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국 사람이라면 광화문 광장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시위와 데모와 관한 뉴스에서 봤을 수도 있고 중앙청 철거, 광화문 현판 교체 등 일제와 군사 독재 시절의 광화문을 재조명하는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월드컵이 기억 날 수도 있고 촛불시위가 기억날 수도 있으며 개인적인 기억 역시 있을 수 있다. 

한양 시절 광화문은 육조거리로서 사실상 조선 왕조의 관가였다. 궁과 관가, 주변 민가가 하나의 유기적인 도시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중국의 자금성, 프랑스의 베르사유 등과 다른 형태의 도시 권력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한양의 주 동서간선은 종로였으며 사직로8길이 세종대로를 가로질렀다. 한양의 도로는 풍수적인 이유로 십자교차로를 만들지 않았고 종로, 을지로, 남대문로 등이 간선역할을 하였다. 풍수 등 한성의 냄새를 경성에서 지우는 과정에서 일제는 세종로와 남대문로를 연결하고 우정국로, 종로 3가, 4가 등을 넓히고 직선화하여 세로축을 형성하고 을지로, 종로, 율곡+사직로를 넓혀서 가로축을 내어 격자형 도시틀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 큰 틀은 50년대까지 유지 되었고 산업화 시대 서울은 청계고가와 세운상가를 추가하면서 도심에 새로운 축을 내었다. 이러한 많은 과정에서 세종대로는 단 한번도 서울의 중심도로이자 심장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광화문은 이씨왕조의 상징에서 식민지 총독부의 상징에서 국가 권력, 미국 대사관 등 현대사의 무거운 상징 위에 현대 한국인이 월드컵, 촛불, 시위, 관광이라는 새로운 색을 입힌 공간이다. 이 곳은 월대도 은행나무도 차도 이순신 장군도 세종대왕도 독점할 수 없는 중요한 상징이자 공간이라 생각된다. 파리에는 에펠탑, 런던에는 빅벤이 있다면 브뤼셀에는 그랑플라스라는 광장이 있다. 세계 유네스코 유산이자 시민들, 손님들이 사랑하는 공간이고 나 유럽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도 그런 곳이였으면 한다. 

이제 광화문은 단계적 완전 보행화 과정을 거쳐 완전한 광장으로 거듭나다고 한다. 나는 광화문이라는 광장과 용산이라는 공원이 생기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희망이 차오르면서도 두려움 역시 엄습한다. 광화문은 어떠한, 누구를 위한 광장이 될 것이고 용산은 누구를 위한, 어떠한 공원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