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운상가를 좋아함. 정확히 말하면 세운지구, 세운상가군 전체를 좋아함.

세운상가는 종로 3가와 4가 사이 종묘 정문에서 쭉 남산 앞 충무로 애견거리까지 하나의 건물로 설계된 메가스트럭처야. 

전세계에서 최고로 큰 상가 건물군 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어. 


이 건물 하나에 (하나라고 보기에는 정말 크지만) 많은 역사가 담겨 있어. 

지도를 보면 세운상가는 서울 도심 가운데 칼 같이 잘려져 있어. 

이 단면은 일제가 2차세계대전 도쿄 소이탄 공습과 같은 대형 화재를 우려하여 "소개공지"를 만들면서 생겼어. 

전시상황에서 철거와 이주는 빠르게 이루어졌고 당시 원주민, 원래 지주들이 어떻게 보상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네. 

어쨌든 오늘날 세운 상가군은 일제가 만든 폭 50m 길이 1km 에 가까운 거대한 '소개공지' 위에 세워졌어. 


어쨌든 이 '소개공지'는 일제의 패망과 함께 졸지에 '무주지'가 되었고, 곧 피난민과 빈민이 판잣집을 짓고 모여 사는 곳이 되었고 서울 역사에서 유명한 사창가가 되었어. 조선 시대에는 화당 내정에서 이루어지던 매춘이 종묘 대문 앞에서 벌어졌으니 문화 충격이었겠지? 어쨌든 이 과정에서 국유지를 불하하면서 이 거대한 소개공지는 크-린 한 등기에서 더러운 등기로 변해감. 참고로 이 불하 과정은 대한민국 부유층의 탄생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함 관심있으면 조사해보길. 아니면 타짜 1화를 읽어. 


그래서 여기다가 뭘 지으려고 했지만 이미 '합법'적인 땅 주인들이 꽤나 많았고 상인들, 빈민들 등 매우 어려운 사업이였어. 재건축 조합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많으면 사업이 순탄치 못한 것과 같은 이치지. 어쨌든 결국 건축가 김수근은 당시 서울 시장 김현옥이 요구한대로 건물을 디자인했어. 상인과 주민들에게 모두 매력적인 입주가치 제공 + '현대 서울'에 걸맞는 새로운 도심 랜드마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결과를 보면 당시 국내 상황에 비추어보면 특히나 굉장히 야심찬 노력이었다고 생각해. 


"각 건물을 연결하는 보행자용 인공데크를 건물의 3층 레벨에 설치함으로써 종묘에서 남산을 잇는 1km의 보행자몰이 조성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그리고 지상 1층에는 도로와 주차장을 설치하여 보차분리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종로, 명동 등 주변 상권과의 연계를 위하여 종로, 청계천로, 을지로, 마른내길, 퇴계로와의 접점에 계단을 설치하고 이를 인공데크와 연결시켰다. 


건물의 용도는 1~4층은 상가, 5층 이상은 아파트로 하여 주상복합건물군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5층에는 인공대지의 개념을 도입하여 공원, 어린이 놀이터, 시장 등의 오픈스페이스를 계획하였다. 또한 쾌적한 거주환경을 위해서 아파트 내부에 아트리움을 도입하고, 한 층씩 올라가면서 후퇴시키는 형태인 테라스형으로 아파트를 설계함으로써 건물의 위압감을 줄였다. 


건축물의 총 용적률은 300%로 하되 도로부분을 제외한 순 용적률은 500%까지 확보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전체적인 건물군의 높이를 8층을 유지하면서 간선도로와 만나는 곳은 타워형으로 고층화하여 시각적 변화도 주었다. 한편 도시 내 도시(city in the city)의 개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보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2층과 4층에 커피숍, 식당, 병원 등을 배치하고 3층은 보행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쇼핑몰로 구성하였다. 또한 옥상에는 초등학교도 배치하여 입체적 복합기능을 가진 하나의 도시적 건축물이 되도록 계획하였다."


이렇게 지어진 세운상가는 실제로 고급 아파트이자 쇼핑의 메카로서 20년 정도 리즈 시절을 누렸어. 당시 최초, 유일 '주상복합' 이었으니까 정말 놀라운 곳이었지. 그러나 80년대가 찾아오고 도심의 중심은 다시 명동으로 서울 전체의 무게 중심은 강남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 세운 상가는 쇠퇴하기 시작했어. 이런 쇠퇴가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내 생각에는) 설계 의도에 미치지 못한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해. 

1. 보행자 몰 부재 -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시공사들이 귀찮아서인지 서울시 의지가 부족해서인지 결국 2010년대까지 완성되지 않았지. 
2. 아트리움 차단 - 스카이라이트 + 중정 디자인을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당시 어린이가 중정에서 떨어져서 사망한 후) 중정을 막아버렸어. 그래서 오늘날 세운 상가는 원래 설계와 달리 어둡고 지하실 같은 느낌이 많아. 
3. 옥상 - 세운 상가군은 모두 옥상이 매우 아름답지만 모두 버려져 있어. 
4. 용적율 - 용적율이 높다보니 재개발이 어렵고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주민들이 불만이 많아. 안전도 문제가 분명히 있고. 

어쨌든 그래서 세운상가를 재개발 하겠다는 얘기는 중구 국회의원들이 매번 하는 얘기고 서울 시장이면 관심 가질 내용이지만 참으로 쉽지가 않다 이 얘기야. 이번에 세운지구 대부분이 재정비 -> 도시재생 사업으로 전환하고 일부 재정비 지구만 연장하고 있는 상황이야. 지금 구역+필지 모양을 보면 상당히 재미있게 잘려있어. 한 지구 안에서 일부는 재정비가 되고 일부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데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네. 


세운상가+세운상가군+세운지구에 대해서 다 얘기하느라고 좀 정신이 없었네. 
블로그처럼 앞뒤가 없지만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