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도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stado_de_Buenos_Aires_(1852).png, 위백 Misteruploader님의 지도를 수정했습니다. CC BY-SA

* 옅은 색은 실제로는 원주민들이 지배하고 있던 명목상의 영역.

 

아르헨티나는 스페인 식민지 기간 동안 페루 부왕령의 끄트머리에 있는 변방 한구석으로 남아 있었고 그나마 북서쪽 내륙 지역은 안데스 지역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온 편이었음. 그러다가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이 설치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중심지가 되었고, 18세기 후반 그때까지 신대륙의 무역은 무조건 4개 항구(아르헨티나에서 그나마 가까운 항구는 페루의 리마였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폐지되면서 아르헨티나 내륙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려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급속히 발전하게 됨 ㅡ 이 지도를 보면 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입지가 사기인지 체감하는 게 가능.

 

19세기 초 아르헨티나가 독립한 이후 아르헨티나는 내륙지역 토호들을 중심으로 한 연방주의자(자유무역에 반대하고 주의 자치권을 지키고자 하는 쪽)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주의자들의 기나긴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음. 가장 큰 문제는 관세 문제였는데 내륙 주의 연방주의자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세관을 연방 아래에 넣어서 관세수입을 각 주가 나눠 가지되 주들 사이에도 관세 장벽을 남겨둬서 지역 경제를 보호하고 싶어했고, 반면 중앙집권주의자들은 중앙집권적인 정부 수립을 원했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연방주의자들은 다른 지역 연방주의자들처럼 자기네 주의 권리를 원했지만 그렇다보니 세관 국유화에 반대하고 자유무역에 찬성하는 포지션을 취했음. 1852년 지방 연방주의자 출신의 우르키사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독재자였던 로사스를 축출하고 신헌법에서 세관이 국유화되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에 맞서 연방 참여를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위의 지도와 같이 서울 공화국(...)이 세워지게 됨.

 

서울 공화국은 최종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미트레가 연방군을 격파하고 1862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되면서 아르헨티나는 서울 공화국 위주의 재통일(...?)을 이루게 됨. 그래도 중앙집권주의자들이 승리했음에도 지금 아르헨티나는 연방제적 요소가 많이 이어져 내려오는 편.

 

 


자료출처 영위뷁
 

내륙 지방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19세기 내내 싸웠지만 지고 말았다. 그 대가는 빈곤이었다. <현대 라틴아메리카>

 

덧: 이후로 아르헨티나의 발전은 석유&천연가스라는 치트키를 가진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수도권 집중의 형태를 보이게 됨. 1869년 센서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인구는 49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6% 정도였으나, 2018년 현재에는 아르헨티나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