귀/하렘/판타지/액션.

내용은 대략 회귀한 킬러 리스가 아카데미에서 구르는 내용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