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청나라 후난성 샹탄에서 농민 마오이창과 그 부인 원(文)씨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부농으로 취급될 정도로 부유한 편이었다. 객가인 집안이라고 한다. 14살 때 뤄씨 성을 가진 여인과 혼인하였으나, 이 결혼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라서 결혼을 거부하고 가출하였다. 그 뒤 장사의 주성 중학에 입학하였고 신해혁명이 발생하자 혁명군에 잠시 가담했다가 후난성 공립 고등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후난 제1사범 학교를 졸업한 후 1918년 스승이자 후의 장인이 된 양회중 교수를 따라 베이징대학에서 약 2년간 보조 사서로 근무했다. 이때 공산주의 사상을 처음 접하고 많은 독서와 토론, 강연 등을 통해 사상적 기초를 닦았다. 사실 이때는 공산주의를 접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마크르스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나키스트에 가까웠으며 심지어 이때 마오쩌둥은 통일된 중국이 악의 근원이라면서 중국을 27개의 소중국으로 나눠자는 글까지 썼을 정도였다.

고향으로 온 이후에는 그동안 사망한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고 학교 사업도 벌여서 교장이 되어 꽤 돈을 벌게 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그동안 사귀던 양 교수의 딸인 양카이후이와 결혼하게 된다. 계급으로 치면 그는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결론 : 이 놈도 부르주아다(오히려 장제스가 더 가난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