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도 끝이다. 좋지?"
 그가 장갑을 벗어던지면서 말했다. 처음 여기 끌려왔을때에는 그에게 비소라도 던졌겠지만, 지금의 나는 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5년 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문을 받으면서, 저항심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었다.
 "아, 이걸 깜빡할 뻔했네. 잊고 있었어.."
 그는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상자를 뒤적이더니 주사기를 꺼냈다.
 "자, 오늘도 맞아야지. 안 그래?"
 나는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고문에서 나온 순종심도 있었으나, 그 주사를 맞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독극물이 든 주사기도 아니였고, 고통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뭐가 들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될 것 같아 잠차고 있었다.
 다만, 아까부터 허기가 밀려오는 듯 했다.
 주사기를 뽑은 그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아, 황가에 보낼 사죄 편지도 잊지 말고. 저번처럼 늦어지면 후회하게 될거야."
 그의 섬뜩한 경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저기.. 죄송한데 밥 좀 더 주시면.. 안될까요?"
 내가 며칠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내뱉은 말이였다.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배가 고팠다. 식판에 조금씩 담겨 나오는 음식은 원래부터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영문도 모른 채 배가 고파지기 시작해서, 더더욱 배가 고파졌다.
 철창 밖에서 식판을 밀어넣은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귀중한 세금으로 이 정도 밥이라도 주는 것 만이라도 감사해야지.. 더 달라고?"
 나는 말을 내뱉을 것을 후회하며 수습하려 애를 썼다.
 "아..아뇨! 그게 아니라.."
 "야! 이 사이코 끌고 가! 밥이 먹고 싶다니 드려야지!"
 얼마 되지 않아, 의자에 두 손과 발이 묶인 나는 얼굴 위로 쏟아지는 고춧가루를 푼 물을 코로 들이마시며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을 후회했다.

 몸에 힘이 없었다. 언제는 힘이 있었냐만은, 벌써 며칠째 일어나지도 못한 채 감방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김없이 이어진 고문에, 배가 몹시 고픈 내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자, 나를 깨우려는 사람들을 밀치며 그가 말했다.
 "감방에 넣어버려. 앞으로 내 명령 있기 전까지는 누구도 감방에 들어가거나, 식사를 넣는 일이 없도록 한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철문을 두들겼다. 철문 소리가 복도를 타고 퍼졌지만, 누구의 인기척도 없었다.
 나는 절망적으로 창문도 없는 좁은 감방의 벽을 바라봤다.
 겨우 누울 수 있는 감방. 이 곳에서 억지로 전향서와 황가에 보내는 사과편지를 끊임없이 써내려갔다.
 말을 할 힘조차 떨어지자, 나는 초첨 없는 눈으로 퀭하니 감방의 벽을 바라봤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실감이 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애석하게도,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한 채,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며 얕은 숨을 내뱉었다.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고마웠던 두 사람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이제 나는 마지막임을 예감하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미안."
 그리고 나는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그보다 3일 뒤의 일이였다. 지부장의 명령으로 감방 문을 연 직원들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듯 홀쭉한 그녀의 시신을 확인했다.
 지부장은 그녀의 시신을 의료실습용 시신으로 넘겼고, 그녀의 시체는 메스에 수차례 난도질 당한 후 화장되어 이름 모를 한 강에 뿌려졌다.


 ㅍㅇ) 어디보자.. 사망자 명단에 이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