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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수학은 암기과목이 아니다.


혹자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 '정의'들이기 떄문에

각 '정의'의 철저한 암기 없이는 그 정의들을 바탕으로 하는 '응용'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수능 수학'에 관해 논하고 있는 것이며, '수능 수학'의 출제는 대한민국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에서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라고 하는가?

일단, 수학의 기초가 '정의'인 것은 맞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육과정에서 각 개념의 '정의'를 기계적인 one by one식으로 단순 나열해가며 가르치는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수학과목 교육과정 상 각 개념에는, 1. 그 개념을 배우는 이유, 즉 당위성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2. 해당 개념이 유도되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시한다.

이는 교육과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교과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고등학교 수학과정은 현재 수학(상/하), 수학(1,2), 확률과 통계, 기하, 미적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뿐만으로도, 각 개념 사이 연관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교과서 안으로 들어가 보자.

모두 '교과서에는 밥 먹듯이 실려 있으나, 선생님이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을 떠올려 보자.

맞다. 바로 본격적 개념을 설명하기 전 "이 개념은 일상생활과 ~~~한 관련이 있습니다." 또는 "철수가~~~, 영희가~~~했는데,

이때 철수의 ~~~와 영희의~~~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기억나는가? 분명 이 부분을 자세히 짚어주는 선생님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어쩌면 수학 교과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좋을 부분이다.

그 이유는, 해당 부분이 바로 1. 그 개념을 배우는 이유(당위성) 2. 그 개념이 유도되는 과정 을 드러낸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때, 누군가 묻는다. 그런 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다시 본질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수학적인 개념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은 도대체 '왜' 수학적 개념을 만든 것인가?

바로 '사고'를 더 쉽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 말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가장 순수한 학문은 수학이다' 라느니, '세상을 나타내는 언어는 수학이다' 라느니.

이런 말은 전부 수학이라는 학문이 '인간의 사고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1+1=2라는 등식이 있다. 물론 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저 등식이 갖는 의미이다.

1이란 무엇인가? 2는 무엇인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등식의 본질적 의미이다.

'1+1=2'는 '1이 2개 있으면 2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까, 후자와 같이 써도 전혀 무방한 것이다.

조금 더 복잡하게 가 보자.

5x+3=8이라는 등식이 있다. 이 또한 말로 풀 수 있다. '어떤 수에 5를 곱하고 3을 더하면 8이다.'와 같은 식으로.

우리 선조들은 내가 땅을 얼마나 사야 이득인지, 나일 강이 언제 얼마나 범람하는지, 일식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아내려고 애를 쓰셨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를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현명한 선조들께서는

1.'내 노예 수를 5배 한 후 거기에 5를 더한 만큼의 쌀가마니를 사라' 대신 2.'5x+5=y'와 같이 쓰기로 하셨다.

2.는 1.과 매우 다르게 보이나, 본질적으로 1.을 간단히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사고 과정을 약속된 문자, 수, 식 등 사전에 약속된 방식으로 나타내서(1 대신 2), 원하는 목표를 더 쉽게 달성(쌀가마니를 몇 개 사야 하는가)하고자 하셨다.


현대의 화려한 개념, 기호들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다.


일례로, 수학 2에서도 미분을 다루고, 미적분에서도 미분을 다룬다.

미적분에서 미분의 정의를 배우는가? 아니다.

미적분에서는 다항함수가 아닌 초월함수의 미분에 대해서 다룬다.

그러면, 수학2의 미분과 미적분의 미분은 관련 없는 것인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분이란, 결국 고등학교 과정상에서는 궁극적으로

어떤 함수의 그 순간에서의 변화율을 알아내거나

미분된 함수가 주어졌을 때 미분되기 전의 함수를 예측하고 그 그래프를 그려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수학2의 미분이던, 미적분의 미분이던 결국 배우는 이유와 유도되는 과정 모두 본질은 같은 것이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미분의 창시자들이다.

그러면, 그들이 미분을 만들기 전에는, 어떤 값의 순간적인 변화율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던 것인가?

그럴 리 없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이미 존재했을 것이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한 일은 단지, 어떤 값의 변화율을 알아낼 필요성을 느끼고, 그 방법을 알아낸 뒤

문자와 식, 기호를 이용해 수학적으로 체계화시킨 것 뿐이다. 수학의 모든 개념은 결국 전부 필요에 의해서 탄생한 개념들이다.


그리고 교과과정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수학2의 미분 맨 마지막 단원은 '속도, 가속도와 미분'이다.

이걸 왜 배우는가. 미분을 배우는 이유와 관련 있다.

위치를 알 때 속도를 알고, 가속도를 나타내는 과정. 전부 변화율을 알아내는 것이고,

또, 가속도를 알 때 속도의 변화 양상을 예측하는 것, 속도를 알 때 위치의 변화 양상을 예측하는 것. 전부 원함수를 예측하는 것이다.

옛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이 사고 과정을 문자와 식으로 나타내서,

원하는 목표(기차의 운동, 주가의 변화 예측)를 달성하는 데 써먹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에 '속도, 가속도와 미분' 단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미분을 공부할 때 식과 문자 놀음에만 얽매이지 말고,

그 본질적 내용을 암시하는 일종의 배려라 하겠다.


그러나 또 혹자는 '체화'하기 위해선 암기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해'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시험 시간이 적고 문제는 많아서, 외워서 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자. 앞에서 인간의 사고 과정을 약속된 문자, 수, 식 등 사전에 약속된 방식으로 나타내서, 

원하는 목표를 더 쉽게 달성하고자 수학이 존재한다고 했다.

수학이 어떤 학문인지 안다면, 자연스럽게 수학을 공부하는 방법도 도출된다.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는 전부 문제 상황을 제시한다. 보통 어떤 값(편의상 x라 하겠음)을

여러 조건에 의해 '제한'한 후 그 값을 구하라고 한다.

문제에 오류가 없다면, 답은 항상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출제자가 요구하는 적절한 사고 과정을 통해 x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상수를 찾아야 한다.

공식 암기만 하면 3점짜리는 이것이 쉽게 가능하다. 그런데 4점짜리는 문제가 생긴다.

주어진 조건을 못 찾는다거나, 조건을 해석하지 못한다거나, 조건 해석에 성공했어도 개념과 조건 사이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한다거나.


그러나, 출제자가 요구하는 사고 과정에는 한계가 있다. 출제 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수능 수학 과목의 출제자는 기본적으로 교과 과정 내에서 피험자의 수리력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는 암기성이 짙은 문제는 내지 않는다.

즉, 요구하는 사고 과정은 각 개념의 핵심 논리들 뿐이다. 가령, 미분 단원이라면 어떤 값의 변화율을 주고 원래 값을 예측한다던가,

수열이라면 규칙을 주고 100, 1000번째 항을 예측하라던가 하는 식이다.

수능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이 개념들을 서로 연관해서 내거나(미분 문제인데 파헤치다 보면 그 본질은 수열 문제라던지)

, 겉보기에 어렵게 만들어 놓는다거나(숲에 나무를 숨기는 느낌과 비슷하다), 

아예 문제 풀이에 중요한 부분을 감춰 놓는 식이다(평범해 보이는 조건 하나에 정말 많은 정보를 함축시키는 방법으로. 

보통 소위'킬러 문제' 가 이러하다.).


그래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전 범위의 개념에 대한 진한 이해가 필요하다.

여기서 개념의 이해란 단순한 공식 암기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1. 그 개념을 배우는 이유(당위성) 2. 그 개념이 유도되는 과정을 아는 것이다.

이 두가지가 바로 각 개념의 핵심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 개념을 배우는 이유를 알면 우리는 '그 문제에 왜 그 개념을 적용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고,

그 개념이 유도되는 과정을 알면 우리는 그 개념을 마음속으로 깊이 음미할 수 있다(그 개념이 가지는 수학적 의미를 알고, 

개념을 외우려 들지 않아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걸 명확히 알아야지만 주어진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조건을 해석해서 x의 값을 특정해 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개념을 암기로만 이해한 학생들은 '수학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학 개념 자체가 인간의 '사고 과정'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기 떄문이다.

공식이란 목표에 좀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지, 공식 암기가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외우는 구구단만 해도 그렇다.

단순히 달달달 외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2x3이란 2가 3번 더해진 것 또는 3이 2번 더해진 것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다음 외우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한테, 같은 문제를 낸다. 2x11의 값이 얼마냐고. 첫번째 사람은 당연히 풀지 못한다. 2x9까지밖에 모르니까.

아마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저런 건 안 배웠다면서.

반면, 두번째 사람은 간단히 풀어낸다. 왜? 곱셈의 의미를 아니까.

2를 11번 더해서 풀 수도 있겠고.

곱셈의 교환법칙을 이해하고 있다면, 2x11과 11x2가 같다는 걸 간파하고 11을 두번 더할 것이다.

곱셈 공식을 이해하고 있다면 아마 2x9는 알고 잇으니까 거기에 2x2를 더해서 해결하지 않을까.

그런데 곱셈 공식을 외우기만 한 사람이 2x11=(2x9)+(2x2)=22와 같이 풀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저런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주면 아마 징징대지 않을까. 저런 걸 어떻게 생각해 내냐면서.

자기 딴에는 문자로만 곱셈공식을 배웠는데 갑자기 저런 유연한 생각이 될 리가 없다.

알고 있는 사람들 시선에서는 정말 별 거 아닌데 말이다. 곱셈 공식은 원래부터 그 의미였다.

그런 복잡한 계산을 간단히 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들이란 말이다.


따라서 곱셈 공식을 배우는 이유와 유도된 과정을 알면 문제가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라고 요구했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곱셈 공식이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왜 곱셈 공식을 이용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너무나 당연하게 '복잡한 계산에 쓰는 게 곱셈 공식 아닌가요?'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전 범위의 개념에 대해 이 정도 수준의 이해가 되어 있는 상태를 나는 '완벽한 개념'이라 부른다.

절대, 절대로 공식 암기나 스킬이 아니다.

우리가 기출을 푸는 것은 바로 어떤 문제를 보더라도 위의 예시와 같이(복잡한 계산->곱셈 공식 or 인수분해!) 라는 사고 과정을 

빠르게, 자연스럽게, 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하기 위함이다.

저건 절대 외우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굳이 외울 필요가 있는가?

응용력이란 바로 저기에서 나온다. 물론 4점짜리도 다 저런 걸 물어본다. 단지 좀 숨겨 놓았을 뿐.

그러니까 개념의 정확한 이해가 더더욱 필요하다.

개념만 완벽하면, 만점은 금방이다.

숨겨 놓은 걸 찾는 연습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화려한 스킬을 써서 21번, 30번을 1분만에 풀어내는 게 멋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개념의 완벽한 이해 없이 스킬만을 익히는 건 오히려 수능 수학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교육과정은 할 일을 다 했다. 위의 사항들은 수학을 배울 때 '왜?'라는 질문을 조금이라도 마음속으로 해본 사람들은,

전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진 분들이 교사용과 학생용 교과서에 친절하게 적어두고 암시해놓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수능 만점자가 맨날 하는 인터뷰 내용.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는 바로 이걸 정확히 이해하고 시험에 응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런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선생들과 학생들이 수능을 가르치고 준비하려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다.

자기 실력의 현황도 중요하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치는 시험이 어떤 시험인지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