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이순신, 곽제우 등의 명장, 의병장들은 정계로 진출하였다(이순신은 전사하지 않고 곽제우도 한양으로 올라가는 등 무인들이 정계로 간 설정). 그러나, 하성군(선조)는 이들을 점점 멀리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결국 반란을 일으키고 평조(광해군, 祖)를 왕으로 하였다. 평조는 임진왜란 당시의 경험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군사 체계를 정비하였다. 무신들도 어느정도 만족하였다. 그러던 도중, 후금이 형제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하였으나, 조선은 동등한 관계라면 모를까 형제관계는 싫다고 말하자 전쟁이 일어났으나, 임진왜란으로 단련된 군사들과 임진왜란 이후 마련한 대비책들의 힘으로 손쉽게 물리치게 된다. 이때 후금의 왕이 직접 나왔다가 고자가 되고 이후 후금은 더이상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게 된다. 또한, 그는 대동법을 경기도 지역부터 최초로 실시한다. 그러나, 평조는 알수 없는 이후로 자식을 전혀 낳을수 없었고, 이후 돌연사한 능양군(인조)의 아들 광조(소현세자, 祖)가 즉위한다. 소현세자는 박연, 하멜 등의 외국인들에 의해 서양 문물을 접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서양과 통상하였다. 초기에는 약간 불평등한 관계였지만, 문물들을 받아들이며 급성장하여서 평등한 관계가 된다. 그의 또다른 업적은 일본 정벌이다. 임진왜란의 복수를 하기 위해 1678년 일본과 전쟁을 시작하여서 규슈, 시쿄구를 점령하여 각각 구주(규슈의 한국식 발음)도, 사국(시쿄구의 한국식 발음)도로 편입한다. 그리고, 그는 1688년 조선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된다. 그는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조에게 아들이 없어서 동생 봉림대군(효종)의 아들인 현종이 즉위하게 된다. 이후 숙종, 경종을 거치며 나라가 안정되었고, 현재 황제인  영인군 이금(영조)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센카쿠열도와 타이완을 점령하고 센카쿠열도는 구주도에 편입하고 타이완은 대만도로 새로 편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