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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입니노. 슬럼프 와서 한참 못 쓰고 있던 링 애호 소설임미다. 


2. 아무리 쓰고 싶은 게 많고, 글이 잘 안 나와도...결국 내 근본은 링 애호 소설가니까. 중간에 한 번 끊고 갈 타이밍은 있겠지만, 연중런만은 안 치겠다는 마인드로 끝까지 달리겠슴. 


3. 최근 피폐물 퍼먹다가 내상이 세게 왔음. 그거 치유하려고 이번 화랑 다음 화에는 달달함을 평소 이상으로 쑤셔박았으니, 느끼한 거 싫어하는 명붕이들은 주의 바람. 


4. 슈 편도 슬슬 끝낼 때구만. 3화 안으로 빌드업은 다 끝날 거고, 클라이맥스에 후일담 한 편 쓰면 에피소드 대충 마무리될 듯 함. 회서리 스토리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스포 싫어하는 명붕이들은 한 번 더 생각하고 읽어주길 부탁할게. 


5. 소재 추천, 피드백, 댓글, 아카콘 모두모두 환영해. 특히 피드백은 글쟁이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양식이니, 적극적으로 해 줬으면 좋겠다. 


6. 항상 내 모자란 글 읽어 주는 명붕이들, 정말 고맙고 사랑해. 


그럼 오늘 글도 즐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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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천년기, 1102년 봄. 


5월 12일 04:11. 


염국 대황성. 



잠이 깼다. 


몽롱한 와중, 가슴 쪽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드니, 가슴께에서 새근새근 소리를 내고 있는 파란 뭔가가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버블?” 



처음에는 링이 또 버블로 변한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녀가 얕게 호흡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피부를 간지럽히고. 


작게 뒤척일 때마다 내 몸에 눌려 있는 그녀의 뾰족한 귀가 조금씩 움찔거린다. 


음, 버블은 머리털이 없지. 


이목구비도 따로 없고. 


그럼 이건 큰 링이구나. 


내 가슴을 베고 잠들어 있는 건가. 



“...헤.” 



사고회로가 뚝뚝 끊기는 기묘한 느낌에 헛웃음이 나온다. 

  

상황 판단이 이렇게 안 되는 걸 보니 잠이 덜 깨긴 했나 보네. 


분명히 어제 저녁도 거르고 푹 잤는데 이상하게 피곤하단 말이지. 


그저께 밤을 새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오늘 너무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몰라, 그게 뭐가 중요해. 


잠이나 더 자자. 


그렇게 내가 다시 눈을 감은 그 순간, 링이 뒤척이면서 희한한 잠꼬대를 했다. 



“...으응, 그대여…막내 기저귀 좀….” 



…?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막내 기저귀라니. 


너무 엉뚱한 소리라 나도 모르게 작게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 때문에. 



“...어?” 


이런, 링이 깨버렸다. 


느닷없이 고개를 쳐들고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이내 시선을 내게로 돌리는 그녀. 


반쯤 풀려 있던 눈동자에 점점 빛이 돌아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잠이 싹 달아나 버린 모양이다. 


아차 싶은 것도 잠시, 나는 쓰게 웃으며 그녀를 쓰다듬었다. 



“미안. 더 자도 돼.” 



아직 새벽인 듯하고, 딱히 급한 일도 없으니 좀 더 쉬어도 될 터. 



“아냐. 꿈은 충분히 즐겼으니까, 이걸로 됐어.” 



하지만 가볍게 고개를 저은 링은 이내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가 온 몸을 내리누르고, 살랑거리는 꼬리가 내 다리를 칭칭 감는 게 느껴진다. 


땀 냄새가 살짝 섞인 향기로운 살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통에, 나까지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아침부터 엄청 달라붙네. 


나야 좋지만. 



“재밌는 꿈이라도 꾼 거야?” 


“응. 기묘하면서도 유쾌한 꿈이었어. 온통 자갈이 깔린 가을일진대, 한바탕 봄의 정취가 묻어나는 긴 꿈이었지. 궁금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궁금할 리가 없다. 



“궁금해. 들려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링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 풍경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뜬다는 듯. 



“꿈에서 내가 있지, 어느 초가집에 누워 있었거든.”  

“초가집?” 


“응. 황토와 풀잎의 향이 맴도는 작은 방이었어. 그 방 한가운데에 모로 누워서, 멍하니 고민하고 있었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 


“예전에 이야기했었지?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그 문제에 대한 풀이를 찾았다고. 그리고 그대의 존재가 그 풀이에 들어맞는 완벽한 답이 되었다고. 이제 와서 새삼스레 돌아볼 필요도 없는 케케묵은 수수께끼였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 의문이 드는 거야.” 


“무슨 의문?” 


“내가 왜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지, 하는 의문. 세상 만물에 곡절이 있을진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데도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한데, 알 수가 없더라고.” 



이건 또 희한한 선문답이네. 


내용도 알쏭달쏭한데, 설명하는 링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워서 듣고 있으니까 왠지 졸려. 


내가 눈을 끔뻑거리자, 링이 꼬리 끝으로 내 정강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아직 잠들면 안 돼. 진짜 재밌는 부분은 여기부터니까.” 


“미안. 집중할게.” 


“그렇게 그 고루한 문답을 홀로 반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어떤 할머니가 들어오더라고.” 


“할머니?” 


“응. 그 할머니가 품에 사내아이 하나를 안고 들어와서, 나한테 그러더라. ‘축하드려요, 사모님. 건강한 넷째 아드님입니다’. 그대여,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할 수 있겠어?” 


“...어우. 잠이 확 깨네.” 


“나도 당황스러웠어. 지평선이 검게 물들고, 빙산이 녹아 바다를 이루는 광경을 봤을 때도 평온했는데,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지 뭐야. 그렇게 내 마음을 뒤흔드는 말은 난생 처음이었다니까.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충격적이네. 


내가 그런 꿈을 꿨으면 퍼퓨머한테 찾아가서 상담받았을지도 몰라. 


갑자기 아들이 생긴 것만 해도 그런데, 나도 모르는 자식이 셋이나 더 있었다고? 


애 아빠는 누구고, 이 할머니는 또 누구며, 여기는 또 어딘지. 


그런 걸 고민하다 혼란스러워서 미쳐 버렸을지도. 


그런 내 반응에 링이 깔깔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할머니가 나한테 아기를 내밀길래 일단 받았지. 그런데 세상에. 그 아이가 너무 예쁜 거야. 살면서 본 그 어떤 기암괴석이나 청산유수보다도, 단 칠 주야 만에 강남의 산야를 능히 천하제일경으로 바꾸는 꽃과 나비보다도.” 


“...응.” 


“똘망똘망한 회색 눈동자에, 살구를 떼어 빚은 듯한 피부. 오밀조밀한 손가락 발가락 하며, 나를 닮은 뾰족한 귀까지.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데가 없더라고.” 


“그래서 애 아빠는 누구였는데?” 


“계속 들어봐. 그래서 일단 나는 아기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갔지. 그런데 거기 누가 있었게?” 



들으면 들을수록 알 수가 없는 꿈이네. 


뭐, 그래도 링이 신나 보이니까 된 거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나였지만, 뒤이은 그녀의 한 마디에 또 한 번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고. 마당을 꽉 메운 채로.” 


“...쉐이 남매들이?” 

“응. 큰오빠랑 왕 오빠는 마주앉아서 진지하게 아이 이름을 정하고 있었고, 슈는 우리 막내랑 같이 나 먹을 죽을 끓이고 있더라. 니엔은 각종 아기 용품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하나하나 헤아리는 중이었고. 우리 일곱째 동생은 아이 옷을 지으며, 시는 아이 방에 걸어 놓을 그림을 그리는 중인 것 같았어.” 


“와. 진짜 다 모였네.” 


“맞아. 그 풍경은 나로서도 뜻밖이었어. 뭐니뭐니해도, 우리 가족은 지난 수백 년간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없었으니까. 갑작스러우면서도 어찌나 기분이 들뜨던지, 마치 갓난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 


“가족 상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무슨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아. 행복했겠네.” 


“응. 왁자하게 떠들던 남매들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우르르 몰려들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고생 많았다, 득남 축하한다, 이름 생각해 뒀는데 좀 봐줘라, 아니 배부터 좀 채워라. 정신이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먹먹해지더라.” 



굳이 내가 언급할 필요도 없었으려나. 


링의 표정이 이미 전부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그녀가 얼마나 큰 기쁨을 느꼈는지. 



“그리고…그대가 나타났지.” 


“내가?” 


“응? 그대라면 예상했을 줄 알았는데. 용 그림의 눈동자는 가장 마지막에 찍어야 멋이 사는 법이잖아. 그런 이치야.” 



화룡점정이라 이건가. 



“품에는 쌍둥이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을 안고, 이제 막 젖을 뗀 듯한 사내아이 하나를 데리고 있었지. 이마에는 큰 흉터가 하나 나 있었는데, 그래도 변함없이 훤칠하더라.” 


“흉터라.” 


“안고 있던 아이를 슈에게 맡긴 그대는, 조용히 나한테 다가와서 이마를 맞댔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대의 마음을 알 수 있었지. 그대의 표정이 넘치도록 이야기하고 있었거든. 고맙다고, 너 덕분에 정말 행복하다고.” 


“...링.” 


“그때 조용하던 내 품 속의 아기가 울면서 똥을 쌌지. 니엔이 폭소하면서 기저귀를 건넸고. 그대가 황급히 아이를 받아 들고 기저귀를 채우더라. 꿈은 거기서 끝났어.” 



황당무계한 꿈이네.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 인과관계도 맞지 않고 어딘가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길몽이야. 


모든 것이 다 좋게 끝나서 나와 링이 맺어지고. 


같은 시간을 살며 가정을 이루는 꿈이라니,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잖아. 


직접 꿈을 꾼 것도 아닌데, 자꾸만 피식피식 미소가 새어나온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링이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내게 바싹 다가왔다. 



“어때, 그대여? 이 꿈의 이치를 알겠어?”  



이젠 나한테 해몽을 바라는 거니.


나도 네 꿈에 취해서 헤롱대기 바쁜데. 


하지만 문(問)이 가는 길에는 항상 답(答)이 뒤따라야 하는 법. 


하물며 그 물음을 손에 쥔 이가 링인 이상에야, 말을 받아 주지 않을 수는 없지. 


나는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주었다. 


 

“...예지몽 아냐, 그거?” 


“어머.” 



반쯤 농담 섞어 한 대답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링의 표정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보면 한 방 먹었다는 듯한. 


또 다르게 보면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작은 감정표현이, 나를 진지하게 만들었다. 


그래, 좀 허무맹랑하면 어때. 


꿈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지지 말라는 법 있어?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든, 우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을 바라든. 


결국 우리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예지몽이야. 틀림없어.” 



그런 생각에 한 번 더 쐐기를 박자, 링이 얼떨떨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그러니까 우리도 그 꿈이 현실이 될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지?” 



물론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괜찮아. 


이 앞에 그 어떤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해도, 나는 네 손을 놓지 않을 테니까. 


그런 마음을 담아 그녀의 이마에 살짝 키스하자, 그제야 활짝 웃는 링. 



“응, 그 말대로야. 고마워, 그대여. 그대가 내 현재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좋-아, 기운이 나는걸. 그럼 뭐라도 하러 가 볼까.” 



힘차게 몸을 일으키더니, 바닥에 떨어진 끈을 주워 머리를 묶기 시작하는 링. 


느닷없는 돌발행동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응? 뭐 하게?” 


“대황성 한 바퀴 싹 돌면서 데몬이나 좀 잡고 오려고. 아침 먹기 전까지 돌아오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아하. 그런 거라면 나도 같이…잠깐만, 아침?” 



아침. 


밥? 


슈의 아침밥? 


순간 어제 점심에 벌어졌던 참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끔찍한 상상이 온 몸을 내달린다. 


하루 세 끼 중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끼니라고 한다면, 일하기 전 먹는 첫 끼인 아침이고. 


그렇다는 건, 오늘 아침 식사도 어제 점심 이상으로 고통스러울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그 점심에 먹은 칼로리 소화하느라 산책도 하고, 데몬도 잡고, 링이랑 밤새도록 만리장성 쌓은 걸 생각하면….



“그대여, 표정이 굳었어. 괜찮아?” 



링이랑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 참극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설령 내가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 아냐. 난 남아서 아침밥 준비할게.” 


“...역시, 그대는 정말 현명한 사람이구나. 고마워.” 



내 말의 의미를 즉시 이해한 듯, 순식간에 옷을 다 차려입은 링이 방긋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다 같이 살려면 뭐라도 해야지. 그럼 이따 봐, 링. 몸 조심하고.” 


“걱정 마. 금방 해치우고 올 테니까.”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미소와 함께 손에 지팡이를 든 채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그녀. 


잠시 그녀의 빈자리를 지켜보던 나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옷을 챙겨입었다. 


슈가 부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주방을 점거해야 했다. 


그리고 내 신속한 행동은 즉시 결실을 맺었다. 



“하암…어, 형부? 일찍 일어났네.” 


“좋은 아침이야, 슈.” 



2층 손님방에서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오던 슈와 딱 마주친 것. 



“응. 잠자리 안 불편했지? 밤에는 별 일 없었고?” 


“너무 편하더라. 덕분에 푹 잤어. 고마워.” 



얼굴 보자마자 내 안부를 걱정하는 슈의 상냥함에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바로 공사 들어간다. 



“피곤해 보이네, 슈.” 


“조금. 어제 잠을 설쳐서.” 


“...어제 우리가 많이 시끄러웠지? 미안.” 


“아냐아냐. 오히려 덕분에 진짜 좋은 구경 했다니까. 시골은 다 좋은데 오락거리가 없어서….” 



…? 


얘 뭐야. 


“슈야,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니.” 


“히히, 알면서.”


“...관음했구나, 이 양아치가.” 


“에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실례 좀 했어.” 



엉큼한 아저씨 같은 표정을 한 채, 팔꿈치로 나를 툭툭 치는 슈. 


예쁜 얼굴과 대비되는 상당히 유감스러운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뭐, 그래.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슈가 그걸로 이상한 짓거리 할 만큼 나쁜 애도 아니니까. 



“...아무튼 들어가서 좀 더 자. 오늘 아침은 내가 만들게.” 


“응? 맞다, 그러고 보니 형부 요리도 잘 한댔지.” 


“잘은 못하지만, 즐겁게는 할 수 있어. 어제 점심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보답으로 나도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안 될 거 없지. 대신 양은 넉넉하게 만들어 줘야 해. 농사꾼은 배고프면 일 못하니까.” 



의외로 선선한 승낙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걱정 마, 슈. 푸짐하게 준비할 테니까.” 


“좋은데? 이거 기대되는걸. 주방 도구나 식재료 위치는 다 알아?” 


“아니.”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양념은 맨 왼쪽 찬장, 칼이랑 도마는 오른쪽 아래 수납장. 냄비는 그 옆에 있어. 건어물은 주방 바깥 다용도실이고. 냉장고에 없는 채소는 뒷마당 텃밭에서 뽑아서 쓰면 돼.” 

  

“응. 쉬어, 슈. 준비 다 되면 깨워 줄게.”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러 가는 슈를 뒤로하고, 나는 주방으로 향했다. 


부엌은 슈의 똑부러지는 성격을 보여주듯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로도스 사내 식당을 방불케 하는 모습에 조금 감탄하면서도, 곧바로 메뉴 구상을 시작한다. 


뭘 만들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단국식 아침식사를 대접하기로 결정했다. 


그쪽이 더 자신 있기도 하고, 단국 요리를 먹어 볼 기회는 꽤 드무니까. 


기껏 만난 인연이니, 슈와 좌락에게 신선한 체험을 시켜 주고 싶었다. 


어느 나라 스타일로 할지 결정하니, 메뉴를 정하는 건 쉬웠다.  



“...밥에 북엇국, 불고기, 야채 겉절이. 나물 무침에…어제 먹은 린수 남은 거 있으면 그것도 조림으로 해서 내놓으면 되겠다.” 



다용도실에 가 보니 말린 린수 몇 마리가 있었는데, 조금 뜯어서 맛을 보니 뻣뻣하면서도 고소한 감칠맛이 났다. 


냉장고에는 도축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버든비스트 고기가 있었고.  


텃밭에 있는 신선한 채소와, 어제 슈와 함께 잡아 온 린수까지. 


슈네 집에는 없는 게 없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면 되겠지. 


바로 고기를 손질한 뒤, 양념을 꺼내 재우고. 


말린 린수를 북북 뜯어 모아 둔 다음 채소를 썰기 시작했다. 


톡톡톡, 칼끝이 도마 위에서 기분 좋은 리듬을 새긴다. 



“from the open shore, I have learned to fly, soaring past the great divide~” 



괜히 흥이 오른 탓인지, 나도 모르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요리가 정말 좋다. 


재료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고, 정갈하게 손질된 식재료들이 한데 합쳐져 어우러지는 순간에는 가슴이 뛰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열심히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보면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뿌듯해진단 말이지. 


원래 은퇴하면 동네 선생이나 해 볼까 생각했었는데, 진지하게 요리에 도전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주방 가득히 맛있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슈 씨, 다녀왔습니다. 고추밭은 일단 이상 없는데, 이따 비 오기 전에 한 번 더 점검해야 할 것 같…박사님?” 



때마침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좌락이 돌아왔다. 



“안녕, 좌락.” 


“아니, 슈 씨는 어디 가시고 박사님이 주방에….” 


“오늘 아침만 내가 만들기로 했어.”  



뜻밖이었던 걸까. 


잠시 멍하니 나를 쳐다보던 좌락의 얼굴이, 갑자기 활짝 피었다. 



“아, 그러니까 오늘 아침은 식폭행 안 당해도 된다는….” 


“그래. 그러려고 적당히 준비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사님. 저도 돕게 해 주세요.” 


“아냐, 대충 다 끝났어. 가서 쉬어도 돼.” 


“아닙니다. 꼭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럼 이거 채소 좀 버무려 주라.” 


“알겠습니다!” 



저런, 불쌍한 녀석. 


평소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렇게까지 간청하는 걸까. 


재빠르게 손을 씻고 해맑은 얼굴로 겉절이를 무치는 좌락을 보니, 절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너, 잘도 지금까지 슈 밑에서 버텼구나. 쉐이 애들도 싫어하면서.” 



그런 마음에서 한 말인데, 좌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제가 쉐이의 파편 분들을 싫어한다고요?” 


“아니었어?” 


“제가 그분들에게 엄격한 태도를 견지하는 건, 그분들의 존재가 염국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는 전혀 싫어하지 않아요.” 



옥문에서는 링 씨나 총웨 종사님께 신세를 지기도 했고요. 


중얼거리며 뺨을 긁는 좌락. 


이건 또 의외네. 


하긴, 그저께 상촉에서 만났을 때도 링한테 딱딱하게 굴긴 했지만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하지는 않았었지. 



“그리고…박사님도 이제는 아시겠지만, 슈 씨는 정말 좋은 분이잖습니까.” 


“그렇지.” 


“배울 점도 많고, 성실하시고, 인자하시고. 처음에는 저한테 이것저것 시키시는 게 좀 불편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오히려 그 덕분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게 뭐람. 


슈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활달하기 그지없던 좌락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게 아닌가. 


새하얀 뺨에는 살짝 붉은 기운이 감돌았고, 눈동자는 지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오호, 이 녀석 봐라. 



“얼굴도 예쁘고, 그렇지?” 


“네, 외견도 정말 아름다우시…잠깐, 박사님!” 



살짝 찔러봤을 뿐인데, 상당히 재밌는 반응이 돌아왔다. 


홍당무가 된 채 온 몸을 바들바들 떠는 좌락을 보니,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음, 풋사랑이구만. 


좋아, 아주 달달해서 마음에 들어. 



“조용히 해, 슈 깨면 어쩌려고.” 

“...크흠, 아무튼 이런 주제는 삼가 주시죠.” 


“왜? 내가 놀려먹기라도 할까 봐? 걱정 마. 그런 짓 안 해.” 


“표정에 장난기가 가득하신데요. 빈말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쳇. 


눈치는 또 기묘하게 빨라 가지고. 



“안심해도 돼. 내 동서 될지도 모르는 애를 내가 뭐하러 놀리냐.” 


“...*옥문 욕설*” 



그렇게 좌락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자니, 어느새 음식 준비가 끝났다. 



“좌락, 가서 슈 좀 깨워줘. 내가 상 차릴게.” 


“예. 링 씨는요?” 


“슬슬 돌아올 텐데…아, 왔다.” 



때마침 느긋한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링. 


가을 하늘처럼 맑은 얼굴에는 여느 때처럼 유유자적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질 정도로 예쁜 미소가. 


절로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숨기지 않으며, 나는 그녀를 반겼다.  



“어서 와, 링. 고생 많았어.” 


“후후, 고생이랄 것까지도 없어. 그냥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왔을 뿐이야. 그대야말로…어머.” 



신발을 툭툭 털던 링이 갑자기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리더니, 방긋 웃었다. 



“...이거, 진수성찬의 냄새가 나네. 그대여, 또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별거 없어. 그냥 불고기랑 린수 조림이랑 이것저것. 평소에 늘 먹던 그 맛이야.” 


“익숙함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보물이지. 무릇 군자라 함은, 오늘도 동녘에서 태양이 떠올랐다는 사실에 가장 감사해야 하는 법. 오히려 오랜만에 그대가 팔을 걷어붙이고 차린 상을 받을 수 있다니, 더없이 기대되는걸.” 



아, 진짜. 


어쩜 말을 저렇게 예쁘게 할까. 


당장이라도 그녀를 마구 쓰다듬고 싶지만, 일단 밥부터 먹이자. 


어제 하루 종일 만리장성 쌓고 아침 산책까지 갔다 왔으니, 분명 배고플 거야. 



“응, 고마워. 손 씻고 앉아 있어. 금방 상 차릴게.” 


“도와줄게.” 


“아냐. 네가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좋겠어.” 


“그대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링을 바닥에 앉히고, 정성껏 준비한 요리를 전부 상 위에 늘어놓았을 때. 


타이밍 좋게 좌락이 슈를 데리고 방에서 나왔다.



“흐아암…형부, 고생했어. 잘 먹…잠깐, 형부. 이걸 혼자서 다 준비한 거야?”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눈을 비비던 슈가, 내가 차려놓은 상을 보더니 경악했다. 


음? 


왜 저러지, 어제 슈가 내준 음식의 반의 반도 안 되는데. 



“혼자 한 건 아니고, 좌락이 도와줬어. 단국식 아침식사인데, 맛있게 먹어 줬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받는 공양인데, 맛있게 먹지 않으면 실례겠지. 고생했어, 형부. 잘 먹을게.” 


“별말씀을.” 


“잘 먹겠습니다, 박사님.” 


“근사한 식사 고마워, 그대여.”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다. 



“으음, 이 맛이야! 좋은 재료와, 천하에 다시없을 명인의 합작이라. 염국의 산야에 단국의 정취가 깃들었으니, 가히 천하제일미라 할 만 하네. 훌륭해, 그대여!” 


항상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링은 이번에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좌락과 슈의 눈치를 보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두 사람은 단국 요리가 처음일 테니까. 


혹여나 입에 맞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먹을 만 해?”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으음, 음! 음!” 



아예 밥그릇에 불고기를 한가득 쌓아 놓은 채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폭식하는 좌락. 



“어머, 어머. 이 고기, 걸작인데. 달달하면서 느끼하지 않고, 짭짤한데도 부담스럽지 않아. 슴슴한 게, 아침식사로 제격이야.” 


“과찬이야, 슈.” 


“이 야채 무침도 훌륭해. 매콤하고 상큼한데, 채소 본연의 아삭함도 그대로 느껴져. 한 입 베어물기만 해도 입맛이 싹 도는걸. 형부, 진짜 요리 잘 하는구나?”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슈. 


걱정했던 게 무안해질 정도로 좋은 반응에, 어쩐지 머쓱해진 나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맛있게 먹어 주니까 좋네. 많이 먹어.” 


“단국 요리라고 했지? 다른 레시피도 알아?” 


“그건 너 로도스 오면 천천히 알려줄게. 단국 요리도 종류가 엄청 많아서, 제대로 가르치려면 시간이 좀 걸리거든.” 


“아하, 그런 식으로 유혹한다 이거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안 갈 줄 알고? 두고 봐, 반드시 쫓아가서 쪽쪽 빨아먹어 줄 테니까.” 


“...슈야?” 



그렇게 왁자하게 떠들며, 즐겁게 아침식사를 한 뒤. 



“양은 좀 아쉽지만, 나머지는 흠잡을 데가 없네. 정말 잘 먹었어, 형부.” 


“하…잘 먹었습니다, 박사님. 나중에 기회 되시면 한 번 더 찾아와 주세요.” 


“근사한 한 끼 식사 고마워, 그대여.” 



만족스러워 보이는 슈 몰래, 우리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식고문 회피, 성공적. 



“나야말로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마워.” 


“좋아, 설거지는 내가 할게. 언니랑 형부는 쉬어.” 


“슈 씨, 저는요?” 


“너는 고추밭 나갈 준비 해야지. 오늘 비 온다고 했잖니. 고추 지지대 손봐야 해.” 


“...네.” 



저런, 불쌍한 좌락….


그렇게 좌락이 터덜터덜 집 밖으로 사라지고, 슈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링은 거실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벽에 저 그림, 왠지 시가 그린 거랑 화풍이 비슷한데. 그 옆에 적힌 글귀도 네 필체랑 닮았고.” 



가을, 수확철이 다 되어 고개를 숙인 논의 벼. 


밀짚모자를 눌러쓴 허수아비가 축 늘어진 소매를 펄럭이고,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란 참새들이 도망친다. 


채색을 하지 않은 수묵화임에도, 계절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는 명화였다. 


링이 살풋 웃었다. 



“훌륭한걸, 그대여. 하루가 다르게 심미안이 트이는구나.” 


“맞혔어?” 


“응. 우리 형제자매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 나와 그 애는 우리 형제자매들 모두에게 시가 적힌 그림 한 폭씩을 선물했었어. 저건 그 애가 슈에게 준 그림이고.”  



오. 


그럼 정확히 얼마나 된 그림인 거지. 


저 시는 무슨 내용이고. 


뜻밖의 흥미로운 주제에 궁금증이 끓어올랐지만, 가장 먼저 입 밖에 도달한 질문은 하나였다.



“넌 어떤 그림을 받았는데?” 


“나? 후후, 별 거 아냐. 어떤 꿈 속의 풍경이었지. 어찌나 난해하면서도 즐거운 꿈이었던지, 시에게 그 정취를 이해시키는 데만 한참 걸렸다니까.” 



링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정도의 꿈이라. 


궁금한데. 



“보고 싶어. 보여줘.” 


“...미안, 내 건 잃어버렸어. 먼 옛날에 강남에서 악단을 만나. 한바탕 흥겹게 춤추다 보니까 없어져 있더라고. 그때 시를 달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그 꿈 이야기도 들려줘.” 

 

“약속할게. 아무튼, 시는 지금도 그 그림들의 복사본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 


“...?” 


“그대라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려나?” 

 


장난스럽게 웃는 링. 


나를 응원하듯 하는 그 미소에 힘입어,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시의 그림이 각각 두 장씩. 


그리고 그림 속 세계를 넘나드는 그 애의 권능. 


답은 금방 나왔다. 



“...아하. 통로 같은 거야?” 



그림 속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의 입구와 출구를 나누어 가짐으로서, 언제든 서로의 처소를 왕래할 수 있도록 해 둔 장치일까. 


뿔뿔이 흩어져도 언제든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고, 보고 싶을 때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도록.  


내 대답에, 링이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통로보단 좀 더 편리하긴 한데, 비슷해.” 


“그래?” 


“응. 저 그림 위에 글을 쓰면 상대와 필담을 나누는 것도 가능하고. 그 밖에도 여러 기능이 있지. 그보다 저 시의 의미, 궁금하지 않아?” 



당연히 궁금하다. 


내가 풀이를 부탁하려고 할 때, 슈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언니랑 형부, 오늘은 뭐 할 거야?” 



글쎄, 딱히 정해 놓은 건 없는데. 


서로를 마주본 우리가 동시에 어깨를 으쓱하자, 슈가 피식 웃었다. 



“그럼 온천 가서 좀 쉬다 올래?” 


“온천?” 


“대황성에 온천이 있어?” 



이건 또 솔깃한 제안이네. 



“응. 집 뒷산에 있는 노천온천인데, 최근에 악귀가 자주 나와서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거든. 그래도 두 사람이면 괜찮을 테니까.” 


“...오늘 비 온다고 안 그랬었나.” 


“뭐 어때. 비 맞으면서 온천욕 하는 것도 나름 낭만 있잖아.” 



맞긴 해. 


안 그래도 좀 이따 씻으려고 했는데, 온천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링도 잔뜩 신난 모양인지,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홱홱 돌아가고 있었다. 



“갈까, 링?” 



물어볼 필요도 없이 링의 표정이 말해 주고 있었다. 


잔뜩 상기된 두 뺨에, 별빛이 깃든 듯 반짝이는 눈동자. 


그런 그녀를 보며, 슈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느긋하게 쉬다 와. 목욕용품은 욕실에서 가져가고. 갈아입을 옷은…내가 알아서 챙겨줄게.” 


”고마워, 슈. 근데….”  


“왜, 형부?” 


“술 없니?” 


“...아, 진짜. 형부까지 왜 그래.” 


“빗속에서 온천욕하는데 술을 어떻게 참아. 이왕 낭만 챙기는 거, 확실하게 해야지.” 


“백 번 지당한 말씀.” 



이구동성으로 주류를 찾는 우리의 목소리에, 슈의 표정이 점점 썩어들어갔다. 



“...이 민폐 부부가….” 



봄이었다.



쉐이 합체까지, D-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