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 만나시는게 어때요?"
 그녀는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오빠임에도 언제나 극존칭을 쓰곤 했다. 몇 번 그러지 말라고 타박을 줬으나 고치지 않아 그냥 뒀다.
 "어디서?"
 "황궁 앞에.. 아는 식당 하나가 있어요. 거기서 뵈요.. 기다릴게요."
 나는 그녀가 이제 황태녀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오랜만에 나가보는 외출이였다.

 그녀는 수수한 평상복 차림으로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음식을 시키고 수 분간의 정적이 맴돌았다.
 정적을 깨뜨린건 그녀였다.
 ".. 요즘 어떠세요?"
 "어떻긴,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만끽하고 있지."
 ".. 거짓말이죠?"
 뜨끔했다. 솔직히 지난 며칠동안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은 사실이였다.
 그들은 법봉을 몇번 두들기면서 자신들이 책봉한 황태자를 끌어내렸다.
 내가 계획한 모든 일들이 허사가 되었고, 나는 잠깐동안의 달콤한 꿈을 꾼 것 같았다.
 나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며 말을 돌렸다.
 "참, 황태녀 생활은 어때? 상상도 못했을거 아냐?"
 ".. 무서워요.. 평생 제가 황태녀가 될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녀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 그때 용서를 구하지 않으신거에요?"
 나는 그녀가 누굴 이야기하는지 알았으나, 모르는 척 물었다.
 "누구한테?"
 ".. 황제 폐하께요.."
 "너 많이 변했다? 이젠 아빠도 황제 폐하라고 부르고.."
 "이젠 황태녀니깐요.. 황녀가 아니라.."
 "..."
 "말씀 해주세요, 그토록 원하던 자리셨잖아요?"
 "아버지한테 용서를 구하면서까지 그 자리에 있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아직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세요?"
 "응, 전혀."
 나는 단호히 말했다. 그녀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 사람들 전부.. 우리 부모님을 죽일뻔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왜..?"
 "그래서, 그런 사람은 약물 주사 맞아서 아사해도 괜찮은거야? 시신도 수습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버려져도 되는거야!"
 "무슨.. 말씀이세요?"
 "넌 모르겠지! 지금껏 우리 황가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나도 모르게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하나만 말하자. 절대 아버지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마. 너도 곧 그 실수가 뭔지 알게 될테니깐.."
 "실수요..?"
 "이게 네 오빠로서.. 또, 전임 황태자로서 말하는 마지막 말이다. 더 이상 만나지 말자."
 "네?!"
 나는 그녀를 뒤로한 채 식당을 빠져나갔다. 바깥에는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불었고, 미치도록 담배가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