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월 1일, 데모 세력과 가담하여 대통령궁으로 진격하려 한 반란군은 도저히 데모가 격화되지 않자 계획을 몇시간 후로 연기하고 만다. 그러나 정보 누설로 재차 연기되어 이르게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1월 1일 라왓은 마침내 대통령궁, 방송국, 육본을 위시로 한 수도의 주요기관을 차례로 점령하기 위해 육사 중령들과 궐기하여 해당 지역 관구사령부를 제1지휘소로 삼고 델리(수도) 남부에 주둔한 제1사단, 델리 서부 수색에 주둔한 제2사단, 델리 동부의 육군 5군단 포병대 5개 대대, 육군 제1공수특전단, 전국적으로 주둔한 여러 전투부대, 육군본부의 일부 그리고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관할 밖의 남부 주둔 해병대 제1여단 등 2만여명 이상의 군인을 동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