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항상 옳은 일을 하셨다. 늘 그러셨던 것 같다.
 어린 나를 마을 친구분의 집에 맡겨두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버지는 면도되지 않은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문지르면서, 포수용 소총을 어깨에 매고 계셨다.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렸다. 죽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말 없이 지긋이 웃으시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고아가 되었다. 몇년간 마을 사람들이 주는 옷과 음식으로 버텨나갔다.
 내가 농사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나는 감자 농사를 지으며 근근히 먹고살아갔다.
 그리고, 한반도 전역이 광복의 기쁨으로 넘쳐 흐르고 있을 때, 감자밭에서 농사를 짓던 나에게 누군가가 달려와 소리쳤다.
 "김 주석 동무께서 찾으신다!"
 순간, 두 손에 힘이 풀렸다.
 부모님과 함께 항일 운동을 하셨다던 그.. 김 주석.
 그가 이 산골 마을까지 온 것이였다.
 소련군 제복을 입은 젊은 나이의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아바이와 어마이의 일은 유감이오. 간악한 쪽바리 놈들 때문에 그만.."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나는 어두워진 낯빛으로 말했다.
 "아닙네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네다, 동지!"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이런 내 모습이 귀여웠는지, 그는 나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이제 곧 우리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될 것인데, 동무도 우리 군에 참여하지 않갔나? 부모님의 뜻을 따르면 좋을 것 같은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김 주석은 부모님의 동지이자, 나에게는 이제 은인이 되었다.
 "여..영광입네다 동지!"
 그렇게 나는,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입대하고 나서는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어린 나이에, 심지어 여자였지만 남자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설 정도로 강한 훈련 등을 모두 견뎌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여느때처럼 훈련을 받던 나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김명옥.. 맞나?"
 "누구십네까?"
 그는 말 없이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줬다. KGB라고 적혀 있었다.
 공포가 온 몸을 휘감았다. 혹시라도 내가 반동분자로 몰려 체포가 되는 것인지 두려워졌다.
 그는 내 표정을 보더니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가 동무를 체포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니.. 그냥.. 일 하나 하는게 어떻소?"
 "무슨.. 일입네까?"
 "KGB 공작원이 되시오. 공작원이 되어서 이 공화국과, 또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싸우는거요. 김 주석이 당신을 추천하던데.."
 김 주석이 나를 추천했다는 말에, 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나를 추천했다는 것은 곧 나를 인정했다는 것이기도 했다. 김 주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수락해야했다.
 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말 없이 차로 나를 안내하며 말했다.
 "KGB에 온 것을 환영하네."
 그렇게, 몽골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