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속보

그는 어느새 시체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것도 약을 맞아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죽어버린 시체였다. 1분 전까지만 해도 마약성분에 취해서 하던 헛소리에 장단을 맞춰주던 친구였는데, 결국에는 장단 맞춰주는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필립은 백병전 도중 총검에 수차례 쑤셔박아져선 양쪽 눈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그러나 그는 필립의 눈에 총검을 쑤셔넣은 안타레스놈의 뒤통수를 야전삽으로 후려칠 수 있었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필립은 군의관이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할 때까지 숨이 붙어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는 군복 주머니에서 굴러떨어진 꼬깃꼬깃한 편지지를 간신히 읽을 수 있었고, 이내 자신이 편지를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도 분간을 못하게 된 필립과 약 2분 14초에 달하는 헛소리를 이어갔다.


"씨발.. 썅, 제발. 독수리신님, 국왕 폐하. 제발, 필립은 안 돼요. 안 된단 말입니다.. 아, 제발요. 정말 무엇이라도 하겠습니다. 뭐든간에.. 아 맙소사, 씨발, 제기랄...." 


병원, 침상, 의사 등 모든 것이 다 신기루였다. 이젠 그냥 시체가 되어버린 필립은 그저 그의 상처와 생채기 가득한 왼발 종아리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던 것 뿐이었고, 병원이란건 애초에 존재치도 않았다.

그는 탈로나 시 트롬블리 구 2번가 68번지의 불타는 2층짜리 빌라 옆 대로에 쓰러지듯 앉아있는 것 뿐이었다. 


하늘은 정말 우중충해 실내외 야외를 분간할 수도 없었고, 애초에 필립의 눈과 정신은 신경이 총검에 전부 뜯겨나가고 약에 취해있던 상황이었기에 정말 속이기 쉬웠다. 아까 동정하듯 2방이나 '진통제'를 놓고 간 군의관은 정면 기준 흐느끼는 그의 약 12미터 왼쪽에서 흙탕물에 절여진 이름모를 포병대원의 왼팔과 오른다리를 톱으로 절단하고 있었다. 아마 감염 문제일 것이다. 자신과 그 군의관을 포함해 모두의 눈이 반쯤 풀려있었다.


"온다! 다시 온다! 모두 기상! 부상자를 버려라! 당장!"


서 너머 골목을 주시하던 이름모를 소대장이 소리쳤다. 마치 오늘 처음 본 것처럼 부상병들을 돌보던 병사들이 겁에 질린 채 부상병들을 떼어내려 시도했다. 여력이 남아있던 병사들은 그런 동료들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애원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미, 미.. 미안해.. 나, 나 정말.."


"가지마.. 제발 가지 마.. 제발, 뭐든지 할게.. 제발.."


"안돼! 날 버리고 가지 마! 날 죽이려 들거야! 살인자 새끼들! 날 버리고 가지 말라고오오!"


"나.. 나까지 죽을 순 없어, 젠장할, 젠장, 씨발, 미안해! 제발.."


"전열을 재정비하라! 적들의 후속 보병대가 다고오고 있다!! 살고 싶으면 전원 다시 흩어져라! 오후 6시 옆 7번가에서 재집결한다! 근위사단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전원 주의해라!"


"3소대, 3소대!! 전부 모여, 씨발! 인근 아파트로 피신한다! 당장! 너 이 씨발아! 이 겁쟁이 새끼야! 그 씨발 시체 버리고 당장 오라고! 그건 더 이상 필립이 아니야!"


"소위님, 서쪽 모퉁이에서 이쪽으로 전차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로를 중심으로 여기에 끼어들고 있어요!"


"전원 골목과 건물로 피신해라,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분주한 목소리. 그를 부르는 목소리.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카랑카랑하고, 딱딱하고, 걸쭉하며, 날카로운 소리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빌라와 주택의 허공을 초점없이 바라봤다. 점점 모퉁이를 향해 초점이 맞춰져갔다. 이미 다른 소대는 그가 결국 미쳐버린 것을 알고선 더 이상 주위에 없었다. 그는 필립- 아니, 필립이였던 시체를 끌어안고선, 홀로 몽롱히, 멍하니 하늘 저편을 쳐다볼 뿐이었다.


기도비닉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그가 걱정되어 그의 이름을 부르짖는 소대원들도 있었다. 분대장과 '제정신이 박혀있는' 병사들이 그들의 입을 서둘러 틀어막아 이동했다.


날라드는 총탄의 음성, 서서히 다가오는 전차의 기계음, 땅을 울리는 진동이 어느새 그의 심장을 휘어잡았다. 잘못을 저지른 채, 화난 아버지 앞에 선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않던 그는, 어느새 전율감에 휩싸였다.


"황상 폐하 만세!"


그는 더 이상,


"미친새끼야! 나오라- 읍, 으윽?" "공병대 폭파준비! 넌 씨발 닥치고 있어!"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황상 폐하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