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2000년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부족별로 아르헨티나 일대에서 나뉘어 살았고, 아르헨티나 동북부에서는 투피-과라니 어를 쓰는 부족이 살았고, 중부와 남부에는 마푸체족과 페이엘체족이 살았고, 15세기에는 서북부가 잉카제국에 소속되었으며, 16세기에는 파타고니아 일대를 제외한 지역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되었다고 합니다.
(꺼무위키 말로는)



19세기 초, 아르헨티나를 침략한 영국을 시민의 힘 으로 물리친 사건을 계기로 아르헨티나는 독립 의지가 촉발되었고, 호세 데 마르틴의 5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1810년 5월, 독립을 선포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하는 중앙집권주의자들과 자치권을 지키려는 연방주의자들이 독립 직후부터 투닥거리기 시작합니다
아르헨티나에는 중앙집권주의자였던  베르나르디노 리바다비아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지사이자
아르헨티나 최초의 대통령이 됩니다.

그는 중앙정부를 세우고 라플라타강 하루에 위치해 무역을 독점하고있는 부에노스 바이러스를 국유화하여 벌어들인 돈을 나라에 쓰려고 했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주들은 자신들이 독점한 무역권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고, 지방의 연방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중앙정부가 들어서는것을 반대해서 리바다비아의 계획은 무산됩니다.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주들과 지방의 연방주의자들이 반발로 레바다비아는 1872년에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이후 지도자가 없어진 아르헨티나는 산발적 내전에 휩싸여 각 주의 주지사들이 권력을 나눠가지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의 주지사가 막강한 권력을 지니는 매우 느슨한 연방체제가 성립되었습니다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지사들이 구데타로 계속 교체되던 사이 1892년에 마누엘 데 로사스가 중앙집권주의자였던 기존 주지사를 제거하고 자신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지사가 됩니다.
그는 독재정치와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함으로, 아르헨티나의 그나마 안정을 찾아왔습니다.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앙집권주의자의 철저한 숙청이 이뤄져 중앙집권주의자들은 지방으로 도망가게되고, 힘을 모아 로사스에게 대항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개발살나버리고 로사스는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독재체제를 구축하게됩니다.

물론 그의 독재정치외 잔혹한 통치는 그의 인기를 떨어뜨려 말년에는 자신이 암살당할까봐 자신의 집무실과 관저에서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사스가 장기집권하는동안 우루과이에서 내전이 일어나게되고, 이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브라질제국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결국 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로사스일당과 남아있던 중앙집권주의자였던 잔당이 합세하여 로사스에게 연합이 만들어지지만, 브라질에게 아르헨티나는 패배하고, 로사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에서 쫒겨나 영국으로 망명을 가게 됩니다


1852년에 각 주지사들이 모여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데 찬성하고 아르헨티나를 연합국가로 만드는데 동의하게되어 엔트레리오스 주의 호세 오르키사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헌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세관의 수익을 모든 주가 공유한다는것을 거부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혼자 아르헨티나 연합국을 탈퇴하게 됩니다.



2차대전에서는 나치독일을 피해 도망쳐온 난민들을 대거 몰려들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인 농업국인것과 더불어 가치를 피해 도망친 난민을 많이 수용한 나라라 연합국을 군량고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치의 주동자들이 이곳으로 도망쳐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 이라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이때문에 아돌프 히틀러가 아르헨티나에서 와서 잘먹고 잘 살았다는 음모론의 주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처음 만들기 시작할때는 별로 안 길줄 알았는데 너무 내용이 기네요. 사실
2차대전 이후에는 별 중요한 내용이 없어서 그냥 한편으로 이것만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뭐 제 마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