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사실 이 자세와 위치가 아닐수도 있다.

사실 그저 상상일수도.


로도스 도시 국가 연합은 연합을 축하하기 위하여 데메트리오스가 버리고 간 군수품을 팔아 모은 돈으로 기념물을 만들었다. 건축물의 지휘는 린도스의 카레스에게 맡겨졌었다. 그는 20m가 넘는 제우스 상을 건조한 경험이 있는 리시포스의 제자였다. 또한 큰 동상의 제작에 관여한 적이 있었던 로도스의 주민들도 협력했다.


동상의 제작은 약 기원전 292년에 시작되었다. 고대의 설명에 의하면, 로도스의 거상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선, 로도스 항구의 입구 부근에 높이 15미터의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조 받침대를 설치했다. (다른 기록도 있으나 대충 서술함. 방파제 위에 새웠다 카더라.)그 받침대 위에 철제 뼈대를 만들고, 더 얇은 동판으로 겉을 덮었다. 신상의 크기는 약 33m 정도 되었으며, 외장은 데메트리오스 군이 버리고 간 군수품을 사용했다고 한다. 특히 신상의 하부공사에 공성탑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신상을 지을 때 충분한 길이의 경사로를 이용하여 조립이 진행됨에 따라 경사로의 높이를 조절했고, 공사가 끝난 후 이 흙으로 된 경사로들을 모두 치웠다고 한다. 12년 후 이 거대한 신상이 완성되었고, 아래에 나오는 시는 신상에게 헌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 태양이시여, 로도스의 사람들이 당신에게 이 신상을 바칩니다. 올림포스의 신들께서는 전쟁의 파도를 가라앉혀 주셨고, 적들을'물리쳐 주셨으며, 우리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안겨주셨나이다. 바다 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자유와 독립의 횃불이 타오르나이다.'위대한 헤라클레스의 후손들이 바다와 땅을 통합했나이다."

신상이 서있던 받침대는 지름이 최소 18m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아마 원형이었거나 팔각형 모습을 띠었을 것이다. 신상의 발은 대리석으로 깎았고, 얇은 청동 판들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8개의 철골이 발에서 뻗어올라가 무릎과 다리를 이루었으며, 위에서 서로 합쳐지며 몸통을 이루었다. 각각 독립적으로 주조된 청동 판들에 뚫린 구멍에 고리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서로 이어졌다. 신상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맨 아래쪽 청동판들은 약 25mm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고, 무릎 위의 청동판은 약 20mm, 최상단의 판들은 약 6.5mm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어깨나 목처럼 중요한 부위는 위쪽에 위치했을지라도 일부러 두께를 더 두껍게 만들었다고.

로도스의 거상은 54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기원전 224년 로도스에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수많은 관공서, 주택, 신전들이 파괴되었다.

이와 같은 손상은 이 거상도 피해갈 수 없었는데, 이 거상의 양 무릎 부분이 무너지며 땅 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이 신상을 복구할려했는데, 델포이의 오라클이 '로도스인들이 헬리오스를 빡치게 했다'라고 한 예언 때문에 시민들은 이 신상을 다시 세우는 것에 대해 반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