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에 폭우가 쏟아졌다.
 신의주에서 하루 하루 버텨가던 생존자들에게는 단비였겠지만, 그녀들에겐 저주나 다름 없었다.
 탱크가 신의주 도심에 들어서고, 총기를 든 군인들이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김명희와 백설하는 군인들의 추적을 피해 차량도 버리고 산에 숨었다.
 주변의 나무로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집을 대충 짓고, 불을 피우며 며칠을 버텼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김명희가 차량에 두고 온 식량을 챙기기 위해 떠났을 때였다.
 챙겨온 식량이 모두 떨어지자, 둘은 밤을 이용해 차량으로 갔다.
 그녀들이 차량에 다다르자,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백설하다!"
 김명희는 순간적으로 그 목소리가 한 군인이 낸 소리임을 직감하고, 백설하의 손목을 잡고 달렸다.
 김명희의 등 뒤에서는 고함 소리와 발소리가 들렸고, 둘은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미친듯이 달렸다.
 산의 입구에 다다를 무렵, 총성이 울렸다.
 백설하는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린 다음, 몸에 총을 맞지 않은 것을 확인하며 김명희를 돌아봤다.
 그러나, 쓰러진 김명희의 다리에는 피가 흘렀다.
 "으으으.. 으윽.."
 그녀의 입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고, 두 팔로 다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백설하는 어쩔줄을 몰라하며 군인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점점 목소리가 가까워졌고, 그녀는 다시 대공분실로 끌려가게된다는 사실로 인해 공포에 휩싸였다.
 그 때, 김명희가 결심한 듯 백설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날 두고 가. 이러다간 둘 다 죽어."
 "하지만.."
 "너.. 다시 대공분실로 가고 싶은건 아니잖아..? 내가 여기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테니깐.. 어서 가.."
 백설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아랫입술을 깨물며 겨우 울음을 참았다.
 백설하는 고개를 숙이곤, 그대로 산으로 들어갔다.
 간발의 차로, 군인들이 뒤따라와 김명희를 바닥에 누르며 수갑을 채웠다.
 "야! 한명 더 어딨어?"
 김명희는 군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찾으시면 안될걸요.. 수류탄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말에 군인들은 흠칫 놀라며, 지휘관을 바라봤다.
 지휘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철수, 김명희는 평양국군병원으로 보낸다."

 김명희는 군용차량으로 끌려가며, 백설하가 도망쳤을 산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살아라.. 꼭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