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눈이 내리는 새벽, 서로 같은 외모의 두 소녀는 한쪽은 울먹이며, 한쪽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자주 울던 길고양이들도 오늘만큼은 조용하여 둘 사이에는 아무런 소리 없이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만이 똑딱 지나갔다. 줄곧 이어질듯한 이 대치 상황에서 붉은 머리의 소녀, 키아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 .. 왜 살아있는 거야? "

얼핏 들으면 비꼬는 듯한 말투이지만 키아라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은빛 머리의 소녀, 솔레라는 이미 그녀에겐 죽은 사람, 아니 죽은 정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죽은 정령 솔레라는,

" 이 상황에서 한다는 말이 그거야!? 너무해! "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 왜 울어? "

" 아프니까! 몸도 아픈데 마음도 아프니까! 엄청 서러우니까! 흐윽.. "

솔레라의 양손은 붕대로 세게 감겨 있었다. 그 손을 키아라에게 보란 듯이 내밀며 말했다.

" 언니가 이 꼴이 됐는데 미안하다고도 안 하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가워하지도 않고! 왜 살아있냐고 하고! 울면서 보고 싶었다고 하는 동생을 위로하는 멋진 언니의 대사도 생각했었는데! 나 울 거야! 서러우니까 울 거야!! "

엎드린 채로 흐윽 흐윽 하며 서럽게 우는 솔레라를 보며 키아라는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짜게 식은 눈으로 솔레라를 바라보았다.

" 확실히 창문으로 불법 침입만 안 했으면 그런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네. "

약 새벽 2시경, 잠시 잠에서 깨어난 키아라가 무심결에 본 창문에는 솔레라의 손이 매달려있었다. 손의 정체를 모르는 키아라는 그대로 창문을 닫아 손을 내려찍었다. 

" 아무리 그래도 손을 내려찍어?! 그리고 그대로 바로 자러 가는 건 뭐야?! 사이코야? 내 동생 사이코패스인 거지?! "

" 그래도 금방 구해줬잖아. "

" 우는소리 시끄러워서 못 자겠다고 그대로 밀려고 했잖아!! 내가 소리 안 질렀으면 밀었을 거잖아!! "

" 어차피 안 죽잖아. "

" 죽고 돌아온 언니한테 그게 할 말이야!? "

확실히 치워버릴 생각으로 내려찍고 밀려고 한건 맞지만 그 대상이 솔레라라면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인공 정령인 그녀는 특히나 회복력만큼은 압도적이어서 밀려 떨어졌더라도 상처 하나 남지 않았을 것이다.

" 손은 다 나았는데 왜 붕대를 감은 거야? "

" 그러게 왜 감은 걸까! 어차피 금방 낫는데 왜 감았을까!! 좀 더 울고 싶은데 이제 아프지도 않네! 아이고 내 몸 대단해라! 아하하하!! "

" 잘은 모르겠지만 미안해. "

결국 실성한 솔레라를 보며 키아라는 뒤늦게 사과했지만 그런 키아라의 태도에 다시 한 번 상처 입은 솔레라는 " 됐거든!! "이라고 말하며 완전히 토라진 듯 고개를 푹 숙여 울었다.

.. 그리고 그런 솔레라를 보며 키아라는 무언가를 눈치챘다. 

" .. 그 복장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 

" .. 갑자기 무슨 소리야.. 옷이 이거 말고 어딨다구.. " 

솔레라가 토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다 찢어진 원피스에 맨발. 질문의 의도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솔레라는 현재의 복장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 그리고 몇 개월 전 레쿠토에게 구해졌을 때의 나 자신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 .. 레쿠토를 못 만났다면 난 이미 죽어있었겠지. ' 

평소에도 늘 인지하고 있던 부분이지만 초라한 솔레라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 자신을 떠올리고 나니 그 사실은 더욱 뇌리에 박혀 내 사고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마음속 무언가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한 그 무언가는 점점 비어있던 몸과 마음을 채워 올라가며 지금 잊고 있던 것들을,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을 차츰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솔레라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단 사실에 당당하여 하나라도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를 위해 늘 가진 것을 나누고 배운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난 너무나도 미워했었다. 

'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라고 했었지. ' 

매일매일 실험실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던 나날들. 난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늘 무언가를 주려고 한 게 솔레라였다. 
텅 빈 것에 익숙한 나에게 자꾸 무언가를 채우려고 했던 그녀가 미웠다. 얻을 수 없는 따뜻함에 취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던 그녀가 한심했다. 나는 무언가를 하나라도 얻기 위해 노력하던 솔레라를 그저 바보이자 불량품으로 취급했었다. 

그리고 그때 대충 보고 넘겼던 솔레라의 말과 행동들은 지금 나 자신을 이루는 중심이 되어 내 마음속에 곤히 간직되어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그녀가 죽고 나서야 깨달았었다.

" .. 키아라, 왜 울고 있어? " 

" 어. "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일어난 솔레라가 키아라를 걱정하고 있었다. 울고 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이미 키아라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여린 눈물 한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황한 키아라는 고개를 숙여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지만 이미 한번 시작된 눈물 줄기는 끊길 기미 없이 계속 흘러내렸다. 여린 눈물 줄기는 점점 굵어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쳤다. 

" 솔레라.. 나는 지금.. 울고.. 있어..? 어째.. 서..? " 

키아라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이유를 솔레라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왜 울고 있는가, 나 자신만 살아있다는 죄책감? 솔레라에게 잘 대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예상되는 이유는 많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흐르는 눈물이 아무리 그치려고 해도 그쳐지지가 않는다는 사실에 왜인지 더욱 벅차올라서, 키아라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더욱 슬피 울었다.

" ..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 

울고 있는 키아라를 보며 솔레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저 키아라를 꼬옥 안아주었다. 

" .. 많이 힘들었지, 키아라. " 

아까까지 칭얼대기만 하던 못난 언니는 어느새 파르르 떨고 있는 동생을 묵묵히 위로하는 멋진 언니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언니의 품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조금이나마 진정된 키아라는 이내 속에 가득 찬 무언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 .. 미안.. 해.. 꽃밭.. 결국 못 봐서.. 미안해.. " 

" .. 다음에 같이 가면 되지, 괜찮아. " 

꽃은 내년에도 필 테니까, 그때는 같이 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 .. 혼자만 죽게 둬서.. 미안해.. 구하지 못해서.. 미안해.. " 

" 괜찮아, 나는 히어로니까. 키아라가 살아줬으면 언니는 그걸로 행복해. "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줘서 고마워, 라고 덧붙였다. 

" .. 행복하게.. 살고 있어서.. 미안..해.. " 

" 행복하게 잘 살아줘서 고마워. " 

키아라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야. 라고 말하며 키아라를 더욱 세게 안아주었다. 

그 뒤로도 쌓였던 감정을 토해내는 키아라의 말을 그저 듣고 위로해주며, 두 사람의 특별한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평범한 밤하늘에 은은한 달빛, 작은 눈송이들은 둘의 만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제 할 일에 최선이었고, 길을 잃은 한 눈송이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화병에 장식된 카네이션 위에 눌러앉았다. 이내 그 눈송이는 녹아내려 카네이션의 위에서 툭- 하고 떨어지더니, 마치 둘의 만남에 기쁜 듯, 아름다운 달빛으로 작게나마 그녀들을 비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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