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후, 나는 언제나 똑같은 꿈을 꿨다.
 눈을 떠보면 나는 다시 태광실업에 있다. 내 옆에는 죽었다던 안영환이 음흉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고, 내 앞에 있는 전기의자에는 피투성이가 된 김명희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앉아있다.
 전기 고문이 시작되고, 그녀의 몸이 몇 번 발작하듯 뒤틀리고나서야, 안영환은 전기 의자에서 그녀를 끌어내린다.
 이후 수조에 고개가 쳐박힌 그녀는 몸부림치다 이내 숨이 끊어진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자리에 앉아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게된다.
 그리고, 쓰러져있던 그녀가 불현듯 일어나 나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물에 젖은 머리에 물이 떨어지고, 그녀는 나를 향해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왜.. 말리지 않았어?"

 여기까지가 전부다. 이 다음으로는 꿈이 진행되지 않는다. 이미 수십년도 전의 일이지만, 나에게는 악몽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녀가 죽어가는 광경을 눈 앞에서 똑똑히 지켜봤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무력한 사람이자, 위선자였다.
 나는 그녀가 죽은 이후 대공분실의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범죄심리학자가 되었다.
 태광실업, 즉 대공분실의 직원들이 체포될 때도 나는 무사했다. 단기 업무라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나는 교단에서보다는 TV에서 많이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출연해 연쇄살인범이나 엽기살인범이 싸이코패스네 아니네를 이야기해주는 그런 사람이였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 입어, 나도 꽤나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부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중산층이 되었다.
 그러나, 누가 봐도 행복해보일 우리 가족에는.. 문제가 있었다.
 아내는 딸이 중학생이였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응급수술을 받는 동안 딸아이는 수술실 앞의 의자에 쪼그려앉아 울고 있었는데, 나는 그 옆에 없었다.
 방송 촬영 중이였던 나는, 뒤늦게야 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응급실로 뛰어갔으나, 이미 딸은 아내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아빠로서 실격이였다.
 또 몇 년이 지나고, 딸은 황태자가 있다는 전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도 바빴고, 딸도 바빴기에 안그래도 서먹서먹했던 관계는 희미해져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현 황태자가 딸과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황가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다. 뭐.. 혁명을 일으켜 없애버리자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김명희의 죽음에 황가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별 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였다.
 "황태자 부부 납치 사건.. 일어나게된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가 처음 우리집에 와서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나에게 물은 말이다.
 "..백설하의 극단주의적 황가 혐오. 그게 원인이지 않겠습니까? 똑똑하시고, 또 부모님께도 들으셨을텐데요.."
 "하지만.. 관련 기록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김명희라는.. 사람의 이름이 자주 나왔는데..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 했다. 그녀의 이름이, 황태자에게 불려질 것라곤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였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입니다. 제가 빚을 진 사람이기도 하고요."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결정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황태자는 굳은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자신이 지금껏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스러워했던 황가의 이면이 드러나자, 큰 혼란을 느낀 듯 했다.
 "..저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게 무슨.."
 "더 이상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거나, 어떤 사상을 탄압하거나, 혹은 누굴 잔혹히 대하고 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벌어진 모든 일들에 대해 사죄하고 싶습니다."
 "..그건 황태자 저하의 부모님이신, 황제 폐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설령 그렇다고하더라도, 결국 누군가 사과하지 않는다면.. 이 악순환은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만일 제가 황제가 된다면.. 제가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지금껏 벌어진 모든 일들의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할 것을.. 이 자리에서 제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특유의 점잖고 격식을 차린 말투에 웃음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이 가진 힘에 눌린 채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힘드시지만.. 성공하신다면 성군이 될 것입니다."
 그가 가볍게 손을 쥐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후 딸이 다시 들어와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지만, 그가 딸과 함께 나가기 전, 나에게 보낸 굳은 결의에 찬 표정이 내가 그를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이 황가에도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날은 밤잠을 설쳤다.
 신기하게도, 다시 악몽을 꾸는 일은 없었다.


 ㅍㅇ) 나중에 이어질 이현 황제의 조기 퇴임과 관련된 스토리입니다. 여기 나오는 진수일의 딸은.. 훗날 이현 황제의 아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