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르륵.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검은 용인, 버블은 배에서 울리는 고동에 배를 감싸쥐었다.



"... 배고파..."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른지도 벌써 3일 째. 기나긴 굶주림으로 인해 버블의 상태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

자유가 없더라도 식사 만큼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던 삶을 살아왔기에 자유가 있더라도 식사를 해결할 수 없는 삶을 마주친 버블은 진지하게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괘, 괜히... 도망쳐 나온 걸까... 아, 아냐... 그, 그런 생각 하지 말자... 그, 그래도..."



버블은 이전에 살던 곳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새하얗고 푹신한 침대. 그곳에 누워 생활하던 짧지 않은 시간. 그것을 떠올리고 있으면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종종 두려움에 떨고는 했다.



"... 배고파..."



그런 감정을 어떻게든 제쳐둔 버블은 여전히 뱃고동을 울리는 배를 문지르며 휴대폰을 켰다.

바로 어제, 배고픔에 의해 충동적으로 설치한 만남 어플. 이곳에서 몸을 팔고, 그 경험으로 소설을 써서 돈을 벌면 어떻게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설치한 어플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어플을 향해 손가락을 옮겼다. 그 손가락이 어플을 키려는 순간, 누군가 그를 불렀다.



"저기!"

"?!"



갑작스레 그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 버블은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위로 던져버렸다.

중고로 구했던 옛날 폰은 하늘을 여행하다가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 쳤다.



"... 아, 안돼... 내, 내 전 재산..."

"아, 그, 그러려던 게 아닌데... 죄송해요..."



완전히 작살이 나버린 휴대폰을 보며 그가 좌절하자 그에게 말을 건 누군가가 사과를 건넸다.

등 뒤에 투명한 날개가 둥둥 떠있는 작은 체격의 삼색 고양이... 아니, 삼색의 개가 그를 내려다보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우으... 아, 아니에요... 무, 무슨 일로..."

"아, 그게, 그러니까... 이거 드실래요?"



개 수인은 버블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묻자 허리춤에 맨 작은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종이로 포장된 무언가를 건넸다.

종이 포장 안쪽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 저도 모르게 손을 뻗던 버블은 순간 정신을 차리곤 손을 뺐다.



"힛...! 죄, 죄송...!"

"아니에요! 드셔도 돼요! 헤헤... 엄청 배고파 보이길래... 저는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여!"



해맑게 웃으며 버블의 손에 종이로 포장된 것을 쥐여주는 개 수인. 버블은 떨리는 손으로 포장을 벗겨 보았다.

포장 안에 들어있는 것은 자그마한 빵이었다. 방금 갓 구운 듯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빵.

버블은 진짜 먹어도 되는 것인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개 수인을 번갈아 보다 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 마, 맛있어..."

"헤헤, 다행이다. 괜찮으면 더 사드릴까요? 전 괜찮으니까!"



개 수인의 말에 버블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척 봐도 그보다 몇 살은 어려보이는 아이한테 얻어먹어서는 안된다고 이성은 알고 있음에도, 본능은 꼬리를 마구 흔들고 있었다.



"헤헤, 다행이다! 따라오세요!"



그래도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은 걸까. 개 수인은 해맑게 웃으며 그를 안내했다.

개 수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척 봐도 엄청나게 커다란 한 건물. 버블은 순간 건물의 위용에 위축되어 움찔 떨었다.



"여, 여긴...?"

"제가 입학하게 된 아카데미에요! 스위츠 아카데미라구 엄청 유명하다고 하던데..."



개 수인의 말에 버블은 마른 침을 삼켰다. 스위츠 아카데미. 세계 정서에 둔감한 그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스위츠 마법을 주로 가르치는 아카데미로 엄청난 명문 아카데미. 그렇게까지만 알고 있었다.



'혹시... 엄청난 재벌...? 그런 애가 왜 나한테...'

"헤헤, 여기 1층에 빵집이 있는데 거기서 엄~ 청 빵을 싸게 팔거든요! 헤헤, 덕분에 어떻게 한 달을 버틸 수 있다고 할까..."

"... 응... 내 착각인 걸로..."

"네?"

"아, 아무것도..."



개 수인의 솔직한 감상을 들은 버블은 머릿속에 떠오르던 수만가지 상상들을 접어서 치웠다.

눈 앞의 개 수인은 그냥 친절하고, 또 그와 마찬가지로 빈곤한 아이일 뿐이었다.

버블은 개 수인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수많은 수인들로 북적였다.

간식을 먹으러 온 이들, 수업을 들으러 온 이들, 견학을 하러 온 이들 등등. 세계 명문 아카데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님을 버블은 재차 실감했다.



"헤헤, 여기에요!"

"어머, 티, 어서오렴. 오늘도 빵 먹으러 온 거니?"

"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 티, 나는 아주아주 젊은 노처녀란다... 그러니까 아주머니라는 호칭은 쓰지 말자?"

"아차... 죄송해요. 헤헤... 여기 앉아 있으세요! 빵 골라올게요!"

"아, 네..."



버블은 개 수인이 가리킨 테이블에 앉았다. 그의 표정은 조금 붉어져 있었다. 다름 아닌 다른 이들의 시선 탓이었다.



'... 진정하자... 진정해 버블... 밖에서 발기하면 안 돼...'



꼬리의 두께 탓에 입을 수 있는 게 작스트랩밖에 없던 버블은 당연히 타인의 흥미 어린, 혹은 이상하다는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그 시선 탓에 흥분해 발기하려는 것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자 어느새 쟁반에 여러 도넛을 담은 개 수인이 테이블로 돌아와 앉았다.

그에게 도넛을 먹으라며 쟁반을 내미는 개 수인. 그는 흥분되던 마음이 잠잠해지는 것을 느꼈다.



"... 자, 잘 먹겠습니다..."



버블은 떨리는 손으로 도넛을 집어 먹었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도넛. 여태껏 이토록 달달한 음식을 먹은 경험은 손에 꼽기에 버블은 울먹이며 도넛을 먹었다.



"... 맛있어..."

"헤헤, 그렇죠? 그런데 다들 여기에 들어오는 건 마법의 실패작 뿐이라며 여기서 먹으면 맛을 모르는 거라고 욕한다니까요? 실패작도 실패작 나름의 맛이 있는 건데..."

"... 실패작?"

"아, 네! 스위츠 마법으로 하루에 만들 수 있는 먹을 수 있는 스위츠를 만드는 수가 제한되어 있는데 그 스위츠도 반죽이 이상하다던가 너무 달게 만들었다던가 해서 잘못 완성된 스위츠가 자주 나오거든요. 학생들이 그런 실패작을 여기에 팔면 여기서 엄청 싼 값에 모두에게 파는 거예요. 성공작은 위층에서 학생이랑 교직원을 대상으로만 판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구나... 이게 실패작..."



버블은 작게 감탄했다. 실패작도 이토록 맛있는데 성공작은 과연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는 것일까.

비록 그는 일반인이기에 먹어볼 일은 없겠지만 생각만 해도 침샘이 자극되었다.



"코코, 홍차 좀 타줘!"



그때, 개 수인이 옆에 떠 다니는 찻잔을 보며 말했다. 그가 가방에서 자그마한 팩을 꺼내 찢자 안에서 나오는 찻잎. 그것이 찻잔 안에 들어가자 찻잔이 흔들리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찻잔 안이 홍차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홍차 제조 완료.]

"헤헤, 언제나 고마워~"



마침내 홍차가 전부 우려지자 움직임을 멈추고 굉장히 기계스러운 말투와 함께 개 수인의 앞에 내려앉는 찻잔. 그에 개 수인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홍차를 마시자 버블은 아까 전, 직원이 개 수인을 부른 호칭을 떠올리며 물었다.



"... 이름이 티... 맞죠?"

"꿀꺽...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 아까 직원 분이 부르셔서..."

"아, 그렇지. 헤헤... 깜빡했네요... 아, 제가 훨씬 어릴 테니까 말 놓아도 돼요!"

"네, 네? 아, 응... 그럴까...? 티... 도 말 놓아도 돼..."

"헤헤, 알겠어 형!"



해맑게 웃으며 도넛을 한 입 베어무는 티. 버블은 그 모습을 보며 옅게 웃었다.

이름은 티지만... 정작 행동거지는 아무런 불순물도 들어가지 않은 깨끗한 물. 그런 생각이 든 탓이었다.

티보다는 워터나 퓨어 같은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는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을 보고 그 생각을 철회했다.



"코코, 홍차 한 잔 더!"

"... 아니, 티가 어울릴지도..."

"웅?"

"아, 아무것도 아냐..."



어느새 홍차를 다 마시고 새로 리필하는 티를 보며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버블은 마저 도넛을 먹었다.

티에게는 차마 갚지 못할 빚을 지고 말았다. 비록 싸다고는 해도 그에게는 너무도 큰 빚이었다.



"... 저기, 티..."

"웅?"

"... 정말 고마워. 갚지 못할 빚을 지고 말았지만... 언젠가 꼭... 갚을게..."

"... 헤헤, 형, 웃는 얼굴 진~ 짜 잘 어울려!"

"으, 응...? 내, 내가 웃었어...?"



옅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는 버블. 그를 보며 티가 해맑게 웃자 버블은 당황하며 자신의 얼굴을 더듬거렸다. 평생을 웃어본 적 없던 그로써는 웃는다는 표현이 매우 어색했다.



"그리고 진짜 부담 갖지 마! 여기 도넛은 아무리 비싸도 5원 밖에 안 해! 싼 거는 2원! 밖에서는 무려 2~30원이나 한다구! 비싸면 50원이나! 그러니까 부담 안 가져도 돼!"

"... 응..."



그렇게 말해도 버블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런 작은 아이가 자신을 위해 지출을 해주었다. 그것 만으로도 마음의 빚을 많이 지기엔 충분했다.

역설적이게도, 이토록 순수한 티를 보고서야, 버블은 다짐할 수 있었다.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멀어야 한다.

그 돈으로... 보답해야만 한다고.