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부르크 국왕이 죽은 뒤로 조사를 진행한 사람들은 국왕의 죽음이 타살이 아닌 자살이었다고 한다. 또한, 자살인 줄로만 알았던 한 사람의 죽음이 아이스부르크 국왕의 살인이었다는 사실 또한 밝혀졌다. 죽은 사람은 평소 아이스부르크 국왕과는 달리 시민이 더 참여할 수 있는 정치를 꿈꾸었던 ‘리포마’ 씨였던 것으로 판별되었으며, 아이스부르크 국왕과 뜻이 맞지 않았던 그가 결국 살해당한 것이었다. 또한, 왕의 유서의 원본으로 추정되는 문서 또한 조사원들이 찾아 내 조사중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 짐은 내게 너무 무겁다. 내 자신도, 나라도 너무 부끄럽고 내게 남겨진 것은 책임뿐이다. 이 책임은 질 것이 아닌 버려질 것이다. 이 수많은 시민들을 내가 어찌 이끌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무능한 나라도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죽으려 해도 이 사람이 살아 있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다. 계획은 5월에.....반드시, 이행한다.

아이스부르크 시민들은 이에 죽은 리포마 씨를 추모하며, 리포마 씨가 죽었던 5월 23일을 ‘비극의 날’ 이라 부르며 이 날에는 기르는 가축 중 두 번째로 좋은 동물을 잡는 날로 정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