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siheung.go.kr/administration/wp-content/uploads/sites/3/2016/03/100427_%EC%8B%9C%ED%9D%A5%EC%9D%98-%EA%B7%BC%ED%98%84%EB%8C%803.pdf

 


 

1)

오늘날 시흥의 행정구역은 1989년 시흥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편제된 것이다.이때 시흥군 군자면, 수암면, 소래읍을 하나로 묶어 시흥시의 행정구역으로 하씀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시흥시는 조선시대 시흥이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형성된 시흥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시흥’이라는 명칭은 1795년(정조 19)에 금천현의 군명을‘시흥’으로 개칭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1)  1912년까지만 해도 시흥군의 행정구역은 군내면, 동면,서면, 상북면, 하북면 등 6개 면 22개 동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1914년에 행정구역 통폐합이 단행되면서 과천군 전부와 안산군 일부를 통합하여 북면,신동면, 동면, 서면, 과천면, 서이면, 남면, 군자면, 수암면 등 9면 162개 리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후 1940년대에 들어서면 안양면, 서면, 신동면, 남면, 과천면, 동면, 군자면, 수암면 등 8면 71리로 축소, 조정되다가 해방 이후 신동면과 동면 일부가 서울시로 편입되고 1963년에 새롭게 의왕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면서1장근대적 개혁과 지방제도 변화(1) 『정조실록』권42, 정조 19년 윤2월 1일.
안양읍, 서면, 과천면, 의왕면, 수암면, 군자면의 6개 읍∙면으로 조정되었다. 시흥군은 한동안 행정구역에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오다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일대 변화를 맞게 되었다. 1973년 수도권 위성도시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안양읍이 시흥군에서 분리되어 안양시로 승격하씀고,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소래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었다. 이와 함께 1979년에는 신도시 개발정책으로 반월신도시를 개발하면서 수암면의 6개 리와 군자면의 7개 리가 반월출장소로 편입되었다. 이러한 분리과정은 계속되어 1981년에는 서면이 광명시로, 1986년에는 과천면이 과천시로, 그리고 1989년에는 군포읍과 의왕읍이 각각 군포시와 의왕시로승격하여 시흥군에서 분리되었다. 같은 해 시흥군도 시로 승격하게 되는데, 이때시흥시의 행정구역을 이루게 된 것이 군자면, 수암면, 소래면이다. 이처럼 몇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 분리와 편입을 거듭한 결과 오늘날 시흥시의 행정구역은 본래 시흥군과는 전혀 다른 지역으로 구성되기에 이르뜀다. 그리하여 시의 이름은예전 그대로‘시흥’이면서 포괄하는 지역은 옛 시흥과 전혀 다른 시흥시가 되고말았다.  그러면 오늘날 시흥시를 이루고 있는 군자, 수암, 소래지역은 원래 행정구역상어디에 속해 있었을까? 군자면과 수암면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오랜 세월 안산군에 속해 있다가 1914년 안산군 해체와 함께 시흥군에 편입된 이래 오늘에까지이르고 있는 지역이다. 1914년 전까지는 안산군 군내면(郡內面), 잉화면(仍火面,仁化面), 초산면(草山面), 대월면(大月面), 와리면(瓦里面), 마유면(馬遊面) 등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반면 소래면은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시흥군에 편입된지역으로 좀 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천군의 신현면(新峴面, 新古介面), 전반면(田反面), 황등천면(黃等川面)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1914년 이전 시기의안산군 일부와 인천부 일부 지역이 오늘날의 시흥지역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2)결국 오늘날의 시흥시는 조선시대의 시흥현(군)과는 전혀 무관한 지역으로, 일제시기에 시흥군으로 편입된 안산지역에서 유래한 군자면과 수암면 및 인천부에서 부천군을거쳐 1973년 시흥지역으로 편입된 소래면지역으로 완전히 새로 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