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는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특이하게 2000년대에도 (행정리가 아닌) 법정동 분리가 있었음.


혹시 2002년 이전에는 교동리+중동리+대동리를 증평리가 둘러싸는 형태였으려나?


일제 때 시가지가 분동(?)된 조치원과 비교하면(동일축척) 구 증평리 자체가 면적이 넓어서 쪼개긴 해야 됐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