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몇 없었다.
 삼백여명이 감염된 바이러스라고 방송사에서는 매일 뉴스를 내보냈지만,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어차피 매번 겪는 일이였다. 매년 연말만 되면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종결되었으니 이번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일 것이였다.
 거리엔 연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 바이러스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나는 오랜만에 얻은 휴가를 집 안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벼르고 있었던 연극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연극이 공연되는 소극장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올해 가장 인기 있는 연극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였다.
 자리에 앉자 재빨리 걷다 알아차리지 못한 탓인지 뒤늦게 목이 따갑고, 볼이 달아오른 것을 느꼈다.
 아마 추운 날씨에 감기가 걸린 듯 했다.
 하지만 나갈 수도 없었다. 이제 연극의 막이 오르려하고 있었고, 이 연극은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것이였다.
 연극이 공연되는 동안에는 목의 아픔도, 오한도 느껴지지 않았다. 연극에 몰입하며 지켜보다, 가끔 기침이 나와 연극을 보는 다른 관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좀 들었을 뿐이였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배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까 기침을 할 때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렸는데, 손수건으로 닦았으니 큰 문제는 없을 듯 했다.
 좋아하던 배우들과 악수를 하며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몇마디 나눈 뒤 뒤에 줄을 서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비켰다.
 소극장을 나오자, 목의 통증과 오한이 뒤늦게 느껴졌다. 머리도 아파오는 것 같았고, 약간 어지럽기까지 했다.
 아마 감기가 걸린게 확실한 듯 했다. 그래도 이번 휴가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다른 곳은 아니더라도, 가고 싶었던 식당은 꼭 가야했다.
 오래 전부터 가고 싶던 식당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식당 앞에는 긴 줄이 있었다.
 어림 잡아 1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줄을 서면서 기침도 나오고, 찬바람 탓인지 머리는 더 어지러웠지만, 꼭 이 식당의 음식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에 꾹꾹 참았다.
 마침내 식당에 들어가 원하던 메뉴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음식을 나는 음미하듯 천천히 먹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몸도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때, 몸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음을 느꼈다.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려던 원래 계획을 포기하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기사 아저씨는 연말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다며, 손님들이 내리는 곳마다 새로운 손님들이 택시를 탄다며 좋아하셨다.
 집 앞에서 택시에 내리자마자 한 사람이 내가 탄 택시에 몸을 실었다. 기사 아저씨의 말처럼 오늘은 유독 손님이 많은 날인 듯 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며 집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침대 옆 작은 책상 위에는 오늘자 신문이 놓여 있었다. 오늘 아침 1면 기사만 읽고 다시 내려둔 것이였다.
 기침 때문에 잠도 오지 않으니, 신문이나 읽을까하고 오랜만에 신문을 펴 읽기 시작했다.
 신문의 맨 뒷면에 요즘 유행이라던 청진 독감에 대한 안내문과 주요 수칙 등이 적혀있었다.
 찬찬히 읽어나가던 중 증상들 중에 지금 내 몸 상태와 흡사한 것이 많다는 걸 알아차렸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내일 병원에 가보기로 하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몸살 감기인지 몸이 덜덜 떨렸다.
 그 다음날 일어난 나는 어제보다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옷을 대충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택시에 몸을 실고 보건소로 향했다. 기침을 하는 입을 손수건으로 막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나온 듯 해 손수건을 보니 피가 묻어 있었다.
 폐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덜컥 무서워졌다.
 택시에서 내리고 보건소에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보건소에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를 겨우 뚫으며 보건소에 들어갔을 때,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으나,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멀리서 의사들이 무어라 외치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으나, 눈꺼풀도 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