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ezhny님 그림 퍼옴) + 실제로는 저기에 또 월경지로 백암면/일죽면 일부 리(里)들도 양지현 소속이었음.

나도 추측이긴 한데, 네이버에 양지군 검색해서 찾아보니까, 세종실록지리지에 다음과 같이 나옴.

 

"양지현. 본래 수주에 속한 양량촌부곡인데 본조 공정왕 원년 기묘에 양지현으로 고쳐서 비로소 감무를 두었다. 태종 13년 계사에 예에 의하여 현감으로 고쳐서 현치를 광주의 임내 추계향으로 옮겼는데 땅이 좁으므로 광주의 임내 고안•대곡•목악•제촌의 네 부곡을 떼어서 이에 붙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지현 [陽智縣]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결국, 5개부곡 합쳐서 만든 현임. 그 말인즉슨, 고려시대때 존재하던 하층민 중심 지역을 조선시대에 들어서 폐지하고 이를 군/현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일종의 조선판 님비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음. 인근 군/현에서 부곡인들 사는 땅 편입 안받아요~ 하는 식이어서 결국에 부곡만 묶어서 현으로 승격시켰지 않았나 하는 생각임. 실제로 세종실록지리지에 용인/죽산 검색해 보니까 여기서는 부곡 얘기가 없음. 안성은 고려공민왕 시기에 군으로 승격시켜주면서 수원에 있던 부곡을 편입시켰다는 기록이 나옴. 그러니까 안성은 수원에서 분리되면서 근처 부곡을 가져온 케이스고, 양지는 수원에서 분리되면서 근처의 광주 소속 부곡들을 가져옴. 

아니면 당시 죽산은 충청도 관할이었어서(세종시기에 경기도로 편입) 근처 부곡들을 죽산에다가 넘기질 못하고 새로 만드는 양지현에 편입시켰을 수도 있을 것 같음. 그렇다쳐도 백암이 충청도인데 박곡리/고안리가 경기도였다는 것도 더 이해가 안되네ㅋㅋㅋㅋ 이러나 저러나 고려시기의 부곡들을 어떻게 처리하냐가 문제였고, 이를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양지현을 비롯한 괴랄한 조선시대 군현 모양이 탄생한 것으로 보임. 그와중에 부곡 편입에 대해서 각 군현별로 님비현상이 있었을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중앙에 있는 애들은 지도 정보가 부족하니까 인근 현감/향리 이야기만 듣고 군현 정리를 해서 월경지가 생긴거일수도 있고... 모르겠다 이런거 연구하는 사람이 국내에 1명도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